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전을 위해 인턴들은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주말 K리그 클래식의 화두는 멀티골을 넣고 팀을 승리로 이끈 양동현도, 김호남도 아니었다. 황당하게도 지난 라운드 핫이슈는 강원FC 홈 경기장인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의 잔디였다.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은 최악의 그라운드 사정으로 주말 내내 질타를 받았고 그런 경기장에서 원정 팬들을 상대로 3만 원의 입장료를 받은 강원FC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언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잔디에서 나는 악취는 물론 간이 화장실과 주차장, 매점 등 편의 시설 또한 프로 경기를 치르기에는 기준 미달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지 이틀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제는 차분히 이 문제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다들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의 형편없는 잔디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비난하지만 정작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부터, 누군가부터 이 문제가 불거졌는지도 살펴봐야 하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예측하거나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저 이 상황만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의 문제점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관계자들을 직접 취재했다. 이건 단순히 잔디에서 악취가 풍기는 것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강원FC가 강릉을 떠난 이유

시계를 올 시즌 개막 전으로 돌려야 한다. 강원FC가 처음부터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을 메인 홈 구장으로 쓰려던 건 아니었다. 강릉과 속초 등 강원도 여러 지역에서 홈 경기를 개최하는 강원FC는 지난 시즌 K리그 챌린지 당시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에서 네 경기를 개최했다. 그 당시에도 시설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거센 비난이 있지는 않았다. 한 관계자는 오히려 “지난 해 여름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 잔디는 정말 좋았다”고 했다. 편의 시설에 관한 부족함은 있을지 몰라도 한 시즌 동안 네 경기를 치르는데 잔디 문제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올 시즌에도 강원FC는 이벤트 차원에서 풍경 좋은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 경기를 몇 차례 정도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원도에서 날아온 공문은 모든 걸 혼란에 빠트리고 말았다. 강원FC 메인 경기장인 강릉종합운동장이 내년에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중요한 보안 시설로 지정돼 더 이상 강릉에서 경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각국 대표자들이 왕래하며 대회를 준비하는 곳으로 강릉종합운동장을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특히나 올 7월경부터는 아예 강릉종합운동장 주변에 펜스를 쳐 놓고 일반인들의 접근까지 막을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조합운동장은 올림픽 1급 보안 시설로 지정됐고 강원FC는 부랴부랴 다른 경기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내 다른 경기장은 야간 조명 시설이 없거나 시설이 낙후됐거나 접근성이 부족했다.

그나마 스키점프대가 있어 경관이 독특하고 올림픽 개최 분위기도 띄울 수 있는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이 대안으로 거론됐다. 강원도에서도 올림픽 분위기를 홍보할 수 있도록 평창에서의 홈 경기 개최를 바랐다. 물론 강원FC가 선택할 수 있는 경기장이 더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강원FC는 그렇게 강릉종합운동장을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내준 뒤 여러 경기장을 물색하다가 평창에 1년 동안 자리를 잡게 됐다. “강원FC가 자의로 강릉을 포기하고 평창으로 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강원FC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이 온전히 강원FC의 소유도 아니었다. 지난달 16일까지 평창동계올림픽 테스트이벤트가 열려 강원FC는 제대로 된 시즌 준비도 하지 못했다. 무려 1만 톤에 달하는 눈이 그라운드를 덮고 있었다.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 잔디 모습. 파랗게 보이는 건 잔디가 아니라 잔디가 죽어 버린 바닥이다.

1만 톤의 눈과 50cm의 얼음

강원FC는 K리그 클래식 개막을 앞두고 딱 2주간의 시간 동안 산적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을 뒤덮은 눈을 치우는데 딱 2주간의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장비를 동원해 1만 톤에 달하는 그라운드 위의 눈을 싹 걷어냈다. 다른 동계 스포츠 경기장에 눈이 필요하다고 해 이 눈을 연이어 다른 경기장으로 퍼 나르며 제공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눈을 싹 걷어내고 나니 눈 밑으로 50cm가 넘는 두께의 얼음이 꽝꽝 얼어 있었기 때문이다. 잔디는 이 50cm 두께의 얼음 밑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성할 리가 없었다. 구단에서는 엄청난 두께의 얼음을 깨고 잔디가 빛을 볼 수 있도록 굴삭기를 동원해 얼음을 깼다. 그런데 그 순간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굴삭기로 얼음을 깨보니 잔디까지도 큰 피해를 입는 것이었다.

결국 굴삭기 작업을 중단하고 머리를 맞댄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수작업으로 얼음을 깨자”는 것이었다. 굴삭기는 잔디에 피해를 주니 삽과 곡괭이 등을 동원해 손으로 이 얼음을 깰 수밖에 없었다. 강원FC 구단 사무실이 있는 속초와 홈 경기장이 자리 잡은 강릉 사무실에 있던 이들이 총동원됐다. 높은 직급의 직원부터 인턴까지 무려 30여 명이 동원돼 삽과 곡괭이를 들고 2주 동안 얼음과 사투를 벌였다. 강원FC 직원은 경기 바로 전날인 10일까지도 이 얼음을 깨는 작업에 몰두했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모여서 얼음을 깨고 저녁이 돼야 맡은 업무를 소화할 수 있었다. 인부를 부르는 방법도 있었지만 “잔디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직접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 2주에 걸친 대작업 끝에 1만여 톤의 눈과 50cm의 두께에 이르는 얼음을 걷어내고 나니 그제야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의 잔디는 빛을 볼 수 있었다. 프로축구연맹도 실사를 마친 뒤 “경기를 치러도 좋다”는 평가를 내렸다. 연맹 승인 없이는 그 어떤 경기장에서도 경기를 할 수 없는데 강원은 평창에서 경기 적합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또 한 번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얼음을 걷어내고 나니 악취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쌓인 눈이 얼고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고인 물이 악취를 유발한 것이다. 이는 강원FC 입장에서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당장 경기가 닥쳤는데 그라운드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까지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렇게 강원FC는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에서 가까스로 홈 개막전을 치렀지만 편의 시설 부족과 잔디 사정 및 악취 등으로 온갖 비판에 직면하고 말았다.

