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팬들은 한국 전지훈련까지 따라올 정도로 열정적이다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중국 슈퍼리그(CSL)에서 중위권을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팀이 있다. 바로 옌벤 푸더다. 2015 시즌 박태하 감독과 하태균 등 한국 선수들을 앞세워 중국 갑리그(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CSL로 승격한 이 팀은 지난 시즌 9위를 기록하며 꽤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현재 옌벤은 한국에서 전지훈련 중이다. 남부 지방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옌벤은 강원FC, 대구FC, 상주 상무 등 K리그 클래식 팀과 평가전을 치르며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시즌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뒀지만 2017 시즌에도 그와 같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CSL 내 다른 팀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며 스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에 맞서 1년 예산이 고작(?) 400억 원 가량 밖에 되지 않는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일 것이다.

이 전지훈련을 보기 위해 옌벤에서 팬들이 부산까지 날아왔다. 사실 옌벤 팬을 K리그 경기장에서 마주치기란 쉽지 않다. 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 볼 수 없는 CSL 팀이니 옌벤 유니폼, 머플러 등을 걸친 팬들을 보는 것은 굉장히 희귀한 경험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한 번 시도해봤다. 옌벤의 연습경기가 있기 전 그들의 열렬한 팬인 A씨(32), B씨(41)에게 옌벤 축구와 옌벤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들어봤다.

중국 동포들은 '옌벤 푸더교'를 믿습니다

올 시즌 팬들이 바라는 옌벤의 모습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잔류가 그들이 바라는 모습이다. 그들의 생각은 곧 현재 CSL 내 옌벤의 위치를 대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연 400억 원 이상을 쓰는 부자 팀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CSL 내에서는 가난한 팀 축에 속한다. "중국 팀들이 어마어마하게 투자를 하고 있고 외국인 선수들도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오니까…"라는 그들은 "그냥 강등만 안하면 되죠"라고 말했다.

이미 옌벤의 축구 열기는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박태하 감독이 팀을 승격시켰을 때 옌벤이 얼마나 축제 분위기였는지 알고 있고 옌벤의 동포들이 얼마나 팀을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이왕 옌벤의 팬들을 만났으니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동포들에게 이 옌벤팀은 어떤 존재입니까?"

"종교입니다."

그들의 대답은 신선했다. "옌벤에서 축구가 있는 날은 경기장은 물론이고 식당들마저 거의 꽉 차요. 하나의 축제죠." 그들은 '축제'라는 표현을 썼지만 앞서 말한 종교라는 단어를 생각한다면 '예배'가 맞을 것이다. 옌벤 팬들은 기독교 신자가 예수님을 믿듯이, 불교 신자가 부처님을 믿듯이 옌벤 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이겨도 내 팀, 져도 내 팀' 옌벤 팬과 구단의 관계를 대변하는 한 마디다 ⓒ 팬 제공

"옌벤 팬들에게 옌벤 팀은 하나의 신앙입니다. 2부리그 있을 때보다 CSL에 있을 때 지는 경기는 더 많아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좌우명 같은 것이 있어요. '이겨도 내 형제, 져도 내 형제'. CSL에서 옌벤 구단은 돈도 제일 없고, 선수들 몸값도 제일 싸요. 그런 상황에서도 함께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우리 옌벤 팬들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팀과 팬의 끈끈한 신뢰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옌벤 축구를 종교로 삼는 그들에게 신(神)이라고 대접하는 존재가 세 명 있다. '하신, 지신, 감독님'이다. '하신'은 하태균(30)이다. "우리가 승격할 때 하태균이 정말로 큰 공헌을 해줬어요". '지신'은 현재 옌벤의 수문장인 지문일(29)을 칭한다. 최근 중국 국가대표팀에 발탁될 정도로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지문일은 옌벤의 수호신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이 두 명의 신 위에 절대적 권위를 지닌 신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박태하 감독이다. 박태하 감독에게는 '박신'이라는 별명이 붙지 않는다. "하신과 지신의 경우는 애정의 의미로 신이라는 별명을 붙이지만 감독님은 애정이 아닌 존경하는 분이기 때문에 감독님이라 부릅니다"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이 세 명의 인기는 옌벤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의 K-POP 스타와 같은 수준입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훨씬 그 이상입니다."

"옌벤 팀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갑니다"

그들은 그 사랑을 경기장에서 보여준다. "홈 경기가 되면 어린이부터 80대 팬들까지 수많은 옌벤 사람들이 경기장에 옵니다"고 말하면서 "특히 어르신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구역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요. 나이가 있으신 팬들은 그 구역에서 경기를 봅니다. 항상 바글바글해요. 옌벤은 매 홈 경기가 월드컵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홈 경기에만 그들이 그렇게 열렬히 응원했다면 그들의 신앙은 반쪽짜리였을 것이다. 옌벤의 팬들은 원정 경기까지 따라 나선다.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옌벤 팬들은 물론이고 옌벤 현지에 살고 있는 팬들까지 머나먼 원정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CSL의 대표 클럽이라 불리는 광저우 헝다 원정은 비행기로만 다섯 시간 이상을 가야 하지만 수천 명이 원정을 떠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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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의 붉은 무리가 옌벤의 원정 팬들이다

"옌벤의 원정 서포터 규모는 기본 수천 명입니다. CSL 팀들 중 가장 큰 규모고 K리그 홈 서포터 규모보다 큽니다." 한국에 살아 K리그 경기를 관전한 경험이 많은 한 옌벤 팬의 말이었다. 원정 경기에 따라 나서는 팬들이 많다보니 가끔은 난감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일부 CSL 팀이 원정석 티켓을 충분히 할당해주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홈 팀 관중석 티켓을 사서 원정석으로 몰래 넘어가기도 해요."

이날 열린 강원과의 연습경기 관전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팬들이기에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만일 옌벤이 ACL에 나간다면 어떨 것 같아요?" 그러자 옌벤 팬들은 씩 웃었다. "제가 기다리고 있는 날이 바로 그 날입니다. 아마 옌벤은 승격 때보다 더욱 난리가 날 것 같아요. 원정 경기까지 열심히 다닐 겁니다."

아마 그들은 ACL에 나간다는 생각만 해도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그와 함께 연습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서로 덕담을 나누고 돌아섰다. 그들이 올해도 CSL이라는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ACL에 진출해 한국 원정 경기에 나설 날이 오기를 빌었다. 그 때 옌벤 팬들이 마지막으로 던지는 한 마디가 귓가에 들려왔다.

"저희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해줄 수 있나요? 저희가 여기 와있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면 정말 혼납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