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에는 지금껏 많은 '정환이'가 있었다. ⓒ울산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내 친구들 중에 지혜는 아직까지 시집도 못 가고 외로워 하는데 지연이는 시집 가서 애를 둘이나 낳고 잘 살아. 지은이는 못 본지 꽤 오래 됐고 혜진이는 가끔씩 SNS로 안부만 묻고 지내. 어릴 때는 수진이가 더 예뻤던 것 같은데 지금은 현정이가 더 예쁘더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마도 전국민 누구와도 말이 통할 것이다. 주변 친구 중에 지연이 한 명 없고 혜진이 한 명 없는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가끔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만난 여성에게 “지은이는 그때 그 남자친구랑 잘 만나지?”라고 물으면 상대방 여성이 뜨끔할 때도 있다. 세상은 넓고 흔한 이름은 참 많다. 그래서 오늘은 K리그에서 가장 흔한 이름의 축구선수들을 꼽아봤다.

알렉스 (8명)

왠지 여성 분의 발을 잘 씻겨줄 것만 같은 이름의 알렉스도 K리그에는 8명이나 있었다. 8명의 알렉스 중 K리그에서 성공했다고 판단할 만한 알렉스는 딱 두 명이다. 2013년 고양에 입단해 강원과 대구를 거치며 K리그 챌린지에서 81경기 출장 36골을 기록한 브라질 출신의 알렉스와 2013년 수원FC를 거쳐 이후 제주에서 활약 중인 호주 수비수 알렉스를 빼면 다들 기대이하였다. 특히나 2007년 제주에 입단했던 브라질의 알렉스와 1997년 부산 유니폼을 입었던 유고의 알렉스는 딱 한 경기만 뛰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2010년 경남에 입단한 가나 국적의 알렉스도 두 경기에 나선 게 K리그 기록의 전부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까지 알렉스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들의 국적도 다양하다는 점이다. 호주와 브라질은 물론, 가나와 유고, 몰도바 등 전세계 각지에서 알렉스들이 K리그로 향했다.

파비오 (8명)

K리그에서는 지금껏 선수와 지도자를 포함해 8명의 파비오가 있었다. 그 중 역시나 가장 돋보이는 파비오는 2014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광주FC에서 뛰었던 파비오일 것이다. 이 파비오는 79경기에 출장해 13골 4도움을 기록하며 광주의 공격 한 축을 담당했었다. 파비오는 지난 시즌 중반 인도리그로 떠나기 전까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우리에게는 한 명의 더 친숙한 파비오가 있다. 바로 전북의 파비오 피지컬 코치다. 피지컬 코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는 아니지만 파비오 코치는 지난 2013년 최강희 감독이 잠시 대표팀으로 떠나 있는 동안 감독대행으로 팬들에게 자주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이 두 명의 파비오를 제외하면 다들 그 녀석이 그 녀석 같다. 그나마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부산아이파크에서 뛰었던 수비수 파비오가 어느 정도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심지어 2005년에는 전남이 수비수 파비오와 공격수 파비오를 나란히 영입했지만 둘 다 망했다.

파비오 중에서는 그래도 이 친구가 제일 나았다. ⓒ광주FC

정환이 (9명)

가장 유명한 정환이는 역시나 안정환이다. 지금은 배 나온 예능인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도 꽤 있지만 안정환은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였다. 지난 2002년 스코틀랜드와의 대표팀 평가전에서 윤정환의 패스를 이어 받아 안정환이 터트린 칩슛은 지금까지도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평가받는다. 두 명의 정환이가 만들어 낸 예술 작품과도 같은 골이었다. 여기에 1999년 안양LG에 입단한 뒤 2001년 돌풍을 일으켰던 박정환을 기억하는 올드팬들도 꽤 있을 것이다. 지난 해 R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서울의 김정환 역시 정환이의 계보를 이을 선수로 평가 받는다. 제주와 전남 등을 거친 골키퍼 신정환도 있다. 참고로 이 신정환은 뎅기열에 걸린 적은 없으니 오해하지 마시라.

