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이집트는 아프리카 축구 강국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고 여러분도 잘 모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이집트는 아프리카의 축구 강국입니다.

현재 가봉에서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열리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최강을 가리는 대회죠. 이집트가 축구 강국이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대회 최다 우승국이 바로 이집트입니다. 무려 7회 우승입니다(아랍연합공화국 포함). 특히 2006년부터 2010년까지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비록 2012년부터 2015년 대회까지 3개 대회 연속 본선 진출 실패로 '이제 이집트 축구도 몰락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됐지만 이번 2017년 가봉 대회에서 강호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이집트가 아프리카 축구 강국이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먼 곳에 위치한 대륙인 아프리카 나라이기도 하고 유명한 축구선수로는 아스널에서 뛰고 있는 모하메드 엘네니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이집트 축구를 잘 모르는 이유는 '월드컵에 잘 나오지 않아서'입니다. 이집트는 월드컵과 지독하게 연관이 없는 나라입니다. 통산 2회 본선 출전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모두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대회였습니다(1934, 1990년). 적어도 월드컵 본선에 나와줘야 '저 대륙에서는 강팀이구나'라고 생각할텐데 그렇지 않으니 우리가 강팀이라는 인식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이 어린이는 이집트가 월드컵에 나간 줄도 모를 것입니다 ⓒ Muhammad Ghafari

참 신기한 일입니다. 대륙 대회에서는 날아다니는 팀이 정작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두 대회에 참가하는 팀들이 다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도대체 이집트는 왜 월드컵에 나오지 못하고 있을까요? 한 번 분석해봤습니다.

이집트 팬들 뒷목 잡게 하는 월드컵 도전사

이집트의 월드컵 도전사를 보면 정말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렵습니다. 기록을 보면서 '이집트 축구팬들은 4년마다 속이 썩어나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좋은 조 편성을 받으면 엉뚱한 팀에 발목을 잡히고 본선 티켓이 눈 앞까지 왔을 때는 강팀을 벼랑 끝 승부에서 만나 패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했는가'를 설명하자면 정말 깁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는 피파 랭킹이 높아 최종예선까지 부전승으로 진출하고 톱 시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라이베리아에 발목을 잡혀 튀니지에 티켓을 내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 때는 6전 전승으로 최종 예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가나를 만나는 바람에 합계 3-7로 완전히 깨진 적도 있습니다.

그 중 압권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이었습니다. 1차 예선 12조에서 5승 1패 1위를 기록, 가뿐하게 최종예선에 진출한 이집트는 알제리, 잠비아, 르완다와 C조에 속했습니다. 조 1위에만 주어지는 본선 티켓이었지만 해볼 만한 싸움이었습니다. 잠비아와 르완다는 단 한 번도 월드컵에 나간 적이 없고 알제리는 1986년 월드컵 이후 본선 출전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죠.

이번에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최종예선 6경기를 소화한 이후 이집트의 성적은 4승 1무 1패(승점 13)였습니다. 다른 조 1위 팀들의 승점이 12~13점인 것을 감안할 때 이집트의 본선 진출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알제리 역시 4승 1무 1패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두 팀이 골득실마저 똑같았습니다. 이집트는 6득점 1실점 골득실 +5, 알제리는 7득점 2실점 골득실 +5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지역 최종 예선에서는 골득실까지만 순위 산정에 반영했기 때문에 CAF는 두 팀의 순위표를 정리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플레이오프였습니다. 중립 지역에서 단판 승부를 펼쳐 이기는 팀이 월드컵 본선 티켓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결국 2009년 11월 수단에서 플레이오프가 열렸고 알제리가 1-0으로 승리해 24년 만의 월드컵 티켓을 따냈습니다. 이집트의 입장에서는 통한의 한 판이었죠. 이집트는 이런 식으로 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쳤습니다. 운도 따라주지 않았고 한 끗 차이로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습니다. 큰 경기에 발휘하는 집중력 역시 실력이니까요.

