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20대 청년이 모은 220벌의 ‘레어‘ 유니폼과 역사

배민수
<붕어빵>에 나오던 그 고등학생이 이렇게 컸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해 10월 FC서울과 부천FC의 2016 하나은행 FA컵 4강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한 쪽 구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한 관중이 다가와 말했다. “김현회 기자님이시죠? 제가 찾고 있는 선수가 있는데 같이 좀 찾아볼 수 있을까요? 1989년에서 1990년에 여자축구 대표팀에서 뛰었던 장갑순이라는 선수입니다.” 축구를 많이 안다고 자부했지만 장갑순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제가 한 해외 경매 사이트에서 그 당시 여자 대표팀 유니폼을 구입했는데요. 장갑순이라는 이름이 마킹돼 있습니다. 꼭 이 유니폼의 주인을 만나 추억을 나눠보고 싶어요. 저도 여기저기 알아 봤는데 도무지 이 선수의 정보에 대해 알 길이 없더라고요. 그 어떤 자료를 뒤져봐도 장갑순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는 없었어요. 기자님이 좀 도와주세요.”

이때부터 이 한 청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수소문했다. 현역 여자축구 선수들을 통해 여자축구 원로 지도자들의 연락처를 알아냈고 그들로부터 지금은 축구계를 떠난 여자축구 1세대 선수들의 연락처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중년 여성이 된 이들은 “혹시 동료 중 장갑순이라는 이름을 아느냐”는 질문에 하나 같이 “전혀 모른다”고 했다. “한 번씩 스쳐간 선수들 이름을 다 기억하는데 그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결국 몇 달 동안 수소문 해봤지만 이 청년의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드는 의문점이 하나 있다. 왜 이 청년은 1989년 대표팀에서 뛰었는지 안 뛰었는지도 모를 한 선수를 애타게 찾고 있는 걸까. 왜 남들은 관심도 없는 1세대 여자축구 선수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걸까. 이 청년을 직접 만나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민수(26세) 씨다.

반갑다. 장갑순을 찾지 못해 미안하다.
아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 인터뷰를 본다면 장갑순 씨가 어딘가에서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일말의 기대라도 걸어보자. 우선 자기 소개를 해달라. 장갑순에 대한 이야기는 차근차근 해보자.
유니폼 수집이 취미인 FC안양 팬 배민수라고 한다.

어딘가 낯이 익다.
맞다. 2010년경부터 2013년까지 SBS <붕어빵>에 출연했었다.

그럼 아버지가 누구신가. 아부지 뭐하시노.
성우 배한성 씨가 아버지다. 2010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붕어빵>에 출연하게 됐는데 그때 내가 최고령 출연자였다. 2014년에 군대에 입대했고 작년에 전력했다. 지금은 나이가 벌써 26살이다.

아, 그런가. 내가 당신 아버지의 <가제트>와 <맥가이버>를 보고 자란 세대다.
다들 그렇게 말씀해 주시더라. 감사한 일이다.

<붕어빵>의 그 학생이 이렇게 컸다니 놀랍다. 그때 그 <붕어빵> 친구들하고는 자주 연락하고 지내나.
김구라 아저씨 아들 (김)동현이하고는 친하다. 내가 인하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다니는데 동현이가 또 내 대학교 과 후배로 들어왔다. 동현이도 축구를 좋아해 통하는 게 많은데 다른 친구들은 워낙 나이 차이가 커서 그렇게 막 친하게 지내는 편은 아니다.

당신도 축구팬이라는 사실은 잘 몰랐다.
1997년도에 작은 누나가 프랑스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에서 잡지를 보내주더라. 1998년 월드컵을 앞둔 때라 잡지 메인 사진이 프랑스 대표팀 골키퍼 바르테즈였다. 역동적인 자세로 공을 막아내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거기에 반해 나도 이불을 깔아 놓고 몸을 계속 날렸다. 원래 다들 축구를 할 때 골키퍼를 맡는 걸 싫어하지 않나. 그런데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골키퍼를 하겠다고 나섰다. 골키퍼를 하면서 안양시 대표로 뽑혀 일본에 가서 친선 경기도 했다. 전문적인 선수는 아니었고 대회가 있을 때 한 번씩 급조하는 성격의 팀이었다. 초등학교 내내 팀의 주장을 맡았다.

