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리그 챌린지 개막을 앞두고 모인 각 구단 감독들의 모습. 이들 중 내년 시즌에도 살아남을 이는 얼마나 될까.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1년 단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팀에 가보니 이미 선수단은 구성이 다 마무리 된 상태네요.” 지난 해 초에 만난 A감독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프로 무대에서 감독으로 도전하는 그는 사실상 아무런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구단 운영진의 입김에 의해 선수 구성은 마무리 된 상태였고 A감독에게는 딱 1년의 시간 만이 주어졌다. 감독 의지로 선수를 영입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A감독은 이 한 시즌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동으로 계약 해지 수순을 밟게 되는 상황이었다. K리그 챌린지에 있는 이 팀이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구성된 선수들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자신만의 팀 컬러를 갖추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B감독도 마찬가지였다. B감독이 몇 년 전 한 K리그 챌린지 팀으로부터 받은 영입 제안은 형편없었다. B감독 역시 1년 단기 계약이 조건이었다. B감독은 “1년으로는 팀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못해도 2년 계약은 해야겠다”고 했지만 구단으로부터 돌아오는 답변은 냉담했다. “그러면 다른 감독을 알아보겠다. 지금 프로팀 감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결국 B감독은 K리그 챌린지에서 짧게 감독 생활을 하다가 팀과 작별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또 다시 1년 짜리 단기 계약을 맺은 감독이 채웠다. 요즘 K리그 챌린지가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다. 비전을 갖춘 몇몇 구단을 빼놓고는 단기 계약한 감독으로 한 시즌을 돌려막는 행태가 반복되는 중이다.

1년 계약 감독이 늘어나는 이유

이런 일부 구단의 행동은 잘못됐다. 이미 구단 운영진에서 뽑아 놓은 선수들을 데리고 1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감독은 없기 때문이다. 꼭 비싼 선수가 아니더라도 감독이 원하는 유형의 선수를 영입해 아무리 적어도 3년 정도의 시간은 줘야 자신만의 팀을 만들 수 있는데 지금 K리그 챌린지 일부 구단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구단 운영진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데려다가 1년 짜리 감독을 앉혀 놓고 시간을 보내는 건 발전된 경기력을 팬들에게 선보여야 할 프로 구단으로서의 직무유기다. 제 아무리 알렉스 퍼거슨이라고 하더라도 K리그 챌린지의 열악한 구단을 1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퍼거슨도 못하는 일은 A감독과 B감독은 미션으로 부여 받았다.

대전시티즌은 2011년 이후 지금까지 6년 동안 감독대행을 포함해 벌써 7번째 감독을 맞았다. 세 번의 감독대행이 있었는데 그중 감독대행 딱지를 떼고 정식감독이 된 건 조진호 감독 뿐이다. 경남FC 또한 지난 4년 동안 무려 6명의 감독이 거쳐 갔다. 박성화 감독과 김종부 감독을 빼면 온전히 한 시즌을 버틴 이들이 없다. 대구FC는 프로에서의 감독 경험이 전무했던 당성증, 백종철, 최덕주, 손현준 등을 감독으로 앉히는 등 지난 5년 동안 감독을 6번이나 갈아치웠는데 이중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이뤄낸 손현준 감독을 빼고는 전부다 실패했다. 강원FC도 최근 6년 동안 벌써 6번째 감독을 맞았다. 강원은 그나마 최윤겸 현 감독이 구단 최장수 감독으로 기록을 세우는 등 안정감을 찾은 모양새다.

왜 이렇게 단기 감독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게 됐을까. 여기에는 구단 운영진의 아주 치밀한 꼼수가 숨어있다. 승강제가 정착된 이후 승격에 실패하거나 강등을 면치 못했을 때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기 위한 것이다. 팀이 승격에 실패한다고 해 구단 운영진이 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나. 그런 경우는 없다. 다만 감독만이 쫓겨날 뿐이다. 구단에서는 1년 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꾸 1년 짜리 단기 계약 감독을 양산해 내고 있다. 길게 내다보고 팀의 체질 개선을 위해 감독과 3년씩 장기 계약을 맺으면 1년 뒤 승격에 실패한 책임을 묻기에는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감독이 “나가지 않겠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고 버티면 일은 피곤해 진다. 그러니 1년만 하고 나갈 하루살이만을 양성하는 것이다.

