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오프 직후 미카엘의 유니폼은 누구보다 강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남윤성 기자

[스포츠니어스 | 남윤성 기자] 축구는 주로 발을 사용하는 스포츠다. 축구에선 골키퍼 이외의 선수가 팔을 사용해 플레이에서 이득을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예로 손으로 공을 건드려 선언되는 ‘핸드볼’과 공이 팀 동료의 발을 떠났을 때 팔을 제외한 신체의 일부가 최종 두 번째 수비수보다 앞선 경우 선언되는 ‘오프사이드’가 있다. 이러한 규정과 선수들의 플레이가 발로 이뤄지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오로지 발만 사용하는 스포츠라 생각한다. 하지만 스텝이 농구의 기본이듯 축구에서도 양팔의 사용은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상대보다 먼저 팔과 어깨를 집어넣음으로써 드리블과 몸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주력이 빠른 선수들은 팔을 앞뒤로 힘차게 흔드는 일명 ‘팔치기’ 동작을 통해 가속도를 낸다.

프랑스리그 최초의 장애인 축구선수 미카엘 브리세

지난 5월 생드니에 위치한 오베르빌리에를 찾았다. 지역 팀 ‘오베르빌리에 FCM’의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킥오프 직후 한 선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뛰었던 탓일까 왼쪽 팔이 유니폼 안으로 접혀 들어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팔이 접혀 들어간 게 아니었다. 구단 직원에게 물어보니 “팔이 없다(No forearm)”는 대답이 돌아왔다. 충격적이었다. 90분간 이 선수만을 지켜봤다. 리그 1위 ‘AS 푸아시’를 상대로 동점골을 어시스트했고 헤딩슛이 골대에 맞지 않았다면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골까지 기록할 뻔했다.

공격적인 부분만이 이 선수의 장점이 아니었다. 175cm로 신장은 작았지만 자신보다 큰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주눅 드는 기색이 없었다. 팀의 승리를 위해 온몸을 던져 태클하고 도전하는 헌신적인 플레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통산 211경기 56골. 공격형 미드필더로선 부족함이 없는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이 외팔 선수의 기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프랑스 4부리그 오베르빌리에 FCM에서 활약 중인 미카엘 브리세. 그는 프랑스리그 최초의 장애인 축구 선수다. 프랑스 현지에서 직접 밀착 취재하며 접한 미카엘의 생생한 스토리. 지금 시작한다.

미카엘은 1985년 3월 26일 프랑스 파리 남부구역 이시레물리노에서 선천적으로 왼쪽 팔 없이 태어났다. 항상 어머니의 왼편에서 길을 걸어야했던 미카엘은 축구를 처음 본 순간의 감정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여덟 살 때 TV로 축구를 처음 봤어요.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팔이 아닌 두 다리를 사용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축구선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미카엘은 축구를 통해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친구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기 시작했다.

꿈 같았던 프로데뷔와 4부리그로의 이적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테스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음에도 지역의 유명 클럽들은 장애를 이유로 그를 거절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역 클럽을 전전하던 미카엘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한 앙제 유소년팀에 합류했다.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땐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수군거리는 관중도 있었죠. 그런 시선들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어요. 꼭 프로선수가 되어 저를 비웃던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틀렸어!’라고 증명해내고 싶었습니다.”

2002년 성인팀에 데뷔한 미카엘은 그해 앙제의 리그두(2부리그) 승격을 도우며 마침내 프로선수의 꿈을 이뤄냈다. “아직도 생생해요. 18살이었고 프로 무대에 데뷔하던 순간과 첫 골을 기록하던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에요. 표현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했지만 더 큰 목표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시작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침착함을 유지했습니다.”

