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판 바스턴 FIFA 기술개발위원장은 최근 오프사이드 폐지에 대해 주장했다. ⓒ FIFA TV 캡쳐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국제축구연맹(FIFA)이 파격적인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오프사이드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마르코 판 바스턴 FIFA 기술개발위원장은 18일(현지시간) 독일 언론 ‘빌트’와 인터뷰에서 오프사이드 폐지 아이디어를 공개했다. 판 바스턴 위원장은 “오프사이드 폐지가 축구를 더 다이나믹하게 만들 것”이라라고 주장했다. 핸드볼과 같이 골키퍼 포함 9명이 페널티 에어리어에 수비벽을 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오프사이드 폐지에 대해 찬반양론이 나오고 있는데 나는 절대적으로 이 안에 대해 반대한다. 지금부터 오프사이드가 사라지면 벌어지게 될 일들을 상상해 보자. 물론 약간의 과장이 있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1. 심판의 할 일이 없어진다

아마도 심판들은 오프사이드 폐지에 찬성할지도 모른다. 축구는 규칙이 다른 종목에 비해 단순한 편이다. 큰 골대에 누가 더 많은 골을 넣는지가 승패를 가르는데 두 팀 선수들이 충돌할 때 반칙을 부는 일을 빼면 심판이 별로 할 게 없다. 물론 심판이 가장 어려워하고 예민한 부분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오프사이드 판정이다. 순간적으로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리는 건 대단히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고 판정 결과에 따라 승패가 뒤집힐 수도 있다. 이 판정 하나에 양 팀 벤치에서 격렬한 항의를 하기도 한다. 오프사이드는 골과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반칙이고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반칙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심판들은 아마도 오프사이드가 폐지되면 할 일이 확 줄어든다. 축구에서 오프사이드가 사라지면 부심이 수비 라인을 따라 열심히 뛰어다닐 필요도 없다.

K리그에서도 중요한 경기 때면 양쪽 골대 뒤에 심판을 더 배치하는 ‘6심제’를 시행하는데 이 골대 뒤 심판은 할 일이 별로 없다. 중요한 경기이니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파울이나 공이 골 라인을 통과하는지만 면밀히 살피는 게 전부다. 그런데 이런 경기 때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골대 뒤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태평해 보이기도 한다. 만약 오프사이드가 폐지된다면 주심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많이 뛰지도 않으면서 신체적인 접촉에 의한 반칙만 잘 잡아내면 좋은 심판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가 사라지면 오심이 현저히 줄겠지만 이걸 과연 심판들의 능력이 좋아진 결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괜히 오프사이드 폐지로 이런 오심의 여지를 줄이려는 게 아닐까.

2. 장신 공격수들의 등장

축구의 매력은 장신은 장신대로, 단신은 단신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농구나 배구처럼 큰 선수가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지 않다. 나보다도 작은 리오넬 메시가 세계를 호령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같은 ‘루저’들은 오늘도 작은 희망을 품는다. 작은 선수가 스피드와 드리블로 거구의 수비수를 뚫는 모습도 매력적이고 장신 선수가 제공권 경쟁에서 이기는 모습도 그 자체로 멋지다. 하지만 축구에 오프사이드가 없어진다면 축구는 아마도 장신 선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경기가 될 것이다. 작지만 빠르고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별로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축구가 농구와 배구 못지 않은 피지컬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오프사이드가 사라지면 각 팀들은 수비 라인보다 더 깊숙한 곳에 공격수를 박아둘 수 있다. 절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는 선수는 쓸모가 없으니 당연히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롱 패스를 받아줄 장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긴 패스를 최전방에서 머리로 연결해 슈팅까지 날리는 단순한 공격 패턴이 주를 이룰 것이고 그러려면 얀 콜러나 피터 크라우치가 리오넬 메시보다는 훨씬 더 유용한 자원이 될 것이다. 마루앙 펠라이니가 발롱도르를 수상하고 최고 이적료를 자랑할지도 모른다. 최홍만이 레알마드리드에 입단하고 야오밍이 바르셀로나의 러브콜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나 경기 막판이 되면 롱볼 축구가 더 의도적이 될 테니 ‘추가시간용’ 선수로 최홍만이나 야오밍이 필요할 것이다. 축구가 이렇게 큰 선수들만의 경기가 되는 건 원치 않는다.