잔디 망칠까 곡괭이와 삽 든 강원FC 직원들

관중석에서도 악취가 신경 쓰였지만 사실 그라운드에 내려가면 악취는 더 심했다. 한 선수는 경기 시작 전 몸을 풀다가 손으로 땅을 짚은 뒤 냄새를 맡아 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데얀은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그라운드는 끔찍했다. 축구장의 잔디 상태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두가 느꼈겠지만 경기장에서 이상한 냄새도 났다”면서 “원정팀인 우리보다 강원 선수들이 더욱 아쉬워할 부분이다. 분명히 강원 선수들이 잔디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보냈다. 또 다른 선수는 “그라운드가 울퉁불퉁하지는 않아 경기를 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면서도 “경기에 집중하느라 경기 내내 느끼지는 못했지만 경기를 전후해 고약한 냄새가 나 상당히 불쾌했다”고 밝혔다.

경기가 끝난 뒤 강원 최윤겸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직원들이 2주 동안 그라운드를 정비하느라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경기에서 승리한 뒤 우리 직원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기지 못해 아쉽다.” 최윤겸 감독 말처럼 강원FC 직원들은 홈 개막전 준비를 위해 많이 고생했다. 홈 경기장을 잃은 뒤 여러 새로운 경기장을 알아봐야 했고 잔디가 더 손상될까봐 손수 작업 도구를 들고 2주 동안 그 추운 곳에서 고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런 전후사정을 알 리 없는 일부 팬들은 강릉을 버리고 평창까지 가 형편없는 팬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잔뜩 화가 났다. 물론 입장권 가격과 화장실, 주차장, 매점 등 편의 시설에 대한 여러 산적한 문제점이 있지만 편의 시설도 부족한 이런 곳에서 왜 경기를 치러야 하는지와 잔디 문제 만큼은 사정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경기가 끝난 뒤 관중이 다 빠져 나가고 그라운드로 내려가 봤다. 악취는 관중석에서보다 그라운드가 훨씬 더 심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모래가 다 드러나 보이는 곳도 있었고 심지어 터치라인 바로 바깥 쪽으로는 잔디가 아예 없어 그 밑의 카펫만 남아 있기도 했다. 얼핏 보면 이 카펫이 푸른색이라 잔디처럼 보이기도 했다. 악취에 그라운드 사정까지 좋지 않은 이 곳을 살펴보고 있으니 한 관계자가 와서 이런 말을 했다. “다음 주에 또 포항하고 홈 경기가 있어요. 내일부터 또 부랴부랴 잔디 관리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일주일 안에 개선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다음 홈 경기는 한 달 뒤에 있어서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지만 당장 포항전이 저희로서는 큰 걱정이네요. 그래도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정이 이런데 전직원이 달려 들어야죠. 잔디도 좋아지고 여름에 야간경기를 하면 정말 운치가 좋은데 그때까지의 상황은 참 힘이 드네요.”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 잔디 모습. 파랗게 보이는 건 잔디가 아니라 잔디가 죽어 버린 바닥이다.

축구장 아닌 곳에서 보는 축구, 편할 수가 없다

강원FC 편을 들 생각은 없다. 고가의 입장권 정책에 걸맞지 않은 형편없는 편의 시설들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비판받아야 한다. 향기가 나도 시원치 않을 판에 냄새가 나는 경기장에 앉아 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강원FC는 좋은 선수를 영입했으면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팬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선수 수준은 아시아를 넘보는데 서비스는 바닥을 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경기장에 ‘똥냄새’가 진동해 기분이 나빴다”에서 끝날 게 아니라 지자체의 일방적인 행정 때문에 떠돌이 신세가 된 구단의 상황을 짚어야 한다는 점이다. 강원FC가 가고 싶어서 평창으로 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참고로 강원FC와 함께 강릉종합운동장을 홈으로 썼던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은 한시적으로 강릉에 더 머물고 있다. 강릉시청은 그래도 트랙 공사 도중에도 경기를 강행할 수 있지만 강원FC는 명색이 프로이기 때문에 그런 공사장에서 계속 축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하고 형편없는 잔디 사정과 악취에 충격을 받은 채 돌아왔다. 서울에서 평창까지 왕복으로 이동한 거리와 시간, 비용을 생각하면 이건 분명히 좋지 않은 기억이다. 하지만 취재를 통해 이 불쾌한 감정은 강원FC가 아니라 올림픽을 준비한다면서 대책 없이 강원FC를 내쫓은 지자체를 향하게 됐다. 2주 동안 눈을 치우고 얼음을 깨면서 야근까지 한 강원FC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원래 축구장이 아닌 곳에서 축구를 해야 하니 이런 경기장의 시설이 좋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수억 원을 들여 관리하는 월드컵경기장 잔디도 혹사를 당하면 엉망이 되는데 1만 톤의 눈과 50cm의 얼음에 짓눌려 있던 잔디가 축구에 적합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자기네 지역 축구팀 하나도 이렇게 홀대하는 곳에서 전세계인의 겨울 스포츠 축제가 가당키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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