배민수
FC안양을 응원하는 배민수 씨의 모습.

‘보는 축구’는 언제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나.
내가 7살 때부터 지금까지 안양에 쭉 살고 있는데 초등학교 당시 안양LG 공짜표가 많이 나왔다. 아마 2001년 정도였을 거다. 그래서 친구들하고 자주 축구장에 놀러 다니면서 보는 축구도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안양LG가 그 무렵 연고이전을 했다. 사실 그때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연고이전에 대한 분노의 마음보다는 “팀이 서울로 갔대. 이제 축구는 어디서 보지?” 이 정도 생각이었다. 그 이후 가끔 K리그 중계가 있으면 챔피언결정전 정도 챙겨보는 팬이었다가 고등학교 때 K리그에 확 빠지게 됐다. 2009년 3월 14일, 화이트데이를 맞았는데 여자친구한테 선물 준비를 하나도 못했었다. 그런데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보니 그날 강원FC가 FC서울하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여자친구한테 축구를 보러 가자고 했더니 평소에 축구장에 가본 적이 없던 여자친구가 되게 신기해하고 좋아하더라. 그래서 현장에서 경기를 보며 K리그에 빠져 들게 됐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계속 경기장을 찾았다.

안양 팬이 된 건 언제부터였나.
강원FC 경기를 많이 보러 홈과 원정 구분 없이 다녔었는데 너무 아쉬웠던 게 있었다. 나는 경기가 끝나면 200~300km를 달려 집으로 와야 하는데 강원에 사시는 분들은 매번 경기가 끝나면 파티인 거다. 나도 내 집 앞에 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고 있던 중에 안양 팀이 창단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흔히 말하는 ‘팬고이전’이지만 7살 때부터 지켜온 안양에 다시 팀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는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결국 안양을 응원하게 됐다. 창단 과정에서부터 안양시의회에 가 궐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할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당신에게 귀한 K리그 유니폼이 많다고 들었다. 도대체 몇 벌이나 가지고 있는 건가.
대표팀 유니폼을 포함하면 220벌 정도 있고 K리그 유니폼만 해도 170여 벌은 될 거다. 마킹된 선수 숫자만 따지면 한 120명 정도 된다. 1990년대에 선수가 실제로 경기에 입었던 유니폼부터 다양한 유니폼을 수집하고 있다.

대단하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냥 옷을 220벌 가지고 입기가 쉽지 않은데 유니폼만 220벌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엄청난 거다. 수집한 유니폼 중에 입이 쩍 벌어질 만한 귀한 유니폼을 좀 소개해 달라.
K리그 최초로 100골을 달성한 윤상철의 1997년 안양LG 유니폼을 가지고 있다. 리복이 디자인했고 앞에는 ‘프리웨이’가 새겨져 있다. 이 정도면 ‘레어템’으로 인정하나. 1993년인가 1994년 일화 이태홍 유니폼도 나한테 있다. 과연 이 유니폼이 세상에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배민수
배민수 씨는 무려 220여 벌의 유니폼을 수집했다.

대단하다. 이건 ‘레어템’ 인정이다. 이런 유니폼은 이제 돈 주고도 못 구한다.
나는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는 샤샤라고 생각한다. 샤샤가 2000년 성남일화에서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 나갔을 때 입었던 유니폼을 내가 가지고 있다. 마킹도 ‘SASA’다. 2010년 강원FC 원정 라피치 유니폼도 구했는데 이건 라피치의 고국인 크로아티아에서 다시 가져온 거다.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찾아봤더니 라피치 친구의 친구가 올려 놓은 거더라. 라피치가 강원에서 뛰었던 기념으로 친구에게 선물한 걸 그 친구가 다시 얻은 것이었는데 내가 다시 샀다. 한국에 있던 유니폼이 크로아티아까지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셈이다.