'파리 목숨'이라는 K리그 챌린지에서 살아남은 조진호 감독의 사례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프로축구연맹

‘외국인 선수 로또’만을 바라보는 그들

이쯤 되면 구단이 좋은 성적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좋지 않은 성적이 나와도 피해나갈 방패를 세워 놓고 빠져나가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감독을 바꾸면 마치 뭔가 대대적인 개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다. 거기에다가 속내를 들여다보면 “1년만 하고 나가라”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심지어 A감독처럼 구단에서 이미 선수를 다 뽑아놓고 감독과 계약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바보처럼 속는 팬들이 불쌍하다. 어차피 이런 팀은 1년 뒤 승격 실패에 대한 책임이랍시고 감독을 내칠 게 뻔하다. 그러면서 정착 몇 년씩 자리를 보전하는 구단 운영진들은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에서 빠져나갈 것도 뻔하다. 이런 팀들은 5년 걸릴 승격도 10년씩 걸린다. 매 시즌마다 감독이 바뀌는데 팀 컬러라는 게 어딨나. 그냥 생각 없이 공이나 차는 거지.

이렇게 감독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아는 구단들이 바라는 건 딱 하나다. 흔히 말하는 ‘외국인 선수 로또’다. 재수 좋게 얻어 걸린 외국인 선수 한 명이 믿기지 않는 대활약을 펼치면서 성적을 내는 것 말고는 현실적으로 성적을 낼 수가 없다. 이렇게 대단한 외국인 선수가 영입됐을 때 재수 좋게 그 팀에 있던 감독은 그래도 능력 있는 지도자라는 소리를 듣고 몇 년 더 버틸 수 있다. 그러면 구단에서는 이 외국인 선수를 알아 본 자신들을 대단하게 포장하고 언론 또한 이 감독을 명장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이런 ‘외국인 선수 로또’는 쉽게 안 터진다. 대부분의 1년 단기 계약 감독은 1년 내내 구단에 휘둘리다가 때가 되면 예고된 이별 통보를 당한다. 구단에 싫은 소리를 좀 하면 “당신 말고도 이 자리에 앉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다”는 메시지가 날아오니 잠자코 1년 동안은 구단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감독들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어차피 1년 이용 당하고 버림 받을 걸 알면서도 그들은 이 썩은 동아줄을 잡는다. 정말 재수가 좋아 ‘외국인 선수 로또’가 터지면 리그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프로 감독 경력이면 실업 무대나 대학 무대에서도 지도자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좋지 않은 계약 조건에도 사인할 수 있다는 감독이 줄을 서 있는데 이 동아줄이 썩은 건 줄 알면서도 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구단은 선수 선발 권한을 감독에게 주지도 않고 1년 단기 계약을 하며 ‘슈퍼갑’ 행세를 한다. 아마도 올 시즌이 끝나면 또 K리그 챌린지에서는 칼바람이 불 것이다. ‘외국인 선수 로또’가 터져 승격한 감독은 살아남을 것이고 나머지 팀들은 대대적인 개혁을 하는 것처럼 팬들을 속이며 감독 교체를 단행하면서 정작 구단 운영진은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악순환의 반복,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K리그 챌린지는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할 수 없다. 차라리 성적 향상을 위해 감독을 경질하면 ‘승리 지상주의’라고 비판하면서도 이해할 수 있지만 더 화가 나는 건 이미 성적이 안 나올 걸 대비해 갈아치우기 쉬운 1년 짜리 단기 계약 감독을 선임해 구단이 미리 피해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는 점이다. 이건 참 비열하고 치사한 짓이다. 아무리 못해도 3년이라는 시간은 주어져야 감독이 원하는 팀을 만들 수 있는데 1년 짜리 단기 계약 감독으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K리그 챌린지에서 3위를 하건 10위를 하건 승격을 못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한 감독에게 선수 선발 권한을 일임하고 조금의 인내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1년 짜리 감독은 절대 비전을 보여줄 수 없다. 그들이 매년 구단 운영진의 책임 회피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까먹을 때마다 팬들은 점점 줄어든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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