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디는 잠시 K리거가 아닌 아프리카 대표선수로 뛰고 있다 ⓒ 울산 현대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지금 아프리카는 축구로 뜨겁습니다. 1월 15일(한국시간)부터 아프리카 가봉에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열리기 때문이죠. 치열한 예선을 거쳐 올라온 16개 팀이 아프리카 최고의 자리를 놓고 맞붙게 됩니다. 사디오 마네(리버풀), 피에르 오바메양(도르트문트), 에릭 바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아프리카 출신의 스타 선수를 보는 재미는 덤입니다.

하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이런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론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등 축구 강호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사실 이번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는 우리가 굉장히 흥미를 가질 만한 팀과 선수가 출전합니다. 바로 역사상 처음으로 이 대회 본선에 진출한 기니비사우와 대표팀 신인 공격수, 프레드리코 멘디(28·제주 유나이티드)입니다.

'첫 본선 진출' 기니비사우, 두 명의 신인이 만들어낸 기적

기니비사우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에서 콩고, 잠비아, 케냐와 함께 E조에 편성됐습니다. 네 팀 간에는 큰 실력차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조'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예선을 통과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니비사우는 단 한 번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던 팀입니다. 사실 이 대회는 본선 진출이 쉽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모든 팀이 13개 조로 나뉘어 각 조의 1위 13개 팀, 그리고 2위 중 와일드카드 2팀이 본선에 진출합니다. 와일드카드 경쟁마저 굉장히 치열하기 때문에 본선에 진출하려면 조 1위를 차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초반 전개는 기니비사우에 굉장히 어둡게 흘러갔습니다. 첫 경기인 잠비아 원정을 0-0으로 비기고 콩고 공화국에 2-4로 패해 1무 1패를 기록했습니다. 조 1위를 놓고 겨루는 살얼음판 싸움에서 초반 2경기 기니비사우의 성적은 최하위였습니다. 남은 4경기에서 반전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기니비사우는 케냐와의 2연전에서 순위를 확 끌어올립니다. 2경기 모두 1-0으로 꺾고 순식간에 승점 6점을 획득했습니다. 다른 팀들의 경기 결과도 기니비사우를 도왔습니다. 앞선 두 경기에서 각각 1승 1무 씩을 거둔 잠비아와 콩고 공화국이 맞대결 2연전을 모두 1-1로 마쳤기 때문이죠. 상위권 두 팀이 2무를 거두는 동안 기니비사우는 2연승으로 조 선두 등극에 성공합니다.

4차전이 종료되고 1위에 오른 기니비사우지만 남은 2경기는 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잠비아와 콩고 공화국이었습니다. 기니비사우는 2승 1무 1패(승점 7)를 기록, 나란히 1승 3무(승점 6)를 기록한 콩고 공화국과 잠비아에 바짝 쫓기는 처지였습니다.

운명의 5차전, 상대는 잠비아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기니비사우 감독은 파격적인 선수 기용을 선보입니다. 두 명의 선수에게 국가대표 데뷔전의 기회를 준 것입니다. 아마 감독 역시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몰랐을 겁니다. 두 선수는 데뷔 경기인 잠비아전에서 나란히 골을 기록하며 3-2 짜릿한 역전승과 함께 첫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 티켓을 조국에 선물합니다. 그들은 바로 토니 실바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울산 현대, 아니 제주 유나이티드의 멘디입니다.

대륙을 넘나드는 멘디의 축구 인생

멘디의 축구 인생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기니비사우 혈통을 이어받은 프랑스 출신 선수인 그는 싱가포르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3시즌 동안 98경기 68골을 기록하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낸 멘디는 포르투갈로 무대를 옮겨 이번에는 '승격 전도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2시즌 동안 각기 다른 2부리그 팀을 모두 승격시킨 것이죠.

