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상하이 상강은 '김주영의 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상하이 상강 공식 홈페이지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여러분에게 AFC챔피언스리그(이하 ACL)는 무엇인가요?

올해도 어김없이 ACL이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FC서울, 수원 삼성, 제주 유나이티드, 울산 현대가 유니폼에 태극기를 달고 아시아 정상을 향한 여정에 돌입합니다. 일본, 호주, 사우디 등 아시아의 축구 강국에서 강호 소리 듣는 다른 팀들 역시 ACL에서 우승컵을 노립니다.

사실 이 대회는 국가 대항전이 아닙니다. 프로 팀과 프로 팀의 대결이죠. 하지만 우리도 그렇고 다른 나라도 그렇고 묘하게 국가 대항전으로 의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J리그 팀과 붙으면 '한일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중국 슈퍼리그(CSL) 팀과 붙으면 '공한증' 이야기가 등장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우리는 ACL을 축제의 느낌보다는 전쟁의 느낌으로 대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 팀과 붙을 경우 그 적대감은 생각보다 더 과열됩니다.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의 댓글을 보면 '짱X라', '쪽X리' 등 상대 국가와 국민들을 비하하는 용어가 넘쳐나곤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나라들 역시 분위기가 과열되면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몇 년 전 성남FC의 ACL 일화가 생각나네요. 당시 상대였던 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 팬들이 "오심으로 성남에 졌다"면서 성남 SNS로 몰려와 태국어로 한가득 욕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주 뒤 성남이 이겨야 부리람의 16강 진출 희망이 생기는 상황이 되자 순식간에 욕설로 가득하던 성남의 SNS가 응원의 댓글로 가득했던 해프닝이 있었죠. 아시아 축구팬들에게 ACL이 그만큼 중요하고, 또 한 경기 한 경기 모두가 놓칠 수 없는 경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렇게 경쟁심 가득한 ACL에서 최근 훈훈한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CSL 상하이 상강 서포터 모임 J리그 우라와 레즈 서포터에게 교류를 요청하며 손을 내민 것입니다. 아직 우라와 레즈 측의 회신은 오지 않았지만 성사될 경우 ACL, 그리고 동북아 축구에 의미 있는 메세지를 던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상하이 상강 서포터의 제안서 전문을 번역해 여러분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우라와 레즈의 원정 서포터 모든 분들께>

그들의 편지는 시종일관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쓰여 있습니다 ⓒ 상하이 상강 서포터즈 클럽

안녕하세요? 저희는 상하의 상강의 서포터 그룹 광치(光啓)라고 합니다. 이번에 저희는 ACL 플레이오프를 통과하고 우라와 레즈와 같은 조에 속해 함께 맞붙게 됐다는 사실을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우라와 레즈는 3월 15일 상하이에서 처음으로 만납니다. 이 때 상하이 체육관(상하이 상강 홈 구장)을 방문하실 여러분들을 마음 깊이 환영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첫 대결에서의 홈 팀 서포터로서 제안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라와 레즈의 원정 서포터 여러분과 저희 그룹이 시합 전에 응원 대항전 형식으로 함께 교류를 갖고 싶습니다. 우라와 레즈 서포터 그룹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부디 저희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하셔서 이 제안이 현실로 다가오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하이 상강 서포터 그룹 광치 드림

경색된 중-일 관계, 그래도 축구는 달라야 한다

상하이 상강은 이번 ACL 플레이오프에서 태국의 수코타이를 3-0으로 꺾고 조별예선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그들은 F조에서 FC서울, 우라와 레즈, 웨스턴 시드니와 한 조에 편성됐습니다. 하지만 '응원 교류'를 제안한 그들의 의도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갑자기 상대의 서포터와 교류를 제안할 이유가 딱히 없습니다. 게다가 ACL 조별예선 진출을 기념하기 위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올 시즌 상하이 상강의 ACL 조별예선 첫 경기는 FC서울 원정이고 첫 홈 경기 상대는 웨스턴 시드니입니다. 하필이면 왜 우라와 레즈일까요?

사실 중-일 관계는 한-일 관계 그 이상으로 험악한 편입니다. 순식간에 30만 명이 살해 당했던 난징 대학살 사건부터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놓고 영토 분쟁이 일어나는 등 두 나라 사이에는 사건 사고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은 한국인들과 비슷하거나, 더 강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스포츠를 놓고 두 나라가 신경전을 벌인 바 있습니다. 19일부터 일본 삿포로에서 개최되는 동계 아시안게임의 선수단 숙소를 놓고 중국 측이 "극우 성향의 APA 호텔을 이용할 수 없다"며 변경을 요구한 것입니다(우리나라도 변경을 요청했습니다). 이를 두고 재일 중국인들이 APA호텔로 가 시위를 벌였고, 일본 우익 단체들이 그 장소에 몰려가 욕설을 하며 맞불 시위로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편지는 시종일관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쓰여 있습니다 ⓒ 상하이 상강 서포터즈 클럽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하이 상강의 팬들은 우라와 레즈의 팬들에게 응원을 통한 교류를 제안했습니다. 최근 중-일 관계가 긴장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더더욱 민간 우호의 차원에서 이를 제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축구를 통해 양 국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개선하자는 것이겠죠. 아직 우라와의 회신이 없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손을 내민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ACL은 마냥 뜨거워야 한다? 따뜻한 시선의 ACL은 어떨까

아시아축구연맹(AFC)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One Asia, One Goal'이라는 글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축구를 통한 하나의 아시아를 추구하는 AFC의 비전을 드러내고 있죠. ACL 역시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이들의 제안은 ACL이 아시아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결의 장이 아닌, 아시아인들의 축제의 장이 되는 ACL을 말이죠.

우리는 보통 ACL을 국가를 대표하는 프로 팀들의 대결로 인식합니다. 선수들의 유니폼에도, 응원하는 팬들 사이에서도 그 나라의 국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CL은 단순한 국가 간 대결의 장이 아닐 것입니다. 축구를 통해 아시아가 하나되는, 교류의 장이라는 의미가 더 강할 것입니다.

사실 실제로 ACL이 열리는 경기장에 찾아가면 한국인과 외국인이 교류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로 머플러나 유니폼을 교환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단순히 기념품 수집의 목적도 있겠지만 주고 받는 손길 속에 서로에 대한 친밀함이 싹트기 마련입니다. 좋은 외국인 친구를 축구장에서 만들 수도 있구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ACL을 그저 국가 간의 대결로 소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할 수 없는 승부, 그리고 우승에 포커스를 맞추느라 정작 우리가 돌아봐야 할 부분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하이 상강 서포터의 작은 행동은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ACL은 언제나 뜨겁습니다. 올 시즌 역시 우승컵을 향한 치열한 경쟁으로 뜨거울 전망입니다. 하지만 뜨거운 그라운드와 달리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 뜨겁기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낯선 외국인과 교류하고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ACL의 또다른 매력을 알게 될 것입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