오프사이드 없는 축구에서 이보다 더 좋은 원톱 자원이 또 있을까. ⓒ로드FC

3. 수비수 능력은 킥력으로 판단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최전방에 장신 선수들을 박아두는 형태가 된다면 나머지 선수들은 킥 능력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오프사이드 라인이 무용지물이 되면 패스의 타이밍과 정교함보다는 힘 좋은 선수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전방으로 차주는 게 훨씬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원에서의 아기자기한 패스가 무슨 소용인가. 후방에서 공을 끊었으면 상대팀 골키퍼 앞에 서 있는 우리 편에게 한 번에 찔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일 텐데 말이다. 중원 플레이는 실종될 것이고 킥 좋은 수비수로 수비진을 탄탄히 구성해야 한다. 오프사이드는 개나 줘버린 군대 축구에서는 최후방에서 뻥뻥 때려주는 힘 좋은 수비수 한 명만 있어도 그 팀의 수준이 달라진다. 지금 FIFA에서는 이런 방식의 축구를 원하는 것 같다.

1994년 무렵 미국 축구 대표팀 골키퍼 토니 메올라는 이색적인 계약을 맺었다. 리그 경기가 없는 날이면 미식축구 팀에서 뛰기로 한 것이다. 킥력이 좋았던 메올라는 정교한 플레이스 킥을 위해 미식축구팀 뉴욕제츠로 영입됐고 미식축구 경기에서 다른 플레이는 하지 않고 전문 키커로만 활약했다. 오프사이드가 없는 축구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편 골대에서 상대 편 골대까지 한 번에 긴 패스를 날릴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이 능력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수비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수비 라인을 컨트롤하는 능력 같은 건 필요없다. 오프사이드 없는 축구 경기가 열리고 내가 이 팀의 감독이라면 150kg의 거구이면서 킥력 하나만 좋은 선수를 한 명 정도는 투입할 것이다. 이게 과연 축구인가. 스트롱맨 선발 대회지.

4. 경기장 크기가 작아질 것이다

축구장은 길이가 최소 100m에서 최대 110m, 너비는 최소 64m에서 최대 75m다. 그런데 만약 오프사이드가 사라진 축구 경기가 계속된다면 경기장 면적이 이보다도 훨씬 더 작아질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롱패스와 장신 공격수들의 경쟁이 심화되고 중원 싸움이 사라지면 지금처럼 이렇게 큰 규격의 경기장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땅값도 비싼데 의미 없는 중원 공간을 계속 유지할 이유는 없다. 강남에 가보면 채 몇 평 되지도 않는 땅에다가 주차장을 만들어 놓고 엄청난 주차비를 받는데 나 같아도 쓸 데 없이 큰 축구장 대신 한 평이라도 더 줄여서 이 공간에 주차장을 만들 것이다. 오프사이드가 폐지되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큰 축구장 규격에 반발하는 팀들이 생겨나고 FIFA에서도 축구장 규격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농구를 살펴보자. 아마도 농구가 더 많은 인원이, 오프사이드라는 룰이 있는 상태에서 펼쳐지는 스포츠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코트에서 경기를 펼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프사이드 규정이 없고 공수 전환이 빠르게 이어지는 농구는 큰 규모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쳐야 할 이유가 없다. 아니, 그러면 더 재미가 없다. 축구에서 오프사이드가 사라지고 골대 앞에서 죽치고 있는 공격수와 그를 겨냥하는 롱패스의 향연이 펼쳐진다면 축구장의 큰 규모는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된다. 아기자기하게 공격과 수비를 반복되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경기장 규격도 아담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축구와 풋살이 다를 게 없어진다. 그래도 꼭 축구에서 오프사이드를 없애야 하나. 나는 지금의 축구장 규격이 딱 좋다.

