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표팀 유니폼에는 태극마크보다 이 엠블럼이 더 익숙하다. ⓒ나이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이키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용품 업체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20년 전 학창시절 나이키 운동화는 부의 상징과도 같았고 지금도 나이키는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편 한국 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은 K리그다. K리그 없이는 국가대표 팀도 없고 월드컵도 없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논란도 많고 문제도 많지만 K리그는 한국 축구의 최정점에 있는 무대다. 하지만 나이키와 K리그는 전혀 연관이 없다. 최고의 스포츠 용품 업체와 국내 최고의 리그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건 의아한 대목이다. 나는 나이키가 K리그에 투자해야 하고 이런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 축구계가 나이키와 작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6년부터 시작된 나이키와의 인연

나이키는 대한축구협회와 후원 계약을 맺고 있다. 1996년 국내 브랜드인 라피도와 결별한 협회는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놓고 저울질 한 끝에 1996년 5월 나이키를 국가대표 팀 공식 후원 업체로 선정했다. 나이키가 2년에 30억 원의 후원 규모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대로 된 준비도 없던 터라 나이키는 기존 라피도 유니폼에서 로고만 나이키로 바꿔 달았다. 아디다스는 당시 입찰에서 떨어진 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계약이 만료되는 2년 뒤에는 반드시 협회와 우리가 후원 계약을 맺겠다”고 칼을 갈았다. 그러자 나이키도 강수를 뒀다. 1997년 5월 파격적인 발표를 한 것이다. “석 달 뒤 브라질 축구대표팀을 한국으로 불러 친선경기를 치르겠다.” 나이키와 3억 달러에 계약해 대륙별 순회경기를 펼치기로 한 브라질을 한국으로 초청한 것이다. 나이키 덕분에 우리가 세계적인 선수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7년 12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또 한 차례 전쟁이 시작됐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번에도 나이키의 승리였다. 나이키는 현금과 물품 등을 포함해 5년 동안 380억 원을 후원하겠다고 했지만 아디다스는 이 기간 동안 340억 원의 후원 금액을 적어냈다. 브라질 대표팀 초청 경기로 대박을 친 나이키에 마음이 더 쏠렸던 협회가 다시 한 번 나이키와 인연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이키는 2002년까지 한국 대표팀을 후원했고 중국과 일본 대표팀을 후원하고 있던 아디다스는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3강을 모두 후원할 순간만을 기다렸다. 아마도 아디다스 입장에서는 동아시아를 싹쓸이하려는데 한국만 자꾸 채가는 나이키가 미웠을 것이다. 아디다스 측은 2001년에 열린 2002 한일월드컵 공인구 발표식에서 “내년에 협회와 나이키의 계약이 끝나는데 아디다스가 반드시 협회와 계약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협회의 선택은 나이키였다. 협회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총 380억 원의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또 다시 나이키와의 계약을 연장했고 2007년에도 4년 간 490억 원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나이키와 한 번 더 손을 잡았다. 당시 협회는 나이키로부터 4년 간 현금 250억 원(연 62억 5천만 원), 물품 240억 원(연 60억 원)을 받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나이키의 후원 조건이 아디다스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계약 이후 협회가 나이키에 더 많은 투자를 압박해야 했고 그게 먹히지 않았다면 결별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협회의 재계약 규모도 형편 없었고 무엇보다도 나이키가 한국 축구에서 단물만 뽑아간다는 행태를 노골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이키가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는 철저히 무시한 채 오로지 돈이 되는 성인 대표팀에만 투자한 것이다.

