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친구의 모습을 보기위해 지역 리그의 경기장을 찾아왔다. ⓒ 남윤성 기자

[스포츠니어스 | 남윤성 기자] 파란색을 뜻하는 ‘뢰블레’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애칭이다. 뢰블레 군단은 1998 프랑스월드컵과 유로2000을 연달아 제패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중원의 사령관’ 지네딘 지단과 ‘킹’ 티에리 앙리를 내세운 프랑스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축구를 선보이며 우리나라 축구팬들 사이에서 ‘아트사커’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단의 은퇴 이후 세대교체에 실패한 프랑스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에 이어 FIFA랭킹에서도 27위로 추락하면서 그 위용을 점차 잃어갔다.

그러던 프랑스가 지난해 유로2016에서 준우승을 달성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세계 최고 이적료 폴 포그바를 비롯해 앙투앙 그리즈만과 은골로 캉테 등 재능있는 선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하고 있는 프랑스 축구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본지 기자는 지난해 프랑스에 머물며 축구가 펼쳐지는 곳이라면 시간과 거리를 마다하고 경기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프랑스가 축구를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발견했다.

축구인구 100만시대

프랑스는 최상위리그인 리그앙을 시작으로 17부까지 전 리그에 걸쳐 승강제를 실시하고 있다. 프로페셔널 지위가 부여되는 리그앙과 리그두는 프로축구연맹(LFP)에서 주관하며 3부이하 모든 리그는 프랑스축구협회(FFF)가 주관한다. 전국단위 리그는 5부리그 까지며 6~10부는 지역, 11~17부는 행정구역 단위로 리그가 진행된다.

피라미드 형태의 프랑스리그는 유럽에서도 가장 체계적인 시스템을 자랑한다. ⓒ남윤성 기자

전국리그에는 리그앙과 리그두 각각 20팀, 나시오날 18팀, CFA 64팀, CFA2 112팀 총 234개의 팀이 속해있다. 전국의 다음 레벨인 지역은 총 22개로 나뉘며 모든 지역은 각각 6~10부리그를 운영한다. 하나의 리그는 다시 그룹A,B로 나뉘고 각 그룹에 12~14팀이 참가한다. 즉, 한 지역당 최소 120개의 클럽이 속해있으며 그러한 지역이 22개가 있으니 6~10부에 속한 클럽 수는 최소 2640팀에 이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행정구역 단위의 11~17부가 남았다. 복잡한 설명대신 통계자료로 이야기하겠다.

대한축구협회가 16년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 연령 축구선수의 수는 총 29,510명에 이르렀다. 프랑스축구협회는 올 1월 등록된 축구선수의 수를 총 247,500명이라 밝혔다. 이는 ‘성인리그’에서만 활약하는 선수들의 합계로 우리나라에 등록된 유소년 선수가 성인의 5배에 이르는 비례식을 적용하면 프랑스는 최소 100만 이상의 인구가 선수로 등록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스토리

K리그에 1부에서 6부리그에 이르는 성인 디비전시스템이 완전히 정착한 2025년. 사내동호회로 시작한 스포츠니어스FC(단장 김현회)는 4부리그 승격을 이뤄냈다. 승격에 일조한 에이스 남윤성은 이듬해 K리그 클래식의 전북현대로 이적한다. 그리고 전북에서 활약한 두 시즌 동안 잠재성을 드러내며 프리미어리그의 레스터 시티로 이적한다. 레스터에서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한 남윤성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팀에 데뷔한다. 그리고 2030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프리미어리그 명문 첼시에 입성한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모두가 비웃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축구판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은골로 캉테다. 캉테는 프랑스 오드센 주의 도시 쉬렌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9부리그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한 캉테는 2010년 US볼로뉴와 아마추어 계약을 체결했다. CFA2의 볼로뉴 2군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잠재성을 드러낸 캉테는 2013년 리그두의 SM캉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캉에서 첫 시즌 만에 리그 베스트11과 팀의 리그앙 승격을 일궈내며 2015년 프리미어리그 레스터시티에 합류했다. 레스터에서 또다시 첫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이루며 대표팀에 합류한 캉테는 프랑스의 유로2016 준우승을 이끌었고 대회가 끝난 뒤 이적료 450억원에 첼시에 입성했다.

