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즐겁게 축구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위 학생들은 본 칼럼과 연관이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배움공동체연구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학창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축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체육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심지어는 쉬는시간이고 축구를 했다. 그때는 그냥 애들하고 뛰어 노는 게 좋았다. 졸업을 하고 군대에 갈 때만 하더라도 축구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먹고 살다보니 이제는 마음 맞는 친구 11명을 모아 또 다른 11명을 상대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학교에서 축구할 때 꼭 있는 애들 베스트11을 뽑아봤다.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중고등학교 6년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했으니 재미 삼아 봐줬으면 한다.

골키퍼

안경을 쓰고 제법 몸무게가 나가는 친구다. 운동을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꼭 체육시간이 되면 “야. 너 골킵 봐”라는 일진 친구의 말에 못 이기는 척 골문으로 설렁설렁 걸어간다. 어이없는 골을 종종 허용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슈퍼세이브를 선보여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물론 상대가 페널티킥을 할 상황이 되면 갑자기 등장한 ‘공격수1’ 일진 친구의 “야. 비켜. 내가 막을게”라는 말에 손을 터치한 뒤 잠시 골문을 비켜준다. 가끔 골키퍼를 하다 공에 안경이 박살 나 경기가 5분 정도 중단되기도 한다. 다음 수학시간에 보면 이 친구는 안경 다리를 청테이프로 고정한 채 아주 편한 자세로 졸고 있다.

왼쪽 풀백

이 친구가 왼쪽 풀백에 서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이다. 바로 왼발잡이이기 때문이다. 왼발을 쓴다는 걸 제외하면 별로 메리트가 없지만 시키지 않아도 경기가 시작되면 알아서 지가 왼쪽 측면으로 가 자리를 잡는다. 물론 왼발을 쓸 줄 안다고 해 현역 선수들처럼 오버래핑을 하고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는 경우는 중고등학교 시절 6년 역사상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왼발잡이라고 해 왼발 프리킥 찬스가 나면 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른발잡이인 ‘공격수1’ 일진 친구가 프리킥도 다 차기 때문이다.

센터백1

덩치가 크고 킥력이 좋은 친구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지만 힘으로는 반에서 제일이다. 조금만 성격이 고약했으면 아이들을 괴롭혔겠지만 마음씨도 착해 그러질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킥력을 빼면 별로 잘 하는 게 없다는 점이다. 멀리 차는 것밖에 하는 게 없지만 전술 따위는 개나 줘버린 학교 축구에서는 꽤나 쓸모 있는 자원이다. 한 번에 뻥 질러서 멀리 걷어내고 ‘공격수1’ 일진 친구가 “굿”이라고 외치면 굉장히 뿌듯해 한다. 주로 킥력이 약한 골키퍼 대신 골킥도 전담한다.

센터백2

그래도 가장 안정감 있는 녀석이다. 일진도 아니고 날라리도 아니지만 운동 신경 만큼은 제법이다. 천재적인 운동 신경은 아니어도 못하는 운동도 없다. 체육시간이 되면 같이 ‘센터백2’와 같이 농구를 하고 싶어하는 애들이 있지만 ‘공격수1’ 일진 녀석이 “야. 너 공 차야돼”라며 끌고 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끌려 왔다. 하지만 ‘센터백2’가 없으면 수비가 안 된다. 말수도 적고 모범생이다. 나중에 알고 보면 동국대나 건국대, 중앙대 정도에 가고 쑥맥 같던 놈이 결혼도 제일 빨리 한다.

오른쪽 풀백

키가 작고 빠르다. 키 순으로 학급에서 번호를 매기면 꼭 10번 안에 든다. 굉장히 말이 많고 까불거린다. 춤도 잘 추고 랩도 좀 한다. 일진은 아니지만 일진 친구들하고도 제법 친한 편이다. 물론 이 친구가 오른쪽 측면에 위치한다고 해 학교 축구에서 포백이 가동되는 건 아니다. 말이 포백이지 이 ‘오른쪽 풀백’은 공격으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친구가 수비로 복귀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의 오른쪽 풀백 없는 스리백 대형이 된다. 정말 가끔 골을 넣으면 ‘호우 세리머니’를 한 뒤 유니폼을 얼굴에 뒤집어 쓰고 좋아하다가 기도 세리머니로 마무리한다. 요란하다.

학창시절 축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때가 참 좋았다. (위 학생들은 본 칼럼과 연관이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양천고등학교

왼쪽 미드필더

기술 축구 추종자다. 하지만 너무 과도하다. 꼭 상대 수비수가 앞에 있을 때 되도 않는 마르세유턴을 하다가 빼앗기거나 플립플랩을 시도하다가 혼자 넘어진다. 가끔은 사포도 시도하는데 꼭 엇비슷하게는 따라 해도 성공하는 걸 본 적은 없다. 틈만 나면 ‘락싸’에 들어가 해외 유명 선수들 영상을 보며 연습하지만 늘 그 실력 그대로다. 유럽 축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K리그를 깔보는 편이다. 남들은 다 그냥 트레이닝복을 입고 축구를 할 때 혼자 레알마드리드 호날두 유니폼을 입고 뛴다.