나이키는 한국 대표팀과 23년을 함께 할 예정이다. ⓒ나이키

임기 1년 남은 회장의 8년 장기 계약

2012년 1월 협회가 나이키와 다시 계약을 연장했는데 여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일단 후원 규모부터가 의아했다. 8년간 현금 600억 원, 현물 600억 원 등 총 1,200억 원에 후원계약을 맺었는데 따지고 보면 연간 75억 원의 현금과 소매가 기준으로 75억 원의 물품을 지원받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2008년부터 2011년의 기존 4년 계약에 비하면 연간 12억 5천만 원의 현금 지원액이 늘었지만 이건 지원이 늘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가 상승률을 4%로 잡고 계산해 보니 기존 계약을 8년간 더 연장해 준 꼴밖에 안 됐다. 협회에서는 “계약 조건이 1천억 원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포장했지만 계약 기간이 무려 8년이었으니 계산해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의 천문학적인 액수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후원 계약에서는 현금 후원을 더 많이 따 내야 하는데 현금과 현물 규모가 똑같고 거기에 계약기간도 늘어난 건 협회보다는 나이키에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다.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연속 진출 횟수가 늘어나고 한국 축구의 인지도가 더 높아졌으니 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 받아야 했지만 협회는 계약 기간만 늘려주고 거기에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조건에 사인을 해버렸다. 참고로 일본축구협회가 2007년에 아디다스와 8년 계약을 맺을 때의 계약 조건이 약 1,630억 원이었으니 얼마나 우리가 밑지는 장사를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2014년 7월 일본축구협회는 아디다스와 계약 연장을 하며 7년 간 약 2,540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일본은 2014년 당시 기존 스폰서인 아디다스와 우선 협상 기간이 끝나자 나이키와 푸마 등 경쟁 브랜드들을 부추겨 금액을 확 올릴 수 있었다. 애가 탄 아디다스가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경쟁도 없이 나이키와 2019년까지 무려 23년 동안 계약을 이어가게 된 우리와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참고로 아디다스는 나이키와 협회의 계약 만료 때마다 지속적으로 협회에 관심을 보여왔고 나이키 못지 않은 후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더 황당한 건 계약 기간이다. 2012년 나이키와 재계약 당시 조중연 협회장의 임기는 딱 1년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1년 후면 새로운 회장이 자신의 구상에 따라 협회를 운영해야 했다. 그런데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조중연 회장이 8년 장기 계약을 맺어 버렸으니 후임 정몽규 회장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임기를 곧 마무리하고 물러나는 회장이 굳이 기존 조건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계약서에, 그것도 8년이라는 긴 기간을 명시해 사인을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참고로 프랑스는 1970년대부터 아디다스와 함께 해 왔지만 2011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나이키와 전격적으로 계약을 맺었다. 아디다스 시대는 40년 만에 저물었고 나이키로부터 계약금 4천억 원과 연간 35억 원 가량의 용품을 제공받는 조건에 합의한 것이다. 이렇게 협회가 더 좋은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과 손을 맞잡는 게 당연한데 우리는 솔깃하지도 않은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것도 전임 회장은 8년이라는 장기간의 족쇄까지 채워버렸다.

나이키는 한국 대표팀과 23년을 함께 할 예정이다. ⓒ나이키

K리그에 아디다스는 있지만 나이키는 없다

협회의 바보 같은 계약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나이키는 한국 축구와 이렇게 오랜 연을 맺으면서도 K리그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나이키가 계약을 맺은 건 협회지만 한국 축구를 통해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리고 광고를 하면서도 정작 자국리그에 대해서는 전혀 성의가 없다. 지금 K리그 구단 중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구단은 단 한 군데도 없다. 2010년 강원FC 유니폼에 나이키 로고가 박혔던 이후 나이키는 K리그에 그 어떤 관심도 보여주질 않고 있다. 사실 이 유니폼도 그냥 동네 매장에서도 살 법한 품질이었다. 정식 후원이 아니라 강원 나이키 매장이 구단을 후원한 것이었다. K리그 매치볼 후원도 2011년 이후 나이키에서 아디다스로 교체됐다. 아디다스는 높은 후원금액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을 제시하면서 K리그와 손을 잡게 됐지만 나이키는 K리그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여러 구단이 나이키와 접촉하려 했지만 나이키는 제대로 된 답도 주질 않는다. 한 K리그 구단 관계자는 “이젠 나이키에 용품 후원으로 문의조차 하질 않는다”고 했을 정도다. 대표팀의 단물만 쏙 빼먹고 자국리그는 쳐다 보지도 않는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 전구단의 유니폼 킷스폰서를 조사해 보면 나이키가 얼마나 K리그에 무성의한지 알 수 있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가 정착된 2013년부터 5년 간 모든 구단을 조사해 본 결과는 어떨까. 한 구단을 1년 후원했을 때의 점수를 1점으로 계산했을 때 K리그에 가장 성의를 보인 스포츠 용품사는 험멜이었다. 전북을 비롯해 여러 구단을 꾸준히 후원 중인 험멜의 점수는 무려 27점이었다. 험멜은 전북과 인천을 비롯해 올 시즌 K리그 챌린지 경남과 수원FC까지도 후원한다. 한국 축구에 보여주는 ‘진짜 사랑’은 험멜이 최고다. 그 다음으로 아디다스가 14점을 기록했다. 아디다스는 수원삼성과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울산현대도 후원 중이다. K리그 챌린지 부산도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는다. 점수화 했을 때 3위는 아스토레(10점)였고 4위는 켈미(9점)였다. 그 뒤를 조마와 르꼬끄(각각 7점), 키카(6점)가 이었다.

