ⓒ 중국 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ㅣ남윤성 기자] 전술, 원칙, 반성, 희망 아무것도 없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의 9회 연속 월드컵 출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23일 중국 창샤의 허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6차전에서 한국대표팀은 졸전 끝에 중국에 0-1로 패했다. 중국에게 더 이상 공한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가오 홍보(前 중국대표팀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전술은 변화무쌍했고 3만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은 중국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되어있었다.

반면 한국대표팀의 전술은 무색무취 그 자체였다. 상대와 경기의 흐름에 따른 변화나 대응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상대가 쓰리톱으로 경기에 나선 상황에서 포백이 아니면 무슨 전술을 사용했어야 했는지 반대로 묻고 싶다”는 실언에 가까운 발언으로 ‘소리아 사태’에 이어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강팀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중국

중국은 더 이상 약팀이 아니었다. 지난 5개월간 리피의 지도를 받은 중국 축구는 상당한 발전을 이뤄낸 모습이었다. 전술엔 목적이 뚜렷했고 상황에 따른 대응도 훌륭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중국 선수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리피 감독은 중국에 최적화된 ‘선 수비·후 역습’ 축구를 구사했다. AT마드리드를 연상케 하는 촘촘한 두 줄 수비는 경기 내내 안정적인 수비력을 자랑했다. 중앙을 견고하게 만든 뒤 라인을 위로 올리며 효과적인 역습을 준비했다. 공을 탈취한 지점에서 망설임 없이 수비 뒷공간으로 패스를 투입했다. 최소 인원으로 매우 효율적인 공격 작업을 펼쳐나갔다.

한국에도 기회는 있었다. 전반과 후반 초반의 흐름도 좋았다. 하지만 중국 진영에서 공격진의 적극성이 부족했다. 경기 내내 견고함을 자랑한 중국의 두 줄 수비를 허물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크로스를 시도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렵게 측면으로 전달된 공은 다시 백패스가 되어 나왔다. 더군다나 반대로 전환하는 도중에 끊겨 역습을 허용하거나 패스미스가 발생하며 흐름을 잃어갔다.

경기 내내 견고함을 과시한 중국의 두 줄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선 적극적인 크로스의 시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김신욱이 투입된 이후에도 공격진은 크로스의 시도를 망설였다. 2대1 패스를 시도하려는 지동원의 의도를 이미 중국 수비수들은 파악하고 있었다. 남태희의 패스 미스까지 이어지며 중국에 역습을 허용하고 말았다. ⓒ JTBC 중계 캡쳐

슈틸리케 부임 이후 황태자로 떠오른 이정협은 최근 리그에서 절정의 골 감각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선 이렇다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기대했던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플레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슈틸리케는 후반 시작과 함께 김신욱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이에 대응해 중앙 지역을 더욱 강화하며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김신욱을 막아냈다. 측면이 비교적 활발했던 전반전에 김신욱의 활용이 이뤄졌더라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슈틸리케의 선택은 이정협이었고 이는 결국 교체카드를 한 장 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중국화 논란 불식시킨 중앙 수비,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불안함을 노출한 중앙 수비수들은 지난 몇 달간 계속해서 중국화 논란에 시달렸다. 게다가 슈퍼리그의 외국인 용병 제도가 새롭게 규정된 탓에 시즌 초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홍정호는 최근 리그 경기에서 활약이 좋지 않았고 장현수의 경우엔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가량 실전 감각이 없었다. 물론 이 조합은 이번 경기에서 뚜렷한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움은 분명 존재했다.

장현수는 압박 없이 시야를 확보한 상태에서는 적극적으로 빌드업을 시도하며 뛰어난 패스 능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수비 시 볼 소유권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사이드라인으로 공을 걷어내는 등 실수 없는 수비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수비의 일차적인 임무가 안정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라고는 해도 공격과 미드필더들이 중국 진영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것이 현대 축구에서 수비수에게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인 만큼 아쉬움이 존재하는 부분이었다.

경기 내내 견고함을 과시한 중국의 두 줄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선 적극적인 크로스의 시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김신욱이 투입된 이후에도 공격진은 크로스의 시도를 망설였다. 2대1 패스를 시도하려는 지동원의 의도를 이미 중국 수비수들은 파악하고 있었다. 남태희의 패스 미스까지 이어지며 중국에 역습을 허용하고 말았다. ⓒ JTBC 중계 캡쳐

직접적인 실점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홍정호의 판단 미스는 중국의 코너킥으로 이어졌고 결국 전반 34분 유다바오의 결승골이 터져 나왔다. 장현수가 상대를 압박하고자 지역을 벗어났을 때 홍정호는 즉시 공간에 대한 커버를 실시해야했다. 하지만 홍정호는 오프사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라인을 타면서 결국 커버의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홍정호가 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미리 중앙으로 이동하고 있었더라면 좀 더 앞에서 중국의 공격을 저지할 수도 있었고 코너킥으로 이어진 장린펑의 슈팅 또한 사전에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기성용의 부담은 주장 완장으로도 충분

슈틸리케는 남은 네 경기에서 기성용을 계속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기성용은 이날 경기에서 가장 위협적인 유효 슈팅을 두 차례 기록하긴 했지만 수비적인 판단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경기 내내 견고함을 과시한 중국의 두 줄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선 적극적인 크로스의 시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김신욱이 투입된 이후에도 공격진은 크로스의 시도를 망설였다. 2대1 패스를 시도하려는 지동원의 의도를 이미 중국 수비수들은 파악하고 있었다. 남태희의 패스 미스까지 이어지며 중국에 역습을 허용하고 말았다. ⓒ JTBC 중계 캡쳐

이러한 판단 실수는 기성용이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한 부분이다. 기성용의 진가는 현재보다 좀 더 전진한 위치에서 발휘된다. 현재 대표팀에는 기성용의 수비 부담을 덜어줄 미드필더가 필요한데, 이 때문에 이명주의 부재가 더욱 아쉽다. 이명주는 대표팀에 투지를 제공하고 중앙에서 공수의 연결고리를 훌륭하게 소화할 미드필더다.

이번 중국과의 경기에서 수비 전술엔 문제가 없었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경기 후 인터뷰는 매우 모순적인 발언이었다. 실점을 허용한 코너킥 상황에서 펼쳐진 지역수비도 철저한 대인방어도 아닌 애매한 수비는 수비 전술이 아니란 말인가. 전술적인 지적에 흥분해 또 다른 핑계로 그저 상황을 모면하길 바라고 있다. 전술이 없고 원칙이 없으며 반성도 없고 희망마저 없는 슈틸리케, 한국 축구가 그와 계속 함께 해야 할까.

skadbstjdsla@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