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FC서울 앰블럼에는 두 가지 상징적인 연도가 있다. 구단 창단을 의미하는 1983년과 서울에서 새롭게 출발한 2004년이다. 예전부터 대두되어 온 문제이긴 하나 최근들어 다시 FC서울 커뮤니티 사이에서 이 두 가지 연도의 '진정성'과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펼쳐졌다. 구단의 역사를 1983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할지, 2004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다.

일부 팬들은 “1983년’만’이 서울의 시작이며 2004년 창단을 지지하는 팬들은 서울 팬이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역사를 그저 사상검증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다루는 문제에서 이정현 전 새누리당 의원이 “이 부분에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서술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이 전 위원은 이와 같은 발언으로 국민의 많은 지탄을 받았다.

FC서울은 2016년 여름 럭키금성 레트로 유니폼을 발표한 바 있다 ⓒ FC서울 제공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부터 FC서울까지

FC서울 구단의 역사를 다시 잘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1983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의 최초 연고지는 충청도였으며 1990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고, 1991년 ‘LG 치타스’로 구단 명칭을 변경,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의해 안양으로 연고지를 옮겼으며 ‘안양 LG 치타스’로 구단 명칭을 변경했다. 그 후 많은 논란 속에 2004년 다시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며 현재의 ‘FC서울’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LG그룹과 GS그룹이 분리되면서 구단 운영을 GS그룹에서 맡게 되었다.

FC서울은 앰블럼의 두 연도에 대해 “1983년은 최초 창단 연도이며 2004년은 ‘재창단’의 해다”라는 입장이다. 애초에 럭키금성 그룹은 서울을 창단 연고지로 하고 싶어했으나 여러 가지 법적 절차로 인해 충청도에서 시작했으며 서울-안양-서울로 떠도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프로축구 연맹에서는 이런 상황을 참작하여 1983년 창단된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의 역사를 FC서울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다.

사관과 기록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이 정책적 문제로 인해 연고지를 옮겨다녔으며 안양 LG 치타스를 거쳐 현재는 FC서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록으로 남겨진 사실을 통해 그 사실을 바라보는 사관은 지금도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연고지 이동을 바라보는 두 사관의 차이

FC서울의 역사를 1983년부터라고 해석하는 사관은 연고’복귀’론에 힘을 불어넣는다. FC서울 구성원들이 맨 처음부터 그렸던 청사진이 서울의 스포츠 팀이었으므로 팀의 연고지 이동 과정은 연고복귀라는 것이다. 구단의 공식 입장과 한웅수 단장의 성명서, 프로축구연맹의 구단역사 서술이 이를 뒷받침 한다. 또한 이 주장은 팀의 정체성과도 관련된 것이며 팀의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연고지를 옮길 때마다 팬들의 불만과 반대가 거셌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 비단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을 때만 불만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반면 2004년의 해석은 연고’이전’론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연고지에 대한 개념이 안양에서 시작했다는 주장과 함께 팀 명칭에 처음으로 연고지가 포함된 안양이 결국 서울로 바뀌었다는 점, 모기업 법인이 LG에서 GS로 바뀌었단 점으로 팀이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연고를 이전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서술에는 연고 팀을 빼앗긴 안양 팬들을 빼놓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도 열렬한 축구팬이었으나 LG는 스포츠 팀의 기반이 되는 안양 팬들을 뒤로 하고서라도 서울에서의 ‘새 출발’을 원했다고 볼 수 있다. 2004년의 창단 역사를 무시할 경우 혹시 있을 수 있는 연고이전에 대한 정당성이 생긴다는 점도 고려해봐야 한다. 서울이 다시 LG의 지원을 받고 연고지를 창원이나 청주로 옮겨도 그들에겐 한 팀이며 한 역사가 된다.

타 팀 팬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1983년의 창단연도를 인정해야 이들이 저지른 연고 이전이라는 역사의 죄를 물을 수 있다. 혹은 2004년 이전의 역사는 안양의 역사이므로 서울의 역사는 2004이 시작이라는 관점도 있다. 비단 FC서울 팬들뿐만 아니라 K리그를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관점과 해석이 개입될 경우 이와 같이 더 많은 해석들이 오고간다.

FC서울은 2016년 여름 럭키금성 레트로 유니폼을 발표한 바 있다 ⓒ FC서울 제공

'편가르기' 아닌 '논의'의 문제로

역사관은 사상검증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획일화되고 단순한 정보습득만으로는 도태되는 시대가 됐다. 여러가지 정보를 취합하고 자신의 논리를 구성해야 한다. 그 속에 존재하는 오류들을 수정해 나가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이 시대의 지성이다. 한 가지 주장과 정당성만을 요구하고 강요하게 된다면 레퍼런스의 제한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사상이며 세뇌다. 자신과 관점이 다른 일부 팬들을 ‘어리석고 순진한 사람’ 취급하며 훈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비판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과 과가 반이다.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그 구심점이 됐던 것은 공이다. 과는 독재뿐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만들어놓은 점이다” 라고 표현했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가야 더 세련되고 날카로운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 FC서울의 창단 연도와 더불어 2004년 일어난 사건을 연고이전으로 볼 것인지, 연고복귀로 볼 것인지는 서울 팬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자국리그를 즐기는 팬들에게도 해석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 실제로 한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역사관을 통해 2015년 서울이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릴 당시 ‘창단 첫 우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비단 FC서울뿐만 아니라 제주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모든 연고이전 클럽에도 해당되는 문제다.

방송인 김제동은 “역사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FC서울이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지 이제 10년이 조금 넘었다. 세대를 뜻하는 ‘Generation’이라는 단어에는 ‘30’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20년 후 서울 팬들을 비롯한 타 팀의 팬들이 FC서울의 창단 역사와 연고지에 대해 더 자세히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특정 사관만이 받아들여지는 환경이라면 토론에서 도태되고 뒤쳐질 가능성이 크다. 또 어딘가의 한 팀이 연고를 이전해도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할까. 레퍼런스의 제한은 생각하는 힘을 잃게 만든다. FC서울 팬들은 다른 사관을 묵살하기보다 더 많은 논의들을 꺼내고 살펴봐야 한다.

intaekd@sports-g.com

[사진 = 서울월드컵경기장 전경 ⓒ FC서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