모든 편견을 극복했다. 프로패셔널 타이틀은 잃었지만 경기에 뛸 수 있어 미카엘은 행복하다. ⓒ남윤성 기자

승격 첫 시즌, 미카엘은 18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17경기에 출전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보다 정기적인 출장을 희망한 그는 이듬해 4부리그 앙굴르메로 이적했다. 이적을 감행하며 프로리그에서 활약할 기회를 잃었지만 미카엘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4부리그로의 이적에 전혀 실망하지 않았어요. 하부리그에서 뛴다는 게 제가 퇴보했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요. 축구선수에게 가장 큰 행복은 경기에서 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뛸 수 있었던 이유

직접 본 프랑스 4부리그의 수준은 상당했다. 프랑스는 최상위리그 리그앙을 시작으로 최대 17부리그까지 리그 전체가 승강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전반적인 능력은 상위리그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경기는 훨씬 치열했다. 하부리그로 갈수록 신체적인 측면이 중요시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더욱 대단해 보였다. 미카엘은 외팔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이두근육을 갖고 있었다. “데뷔 초에는 경기가 끝나면 몸이 성한 곳이 없었어요. 훈련조차 제겐 전쟁이었죠. 더군다나 한쪽 팔 뿐이니 상체운동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차츰 몸싸움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때문에 지금은 옛날처럼 힘들이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뛸 수 있게 됐어요.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훨씬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모든 편견을 극복했다. 프로패셔널 타이틀은 잃었지만 경기에 뛸 수 있어 미카엘은 행복하다. ⓒ남윤성 기자

미카엘에겐 자신만의 확실한 노하우가 있었다. 한 팔로 190cm가 넘는 수비수들과의 경합에서 이겨내려면 영리해야 했다. “선천적으로 한쪽 팔 없이 축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적응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어요. 하지만 몸싸움을 할 때 다른 선수들보다 힘이 두 배는 소비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는 분명 불리했죠. 이러한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많이 뛰었습니다. 유리한 자세로 공을 받으려 공간을 미리 선점했고 생각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장애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들과 대등하다는 걸 증명해야하기 때문에 때론 부담감이 느껴져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미카엘이 경쟁력을 갖고 현재까지 활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말했던 축구에 대한 노하우보다는 누구보다도 강한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계속해서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열정적이려고 노력해요. 축구선수로서의 삶은 제 선택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어요. 어릴 때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장애는 네가 축구선수가 되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외모와 체형이 다르듯, 장애는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일 뿐이고 네가 가진 특징일 뿐이다.’ 이 말을 듣고 나서야 한쪽 팔이 없음을 더 이상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습니다.”

축구선수는 축구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미카엘의 롤모델은 브라질의 삼바 축구를 이끌었던 ‘페노메노’ 호나우두다. 그는 유소년 시절 호나우두의 스피드와 드리블을 본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실제로 상대팀 수비수들에게 미카엘은 경계대상 1순위다.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그를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 축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의 24년 축구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대답이 돌아왔다. “축구란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는 전 세계 사람들을 열정으로 화합시키는 힘이 있고 역사적으로 수많은 아름다운 일들과 기억들을 만들어왔어요. 저 또한 축구를 통해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고 지금의 위치에 도달 할 수 있었습니다.”

31살로 노장 반열에 접어든 미카엘은 “지금까지 내 축구 인생은 50점.”이라며 웃었다. “축구계에 제 존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장애에 대한 제 노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부분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모든 편견을 극복했다. 프로패셔널 타이틀은 잃었지만 경기에 뛸 수 있어 미카엘은 행복하다. ⓒ남윤성 기자

인터뷰가 끝나고 K리그에 호기심을 보인 미카엘과 한국축구의 시스템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대학에서 프로리그로 진출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이 때문에 많은 대학선수들이 축구를 그만두는 현실을 설명하자 안타까운 반응과 함께 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꿈을 포기하려는 이 땅의 축구유망주들에게 미카엘의 마지막 말이 강렬한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 “비록 지금은 하부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축구를 계속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더 높은 리그에서 뛰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고 관심을 가져주는 팬들이 있다면 축구선수로서 이보다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축구선수는 축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한국에 있는 축구선수들도 스스로를 끝까지 믿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당일 경기에서 오베르빌리에는 무승부를 기록하며 결국 5부리그로 강등됐다. 현재 미카엘은 5부리그의 루앙퀴주에서 뛰고 있다. 하지만 미카엘은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에게 있어 행복이란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그 자체 일테니까.

skadbstjdsla@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