라피치에게 당신이 친구에게 선물한 유니폼이 중고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이 사실을 어서 알려라. 그렇다면 국가대표팀 유니폼 중에는 어떤 유니폼을 가지고 있나.
해외 유니폼 거래 사이트에서 한 브라질인이 800달러에 올려 놓은 유니폼이 있었다. 알고 봤더니 이영진 전 대구 감독이 현역 시절 대표팀에서 입었던 유니폼이었는데 나한테는 없는 디자인이었다. 그걸 깎아서 400달러에 샀는데 이 국가대표 유니폼이 어떻게 브라질까지 건너간 줄은 나도 모르겠다. 또한 한국 대표팀이 1996년 나이키와 처음으로 계약을 맺고 출시한 유니폼도 있다. 이원식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건 해외 유니폼 거래 사이트에서 한 아일랜드 사람이 올려 놓은 걸 내가 산 거다. 알고 봤더니 아일랜드인이 선수 시절에 이원식과 교환했던 유니폼이었는데 이게 지금 나한테 다시 와 있다. 1990년대에 해외로 나간 유니폼이 다시 돌고 돌아 한국으로 왔다는 건 참 신기한 일 아닌가.

이거 젊은 나이에 너무 올드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도대체 어쩌다 이런 ‘덕후’가 됐나.
사실 수집을 시작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강원 경기를 보러 다니면서 2009년부터 반팔과 긴팔, 홈과 어웨이 유니폼 등 살 수 있는 유니폼은 다 샀다. 그런데 그때 윤준하의 팬이었는데 (윤)준하 형과 친해져서 처음으로 선수가 실제 입은 유니폼, 흔히 말하는 실착 유니폼을 한 벌 얻게 됐고 그러면서 유니폼 수집에 관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네이버의 유명한 ‘레플리카를 사랑하는 사람들(레사모)’ 모임도 몰랐고 해외 경매 사이트도 몰랐다. 그냥 ‘중고나라’에 들어가서 유니폼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1997년 대표팀 물결 유니폼을 중고로 처음 샀다. 검정색 골키퍼 김병지 유니폼이었다. 그걸 20만 원 가까이 주고 직거래로 구입하고 나서부터는 계속 ‘중고나라’만 들여다 봤고 결국 국가대표 물결 유니폼부터 반팔과 긴팔, 홈과 원정 유니폼을 다 모아보자고 목표를 세웠다.

이런…. 그때 멈췄어야 했다.
대표팀 유니폼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더라. 흔히 어센틱이라고 하는 선수용이 있고 보급형인 레플리카도 종류가 두 개였다. 그렇게 여러 종류의 대표팀 유니폼을 사다보니 1998년 당시 대표팀 유니폼만 긴팔과 반팔, 홈과 어웨이 등 10여 벌이나 되더라. 그런데 사실 이 유니폼은 물량이 많아서 중고 시장에도 꽤 많다. 그 이후부터는 ‘레사모’에 수시로 접속해서 정보를 얻었고 일본 경매 사이트부터 전세계 경매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유니폼을 모으다 보니 욕심도 생기더라. 합리적인 가격 선에서는 경매 사이트에 뜨는 족족 다 구입했다.

배민수 윤상철
배민수 씨가 수집한 ‘얼룩치타’ 윤상철의 유니폼.

그 합리적이라는 가격이 도대체 얼마인가. 엄마가 알면 등짝 스매싱을 때릴 수준 아닌가.
선수들을 통해 공짜로 얻을 때도 있고 중고 사이트에서 저렴한 건 2만 원에 산 것도 있다. 아마 2005년 성남 맥콜 긴팔 유니폼으로 백영철 선수 마킹이 돼 있을 거다. 그런데 사이즈가 여성용이다. 이건 2만 원 주고 샀다. 보통 6~8만 원 정도 하는 유니폼이 많고 귀한 유니폼은 30~40만 원 정도 선까지를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구하고 싶었는데 아깝게 놓친 유니폼도 있나.
물론이다. 한 해외 유니폼 거래 사이트에 1996년 황선홍의 대표팀 유니폼이 올라와 있었다. 이건 ‘레어템’이라 꼭 손에 넣고 싶었는데 거기 추가 설명을 보고는 더 혹했다. 그 판매자가 이스라엘 사람이었는데 무슨 이스라엘 축구협회와 관련이 있는지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과 붙었던 상대팀 유니폼을 다 가지고 있었다. 추가 설명에 ‘황선홍이 직접 입고 뛰었다’는 글이 써 있는 거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찾아보니 정말 텔 아비브에서 한국과 이스라엘이 그날 경기를 했고 한국이 5-4로 이겼는데 황선홍이 두 골을 넣었더라. 황선홍이 직접 입고 뛰어서 골까지 넣었던 유니폼이고 판매자도 믿을만한 사람이니 이건 당장 사야하는 유니폼이었다. 처음에 판매자가 400달러에 판다고 했고 내가 250달러에 사겠다고 흥정하자 그 판매자가 350달러를 원하더라. 그런데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그 사이 이 유니폼이 다른 사람한테 팔리고 말았다.

