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의 후예’ 몽골은 왜 축구를 못할까?

몽골 풋살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아시아 축구의 최약체는 과연 어디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할 것입니다. 만일 아시아 축구의 최강을 물어본다면 반응은 다를 것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이란, 이라크 등 아무리 많아도 10개국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약체를 물어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누가 최약체인지 잘 모르고 심지어 그런 나라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나라들도 축구를 하고 있고 자국의 축구 발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럽의 축구 강국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축구 강국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축구를 못할까요?

<스포츠니어스>는 올 겨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른바 ‘축구 약소국’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우리보다 강한 나라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구 약소국에 대한 관심 역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걔네는 왜 축구를 못할까?’라는 궁금증을 한 나라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국가는 바로 몽골입니다.

현재 FIFA 랭킹 198위인 몽골은 AFC 가맹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안게임 역대 최다 실점, 승점뿐 아니라 다득점까지 안겨주는 자판기 등 축구로 얻을 수 있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은 죄다 가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몽골입니다. ‘푸른 늑대’라는 그들의 별명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것일까요? 지금부터 한 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원나라 그 이후의 몽골은 어땠을까?

먼저 몽골이라는 국가의 역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축구는 역사와 궤를 함께 하기 때문이죠. 우리 역시 몽골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우리와 몽골의 접점은 고려시대로 한정됩니다. 과거 칭기즈 칸으로 대표되는 몽골족이 세계를 호령하는 대제국을 세웠고 우리나라에도 쳐들어와 고려를 뒤흔들었죠. 하지만 이후 우리는 몽골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원나라 멸망 이후 몽골은 세계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우리 역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원나라 이후 몽골의 역사는 강대국 틈에 끼인 소수민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368년 원나라의 순제는 주원장(이후 명 태조)에게 패배하며 만리장성 바깥으로 도망갑니다. 천하를 잃은 그들이 돌아간 곳은 자신들의 고향이었습니다. 몽골 민족은 3명의 황제와 23명의 칸의 통치 하에 1688년까지 약 300년 동안 자신들의 나라를 유지했습니다. 이것을 ‘북원’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마지막으로 몽골은 한동안 나라 없는 설움을 견디게 됩니다.

청나라가 북원을 정복하면서 몽골이라는 나라 이름은 한동안 지구 상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청의 황제였던 강희제는 몽골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몽골 지역을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해 통치했습니다. 내몽골은 현재 중국의 네이멍구 자치구 지역이고 외몽골이 현재의 몽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약 200년 간 청의 지배 끝에 몽골은 다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외몽골 지역의 사람들이 주축이었습니다.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난 것이죠. 청이 무너지는 틈을 타 외몽골 지역은 그 해 12월에 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는데 성공합니다. 당시 티베트 역시 독립을 선언하며 양 측은 ‘서로가 국제 사회에서 독립 국가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내용의 몽장 조약을 체결하기도 합니다.

몽골 혁명
당시 몽골 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뒷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몽골 혁명의 영웅 담딘 수흐바타르

자치권을 인정받은 몽골은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집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몽골 역시 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자 당시 중국을 통치하던 국민당 정권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몽골의 자치권을 철폐하는 초강수를 둡니다. 하지만 ‘반중국·민족해방’을 기치로 내세운 몽골 인민당과 지금도 ‘몽골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담딘 수흐바타르가 1921년 2차 혁명을 일으킵니다. 결국 1924년 외몽골 지역은 자치구가 아닌 하나의 국가로 독립을 인정 받게 됩니다.

독립 국가가 된 몽골이지만 이후에는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서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겠죠. 몽골은 중화민국으로부터 정식 독립 승인을 받으면서 인민 공화제로 국가 이념을 채택해 공산주의 국가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사실 몽골은 세계에서 2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된 ‘공산주의 선진국’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약 70년 간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다가 소련이 해체된 이후 1992년 민주 공화국으로 변신합니다.

베일 속에 가려졌던 초기 몽골 축구

그렇다면 몽골의 축구는 언제부터일까요? 우리나라와 시기는 크게 차이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같은 동아시아니까요. 대부분 몽골에 축구가 보급된 것은 독립의 시기와 비슷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 또는 1920년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축구가 몽골 내에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몽골 축구가 처음으로 국제 경기에 나서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나고 나서입니다.

1942년 8월 10일 몽골은 일본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0-12라는 엄청난 스코어를 기록하며 패배합니다. 이것이 몽골의 첫 번째 국제 경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이 경기는 공식 경기로 인정 받지는 않았습니다. 몽골을 대표하는 축구 행정 조직이 없었고 몽골이 국제 축구 단체에 가입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은 말 그대로 그저 기록으로만 남았습니다. 이후에도 몽골은 대대손손 역사적인 스코어를 기록하며 패배하는 흑역사를 남기게 됩니다.

