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현대를 향한 언론의 자세는 며칠 사이 급격히 변했다. ⓒ전북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미 대회는 시작됐는데 아직까지도 대회에 어떤 팀이 나서야 하는지를 놓고 싸우고 있다.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지난 달 24일부터 플레이오프가 시작돼 이 10개월의 대장정은 막이 올랐지만 전북현대의 참가 여부는 미지수다. AFC는 지난 2013년 K리그에서 심판을 매수한 전북에 대해 올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을 박탈했고 전북은 이에 대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다. CAS는 오는 3일까지 이 건을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AFC가 CAS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미 결정된 일정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미 대회는 시작됐지만 아직도 제대로 정리된 일은 없다. 이건 ‘민폐’ 전북과 ‘무능’ AFC의 합작품이다.

전북의 행동은 여러 구단에 민폐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하는 건 전북의 행동이다. 전북은 AFC의 참가 자격 박탈 결정이 내려진 뒤 이를 CAS에 제소했다. “AFC의 결정을 수긍할 수 없으니 스포츠중재재판소에서 이를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전북이 불복하면서 애꿎은 K리그 팀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가장 큰 혼란이 생긴 팀은 울산현대다. 4주 짜리 스페인 전지훈련을 2주 만에 급하게 마무리하고 귀국한 울산은 제대로 된 훈련 프로그램도 소화하지 못한 채 AFC 챔피언스리그를 준비하고 있다. 전지훈련을 급작스럽게 축고하면서 이미 이에 따른 위약금 등으로 수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 여기에 개보수를 실시한 홈 구장 시설을 급히 점검하면서 경기장 보수 일정까지도 앞당겨야 했다. 아직 공식전을 치르지 못한 김도훈 감독은 누구와의 경기가 데뷔전이 될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제주 또한 마찬가지다. 키치(홍콩)-하노이(베트남)전 승자와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던 제주는 이 일정에 맞춰 다른 팀들보다 빨리 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조성환 감독은 키치-하노이전을 직접 지켜보기 위해 항공편도 미리 예매해 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주는 기존에 전북이 속해 있던 조에 속하게 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키치-하노이전은 더 이상 관계가 없어졌고 애들레이드와 장쑤의 전력분석에 임해야 한다. 시간을 벌었다는 점은 반갑지만 애초 예정됐던 팀과의 대결이 무산되고 새로운 팀을 상대해야 해 새롭게 판을 짜야 한다. 전북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다른 K리그 팀들이 상당한 손해를 입어야 한다. 울산이나 제주를 상대해야 하는 상대팀들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민폐라는 표현도 과격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전북이 제소를 결정하면서 민폐는 극에 달하고 있다. 당장 오는 7일 플레이오프를 치르기로 한 울산은 이 제소 결과에 따라 아예 대회 출전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만약 CAS가 전북의 손을 들어주면 제주는 다시 예선 플레이오프로 떨어져 7일 홈에서 키치와 단판승부를 치러야 한다. 이미 플레이오프 일정에 따라 울산전을 준비하고 항공권과 숙박시설 예약까지 마무리한 키치는 갑자기 이 모든 일정을 제주에서 소화해야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이 상황이 되면 AFC 챔피언스리그에 맞춰 스케줄을 변경한 울산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 AFC가 이미 결정한 사안에 대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전북이 제소를 하면서 K리그 팀들은 물론 저 멀리 홍콩에 있는 팀까지도 영향을 받게 됐다. 이건 지독한 이기주의다. 부당한 징계에 대해 제소하는 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전북의 징계에 불만을 품는 건 일부 전북 팬들밖에 없다. 그 누구도 전북이 억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울산현대는 오는 3일 CAS의 결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울산현대

‘反전북’ 정서는 전북에 유리하지 않다

전북은 깔끔하게 이 징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축구 1,2년 하고 그만둘 게 아니라면 한 시즌 정도는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지 않더라도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전북은 심판 매수 사건 이후 K리그에서 ‘공공의 적’이 돼 가고 있는데 이런 이미지를 아시아 전체에 심어주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CAS가 판결을 내리면 어떤 식으로건 전북에 유리할 게 없다. CAS가 전북의 손을 들어준다고 해도 제주나 울산이 입은 손해를 따져본다면 그건 전북이 절대 이긴 싸움이 아니다. 악화되고 있는 전북에 대한 여론은 더더욱 악화될 것이고 ‘反전북’ 정서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전북이 가까스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게 된다면 전북은 또 다시 우승을 해도 본전도 못 찾는다. 그 누구도 떼를 써 대회에 나간 전북이 우승을 했다고 해 축하의 박수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CAS가 AFC의 결정을 지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전북으로서는 최악의 결과다. 실리도 잃고 이미지도 더 추락할 수밖에 없다. 항상 <용감한 기자들> 방송이 끝나고 회식 때면 신동엽 씨가 이렇게 말한다. “연예인은 잘못한 뒤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면 대중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어. 그런데 꼭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거나 죄를 남에게 덮어 씌우거나 피하려고 하면 그땐 재기불능 상태가 되는 거야.” 전북이 심판 매수 사건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전북의 모습은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발뺌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면 한 번은 용서하려던 대중도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전북의 행동은 점점 대중에 거부감을 준다.