성환이 (9명)

성환이는 축구 쪽에서는 꽤 인정 받는 이름이다. 일단 전북현대의 수비수 조성환이 떠오른다. 여기에 울산의 주전 미드필더인 김성환과 수원삼성을 거쳐 울산현대, 광주FC, 경남FC 등에서 뛰었던 최성환 등도 나름대로 K리그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한 이들이다. 지도자들 중에도 성환이는 많다. 제주유나이티드 조성환 감독을 비롯해 변성환 성남 코치, 신성환 전 인천 대건고 감독 등도 알아주는 성환이다. 특이한 사실은 성환이라는 이름은 유독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가 많다는 점이다. 두 명의 조성환은 물론이고 변성환, 최성환, 신성환, 김성환 등은 모두 수비력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자식을 낳아 훌륭한 수비수로 키우고 싶거든 이름을 성환이로 짓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 K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이름인 성환이들은 도합 1,209경기에 출장해 52득점 41도움의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파비오 중에서는 그래도 이 친구가 제일 나았다. ⓒ광주FC

주영이(10명)

주영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주영이 형은 말이야…” 무슨 말인지 헷갈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FC서울에서 뛰다 중국으로 진출한 김주영이 아스널에 있다가 서울로 복귀한 박주영에 대해 나에게 한 말이다. 주영이가 주영이에 대해 말을 하니 참 헷갈린다. 심지어 김주영이 이적하니 서울에는 또 한 명의 김주영이 들어오기도 했다. 중경고를 졸업하고 2016년 서울에 입단한 1997년생 미드필더 김주영이 한 명 더 있기 때문이다. 김주영이 중국에서 서울로 복귀하면 수비수 주영이와 미드필더 주영이, 그리고 공격수 주영이가 한 팀에서 뛰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광주에서 뛰는 조주영도 요새 뜨고 있는 주영이 중 한 명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K리그에 정주영이 2002년에 한 명 있었는데 이 선수의 팀이 울산현대였다는 점이다. 현대와 정주영은 뭔가 참 묘하게 잘 어울린다. 현대에서는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호 (10명)

K리그에 ‘진호’라는 이름으로 등록했던 이는 무려 10명에 이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역시나 현재 상주상무에서 뛰고 있는 신진호일 것이다. 이 외에도 이진호는 둘이나 있다. ‘울산의 아들’로 잘 알려진 이진호 외에도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대우로얄즈에서 뛰었던 이진호가 한 명 더 있다. 감독 중에도 ‘진호’가 있다. 부산아이파크의 새 사령탑에 선임된 조진호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해까지만 하더라도 상주상무에서 “진호야”라고 부르면 이상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선수 신진호와 감독 조진호가 나란히 한 팀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원FC의 최진호 또한 ‘진호 라인’의 강력한 후계자다. 심지어 1994년 LG치타스에서 뛰던 홍진호도 있다. 왠지 우승과는 거리가 있는 이름이다.

파비오 중에서는 그래도 이 친구가 제일 나았다. ⓒ광주FC

실바 (10명)

실바는 외국인 선수 중 가장 흔한 이름이다. 그런데도 참 신기하게 “실바라는 선수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K리그를 거쳐간 열 명의 실바 중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둔 이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2015년과 2016년 대전시티즌에서 22경기에 나선 스페인과 필리핀 이중 국적자 실바가 어느 정도 활약을 했을 뿐 나머지 실바들은 K리그에서 처참한 성적에 머물고 말았다. 2006년 수원삼성에서 14경기에 나서 두 골을 기록한 실바는 그나마 양반이다. 심지어 포항스틸러스와 대구FC에 등록됐던 실바는 단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하고 방출되고 말았다. 앞으로 “실바를 영입했다”는 기사가 나오면 기량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로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선수만 실바가 있는 게 아니다. 부천FC에서 피지컬 코치를 맡았던 실바는 올 시즌 성남으로 적을 옮겼다. 참고로 이 10명의 실바 중 스페인과 필리핀 이중 국적자 실바 한 명을 제외한 9명이 모두 브라질 출신이었다. 브라질에서는 길거리에서 “이봐, 실바”라면 절반 정도가 뒤를 돌아보지 않을까.