몽골 프로리그
몽골의 후손들은 프로리그 등을 통해 약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 몽골 축구협회

앞서 설명했듯이 몽골의 20세기는 ‘공산주의’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축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몽골의 축구는 더디게 성장했지만 그 와중에 소련 출신의 감독에게 유럽 축구를 전수받는 등 발전을 위한 노력은 조금씩 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1959년 드디어 몽골 축구 연맹이 창립되면서 몽골은 제대로 된 축구 행정 조직을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행적이 문제입니다. 1959년부터 1992년까지 33년 동안 몽골 축구의 행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북베트남, 소련, 북한 등 공산 국가와 친선 경기를 벌였다는 기록은 조금씩 발견되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공산국가의 특성 상 자유 진영에 배타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공산 국가들이 FIFA에 가입하고 월드컵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심지어 북한은 1966년 월드컵에 출전해 8강이라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차라리 베일 속에 가려진 다크호스였다면 몽골 축구의 현재가 이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몽골은 베일 속에 가려진 ‘축구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몽골 축구 연맹이 공인하는 몽골의 첫 경기는 1960년 10월 3일에 열렸습니다. 상대는 북베트남이었습니다. 하노이 원정을 떠난 몽골 대표팀은 1-3으로 패배합니다. 그나마 드러났던 몽골의 축구 경쟁력은 아시아에서도 상당히 뒤쳐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중국, 북한 등 아시아권 공산 국가와 친선 경기를 가진 기록이 존재하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국제 축구와 적극적인 교류가 없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부진한 몽골의 성적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몽골이 축구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 ‘기후’

하지만 몽골 축구의 경쟁력을 단순히 역사적, 정책적인 부분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몽골 축구는 발전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기후입니다. 몽골의 기후는 축구를 하기에 굉장히 혹독합니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것은 물론 모래폭풍과 눈이 수시로 몽골 지역을 덮칩니다.

이런 몽골의 기후는 축구 발전에 가장 큰 방해 요소입니다. 과거 몽골 대표팀의 미드필더 토르가는 “1년 내내 경기를 할 수 있다면 몽골 축구의 수준 향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기후의 제약이 너무나 많은 만큼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리적 위치로 인한 기후의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깝고 현재 몽골의 경제력은 이를 극복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습니다.

몽골의 겨울은 이 정도입니다

한 때 몽골 축구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돔 구장’입니다. 실제로 세계 일부 팀들은 돔 구장에서 축구 경기를 개최합니다. 일본 J리그 콘사도레 삿포로의 홈 구장 중 한 곳은 삿포로 돔이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레나(AFC 아약스)와 독일 벨틴스 아레나(샬케04) 역시 개폐식 돔 구장입니다.

만일 몽골이 돔 구장을 만들었다면 날씨와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축구가 가능한 ‘축구의 성지’가 됐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몽골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았을 것입니다. 현재 몽골의 가장 큰 국가적 축제인 ‘나담’ 등 주요 행사가 작은 실내체육관과 야외 경기장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돔 구장은 몽골에 최적화된 시설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몽골 정부와 축구계는 2015년까지 돔 구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기후를 극복해야 하기도 했지만 AFC컵 등 아시아 국제대회에 프로 팀들이 정상적으로 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몽골이 돔 구장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경제력이 원인이죠. 몽골은 돔 구장 완공을 2017년 이후로 미루는 대신 해외 전지훈련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표팀을 비롯해 여러 팀들이 온화한 기후에서 실전 경험과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몽골은 어쩔 수 없이 기후에 순응해야 합니다. 그나마 여름이 되면 축구를 할만한 환경이 조성됩니다. 몽골의 축구 리그도 이 때 일정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올 시즌 몽골 최상위 축구 리그인 몽골 프리미어리그는 5월 초에 개막해 10월 초에 종료됐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프로 리그를 생각하면 매우 짧은 기간입니다. 단 10개의 팀이 팀당 18경기를 치러 우승팀을 가립니다.

악조건 속에 경기도 많지 않고 팀 수도 상당히 부족해 보이지만 몽골 리그는 상당히 유서깊은 역사를 자랑합니다. 최상위 리그가 1955년 창설된 이후 약 60년 간 몽골의 축구를 대표하는 리그로 자리잡았습니다. 워낙 몽골이 인구가 적고 축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 대부분의 팀이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고 홈 구장마저 MFF 풋볼 센터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들은 계속해서 몽골 축구 발전의 원동력으로 그 명맥을 이을 것입니다.

‘축구하느니 씨름하지…’ 한국과 정반대인 몽골 국민들

몽골 사람들의 관심 역시 축구와는 거리가 존재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축구의 인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몽골 케이블 방송사는 유럽 주요 리그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주제가 중 하나인 샤키라의 ‘와카 와카(Waka Waka)’가 휴대폰 컬러링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몽골은 전통적으로 씨름이 인기 있는 국가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몽골 최대의 국가적 축제인 ‘나담’은 사실 스포츠 축제입니다. 약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축제에서는 씨름, 말타기, 활쏘기 세 종목을 놓고 각 부족이 경쟁하는 시합이 열립니다. 특히 씨름은 온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습니다.

