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에서 뛰던 존 오비 미켈은 연봉 100억 원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여 중국 텐진테다로 이적했다. ⓒ텐진테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충격적이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 펼쳐졌다. 4부리그 격인 K3리그에 속한 경주시민축구단이 중국 슈퍼리그에서도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텐진테다를 2-1로 잡았으니 그럴 법도 하다. 지난 13일 울산에서 열린 경주시민축구단과 텐진의 연습경기에서는 텐진이 먼저 한 골을 기록했지만 이후 경주가 연거푸 두 골을 기록하며 경주시민축구단의 2-1 승리로 막을 내렸다. 아마추어 격인 경주시민축구단이 초호화 멤버를 자랑하는 중국 슈퍼리그에 속한 텐진과 대등한 승부를 넘어 승리를 따냈다는 건 놀라운 결과다. 도대체 ‘4부리그’ 경주는 어떻게 ‘미켈의 텐진’을 이겼을까. 비록 연습경기였고 아직 텐진의 조직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고 하더라도 이건 충격적인 결과다. 지금부터 이 놀라운 결과가 탄생하기까지의 뒷이야기를 공개하려 한다.

K리그 챌린지에도 패한 텐진, 만만한 상대를 고르다

텐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스페인 말라가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했다. 하지만 텐진의 성적은 처참했다. 아무리 연습경기라고는 하지만 네 차례 연습경기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4전 전패를 당하고 만 것이다. 지난 시즌 중국 슈퍼리그에서 10위에 올랐던 텐진은 첼시에서 뛰었던 나이지리아 국가 대표 존 오비 미켈까지도 영입했다. 미켈의 주급은 무려 2억 원에 달하고 연봉은 100억 원을 뛰어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텐진은 세르비아 대표팀 출신 미드필더 네마냐 구데이를 아약스로부터 영입했는데 이때도 약 70억 원의 이적료를 썼다. 여기에 한국 대표팀에서 뛴 황석호까지도 데려왔다. 이런 초호화 선수들을 영입한 텐진으로서는 당황스러운 결과였다.

그리고 그들은 2차 전지훈련 장소인 울산으로 향했다. 날씨가 따뜻한 편이고 한국 팀들도 대거 울산 등지에서 전지훈련 중이기 때문에 울산은 2차 전지훈련으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런데 텐진은 K리그 챌린지에 속한 경남FC에 1-4 대패를 당했고 부산아이파크에도 1-3으로 무릎을 꿇었다. 경기 결과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완패에 가까웠다. 슈퍼리그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텐진이 K리그 챌린지 팀에 연패를 당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선수들의 조직력을 맞추는 단계라고 하더라도 이건 놀라운 결과였다. 텐진은 K리그 챌린지 팀과의 경기에서 최정예 멤버를 경기에 투입했지만 제 아무리 잘 나가던 ‘첼시의 공무원’ 미켈도 어쩔 수 없었다. 미켈은 부산과의 연습경기가 끝난 뒤에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할 정도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텐진의 다음 연습경기 상대는 강원FC였다. 이미 K리그 챌린지 팀에도 완패를 당하며 분위기가 최악으로 가라 앉은 텐진이 K리그 클래식 다크호스로 떠오른 강원을 상대한다는 건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다. 중국 언론에서도 막대한 투자를 한 텐진이 연습경기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자 강력한 어조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제이미 파체코 텐진 감독은 “이 경기를 통해 얻을 게 별로 없다”면서 돌연 강원과의 연습경기를 취소했다. 강원은 당황했다. 이미 일본에서 전지훈련지의 열악한 상황 때문에 조기 귀국해 전열을 가다 듬어야 했던 강원은 텐진이 갑자기 경기를 취소하는 바람에 새로운 스파링 파트너를 찾아야 했다. 가까스로 경남 밀양에서 훈련 중인 FC안양과 맞대결 일정을 잡았다.

텐진테다 선수들은 전지훈련 기간 내내 중국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텐진테다

미켈 1년 연봉=경주 20년 운영비

전지훈련 내내 연패만 거듭했던 텐진은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최약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분위기를 반전시킨 채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4부리그 격인 K3리그에 속한 경주시민축구단이 텐진의 눈에 들어왔다. 이 팀이면 텐진이 쉽게 승리를 거두고 기분 좋게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주시민축구단은 마침 경주에 있었다. 경주시민축구단은 지난 4일부터 경주에서 훈련 중이었다. K3리그 화성FC와 부산FC, 그리고 대학팀인 영남대, 안동과학대, 대구예술대 등과 함께 리그전과 흡사한 형태로 연습경기를 치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때 한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텐진이 경주와 연습경기를 치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날짜도 촉박했다. 연습경기 일정으로 못 박은 13일까지는 나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주시민축구단은 다른 K3리그 팀들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에 임하고 있다. 심지어 선수단 버스가 없어 같은 연고지에 있는 내셔널리그 경주한수원으로부터 중고 버스를 기증 받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대학 무대에서 뛰다가 결국 프로는 물론이고 내셔널리그에서도 지명 받지 못해 갈 곳 없는 선수들이 다시 한 번 도전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선수들은 연봉 계약이 아니라 수당으로만 생활한다. 당연히 열악할 수밖에 없다. 경주시민축구단 1년 예산이 5억 원 정도이니 1년에 100억 원을 받는 미켈은 1년 연봉으로 경주시민축구단 20년 운영비를 버는 셈이었다. 주급이 2억 원인 미켈이 17일 정도 일하면 경주시민축구단 1년 예산을 뽑을 정도다. 경주시민축구단과 텐진의 격차는 엄청났다. 텐진이 분위기를 끌어 올릴 상대로 경주시민축구단을 택한 건 기분이 상하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주시민축구단 송홍섭 감독은 텐진의 연습경기 제안을 받고 흔쾌히 이에 응했다. “우리는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대학팀과 K3리그 팀하고만 연습경기를 치렀다. 프로팀하고는 처음 격돌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는 송홍섭 감독은 “K3리그가 오는 25일 개막한다. K3리그 팀들도 수준이 높아 중국 슈퍼리그 팀이 좋은 스파링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열악해 해외 전지훈련은커녕 국내에서도 대학팀이나 K3리그 팀하고만 연습경기를 치러야 했던 경주시민축구단으로서는 텐진의 제안이 좋은 기회였다. 텐진은 경주시민축구단을 가벼운 첫 승 상대로 여겼지만 경주시민축구단의 입장은 달랐다. 연습경기 나흘 전에 부랴부랴 제안이 왔지만 이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도 이런 스파링 파트너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전 둘 빠진 경주, 텐진을 압도하다