저런…. 한국으로 돌아올 뻔 했던 유니폼이 또 다시 전세계를 돌게 된 건가.
내 예상으로는 아마 한국 어딘가로 돌아왔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를 포함해 몇몇 분들이 이렇게 유니폼 수집을 하면서 경쟁하는데 아마 한국 수집가에게 팔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찾아내려던 장갑순 유니폼은 어떻게 구하게 된 건가.
일본 경매 사이트에서 구입했다. 유니폼 디자인을 보니 1989년에서 1990년 사이에만 딱 입었던 유니폼이다. 왜 장갑순이라는 이름이 마킹됐는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 선수 명단을 아무리 뒤져봐도 장갑순이라는 선수는 없고 당시 대표팀 감독을 하셨던 분께 연락해 봐도 모른다고 하시더라. “등번호 19번 장갑순을 기억하시느냐”고 물으니 “우리는 18번까지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당시 1세대 여자축구 선수들을 선발하면서 육상을 비롯한 다른 여러 종목 선수들을 테스트했는데 이 과정에서 합류했던 선수가 아닐까 싶다. 마킹 폰트를 보면 추후에 새긴 이름이 아니라 그 당시 폰트인 건 확실하다.

배민수 신진원
1997년 K리그 신인왕이었던 신진원의 유니폼도 배민수 씨가 어렵게 구했다.

나도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그 당시 대표팀에 선발됐던 1세대 여자축구 선수들은 아무도 장갑순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 심지어 그 나이대 장갑순 씨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답이 없다.
장갑순 선수를 찾아 꼭 이 유니폼을 보여드리고 그때의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1997년 신인왕 출신인 대전시티즌 신진원 유니폼이 나한테 있는데 직접 찾아 뵙고 유니폼에 사인을 받은 적이 있다. 양해를 구하고 직접 그 유니폼을 입고 사진까지 찍었다. 그런데 그날 신진원 코치님께서 “이 유니폼을 어떻게 구했느냐”고 너무 신기해 하시고 좋아하셨다. 그때 향수에 젖어서 당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2001년도에 울산현대에서 활약했고 지금은 한남대 코치로 있는 박규선 코치를 찾아갔을 때도 그랬고 선수들은 내가 당시 유니폼을 꺼내 놓으면 그때 추억에 젖는다. 대표팀 물결 유니폼에 노상래 감독 마킹을 하고 찾아뵌 적도 있는데 일부러 마킹도 옛날 스타일로 ‘노’를 ‘ROH’로 해 갔더니 되게 반가워하고 신기해 하시더라. 선수들은 자기 유니폼을 보면 기억나지 않던 추억도 자동적으로 꺼낸다. 어딘가에 있을 장갑순 선수한테도 그런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다.

우리 힘내서 더 찾아보자. 이 기사를 보고 제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애착이 가는 유니폼은 뭔가.
강원이 2010년 야심차게 홈과 원정 유니폼만이 아니라 서드 유니폼까지 발표했었다. 이 세 번째 유니폼은 FA컵에서만 입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원의 FA컵 첫 경기가 내셔널리그 팀 대전한수원이었는데 그날 한밭종합운동장에는 비가 참 많이 왔다. 이 경기에서 강원은 90분 내내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결국 연장 후반에 실점하면서 FA컵에서 탈락했다. 그 당시 서드 유니폼은 선수들에게 두 벌씩 지급됐지만 FA컵에서 떨어지면서 다시는 입을 일이 없게 됐다. 딱 한 경기에만 선보인 유니폼인데 그런 유니폼이라면 소장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유니폼을 겨우 겨우 구했고 지금은 이 유니폼이 가장 애착이 가는 유니폼 중에 하나다.