성용이(11명)

성용이의 대표주자는 누가 뭐래도 기성용이다. K리그를 거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으니 “축구선수 성용이하고 친하다”고 하면 다들 기성용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전 세대들에게 성용이는 더 있었다. 측면을 기가 막히게 돌파했던 최성용도 있었고 그런 최성용의 크로스를 받아 골을 넣을 줄 아는 장신 공격수 우성용도 있었다. 선수 시절 풀백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 최성용은 현재 수원삼성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데 이 최성용 말고도 경남에서 잠시 선수 생활을 했던 최성용이 한 명 더 있다. 대구 수비수 박성용과 광주 미드필더였던 박성용도 동명이인이다. 참고로 같은 ‘용(龍)’이지만 표기를 ‘룡’으로 하는 정성룡과 하성룡은 뺀 결과다. 이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성용이만 K리그에 자그마치 13명이 흔적을 남겼다. 여기에서 사족 하나, 이름 중 ‘용’과 ‘룡’은 같은 한자인데 왜 한글 표기가 다를까. <스포츠니어스> 조성룡 기자에게 물어보니 동사무소 직원 마음이란다.

파비오 중에서는 그래도 이 친구가 제일 나았다. ⓒ광주FC

동현이(12명)

‘삼동현’은 2000년대에 꽤 유명했다. 서동현과 양동현, 그리고 지금은 이름을 거론하기 어려운 또 다른 동현이까지 세 명의 동현이는 공교롭게도 모두 공격수였다. 이 셋이 나란히 맹활약하는 날이 없고 기복이 심해 “삼동현이 같은 날 골을 넣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동현이는 이 셋뿐이 아니다. 일단 ‘그 녀석’ 때문에 K리그에서 금기어가 된 김동현은 ‘그 녀석’을 포함해 무려 네 명이나 있다. ‘그 녀석’뿐 아니라 수원과 전북에서 뛰었던 1980년생 김동현도 있고 2004년 잠시 울산에 몸담았던 김동현도 있다. 또한 지난해 포항에서 주전으로 도약한 1994년 김동현도 핫하다. 이 김동현은 이제 축구계에서 금기어가 된 김동현을 다시 양지로 끌고 나와야 할 임무가 주어졌다. 조동현 감독을 비롯해 홍동현, 이동현 등도 나름대로 K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동현이들이다. K리그에는 ‘삼동현’만 있던 게 아니라 무려 ‘십이동현’이 있었다.

파비오 중에서는 그래도 이 친구가 제일 나았다. ⓒ광주FC

지훈이 (13명)

내 친구 중에도 지훈이가 네 명이나 있다. 아마 남자 이름 중 가장 흔한 이름일 것이다. K리그에 등록됐던 이름 중에도 지훈이는 최다인 13명이나 있다. 김지훈이 세 명이고 최지훈도 두 명이다. 우리가 잘 아는 ‘잘생긴’ 백지훈도 있고 그보다 조금은 덜 잘생겼지만 그래도 잘 생긴 편인 조지훈도 있다. 이 두 지훈이는 지난 시즌까지 수원삼성에 함께 있다가 백지훈은 서울이랜드로, 조지훈은 상주상무로 흩어졌다. 그런데 백지훈은 서울이랜드에서도 또 다른 지훈이를 만났다. 서울이랜드에도 김지훈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김지훈 세 명은 모두 현역으로 수비수가 둘, 골키퍼가 한 명이다. 김지훈 세 명이 한 팀에서 수비를 하는 모습도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감독은 딱 이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지훈아, 막아라.”

동명이인은 누구보다 더한 라이벌이다. 어쩔 수 없이 비교를 당해야 하고 마치 나 자신과 싸우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름이 정우성이나 송혜교면 아무 짓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그 자체로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 지기도 한다. K리그의 여러 동명이인들이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서로 좋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발전했으면 한다. 서울대학교 비뇨기과 김현회 교수와 연극배우 김현회 님에게는 나 때문에 인터넷에 김현회 욕이 너무 많아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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