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삼성 염기훈은 지난 시즌 K리그 클래식 도움왕에 올랐지만 패스 성공률 상위 10명 안에 들지도 못했다. ⓒ수원삼성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과거 칼럼을 통해 축구 경기의 평점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설명한 적이 있다. A4용지 10장으로도 부족한 한 선수의 90분에 대한 평가를 단순히 6점이나 7점 등 점수로 매기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90분 동안 한 선수만 쳐다보고 있어도 이걸 어떻게 A4용지 석 장 분량의 칼럼으로 정리할지 막막한데 짧은 평가와 평점으로 한 선수의 활약을 평가하는 건 평론가로서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평점 소식을 전할 때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맨체스터 이브닝뉴스>와 <스카이스포츠>는 기자 한 명이 한 경기 평점을 모두 매긴다.

평점놀이와 패스 성공률 타령이 불편하다

백 번 양보해 재미삼아 평점이 존재해야 한다고 치자. 단순히 정말 ‘재미삼아’다. 그러면 그걸로 끝내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유럽 언론이 매기는 평점이 무슨 진리인 것처럼 믿고 있다. 학창시절 시험이 끝나면 ‘수우미양가’로 매기는 성적표가 축구에도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재미삼아 경기가 끝나고 이를 복기할 때 평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5%나 되면 많이 쳐주는 것이지만 우리는 경기를 리뷰하는데 평점이 80%는 차지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축구를 보는 시선과 평가는 다른 법인데 평점 하나로 선수의 활약을 객관화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경기 내내 공 한 번 제대로 못 잡아보더라도 결정적인 태클 하나를 멋지게 했다면 그건 평점 이상의 가치가 있는 플레이다. 반대로 득점을 기록했어도 그보다 더 실망스러운 플레이가 많았다면 평점을 많이 줬다고 해 그걸 받아들일 수도 없다. 나는 선수의 활약을 평가하는데 있어 일부 해외 언론의 평점을 믿지도 않고 그걸 그대로 받아오는 국내 언론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트렌드가 조금 변한 모양이다. 이제 평점의 시대가 가고 패스 성공률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의 패스 성공률을 앞세워 이 선수의 활약을 객관화하려고 한다. “누구의 패스 성공률이 95%를 기록했다”면서 이게 마치 선수 활약의 척도처럼 전한다. 하지만 나는 평점놀이 만큼이나 패스 성공률 놀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그냥 경기를 보고 복기하는데 하나의 재미 정도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패스 성공률이 무슨 의미가 있나

데이터 중심의 야구야 1사 만루에서의 타율을 따지는 게 그나마 관람에 도움이 되지 축구에서 한 선수가 한 경기를 통해 얼마나 많은 패스를 성공하는지는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농구에서의 자유투 성공률이야 참고할 수 있지만 축구에서 패스 성공률이 뭐 얼마나 객관적인 수치라고 그러나. 아마 서장훈이 축구선수 출신이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 패스 성공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나는 패스 성공률로 그 선수의 한 경기 평가를 대신 하는 게 참 불편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딱 한 경기, 그것도 5분을 뛴 게 전부인 K3리그에서 패스 성공률 0%의 경이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 고양시민구단 소속으로 서울유나이티드와의 K3리그 경기에 나선 나는 K리그 신인왕 출신인 서울유나이티드 신진원의 공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로챘다. 제발 내 발 앞으로 떨어지지 않길 바랐지만 신진원이 패스한 공이 바로 내 앞으로 왔고 당황한 나는 그대로 공을 앞으로 내지르며 주저 앉았다.

지금도 두고 두고 후회가 되는 대목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공격적인 의지가 없이 공을 뒤로 돌렸더라면 나는 K3리그에서 패스 성공률 100%의 기록을 보유한 전설적인 선수로 지금도 기록에 남아 있고 고양시민구단의 영구결번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되도 안한 실력으로 공격적인 패스를 했던 나의 잘못이었다. 그날 내가 공을 뒤로 돌려 패스에 성공했더라면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나오지 않았을까. <데뷔전 김현회, 패스 성공률 100% 맹활약> 그때 나는 공을 뒤로 돌렸어야 했다.

알레시스 산체스는 패스도 잘 못하는(?) 선수다. ⓒ아스널 공식 페이스북

전진 패스와 백패스가 동급인가

패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확률이 부정확하지만 성공할 경우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전진패스도 있고 틈새를 노리기 위해 방향을 전환하는 횡패스도 있다. 물론 무의미한 백패스도 있다. 하지만 이걸 다 묶어 패스 성공률로 통계를 낸다고 해서 그 선수의 활약 전부를 담아낼 수 없다. 축구라는 건 한 경기에서 두세 골이 터지기도 쉽지 않은 불가능의 연속인 경기다. 90분 동안 공격적인 패스나 슈팅에서 성공보다는 실패가 당연히 더 많다.