어떻게 구한 건가. 혹시 훔치기라도 했나.
(윤)준하 형네 집이 강원도 철원인데 한 번은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집에 간 적이 있다. 사실 그날 그 서드 유니폼을 노리고 갔는데 준하 형 어머님도 아들이 뛰었던 유니폼을 다 모으신다. 준하 형이 “엄마가 그 유니폼을 줄지 모르겠다”고 했고 준하 형이 어머님 앞에서 “엄마, 얘 유니폼 모으는 거 좋아하니까 한 벌 주자”고 했다. 그랬더니 준하 형 어머님께서 주황색 강원 유니폼을 한 보따리 들고 나오셔서 “한 벌 고르라”고 하셨다. 내가 “이거 말고 저거 가져가면 안 되나요?”라고 물었는데 그게 바로 딱 한 경기에만 입었던 그 서드 유니폼이었다. 어머님이 “이건 한 벌밖에 없는 거야”라며 아쉬워하셨는데 준하 형이 “얘 이거 줘도 어디가서 팔아 먹을 애도 아니고 순수하게 수집하는 애니까 주자”고 하셔서 겨우 겨우 얻어왔다. 사실 그때 준하 형이 결혼 전이었는데 내가 아버지 주례도 좀 팔았다. 결국 아버지께서 준하 형이 결혼할 때 직접 주례를 해주셨다.

이런 ‘유니폼 덕후’들이 전세계적으로 많이 있는 편인가.
외국은 더 심하다. 우리는 선수들이 1년에 지급받는 유니폼이 몇 벌 되지 않는다. 서너 벌 뿐이다. 그런데 해외 빅리그는 경기별로 유니폼이 나온다. ‘매치원’이라고 해서 선수가 그날 직접 입었던 유니폼이 중고 사이트에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기였는지 날짜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다. 만약 그게 챔피언스리그 결승이고 그 선수가 골을 넣었다면 이 유니폼의 가치는 더 올라간다. 이건 유니폼을 사는 사람도 그 기억의 한 꼭지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치언이슈드’라는 건 경기 날 선수 라커룸에는 걸려 있었지만 선수가 입지는 않은 유니폼을 뜻한다. 외국은 이런 게 참 잘 돼 있다. 해외 수집가 중에는 유니폼 상하의 세트를 다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면 네스타 유니폼이라고 가정해 보자. 유니폼 하의에 태클을 하다가 잔디 물이 든 걸 그대로 보관하면서 바로 옆에는 그날 네스타의 경기 사진을 붙여 놓는다. 물론 경기 사진에도 유니폼 하의에 잔디 물이 들어 있는 걸 어필하고 이게 진짜 네스타가 입었던 유니폼이라는 걸 인증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렇게까지 보유한 유니폼과 그에 따른 사진 자료 등을 매치해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배민수 윤준하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유니폼은 단 한 경기에 입은 게 전부인 강원의 이 유니폼이다.

해외 유명 클럽 유니폼을 인터넷으로 구입해 모으는 이들은 종종 봤어도 이렇게 구하기도 어려운 K리그 구단 과거 희귀 유니폼을 경매에까지 참여하면서 모으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실착 유니폼이라고 해도 선수가 어느 경기에서 어떻게 입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다. 해외 유명 클럽처럼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높게 치는 건 긴팔 원정 유니폼이다. 요즘에는 날씨가 추워져도 선수들이 안에 긴 언더셔츠를 입기 때문에 긴팔을 입는 선수들이 많지 않고 긴팔 원정은 대부분 구단이 판매도 안 한다. 그래서 긴팔 원정 유니폼을 구하면 이건 대부분 선수 실착 유니폼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식으로 유추해 내서 ‘매치원’을 찾아내야 한다. 2014년 안산경찰청이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FC와 경기를 한 적이 있었다. 오범석의 원정 긴팔 유니폼을 구했는데 사진을 보니 오범석은 그날만 원정 긴팔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면 이 유니폼은 ‘매치원’이 되는 거다.