중앙 미드필더1

전술가다. 아무도 이 친구한테 시킨 적은 없지만 혼자 상대팀 ‘공격수1’을 막겠다고 까불고 대인 마크를 하다가 상대팀 ‘공격수1’한테 한 대 맞는다. 상대팀 ‘공격수1’이 일진인데 경기에 과도하게 몰입해 마치 진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고 생각하고 거친 플레이를 펼치기 때문이다. 경기를 하다가 하도 골이 많이 나 애들이 점수를 까먹고 “12대 7이야?”라고 물으면 꼭 “아니. 11대 8이야”라고 정정해준다. 이 친구는 점수를 다 기억하고 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전술가이면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살림꾼이다.

중앙 미드필더2

엄친아다. 반장인데 축구도 잘하고 농구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 인기도 많다. 똑같이 나쁜 짓을 하다가 걸려도 ‘중앙 미드필더2’와 함께라면 학생과장도 슬쩍 한 번 봐주기도 한다. 4교시 체육시간에 두 개의 심장을 가진 것처럼 펄펄 날던 ‘중앙 미드필더2’는 점심을 먹고 5교시에 다른 친구들이 다 잠이 들어도 꿋꿋하게 졸음을 이겨내고 수업에 집중하는 정신력까지 보여준다. 다른 평범한 녀석들이 자괴감을 느끼는 건 이렇게 공부 잘하는 녀석이 체육대회 계주 마지막 주자로 화려하게 결승선을 통과하고 스포트라이트까지 받는다는 것이다.

오른쪽 미드필더

실질적인 에이스로 초등학교 때 잠깐 축구선수를 꿈꿨던 ‘선출’이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지만 그래도 축구를 할 때면 꽤나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래서 ‘공격수1’ 일진 녀석도 별로 괴롭히지 않는다. 공이 가면 제일 믿음직스럽게 처리하고 슈팅력도 상당하다. ‘공격수1’에게 밀어주지 않고 자신감 있게 슈팅을 때릴 수 있는 유일한 녀석이다. 하지만 일진이 아니어서 최전방 공격수가 될 수 없는 비운의 오른쪽 미드필더다. 축구에 비해 공부는 별로 못한다.

공격수1

운동 신경도 꽤 좋은 일진이다. 전체적인 포메이션도 자기가 짜고 늘 자기는 마치 자기 자리인냥 최전방으로 올라간다. 승부욕이 강하고 지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자기는 인맥에 따라 친한 일진 친구들을 공격에 배치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실력에 맞는 대우를 해준다고 자부하고 있다. 지난 8번의 체육시간에 열린 8경기에서 무려 29골을 넣은 괴력의 득점왕이다. 물론 어시스트는 이 8경기에서 단 하나도 없다. 상대가 페널티킥을 얻어내면 우리 골키퍼 대신 잠깐 골키퍼를 보기도 하는 전천후 플레이어다.

공격수2

운동 신경은 전무하지만 ‘공격수1’과 친한 일진이라는 이유로 공격수에 배치된 녀석이다. 물론 경기에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공격수2’에게는 학교 축구에 오프사이드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최전방에 콕 박혀서 뛰질 않는다. 승부욕도 별로 없고 그냥 골 넣고 멋있어 보이고 싶은 게 전부인 친구다. 가끔 경기 도중 잠깐씩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의 빈자리는 별로 느낄 수 없다. 미술 잘하는 친구를 시켜 체육복 등짝에 큰 용을 그려 넣었다. 공부도 안 하고 놀러만 다니는데 집이 잘 살아서 나중에 그 돈을 물려받아 잘 산다.

체육 선생님

체육시간이 시작하면 3분 정도 짧게 이야기를 한다. “다치지 않게 해라. 교실에 들어가지 말아라. 체육복 안 입은 놈들 엎드려라.” 그리고는 학생들을 운동장에 풀어 놓고 자기는 열심히 세차를 하다가 체육시간 종료 5분 전에 스코어가 100-0이어도 이렇게 외친다. “골든골.” 체육 선생님의 이 한 마디 이후 먼저 한 골을 넣는 팀이 이기는 거다.

학생1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자칭 감독이다. FM과 피파 온라인을 주로 하는 ‘학생1’은 체육시간 바로 전 수업시간에 혼자 노트에다가 포메이션을 구상한다. 하지만 체육복을 갈아 입던 ‘공격수2’가 선발 명단에 자기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노트를 찢어버린다. 체육시간이 되면 홀로 스탠드 가장 높은 곳에 팔짱을 끼고 서 경기를 관람하고 깨알 같이 친구들의 기록지를 작성한 다음 또 다시 다음 체육시간 포메이션을 짠다. 물론 ‘공격수2’가 이 전술 노트를 또 찢어 버린다.

학생2

K리그부심이 대단한 녀석이다. 염기훈이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 역설하지만 아직도 아르헨티나전 슈팅을 언급하는 다른 녀석들의 논리를 이길 수 없다.

학생3

주번이 아니지만 체육시간에 나가기 싫어 주번과 맞바꾼 녀석이다. 3년째 체육시간만 되면 주번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니 함께 고민 없이 친구들과 공 차고 뛰어 놀던 그 때가 참 좋았던 것 같다. 이 칼럼을 보는 학생들이 싸우지 말고 더 재미있게 축구를 즐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이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이들도 이 칼럼을 통해 그 시절을 한 번 더 추억했으면 좋겠다. 그땐 참 좋았다. 그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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