2015-16 시즌에는 다리 부상으로 인해 전반기를 재활로 보냈지만 후반기 들어 15경기 3골 3도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활약을 바탕으로 기니비사우 대표팀에 호출됐습니다. 사실 그는 기니비사우와 큰 인연이 없습니다. 단지 아버지가 기니비사우 사람일 뿐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프랑스인이었습니다.

심지어 그가 기니비사우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06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국가이지만 그는 철저히 이방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언어부터 달랐습니다. 기니비사우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포르투갈어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해도 모국어와는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 나라'의 부름을 멘디는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활약에 따라 프랑스 대표팀에서의 호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 진출을 눈 앞에 둔 기니비사우를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니비사우의 홈 관중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습니다.

기니비사우의 첫 본선 진출을 이끌었으니 멘디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것입니다. 원소속팀이 있는 포르투갈 리그는 물론 아프리카 선수들이 주로 활동하는 프랑스의 구단들 역시 멘디를 주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다음 선택은 의외였습니다. 다름아닌 K리그 클래식의 울산이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잘 뛰던 멘디는 대표팀 승선 이후 K리그를 선택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 울산 현대 제공

2016 시즌 울산에 합류한 멘디는 18경기 6골 1도움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K리그에 무난히 적응했습니다. 194cm의 큰 키와 아프리카 특유의 유연함, 그리고 유럽 무대의 경험을 K리그에서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김신욱을 전북 현대로 떠나보내며 속앓이를 했던 울산의 팬들은 '흑신욱'의 등장에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뒤로하고 올 시즌 멘디는 또다시 둥지를 새롭게 옮겼습니다. 바로 제주입니다. 제주는 AFC 챔피언스리그를 대비해 멘디를 영입, 공격 옵션 다양화를 갖추겠다고 밝혔습니다. 울산에서 약 반 년 밖에 뛰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지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유일한 K리거' 멘디는 기니비사우의 영웅이 될 수 있을까?

한창 새로운 팀에서 발을 맞춰야 할 시기인 지금, 멘디는 제주에 없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지난 날의 영광을 떠올리며 아프리카 가봉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이 열리기 때문이죠. 멘디는 데뷔전의 활약을 바탕으로 기니비사우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합류했습니다.

이번 기니비사우 대표팀은 유럽파를 중심으로 꾸려졌습니다. 주로 포르투갈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엔트리에 합류했습니다. 23명의 선수 중 22명이 유럽에서 뛰고 있습니다. 비유럽파는 딱 한 명에 불과합니다. 그가 멘디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 참가 선수를 통틀어 유일한 K리거이기도 합니다.

본선 조별예선에서 멘디의 기니비사우는 카메룬, 가봉, 부르키나파소와 한 조에 속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기니비사우의 첫 경기는 개최국 가봉과의 대회 개막전입니다. 처녀 출전인 기니비사우와 이제 갓 대표팀에 데뷔한 멘디의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잘 뛰던 멘디는 대표팀 승선 이후 K리그를 선택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 울산 현대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막연히 기니비사우의 선전이 기대됩니다. 딱히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첫 출전의 기니비사우가 이번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켰으면 하는, 이른바 '언더독'을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멘디의 활약을 보고싶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선수들의 이름도 잘 모르지만 멘디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심이 갑니다.

마치 우리나라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 가졌던 관심과 기대감이 멘디에게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의 '국뽕'일 수 있겠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라는 큰 대회에 K리거가 활약한다는 사실은 흥미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대회에서 K리그 선수가 뛰는 모습은 상당히 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아직 대표팀에서 신인이기 때문에 멘디의 활약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 데뷔전에서도 그랬듯이 유럽파로 가득한 기니비사우 대표팀 속에서 K리거 멘디가 좋은 모습으로 다시 한 번 영웅이 되는 장면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기니비사우 대표팀 경기 일정(이하 한국시간)

1월 15일 오전 1시 : vs 가봉 (대회 개막전)

1월 19일 오전 4시 : vs 카메룬

1월 23일 오전 1시 : vs 부르키나파소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