피라미드 형태의 프랑스리그는 유럽에서도 가장 체계적인 시스템을 자랑한다. ⓒ남윤성 기자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레스터의 리야드 마레즈, 파리생제르망 미드필더 아드리앙 라비오 모두 캉테와 비슷한 사례다. 아마추어 리그를 거쳐 성장했고 1군에서 잠재력을 터뜨려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4부와 5부리그는 비록 아마추어라 할지라도 수준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선수의 상위리그 이동이 활발하며 2군선수의 1군 콜업도 비일비재하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은 소속된 리그일 뿐 실력의 격차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프랑스 리그는 유망주들에겐 자신들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프랑스의 축구선수

프랑스는 3부리그부터 구단과 선수의 지위가 세미프로로 상승한다. 2부로 승격 시엔 프로페셔널 지위를 획득한다. 하지만 프로구단으로 등록되기 위해선 협회가 지정한 자격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때문에 구단은 3부리그에 진입하는 시점부터 경기장의 증축, 주차장과 편의시설의 확충, 2군과 연령별 유소년 팀 운영 등의 노력을 실시한다. 선수들의 경우 하루 두 차례, 주 5회 훈련 등 기존 아마추어 시절과는 다른 전문적이고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보수 또한 충분한 수준으로 늘어나며 전보다 나아진 시설과 환경 속에서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다.

피라미드 형태의 프랑스리그는 유럽에서도 가장 체계적인 시스템을 자랑한다. ⓒ남윤성 기자

반면 4부이하 팀들은 대부분 주3~4회 정해진 시간에만 훈련을 실시한다. 선수들의 월평균 수입은 1,500유로(약 190만 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베테랑 선수들은 두 가지 이상의 직업, 이른바 ‘투잡’ 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다른 직업과 함께 선수생활을 병행하기 때문에 운동과 생계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유소년 선수들은 낮에는 수업을 듣다가 저녁이 되면 소속팀에 합류해 훈련을 받는다. 이들 중 특출한 재능을 지닌 선수는 코치나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상위구단으로 이적해 전업선수의 삶을 시작하며 학업에 뜻이 있는 선수는 대학에 진학해 자신의 미래를 대비한다.

승리를 향한 열망과 패배의 슬픔은 우리나라 선수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들에겐 축구 말고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선수들은 미래의 걱정을 줄이고 즐기면서 축구하는 방법을 습득한다. 이처럼 체계화된 리그는 유입되는 선수의 질적인 차이를 낳고 결국 최상위 단계에서의 수준 차이를 만들어낸다.

지역과 밀접한 프랑스 구단

프랑스 리그의 또 다른 특징은 대부분의 구단들이 축구 외에도 다른 종목을 운영하는 하나의 거대한 스포츠 커뮤니티라는 것이다. 그 예로 4부리그의 오베르빌리에 FCM은 육상, 농구, 테니스 클럽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6부리그의 RACING 92는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럭비팀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처럼 여러 종목을 운영함으로써 구단은 재정난에서 자유로우며 안정적으로 자생력을 키워나가게 된다. 선수들은 훈련이 없는 날에는 교육 캠페인에 참가해 지역주민들과 소통했다. 이러한 구단과 선수들의 활동은 기존의 선수와 관중 관계를 친구, 이웃의 관계로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지역주민들은 팀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커지며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기꺼이 경기장을 찾아오고 있었다.

너와 나, 우리의 K리그

1932년 설립된 프랑스 리그는 8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체계와 완성도를 자랑하는 프랑스 리그는 오랜 기간에 걸친 준비 끝에 현재의 디비전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전 국민을 아우르는 리그의 운영은 축구에 대한 팬들의 성숙한 의식을 이끌어냈다.

피라미드 형태의 프랑스리그는 유럽에서도 가장 체계적인 시스템을 자랑한다. ⓒ남윤성 기자

지난 2013년 대한축구협회는 창립 80주년을 맞아 ‘비전해트트릭 2033’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는 1부에서 6부리그에 이르는 성인 디비전시스템의 완성이다. 이 과정에서 오래된 역사를 지닌 외국 리그를 모방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프랑스처럼, 독일처럼' 하면서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패는 완성되는 디비전시스템에 얼마나 우리만의 색깔을 입히느냐에 달렸다. 아직 숱한 과제들이 남았지만 걱정보단 기대가 크다. 탑골공원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면서 노년을 보내기보단 손자의 손을 잡고 집 앞 경기장에서 축구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skadbstjdsla@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