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프 누에 붙어있는 경고문 ⓒ Arria Belli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개막전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는 1-1로 종료됐습니다. 이날 최고의 관심사는 역시 '북짜형' 이상호였습니다. 수원에서 서울로 이적하며 이야깃거리의 중심이 된 그는 후반 17분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를 완성했습니다.

경기 내내 이상호에게는 수원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수원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주며 '북X 짜식'이라는 말도 했던 그가 이제 서울 유니폼을 입고 서울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팬들 입장에서는 배신감도 들었을 겁니다. 이상호는 골 세리머니를 하지 않으며 나름의 예의를 지켰지만 그것 하나로 수원 팬들의 마음을 달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렇듯 축구장은 온갖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는 공간입니다. 때로는 격한 환호가 터져 나오지만 때로는 엄청난 비난과 욕설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안티콜'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축구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거친 모습들에 대해 한 번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훌리건을 합법화 하자는 러시아

얼마 전 러시아에서는 흥미로운(?) 제안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하원 의원 이고르 레베데프가 "비무장 훌리건을 관중석에 앉혀 자유롭게 싸우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죠. 그는 러시아가 새로운 스포츠 문화의 선구자가 될 수 있다면서 '드라카(싸우다라는 뜻의 러시아어)'라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골칫덩어리인 훌리건을 아예 장려하자는 것이죠.

물론 서방 세계를 비롯해 이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판했습니다. 폭력을 문화로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말도 안된다는 것이죠. 일부 유럽의 언론들 역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FIFA를 비롯해 세계 축구계가 훌리건 근절 방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통할 리가 없죠.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의원은 왜 훌리건을 문화로 만들자고 했을까요? 물론 러시아에 훌리건이 많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자는 의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가 폭력에 대해 관대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폭력에 대해 둔감하다는 것이죠. 주변에서 폭력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훌리건의 행동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튼 이 의원의 제안은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지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안티콜을 어찌해야 할까요?

훌리건에 대한 논의를 안티콜과 한 번 연결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러시아 의원의 말처럼 극단적인 폭력이 존재하는 축구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야유와 비난 없이 박수만 존재하는 축구장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그리고 K리그에서 볼 수 있는 네거티브 응원으로는 안티콜을 들 수 있겠습니다. 조직적으로 상대를 향해 구호를 외치거나 걸개를 드는 모습을 K리그 경기장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유럽의 거친 축구장에 비해서는 양반인 수준이지만 한국에서는 종종 논란이 됩니다. 안티콜로 인해 더 큰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죠.

안티콜의 긍정적인 요소는 분명 있습니다. 팬들로 시작된 이야깃거리가 곧 구단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사례는 굉장히 많습니다. 상대를 향한 적개심, 우리 팀을 향한 충성심이 반영되어 있는 안티콜은 팬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라이벌전은 선수들 간의 경쟁심, 구단의 신경전으로만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겠죠.

하지만 그 반대의 요소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안티콜이 오히려 신규 팬들의 유입을 막고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K리그 경기장에 찾은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무분별한 욕설에 아이를 데리고 축구장에 가고싶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모두가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경기장이 일부의 문화에 편중되고 있다는 지적 또한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정선'

중요한 것은 '적정선'을 찾는 일입니다. 상대를 적절히 자극하고 사람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으면서 그 이상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과거 우리는 이 '적정선'을 찾지 못해 관중과 관중, 관중과 선수가 충돌한 사례가 여럿 존재합니다.

매 시즌마다 관중들 간의 크고 작은 폭력사태가 한 번 씩은 일어납니다. 본격적으로 보도가 되지는 않지만 라이벌전이나 유난히 치열했던 경기가 있고 나서는 'A팀의 팬이 B팀의 팬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글이나 '현재 경찰서에 양 팀의 팬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글이 축구 커뮤니티에 올라오고는 합니다. 적정선을 넘어버리면 안티콜은 정신적 폭력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양 팀의 팬들, 특히 양 팀의 서포터들은 90분 동안 양 팀의 골대 뒤라는 극과 극의 자리에서 서로 마주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일부 상대의 구역에 침범해 과감한 도발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문제가 생길 때도 있지만 대부분 적정선을 넘은 안티콜을 주고 받으며 감정이 상한 이후 경기장 밖에서 실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영의 묘 살린 가이드라인 필요하다

안티콜에 대한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은 현재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수위가 넘어갈 경우 제재하겠다'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한 번 쯤은 고민해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통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K리그 각 팀의 팬들이 서로 합의하는 방식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K리그 관중석 규정은 위해를 가할 만한 물질의 반입을 금지하는 등 경기장 안에서의 물리적인 폭력을 막는 것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이나 경기장 안의 정신적인 폭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충돌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정선'입니다. 무작정 클린 축구장을 만들겠다며 팬들의 입에 대뜸 재갈을 물려버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팬들을 비롯한 축구계 모두가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재치와 해학이 넘치는 안티콜은 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니까요.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은 1라운드부터 역대 최다 관중(총 98,353명)을 기록하며 산뜻하게 출발했습니다. 이제 K리그는 이 관중 수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점차 늘려야 한다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물리적, 정신적 폭력이 없지만 찾아온 관중들에게 카타르시스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축구장이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