‘매치원’을 인증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이 유니폼을 그 자리에서 팬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유니폼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 입은 옷이라는 걸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시즌 강원과 성남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는데 2차전 때 강원 한석종이 골을 넣었다. 그날 한석종이 입었던 전반전 실착 유니폼이 나에게 있다. 내가 (송)유걸이 형하고 친한데 한석종이 전반이 끝난 뒤 땀에 흠뻑 젖어 그 유니폼을 벗고 다른 유니폼으로 갈아입자 유걸이 형이 전반전 유니폼을 나한테 준다면서 챙겨놓은 거다. 경기가 끝난 뒤 한참을 기다렸다가 땀이 축축한 이 유니폼을 받았다. “이게 좋아? 땀에 다 젖은 게?”라고 유걸이 형이 찝찝한 표정으로 묻는데 내가 이렇게 답했다. “형 이게 진짜 오리지널이야. 유니폼은 땀에 젖어야 돼.” 이런 유니폼은 절대 빨지 않고 그냥 잘 말리기만 한다. 좀 변태 같나.

취향은 존중하지만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송유걸이 당신의 유니폼 공급책인가.
1년에 6~7벌 정도는 가져다 주는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몇몇 선수 유니폼 사진을 보내주면서 챙겨 놨다고 하더라. 몇몇 선수들한테서 본의 아니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내가 어디에다가 내다 파는 게 아니라 순수한 의미로 유니폼을 수집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고맙게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강원에서 유니폼이 없어지면 송유걸의 도벽(?)이라고 믿어도 되나.
도벽은 아니고 순수한 수집이라고 해두자.

알겠다. 세상에 딱 두 벌밖에 없는 정말 ‘레어템’이 나한테 있다. 솔깃하지 않나.
오, 궁금하다. 누구 유니폼인가.

배민수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당하기 20초 전.

2009년 K3리그 고양시민축구단 김현회 유니폼이다. 실착이라는 건 유니폼 당사자인 내가 보증할 수 있다. 세상에 딱 두 벌 뿐인데 한 벌은 내가 가지고 있고 다른 한 벌은 우리 회사 조성룡 기자가 가지고 있다.
정말 당신이 선수로 경기장에 나가서 입은 유니폼인가.

물론이다. 내가 체험 기사를 위해 K3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르려고 수개 월의 훈련도 참아냈다. 그래서 그 유니폼을 입고 실제고 K3리그 경기에 5분 간 나섰다. 그날 내가 K리그 신인왕 출신인 서울유나이티드 신진원의 공도 빼앗았다.
그날 사진도 있나.

당연히 있다.
그러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유니폼이다. 10~20년 지난 유니폼은 시세라는 게 없다. 그만큼 가치 부여를 하기 나름인 거다. 그 유니폼이 나에게 있으면 누군가에게 이렇게 소개할 거다. “선수 출신이 아닌 기자인데 체험 기사를 쓰기 위해 수개 월을 쫓아다니면서 결국 직접 그라운드에 선 사람의 유니폼이다. 딱 5분 간만 빛을 본 유니폼이다.” 이렇게 만들어 가면 그게 그 유니폼의 가치다.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유니폼도 딱 한 경기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강원의 서드 유니폼 아닌가.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유니폼의 가치는 달라진다.

그럼 30만 원에….
생각을 좀 해보겠다. 어차피 나 아니면 살 사람도 없지 않나.