5. 더 수비적이 된다

판 바스턴 위원장은 오프사이드를 없애려는 이유로 극단적인 수비 축구를 꼽았다. 핸드볼처럼 많은 수비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에 수비벽을 세우는 걸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오프사이드 폐지는 이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단순히 생각해 보자. 오프사이드가 없으면 공격수가 수비수 뒤로 미리 가 있으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문제가 있다. 자신들보다 미리 뒤에 가 있는 공격수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비수들은 어떻게 할까. 그 공격수보다 더 뒤로 가면 된다. 꽁트에나 나올 법한 이 바보 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공격수가 뒤로 가면 수비수는 더 뒤로 가고 이 무한 반복을 90분 경기 동안 보고 싶지는 않다. 이러다 보면 아마도 골라인 바로 앞에서 수비하는 수비수들과 공격하려는 공격수들의 모습을 봐야하지 않을까.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라인 브레이커’ 김승대는 판 바스턴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듣고 한숨부터 쉬지 않을까.

오프사이드가 폐지되면 전술 수준이 급격히 퇴보할 것이다. 지금껏 100년 넘게 고민하면서 발전했던 포백과 스리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새로 정립되어야 한다. 오프사이드 트랩 전술로 수비수가 공격수를 농락하던 모습도 사라지게 되면 지역 방어는 종적을 감출 수밖에 없다. 지역을 방어하는 게 아니라 선수를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지역 방어 개념이 사라지고 일대일 마크만이 판을 친다면 영리한 전술 싸움보다는 개개인의 능력에 의해 승패가 갈릴 수밖에 없다. 오프사이드 폐지가 공격적인 축구를 이끌 수 있다는 판 바스턴 위원장의 말은 틀렸다. 수준 차이가 나는 팀간의 경기에서는 수비축구가 더 극심해질 것이다. 한국하고 동티모르가 축구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동티모르 골문 앞에서 90분 동안 18~19명의 선수가 우르르 몰려다니며 막장 경기를 펼칠 것이다. 이 모습을 초등학교가 아니라 A매치에서 보는 건 고역이다.

오프사이드 없는 축구에서 이보다 더 좋은 원톱 자원이 또 있을까. ⓒ로드FC

6. 어이없는 골들이 터진다

그나마 오프사이드 규정이 있을 때는 주워 먹는 골도 “탁월한 위치선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지만 오프사이드도 없는 축구에서 골대 앞에 있다가 발만 갖다 대는 골들이 터진다면 이건 그 어떤 말로도 포장이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골대 뒤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그라운드에 들어와 골을 넣는 공격수도 등장한다. 규정상 의도적으로 경기장 밖을 벗어나는 건 반칙 행위지만 애매하게 경기장에 걸쳐 있는 등 편법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대편 골키퍼와 나란히 서 “아이는 잘 커?”라며 공이 올 때까지 만담을 하는 ‘병장형 스트라이커’를 군대스리가가 아닌 분데스리가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7. 여자들한테 잘난 척을 할 수가 없어진다

그나마 여성들에게 4년에 한 번씩 잘난 척을 할 때가 바로 월드컵이었다. “오빠가 설명해줄게. 오프사이드라는 건…”이라면서 ‘전문가 포스’를 내뿜어야 그녀들이 ‘이 오빠는 참 아는 것도 많아’라는 눈빛을 보내줬다. 그런데 이제 오프사이드가 없어진다면 가뜩이나 무시 받는 내가 이렇게 잘난 척할 일도 없어진다. 또한 오프사이드가 폐지되면 축구는 축구가 아닌 전혀 다른 스포츠가 된다. 지금의 매력적인 축구가 완성된 건 오프사이드 규정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오프사이드 규정은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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