경주시민축구단은 지난 시즌 여름에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시즌 중반까지 중위권을 면치 못하던 경주시민축구단은 이태홍 감독을 대신해 1976년생의 젊은 송홍섭 감독을 영입했다. 송홍섭 감독이 부임한 뒤 살펴본 선수들은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고 전체적인 수준도 떨어져 있었다. 송홍섭 감독은 가까스로 첫 시즌을 K3리그 10위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올 시즌을 앞두고 대학에서 졸업한 뒤 갈 곳이 없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송홍섭 감독이 온전히 고른 선수들로 치르는 첫 시즌이었다. 경주에서 줄곧 훈련을 해온 선수들은 미켈과 구데이, 황석호 등 유명 선수들과 연습경기를 치른다는 소식을 듣고는 잔뜩 긴장했다. 13일 연습경기 장소에 도착하니 중국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고 미켈과 구데이, 황석호 등은 몸을 풀고 있었다. K3리그 선수들이 이런 해외 언론의 관심 속에 유명 선수들과 경기를 치르는 건 좀처럼 잡을 수 없는 기회였다.

송홍섭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쟤네가 지금까지 한국 프로팀하고 해서 한 번도 못 이겼대. 우리는 비록 K3리그 팀이지만 다들 능력이 있으니 최선을 다해 보자. 리그 개막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이니까 실전처럼 해보는 거야.” 선수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텐진도 승리를 작정하고 나왔다. 파체코 감독은 연패 중인 팀 분위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K3리그 팀과의 연습경기임에도 미켈과 구데이, 황석호 등 베스트 멤버를 모두 선발로 기용했다. 연봉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연봉 100억 원의 미켈은 마할 것도 없고 텐진의 그 어떤 중국인 선수와도 경주시민축구단 선수들의 연봉은 비교불가였다. 막대한 돈을 쓰는 중국 슈퍼리그 팀과 한국 축구 4부리그 격인 K3리그 팀과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연습경기에서 단 한 번도 승리를 따내지 못해 코너에 몰린 텐진은 연습경기 상대까지 바꾸고 초호화 멤버를 모두 투입하며 첫 승을 노렸다.

반면 경주시민축구단은 주전급 선수가 두 명이나 빠졌야 했다. 조준재와 이주형 등 핵심 역할을 하는 두 선수가 나란히 훈련소에 입소했기 때문이다. 조준재와 이주형은 훈련소에서 퇴소한 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K3리그에 참여해야 한다. 송홍섭 감독은 아쉽지만 이 둘 없이 텐진을 상대해야 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텐진이 주도권을 잡았다. 전반 초반 곧바로 한 골을 실점하며 경주시민축구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명 선수들을 상대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전반 15분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K3리그 경주시민축구단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중국 슈퍼리그의 텐진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반 15분 이후부터는 페이스가 완전히 경주시민축구단 쪽으로 넘어왔다. 전반을 0-1로 마친 경주시민축구단은 후반 들어 정우현의 동점골 이후 텐진의 기세를 완전히 눌러 버렸다.

텐진테다 선수들은 전지훈련 기간 내내 중국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텐진테다

‘4부리그’ 경주의 깜짝 놀랄 만한 승리

송홍섭 감독은 “텐진 선수들이 동점골 이후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니 표정도 좋지 않고 동료들끼리 불만 섞인 제스처를 자주 취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텐진 선수들이 흔들리자 경주시민축구단은 더 자신감 넘치게 상대를 압박했고 결국 이한주가 귀중한 결승골을 기록했다. 경기는 이대로 끝이었다. 경주시민축구단이 텐진을 2-1로 제압한 것이다. 아무리 연습경기였다고 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결과였다. 연봉 100억 원의 미켈과 세르비아 대표팀 출신 구데이,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 황석호가 풀타임을 소화했음에도 텐진은 결국 한국의 4부리그 팀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약체를 상대로 승리에 대한 갈증을 풀겠다는 텐진의 의도는 빗나갔다. 텐진은 한국에서 치른 마지막 연습경기에서도 패한 뒤 초라하게 다음 날 새벽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송홍섭 감독은 이 승리에 대해 좋은 기분을 유지하면서도 침착했다. “우리 팀에는 한 번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이 많다. 자신감을 더 끌어 올려야 한다. 가능성은 충분한 선수들이니 올 시즌 K3리그에서도 멋진 승부를 펼치고 싶다. K3리그에서 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일단은 3강 안에 드는 게 목표다. 유명 선수들을 상대로 한 연습경기에서 승리한 건 기분 좋지만 이건 연습경기일 뿐이다. 실전에서 이런 경기를 펼쳐 보이겠다.” 비록 연습경기였지만 K3리그의 흔한 중위권(?) 팀은 주전을 두 명이나 빼고도 연봉 100억 원이 넘는 선수를 보유한 초호화 슈퍼리그 구단에도 이겼다. 우리 모두 K3리그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느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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