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명재영 기자] K리그를 오래 지켜봐 왔던 팬이라면 2월 2일은 쉽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년 간격으로 같은 날짜에 충격적인 사건을 두 번이나 접했기 때문이다. 수원삼성과 라이벌 구도로 K리그 흥행의 한 축을 맡았던 안양LG는 2004년 2월 2일, 당시 신생팀에 대한 열기가 강했던 서울로의 연고 이전을 전격으로 발표한다. 월드컵 열풍이 무르익던 2006년 2월 2일에는 부천SK가 제주로 자리를 옮기면서 엄청난 후폭풍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11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 프로축구는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났을까.

실업축구에 가까웠던 프로축구

군사정권의 특정한 의도 아래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는 대기업에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하는 반쪽짜리 프로스포츠였다. 특히 본격적인 지역 연고제를 시행하기 전인 1996년 전에는 실업 축구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프로’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게 많았다. 연고제가 가동된 1996년,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안양과 부천으로 터전을 옮긴 두 구단은 빠른 시간에 뿌리를 내리며 지역에서 사랑받는 명물이 되었다.

K리그의 르네상스로 회상되는 1998년과 2002년, 안양과 부천 또한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쌓아나갔다. 특히 두 구단은 엄청난 열기를 자랑하는 팬들을 가져 다른 구단과의 차별성도 뚜렷했다. 안양의 서포터 ‘레드’와 부천의 서포터 ‘헤르메스’는 수원삼성의 ‘그랑블루’와 더불어 K리그의 팬 문화를 선도하는 그룹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열정과 구단의 미래는 별개였다.

분명 8ㆍ90년대와는 다르게 성장하고 있던 K리그지만 모기업의 지원금이 없으면 채 석 달도 버티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했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이 성황리에 끝난 뒤 시민구단이라는 새로운 성격의 구단들이 탄생하면서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탄탄한 내실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비어있던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구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신생 구단의 창단이 어렵게 되자 기존 구단이 서울로 이동하는 방안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부산아이콘스(현 부산아이파크)와 안양LG(현 FC서울)가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사용권을 두고 경쟁했고 안양이 승리하면서 현재의 FC서울이 탄생했다.

부천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천은 연고 이전의 이유로 수도권 집중현상과 한 연구기관의 용역 결과를 들었다. 결국, 부천은 ‘돈’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클럽하우스 건립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 또한 하나의 이유였다. 그렇게 구단의 주인이라고 홍보하던 ‘팬’은 철저히 배제됐다.

안양 팬들은 자신의 팀을 다시 보기까지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 FC안양

K리그의 단골 단어, 자생력

팬들이 리그의 미래를 걱정하는 현실 속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바로 자생력이다. 프로 구단으로서 모기업에 대한 의존율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10년이 넘게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지금 K리그는 연고 이전 같은 비극을 더는 안 겪어도 될 정도로 성장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연고 이전의 원인으로 되돌아보자. 인기가 없어 구단의 장래가 어두웠고 새로운 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한다는 것이 가장 컸다. 여기서 따져볼 것은 두 가지다. 왜 팬들의 인기가 없었는지, 새로운 연고지로 가면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안양과 부천은 분명 이름 있는 구단이었지만 팬들을 스스로 돌려보낸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실망스러운 구단 운영으로 팬층의 확장은커녕 기존 팬조차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도시로 터전만 옮기면 상황이 급변할 수 있을까.

물론 FC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대형 시장을 10년 동안 독점하며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인구 1,000만 도시의 단독 구단치고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축구계의 평가 또한 존재한다. 제주유나이티드는 제주도 최초의 프로스포츠 구단이라는 타이틀을 따냈지만 그뿐이었다. 관중 동원력은 한동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객단가 공개 후에는 공짜 표를 남발하는 구단이라는 오명을 썼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재정적인 성과를 올렸을지는 따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연고 이전으로 과연 득을 본 것일까.

현재 리그 내에서 자체 수익이 가장 많은 구단으로는 FC서울과 전북현대가 꼽힌다. 두 구단은 대회 상금과 이적료, 입장 수익 등으로 매년 세 자릿수의 자체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탄탄한 모기업에 구단 스스로가 100억 원을 넘는 수익을 낸다면 분명 희망적이다. 문제는 그 외 나머지 구단이다. 2016년 K리그에 참가한 구단은 23개다. 그중 2개 구단이 2016년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안양 팬들은 자신의 팀을 다시 보기까지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 FC안양

위기는 더 심해졌다

양적 성장을 이어나가던 K리그에 제동이 걸렸다. K리그 챌린지의 원년 멤버였던 고양자이크로와 충주험멜이 구단 운영에서 손을 뗀 것이다. 여러 사유가 있었지만, 결론은 재정난으로 모인다. 경찰청축구단이 아산으로 옮기고 안산그리너스가 새로운 시민구단으로 탄생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 처음으로 구단 수가 감소한 것이다. 한때 K리그의 미래로 불렸던 시민구단은 팬들이 더 이상의 창단을 거부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어느 순간부터 시민구단들의 임금 체납 소식은 특종이 아닌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시즌 중반에 예산이 다 떨어져 시ㆍ도 의회와 지역 기업에 구걸하다시피 추가 자금을 받아 임금을 지급하는 악순환이 끝나지 않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올해도 이러한 소식은 계속해서 전해질 것이다. 이제는 연고 이전이 아니라 구단이 아예 사라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번진 것이다.

지역 속으로 밀착하는 마케팅이 답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현실이 녹록지 않다.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원이 10명에 이르는 구단은 손가락으로 꼽는다. 대다수의 구단이 계약직 혹은 외주에 의존하고 있다. 전문성과 효율성 그리고 연속성 모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수도권 구단들은 사정이 좀 낫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홈경기 당일 경기장 근처를 방문해도 경기가 열리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초라한 실태를 목격하기도 한다.

가격을 대폭 할인한 연간회원권은 매년 강매 의혹이 불거지고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예산 대폭삭감 혹은 해체까지도 거론되는 것이 우리 시민구단의 오늘날 현실이다. 지금 사정이 좀 낫다는 시민구단도 선거를 통해 단체장이 바뀌면 운명이 하룻밤에 뒤집힐 수도 있다. 기업구단 또한 모기업 내의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있다. 수원삼성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그 장면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문자중계로 경기 내용을 상상하던 시절은 분명 지났다. 아랍어와 영어로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겨우 접할 수 있는 것도 끝났다. 하지만 이는 현상 유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대중이 접하기 힘든 비인기 채널을 통해 마니아들만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되어간다는 소리도 나온다. 그렇기에 올해 강원FC의 결과가 중요하다. 마지막 골든타임인 셈이다. 강원이 성공한다면 어둠으로 얼룩진 축구계에 새로운 촛불이 켜질 수 있다.

연고 이전에 대한 평가는 팬들의 몫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상처를 입은 이들은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스포츠의 존재 이유를 생각했을 때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프로축구가 살아나야만 한다. 필사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일본의 사례를 입으로만 언급할 것이 아니라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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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충주험멜 선수단의 경기 전 모습 ⓒ 충주험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