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옷피셜’ 디자이너 “선수 이적? 발표 하루 전에 안다”

울산 김창수
이로운 씨가 직접 디자인한 울산 김창수의 합성 사진. ⓒ울산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어제(11일) 칼럼을 통해 K리그에서 선수 영입을 알리는 사진 합성 실력 순위를 내 멋대로 선정해 봤다. 그리고 오늘은 그 후속작으로 이 일을 담당하는 K리그 그래픽 디자이너에 대한 인터뷰를 준비했다. 우리에게 ‘옷피셜’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우리를 흥분시키는 경기 홍보 포스터를 선사해주는 그 분이다. 지금껏 늘 선수와 경기를 위해 조연 역할을 해오던 그가 오늘은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울산현대와 전북현대 등 여러 구단에서 프리랜서로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있는 이로운(25세) 씨와 직접 대화를 나눠봤다.

반갑다. 자기 소개를 해달라.
전북현대와 울산현대의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있는 이로운이라고 한다. 원래는 성남FC 그래픽 디자인도 맡고 있었는데 2016년 시즌을 앞두고부터는 전북과 울산 일만 하고 있다. 프리랜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
일단 선수가 이적하면 그래픽을 합성해 흔히 말하는 ‘옷피셜’을 낸다. 그리고 시즌 중에는 경기 홍보 포스터나 구단 지역 행사, 구단 이벤트 홍보 포스터 등의 이미지들도 다 만든다. 전북과 울산의 ‘옷피셜’과 경기 홍보 포스터, SNS를 통해 공개되는 경기 결과 그래픽 등이 나의 작품이다.

지금도 ‘발합성’을 하면서 구단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길 꿈꾸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가.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당신의 대학교 후배다. 사실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성남에 살면서 성남일화의 열혈 팬이었다. 알다시피 일화 시절 디자인은 정말 ‘헬’이지 않았나. 그래서 학교 과제를 할 때면 축구와 관련한 과제를 많이 냈다. 성남의 시즌 경기 일정 같은 걸 디자인 과제로 제출하고 그걸 인터넷에 올려서 팬들로부터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5년 성남FC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같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 전까지는 축구 쪽에서 일을 할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는데 이런 우연한 기회에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서 팬들도 한 명 두 명씩 좋아해 주시다보니 다른 구단의 의뢰도 받아 다양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성남FC 일은 하지 않나. 부자 구단으로의 ‘팬고이전’인가.
2015년에 처음 성남FC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했는데 한 시즌이 끝나고 바로 군대를 가려고 했다. 그래서 2016년에는 성남FC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다른 업체가 성남FC의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요새 군대 가는 게 쉽지 않다. 결국 군 입대가 미뤄져서 성남 일은 하지 못했고 전북과 울산 업무만 맡고 있다. ‘팬고이전’은 아니다.

선수가 이적하면 ‘옷피셜’ 그래픽을 만드는데 만약 전북에서 티아고를 영입해 작업 제안이 들어오면 당신 속이 참 쓰릴 것 같다.
나는 특정 선수보다는 팀을 더 많이 좋아한다. 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멘탈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선수보다 팀을 더 좋아해 유니폼에 누구 이름 마킹도 하지 않는다.

이로운
이로운 씨는 성남 팬이지만 여러 구단의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성남 팬이면서 여러 구단의 업무를 맡다보면 사심이 들어가지는 않나. 예를 들어 성남과 울산이 맞붙으면 성남 엠블럼을 더 크게 그린다던가 하는 찌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성남 선수가 전북이나 울산으로 이적해 ‘옷피셜’을 제작해야 한다면 마음으로는 아쉬울 수 있지만 그건 마음으로만이다. 지난 시즌 전북과 성남의 경기를 앞두고 내가 전북 입장에서 성남에 도발하는 포스터를 일부러 만들었다. 성남의 캐치프레이즈가 ‘로얄 블랙’이었는데 전북의 우승 패치가 금색인 걸 보여주면서 ‘이게 로얄이다’라고 도발하는 내용이었다. 사실은 내가 성남 팬인 걸 아는 분들도 있는데 이 포스터를 보고는 SNS로 ‘변절자다’, ‘배신자다’라는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하게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더 짓궂게 해봤다.