험멜과 아디다스의 ‘진짜 사랑’도 훌륭하고 르꼬끄와 키카의 꾸준함도 박수를 받아야 한다. 르꼬끄는 2011년부터 FC서울에 4년 동안 80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해왔고 2015년에 또 다시 4년 재계약을 맺었다. 2013년 시즌을 앞두고 제주유나이티드와 2년 계약을 했던 키카는 제주와 3년 더 계약을 연장했다. 르꼬끄와 키카는 여러 구단을 후원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한 번 인연을 맺은 K리그 구단과 꾸준히 함께하고 있다. 또한 조마는 올 시즌에도 강원과 광주, 전남 등 K리그 클래식 구단 등을 후원 중이다. 하지만 나이키는 최근 5년간 K리그 구단 후원을 점수로 매겼을 때 ‘0점’이다. 협회와 대표팀에는 나이키가 차고 넘치지만 K리그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나이키를 찾을 수 없다. 나이키 입장에서야 돈 되는 시장에 투자하고 싶겠지만 그 엄청난 시장을 먹으려거든 그 뿌리에 투자하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 한다. 이렇게 단물만 쏙 챙기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이키는 한국 대표팀과 23년을 함께 할 예정이다. ⓒ나이키

그래도 한국 축구가 나이키를 애용해야 할까

더 화가 나는 건 이렇게 대표팀의 단물만 빼먹고 K리그는 철저히 외면하는 나이키가 일본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나이키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J리그 구단에 전폭적인 투자를 해왔다. 2006년 당시 우라와 레즈는 나이키로부터 4년 간 160억 원에 이르는 계약을 체결했고 요코하마 F.마리노스 또한 2007년부터 8년 간 총액 300억 원에 나이키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현재도 나이키는 J리그 팀 중 가시마 앤틀러스, 산프레체 히로시마, 우라와 레즈를 후원하고 있다. 이 세 팀의 유니폼에는 흔히들 티밴드라고 부르는 기능이 있는데 유니폼 변형을 막아주는 틀과 같은 기능으로 통풍과 땀 배출에도 큰 효과가 있다. 나이키가 J리그 유니폼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나이키는 한국에서 대표팀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도 단 한 군데의 K리그 구단도 후원하지 않지만 J리그에는 정성을 다한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반드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나이키가 중국 슈퍼리그를 대하는 건 더 놀랍다. 중국 슈퍼리그 구단은 개막을 앞두고 한꺼번에 시즌 유니폼을 공개한다. 나이키가 2013년부터 중국 슈퍼리그 전구단의 유니폼을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K리그의 단 한 구단도 지원하지 않는 나이키가 중국 슈퍼리그 16개 구단 모두를 후원하고 있다는 건 충격적이면서도 화가 나는 일이다. 나이키는 중국 슈퍼리그를 극진히 대접하고 있다. K리그 팀과 중국 슈퍼리그 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나이키를 입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대결이라고 보면 된다. 나이키는 J리그 인기 구단과 중국 슈퍼리그 모든 구단을 극진히 모시지만 K리그는 아예 취급을 안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바보 같은 계약으로 대표팀이 2019년까지 나이키를 입고 뛰는 모습을 봐야 한다. K리그가 한국 축구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나이키가 얄밉고 얌체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나이키는 대표팀과 박지성, 기성용만 잡으면 한국 축구는 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이키 입장에서야 돈 되는 시장에만 투자하고 싶을 것이다. 그들이 봤을 때 한국 대표팀은 돈이 되지만 K리그는 돈이 안 되는 시장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축구팬으로서 그들의 장사꾼 논리를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협회는 2년 남은 계약 기간 동안 나이키를 압박해 자꾸 국내축구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요구해야 한다. 대표팀을 통한 홍보 효과를 무기 삼아 자국리그에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곳과 계약하는 게 한국 축구의 뿌리를 키우는 협회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이키가 지금처럼 단물만 빼먹고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계약이 끝나는 2019년에는 다른 후원사를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중국과 일본은 알아서 잘 챙겨 먹고 나이키로부터 왕 대접까지도 받는데 우리만 언제까지 ‘호구 계약’을 맺을 것인가. 이렇게 한국 축구를 홀대하는 나이키와 굳이 인연을 계속 끌고 가야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학창시절에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 게 소원이었지만 지금은 나이키가 싫다. 물론 싫어해도 누가 주면 신기는 할 거 같다. 참고로 발 사이즈는 260mm다. 255mm도 억지로 구겨 신으면 맞긴 한다.

footballavenue@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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