패스라는 건 당연히 실패보다는 성공이 많아야 확률적으로 이길 가능성이 높지만 패스에서 중요한 건 전진 패스를 얼마나 더 성공적으로 연결하느냐의 문제다. 수비수가 뒤에서 의미 없이 10번 공을 동료에게 넘겨 이 10번이 다 성공한다고 해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지금도 내 친구 중 한 명은 23년 전 대천해수욕장에서 그다지 경쟁률이 높지 않았던 헌팅에 세 번 도전해 다 성공한 뒤 헌팅 성공률 100%를 기록 중이라며 대단히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과거 조재진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프사이드가 두려워 미드필드에서 공격적인 패스를 하지 못하는 동료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10번 중에 한 번만 성공하면 골로 연결할 수 있으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시도해 달라’고 했다. 패스라는 게 그런 거다. 10번 실패하고 한 번만 성공해도 충분할 때가 있다.” 패스 성공률 관리를 위해 안정적인 패스만 하는 선수는 없을 테지만 패스 성공률이 좋은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척도를 가리는 수치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산체스와 레스터, 그들을 주목하자

또한 상대 수비 밀집 지역에서 패스를 자주해야 하는 선수는 당연히 여유 있는 지역에서 패스를 주로 하는 선수에 비해 패스 성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많은 패스 미스를 범한 선수는 아스널의 알레시스 산체스였다. 산체스의 패스 성공률은 74%에 불과하다. 패스 성공률만 본다면 그는 형편없는 수준일 수 있지만 산체스의 기량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최정상급 아닌가. 누군가 산체스 앞에 가 “당신은 패스 성공률이 형편없으니 불필요한 선수다”라고 외쳐 보시라.

더 믿을 수 없는 자료도 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신화를 쓴 레스터시티의 패스 성공률은 리그 20개 팀 중 19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스터시티는 강렬한 역습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까지 패스 성공률에 집착할 텐가. 언론에서는 선수의 활약을 강렬하게 객관화 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평점도 끌고 와 보고 패스 성공률도 끌고 오는 것 같다. 한국 선수들의 패스 성공률이 높으면 이 수치를 들고 와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친 것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이런 패스 성공률은 선수의 한 경기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수백 가지의 요소 중 단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의미 없는 기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 K리그에서 패스 성공률 1위는 누구였을까. 바로 FC서울 김남춘이었다. 그는 무려 89.9%의 패스 성공률로 K리그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김남춘을 ‘패스의 달인’으로 기억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김남춘이 보여준 안정적인 수비력은 대단히 높게 평가하지만 패스 성공률로 그의 활약을 단정 지을 순 없다. 오해 마시라. 나는 물론 김남춘이 훌륭한 수비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참고할 점은 패스 성공률 2위가 상주상무의 이경렬이었는데 김남춘과의 성공률 차이는 0.2%에 불과했다. 이경렬이 백패스를 4~5번만 더 주고 받았더라면 이 순위는 뒤집힐 수 있었다.

알레시스 산체스는 패스도 잘 못하는(?) 선수다. ⓒ아스널 공식 페이스북

패스 성공률, 숫자 놀음일 뿐이다

패스가 실수 없이 착착 진행되는 플레이는 팬으로서 보기 좋다. 하지만 이렇게 안정적인 패스만으로는 골을 넣을 수가 없다. 때론 절반도 안 되는 확률이 뻔할 때도 그 위험을 감수하고 패스가 이뤄져야 하고 그러다가 끊기더라도 이런 시도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상대를 허물 수 있고 골을 넣고 이길 수 있다. 후방에서 무의미하게 돌리는 패스와 전방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 내는 패스가 동등한 확률로 평가 받는 걸 과연 타당한 통계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패스 성공률이 100%여도 영양가 없는 경기를 펼친 선수가 있을 수도 있고 절반의 패스 성공률만으로도 결정적인 활약을 한 선수가 있을 수도 있다.

결정적인 패스로 골을 돕는 건 밥상을 차린 뒤 숟가락에 밥을 퍼 누군가의 입에 넣어주는 일과 같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있는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자기가 턱받이를 하고 밥을 퍼 먹여 주는 것과 정말 배가 고픈 이를 앉혀 놓고 밥을 먹여 주는 걸 똑같은 가치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밥을 떠먹여 줄 때도 상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패스 역시 마찬가지다. 패스라고 다 똑같은 패스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입을 벌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히 입 안으로 골인시킬 수 있는 숟가락의 움직임과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대충 입 안으로 밀어 넣는 숟가락의 움직임이 다른 것처럼 패스에도 질의 차이가 있다. 이 질을 무시하고 백패스건 결정적인 전진 패스건 성공률이 동등한 확률로 매겨지는 건 기록 집계의 오류다.

패스 성공률이 높은 선수를 평가절하하는 게 아니라 이 패스 성공률이 마치 선수를 평가하는 척도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이들의 의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평점놀이와 패스 성공률 타령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축구를 눈으로 받아들이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될 뿐 남이 내려 놓은 평점을 신경 쓸 이유도, 무의미한 숫자 놀음을 신경 쓸 이유도 없다. 특히나 패스 성공률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내 친구가 대천해수욕장에서 헌팅 성공률 100%를 기록했다고 해서 아무도 그걸 인정해 주는 이는 없지 않은가. 누구를 상대로 헌팅을 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패스를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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