기억난다. 그 밑에 자세히 보면 양 구단의 역사까지도 건드렸다. 전북은 1994년 창단해 별을 네 개나 단 팀으로 표현했고 성남은 2014년에 창단한 팀으로 표현해서 많은 팬들이 화가 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 도발 포스터 이후 성남에서도 맞대응하는 흥미로운 포스터를 공개했다. 하나의 재미로 봐줬으면 좋겠다.

성남 전북
이로운 씨는 이 포스터로 전북-성남전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전북현대

그런 경기 홍보 포스터도 흥미롭지만 선수 이적이 확정되는 순간 공개하는 사진도 흥미롭다. 미리 선수 이적에 대한 소식을 공식 발표가 나기 전에 먼저 접하는 것 아닌가.
구단에서 보통 이적 발표 하루 전에 급하게 연락을 주신다. 요새는 선수가 팀을 떠나면 그 선수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작별 포스터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도 선수가 이적하기 전날 정도에 연락이 온다.

이적 소식을 남들보다 하루 먼저 알게 되는 건 당신만의 특권 아닌가. 좋을 것 같다.
사실은 영입보다는 이적 소식이 더 흥미롭긴하다. 얼마 전 레오나르도가 이적한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 하루 전에 듣고 작업을 했는데 아쉬운 마음이 크더라. 그런데 곧바로 작업을 해야해 대부분 놀라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입이 근질근질할 것 같다. ‘락싸’에 올리면 대박을 칠 이적설 소스가 많은 것 아닌가.
구단과 나는 비즈니스로 얽힌 관계다. 서로 신뢰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어 함부로 이적 소식을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다가 혹시 나 때문에 모든 계약 관계가 틀어질까봐 조심하고 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업도 몰래 혼자 숨어서 하나. 몰래 오피스텔을 빌려 문을 잠궈 놓고 감금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댓글, 아니 그래픽 작업을 하는 건가.
작업을 주로 집에서 해 알 사람도 없다. 가족들하고 사는데 가족들은 뭐 미리 알면 알 수 있겠지만 딱히 내가 누구 영입 포스터를 작업하고 있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그게 하루 만에 그렇게 뚝딱 만들어지는 건가. 퀄리티가 상당하던데.
사실은 2~3일 정도 잡아야 구상을 할 시간도 있고 스케치를 할 여유도 있는데 구단에서는 막상 이적 발표 전날 정도에 급하게 디자인을 의뢰한다.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하루 만에 디자인이 완성되기도 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구단이 작업을 하루 만에 마무리하는 게 당연한 줄 알면 안 되니까 2~3일은 걸린다고 하자. 사실 그게 퀄리티를 위해서도 맞는 일이다.

알겠다. 앞으로 우리 <스포츠니어스> 사무실에 와서 작업하라.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은 K리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나.
팬들은 디테일에 큰 감동을 느낀다. 이제 막 영입된 선수가 엠블럼을 움켜 쥔다거나 엠블럼에 입을 맞추는 충성심의 표현 하나에 흥분한다. 단순히 보기 좋고 멋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작업을 맡은 구단의 팬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표현하고자 노력 중이다. 아직은 구단에서 제공하는 이미지 등 소스가 풍성하지 않고 일일이 내가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이런 디테일이 강한 작업을 하고 싶다. 경기 관련 포스터도 단순히 다음 경기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아니라 내가 맡은 팀의 팬들이 이 포스터를 보고 다음 경기에 대한 전투력을 높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줘야 한다. 워낙 축구를 좋아해 기회가 된다면 이 재미있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

이로운 씨의 디자인이 K리그 팬들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단순히 그의 손기술이 뛰어나서가 아닐 것이다. 스토리를 이해하고 여기에 작은 요소라도 팬들의 입장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에 그의 디자인이 K리그 팬들에게 와 닿는 게 아닐까. 앞으로도 그를 비롯한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K리그를 더욱 풍성하게 해줬으면 한다.

footballavenue@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ports-g.com/QYI44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