몽골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몽골 씨름 ‘부흐(브흐)’입니다. 13세기 칭기즈 칸 시대부터 몽골 내에서 널리 행해졌던 부흐는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부흐 선수 역시 국민적 인기가 높은데요, 2013년 몽골 대선에서는 부흐 선수 출신인 바테르데네 바드만얌부가 몽골인민당(MPP) 후보로 출마해 무려 42.5%의 득표율을 얻기도 했습니다. 비록 상대 후보인 차히아 엘벡도르지에게 아깝게 패배했지만 부흐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부흐가 해외에 보급되지는 않았지만 부흐 선수들이 다른 종목으로 전향해 맹위를 떨치는 모습 역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 전통 씨름인 스모에서 부흐 선수들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스모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장사를 칭하는 ‘요코즈나’의 자리는 이미 부흐 선수들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입니다. 부흐 선수들은 일본 스모로 진출해 부와 명예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다른 도전을 하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 최홍만과 맞붙어 화제가 됐던 아오르꺼러는 몽골 국민은 아니지만 내몽골 출신으로 부흐를 수련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 몽골에서도 축구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 1의 스포츠’ 자리를 차지하기까지는 더 오랜 세월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를 좀 더 빨리 앞당기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제약을 극복하고 몽골 국민들이 축구에 관심 받을 만한 이슈를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 최약체 몽골은 반전을 꿈꾼다

그렇다고 몽골이 마냥 축구 후진국으로 머무르는 것에 만족하지는 않습니다. 몽골 축구도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습니다. 현재 몽골의 현실을 냉정히 파악하고 이를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먼 미래 몽골의 축구는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조금씩 그 이름을 알릴 지도 모릅니다.

몽골 축구의 미래 전략은 여자축구와 풋살, 그리고 풀뿌리 축구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 축구 속에서 몽골의 경쟁력, 몽골이 처한 기후,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모두 반영되어 있습니다. 몽골 축구협회는 이를 바탕으로 몽골 축구 발전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자축구는 많은 축구 약소국들이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몽골 여자축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을 꼽자면 ‘일본과의 밀월’입니다. 아시아권 국가이면서 여자축구의 세계적 강호인 일본의 노하우를 받아들이기 위해 코칭 스태프 영입, 교류 협약 체결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 풋살과 풀뿌리 축구는 몽골 축구의 발전을 논할 때 주목해야 할 요소들입니다. 풋살은 몽골의 열악한 기후 속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몽골은 매년 12월부터 3월까지 풋살 리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풋살 리그의 규모는 한국의 FK리그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몽골 축구의 규모가 아직까지 작고 한국 FK리그 역시 빈약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몽골 풋살 리그의 규모가 이 정도라는 것은 몽골 축구계가 얼마나 풋살에 관심이 많은지 보여줍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몽골은 풋살을 바탕으로 축구를 발전 시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몽골 풋살 경기
악조건의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풋살을 택했습니다 ⓒ 몽골 축구협회

풋살과 함께 몽골의 전략으로 꼽히는 풀뿌리 축구 육성은 몽골 사회에 대한 몽골 축구계의 도전장으로 보입니다. 인구 300만 명에 불과한 몽골에서 축구선수를 키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부와 명예를 보장하는 것도 아닌 축구선수의 삶을 청소년들에게 권장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유망주를 찾는 것과 동시에 몽골 축구 산업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도 몽골 축구계는 풀뿌리 축구를 육성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소년 대표팀의 창설입니다. 지금까지 철저히 성인 대표팀 위주로 운영됐던 몽골 축구 대표팀을 이제는 유소년까지 모두 아우르겠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유소년 대표팀을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뭐 그리 대단한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몽골 축구계에서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몽골 축구의 이러한 로드맵은 정치권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차근차근 진행됐습니다.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이 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특히 간바타르 암갈란바타르 몽골 축구협회장이 대통령 홍보수석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몽골의 다음 대선은 바로 올해입니다. 2009년부터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엘벡도르지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하거나 그의 정책을 계승한 사람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큰 걱정이 없겠지만 이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몽골 축구에는 다가올 대선이 가장 큰 걱정거리일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왜 몽골은 축구를 못할까?’라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역사에서도 일부 답이 나왔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부분에서도 왜 몽골이 축구를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이 몽골 축구도 봄을 꿈꾸고 있을 것입니다.

FIFA 회원국은 총 211개입니다. 그 중 몽골은 랭킹 198위의 최약체 국가 중 하나입니다. 과연 그들에게 반전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몽골이 축구를 하긴 해?”라고 말했지만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될 지 궁금해집니다. 여전히 “몽골은 축구랑은 거리가 먼가봐”라고 말할 지, “요즘 몽골 축구 완전 대박이던데?”라고 말하게 될 지는 온전히 그들의 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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