이건 K리그에도 민폐고 AFC에도 민폐다. 심판 매수가 구단 차원이 아니라 구단 직원이 개인의 일탈로 벌인 일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서 이게 개인의 일탈이라고 하자. 다소 과할 정도로 벌을 받아야 성난 팬들도 잦아들 수 있다. 반성의 의지가 있다면 전북은 AFC의 징계를 받아들이고 CAS에 제소를 하면 안 됐다. 이미 전북 구단 때문에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이 싹 다 변경되고 이에 따라 여러 팀들이 금전적인 손해를 보면서 스케줄을 다시 짯다. 그런데 전북이 이에 항소하면서 모든 건 다시 불확실해졌다. 아무도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불확실한 싸움 때문에 K리그와 AFC, 그리고 이에 속한 여러 구단이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아님 말고’식의 제소는 K리그와 울산, 제주, 키치, 그리고 AFC 전체에 민폐다.

울산현대는 오는 3일 CAS의 결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울산현대

무능한 AFC, 꼴이 우스워졌다

AFC의 행동도 무능하기 짝이 없다. AFC가 전북의 심판 매수 사건을 인지하고 일찌감치 스스로 징계를 내렸다면 여기까지 올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AFC는 애초부터 전북에 아무런 조치를 취할 생각도 없었다. AFC는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공으로 최강희 감독에게 ‘올해의 감독’을 수여했다. 이뿐 아니다. 전북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자격으로 클럽월드컵까지 출전했다. 더군다나 프로축구연맹은 지난 해 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이 끝난 뒤 전북에 승점 9점 삭감과 제재금 1억 원의 징계를 내렸는데 AFC에서도 이때 이미 모든 상황 파악이 끝났다. AFC가 문제 의식을 가졌다면 이미 조추첨식 전에 징계를 내렸어야 했을 텐데 AFC는 올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조추첨 때까지도 전북 징계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이미 전북에 징계를 내릴 적절한 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더 황당한 건 이 ‘전북 문제’가 제3자(?)의 문제 제기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는 점이다. 그 팀은 바로 호주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였다. 전북과 함께 2017 AFC 챔피언스리그 H조에 속한 애들레이드는 조추첨식 이후 호주 언론을 통해 전북의 챔피언스리그 출전의 위법성을 지적했다. 애들레이드 측은 “AFC에 전북의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옳은 지 문의하겠다. AFC에서 만족스러운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CAS에 이 문제를 문의하겠다”고 강한 어조로 전북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그렉 그리핀 애들레이드 회장은 여러 언론을 통해 한국 축구 전체를 비판했다. “한국 축구계가 전북에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았다. 위법 행위에 관용을 베풀면 안 된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기분 나쁜 말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런 말을 요새는 이렇게 표현한다. ‘팩트폭격.’ 호주의 일개 축구단 회장이 K리그 전체에 이런 소리를 내뱉어도 별로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AFC는 뒤늦게 애들레이드 측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였고 결국 이미 조추첨이 다 끝나고 새 시즌을 준비하던 지난 달 중순 전격적으로 전북의 출전 금지를 결정했다. 한 대륙의 축구를 총괄하는 큰 단체에서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추진한 건 한심할 뿐이다. 무슨 동네 체육대회도 아니고 아시아 축구 최강 팀을 가리는 10개월의 대장정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쟤네랑 안 놀아. 혼내줘”라는 말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 뒤늦게 부랴부랴 혼내주는 꼴이 참으로 무능하다. 전북 징계가 잘못 됐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출전의 위법성도 느끼지 못하던 곳에서 다른 팀의 지적으로 눈치를 보며 징계를 내리는 모습은 권위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CAS가 전북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결정이 나면 AFC의 꼴은 더 우스워진다. 전북의 민폐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사건이 이렇게 될 때까지 손을 놓고 있던 AFC의 무능도 큰 문제다.

‘민폐’ 전북과 ‘무능’ AFC의 합작품

오는 3일 CAS가 심사 결과를 발표한다. 나는 현재 AFC가 내린 결정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전북은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의 문제 제기가 아닌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으면 좋겠다. 아시아 챔피언이면 그에 맞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민폐를 끼치면서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면 그 누구도 전북에 진정한 아시아 챔피언이라고 박수쳐 주질 않는다. 지난 시즌 그렇게 멋진 축구를 구사해 놓고 그라운드 밖에서의 민폐 때문에 그들의 축구 자체가 훼손되고 있다. 스스로 반성해야 할 문제다. AFC 또한 마찬가지다. 가장 큰 대륙의 축구를 총괄하는 어마어마한 단체가 계획도 없이 무슨 동네 구멍가게보다도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 ‘민폐’ 전북과 ‘무능’ AFC의 콜라보레이션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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