▲ 그 이후 양 팀은 만날 때마다 사사건건 충돌이 일어나는 아프리카의 라이벌로 급부상했습니다

'한 끗'이 부족해 20년 넘게 월드컵 못나간 이집트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강호' 이집트는 왜 월드컵에 잘 못나가는 것일까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됩니다. 아시아에서는 아시안컵 우승팀이 월드컵에 이렇게까지 못나간 적은 없습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본선 진출에 실패할 경우 이집트의 본선 진출 실패 역사는 28년으로 늘어납니다. 현재 20대 이집트 청년들은 한 번도 자국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본 적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하나를 딱 꼬집어 '이래서 이집트가 월드컵을 나가지 못한다'고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나라의 특수성, 선수들의 성향, 당시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집트의 월드컵 예선 기록과 전적을 살펴보면 꽤 주목할 만한 점이 등장합니다. 바로 '원정 경기에서 약체에 발목을 잡힌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방식은 대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회는 '최종예선에서 각 조 1위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는 규칙으로 운영됩니다. 이 방식 하에서 이집트는 최종예선에 항상 진출하지만 2~3위라는 성적으로 탈락합니다. 1위와 승점 차이는 최소 1점, 최대 6점 정도 차이 납니다. 1~2경기를 더 잡지 못해 월드컵 본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속칭 '놓치는 한 경기'입니다. 이집트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잘 하는, 이집트와 함께 조 1위를 노리는 상대에게는 밀리지 않습니다. 대부분 홈 앤 어웨이 경기에서 1승 1패나 2무를 기록합니다. 우리나라로 대입해서 얘기하자면 호주나 일본에는 밀리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집트는 어디서 승점을 까먹을까요?

이집트의 기록을 찾아보면 승점을 까먹은 부분, 특히 월드컵 본선행에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은 경기들은 대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체와의 원정 경기에서 어이없이 패배를 당합니다. 다른 경쟁 팀이 약체를 상대로 2승을 거두는 동안 이집트는 1승 1패에 그치고 마는 것이죠. '그깟 한 경기 차이가 중요하겠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집트는 그 한 경기 한 경기가 쌓여 월드컵에 못나간 지 올해로 27년 째입니다. 다시 우리나라를 대입해 얘기하자면 호주, 일본에는 대등한 전적을 기록하면서 시리아, 중국 등에 일격을 당하는 바람에 월드컵을 못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6개 대회 24년 동안 단 한 번도 말이죠.

'왜 이집트는 꼭 그렇게 지는 바람에 본선 티켓을 놓치냐'고 물어보신다면 더욱 복잡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환경적인 요인, 사회적인 요인, 축구 전술, 선수층 등 여러가지 요인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그래도 이집트 축구는 그들의 국민성과 (슬픈 얘기지만) 비슷합니다. "60년 동안 중동의 미소는 이집트가 담당했다"는 말이 있듯이 지난 24년 넘는 시간 동안 아프리카 축구의 미소, 아니 웃음은 이집트가 담당한 셈입니다.

이집트는 러시아에 갈 수 있을까?

1월 31일 기준으로 이집트는 2017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4강전에 진출했습니다. 4강전 상대는 그들보다 한 수 아래인 부르키나파소입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이집트는 결승전까지 진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3회 연속 예선 탈락이라는 아픔을 딛고 명예회복에 제대로 성공했습니다. 잠시 주춤했던 이집트가 여전히 아프리카의 강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여전히 월드컵입니다.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이 끝나면 아프리카의 축구 국가대표팀들은 다시 월드컵 최종예선 일정에 돌입합니다. 이집트 역시 최종예선 명단에 들어 있습니다. 이번 예선에서 이집트는 우간다, 콩고, 그리고 강호 가나와 한 조가 되어 조 1위에게만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놓고 싸우게 됩니다.

이 어린이는 이집트가 월드컵에 나간 줄도 모를 것입니다 ⓒ Muhammad Ghafari

현재 이집트는 월드컵 최종예선 두 경기를 소화했습니다. 두 경기 모두 쉽지 않았습니다. 첫 판은 콩고 원정이었습니다. 약체이지만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원정 경기니까요. 이집트는 전반 24분 도레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면서 이집트 팬들의 '이번에도 또…'라는 탄식을 자아냈지만 전반 41분 살라흐, 후반 13분 사이드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탄력을 받은 이집트는 한 달 뒤 열린 가나와의 홈 경기도 2-0으로 승리하며 초반 조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제 남은 최종예선 4경기는 올해 8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됩니다. 아직 이집트는 안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난적 가나 원정 경기가 남아있고 더 놓쳐서는 안되는 우간다 원정 경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 2경기가 이집트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또 모릅니다. 엉뚱하게 남은 홈 경기에서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있을 지도요.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7회 우승, 준우승 1회, 4강 6회의 기록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의 강호 이집트.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파라오 군단'이라 부르는 이들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월드컵 예선만 되면 고양이가 되어버리는 그들의 모습은 무언가 강팀이라 부르기에는 2% 부족한듯 합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이집트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뚜껑은 열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