알겠다. 잘 생각해 보라. 그런데 이렇게 고양시민축구단 김현회의 유니폼까지 탐 낼 정도의 ‘유니폼 덕후’이자 열혈 축구팬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심정은 어떨까.
존중해 주시는 편이다. 아버지와 함께 춘천으로 경기를 보러 간 적도 있고 부모님을 다 모시고 안양 경기를 본 적도 있다. 한 번은 안양에서 레이디 에스코트라고 해서 여성 관중이 선수와 함께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 모르게 몰래 이 이벤트에 신청했는데 덜컥 당첨이 됐고 어머니를 모시고 경기장에 가 좋은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그날 안양이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부모님들도 무척 좋아하셨다. 그런데 유니폼 수집에 대해서는 가끔 어머니가 “다 버려버린다”고 하시기도 한다. 가끔 유니폼을 정리할 때면 200벌이 넘는 옷을 다 꺼내 거실에 깔아 놓고 쓸 데 없이 폈다가 쳐다보다가 그러고 있으니 한심해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구한 유니폼을 입어 보지도 않고 그냥 바라만 본다. 패치 같은 거 보고 마킹 보고 만져 보고 고이 접어서 모셔둔다.

배민수
배민수 씨가 1989년 여자 축구 대표팀에서 뛰었을지도 모를 장갑순 선수를 애타게 찾고 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해를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옷을 입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쳐다 보려고 사는 걸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유니폼 몇 벌을 중고로 사오면 어머니가 “또 샀느냐”고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그냥 공짜로 얻어온 거고 이거 한 벌은 만 원에 팔아서 하나 주워왔다”고 둘러댄다. 가끔 유니폼을 다른 수집가와 교환하기도 하는데 한 번은 내가 유니폼을 박스에 넣고 있으니 어머니가 “혹시 유니폼 이제는 팔기로 했느냐”면서 잠깐 좋아하시다가 판매가 아니라 교환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실망하시더라.

그래도 당신이 유니폼 수집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 이유는 역시나 자기 만족 때문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그리고 유니폼은 사실 일상 생활에서 입지 않지만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과거 한 해외 축구 잡지 인터뷰를 봤는데 한 독일인 할아버지가 70년대 분데스리가 팀 유니폼을 경매를 통해 200만 원에 사셨다는 거다.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경기장엘 갔는데 그때 승리를 보고 처음으로 축구장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결승골을 넣은 선수의 유니폼이 경매에 나오자 자기는 “이런 소중한 추억에 200만 원을 투자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건 단순한 옷이 아니라 추억과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이런 문화가 부족하다. 전남 구단 창단 유니폼을 어렵게 구했는데 이걸 전남 경기장에 입고 간다고 하더라도 알아보는 이도 굉장히 적을 테고 “대박이다. 멋지다”고 할 이는 더 없을 것이다. 이런 문화가 우리도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

동의한다. 나도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1994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김주성의 이름 ‘J S KIM’ 마킹을 했더니 “박지성 마킹에 오타가 났다”면서 낄낄 거리던 이들의 시선을 잊지 못한다.
누가 뭐래도 나는 당신이 입은 그 1994년 대표팀 유니폼이 가치를 안다.

알아줘서 고맙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유니폼 수집가로서의 목표를 말해 달라.
언젠가는 이 유니폼이 우리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의 빛을 봤으면 좋겠다. 전시회를 열어 누군가에게 그 시절을 추억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 유니폼을 보고 ‘그래. 그날 비가 엄청 왔는데 그 경기장까지 갔었지’하는 추억이 떠오를 수 있도록 전시회를 여는 게 내 꿈이다. 유니폼 당사자인 선수들에게도 그 시절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던 한 울산 무명 선수의 유니폼도 어렵게 구했는데 언젠가 내가 이 유니폼을 들고 그 선수를 찾아가면 그 선수가 기분 좋아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저장하지 않았던 기억을 내가 대신 가지고 있다가 선물하고 싶다. 너무 변태 같은 생각인가.

배민수 씨는 아직 젊지만 추억과 역사, 그리고 그것들에서 오는 감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앞으로도 한국 축구의 더 많은 역사를 모아 자기만족을 넘어 많은 축구팬들에게도 추억을 선물할 수 있길 응원한다. 또한 앞으로도 배민수 씨와 함께 1989년 여자축구 초창기 멤버였을지도 모를 장갑순을 꼭 찾아보려 한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지만 추억과 역사가 주는 감동을 잘 아는 이들은 원래 이런 일에 쓸 데 없이 집중하기 때문이다. 좋아서 하는 일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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