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시·도민구단은 참 힘듭니다. 특히 강등을 당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강등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성남FC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최근 박경훈 감독 선임, 황의조 재계약 등 조금씩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내년 시즌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었습니다. 바로 성남시 의회입니다.

자생력이 부족한 시·도민구단에 있어서 한 해 살림을 꾸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입니다. 이 지원금이 구단의 1년 농사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자생력을 갖추지 못해 지자체에 손을 벌려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서글프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성남도 다른 시·도민구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성남시의 지원금이 구단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시의 예산안이 심의될 때 그들은 마음을 졸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그것도 상식 밖의 일이 그들을 덮쳤습니다.

"대표이사 자르지 않으면 예산 더 깎겠다"

최근 성남시 의회는 행정교육체육위원회를 통해 성남FC의 내년 예산을 심의했습니다. 성남FC가 내년 시즌을 위해 계획한 예산은 70억 원이었습니다. 하지만 70억 원이 원안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낮았습니다. 올 시즌 강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부 예산이 삭감될 가능성은 매우 컸습니다.

심의는 예상대로 흘러갔습니다. 위원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성남FC의 강등 책임을 물어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했습니다. 관건은 '얼마를 삭감할 것인가'였습니다. 이덕수 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수십억 원의 대폭 삭감안을 제시했고 더불어민주당 측 의원들은 7억 원 삭감 등 소폭 삭감 위주의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결국 계수조정(예산안의 세부 내역을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15억 원을 삭감하는 것으로 상임위원회가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단서가 붙었습니다. 예산결산위원회(이하 예결위)가 열리기 전 성남FC 이석훈 대표이사가 사퇴하지 않으면 추가 삭감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0일 성남시 의회 예결위가 열릴 때까지 이석훈 대표이사는 사퇴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의회는 추가로 15억 원을 더 삭감했습니다. 내년 성남시의 지원금은 70억 원에서 무려 30억 원이 줄어든 40억 원이 될 예정입니다.

구단 지원금뿐만 아니라 성남FC의 미래인 클럽하우스도 위태롭습니다. 성남시는 애초 190억 원을 들여 분당구 정자동 잡월드 잔여부지에 '성남축구센터'를 건립할 예정이었습니다. 이곳에는 클럽하우스와 축구장 2면이 들어서게 됩니다. 시는 첫해 공사비로 53억 5천만 원을 편성했지만 의회는 이 가운데 20억 원을 삭감했습니다. 추경 편성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약 절반 가량의 예산이 삭감된 것입니다.

항의하는 팬들에게 돌아온 대답, "고소하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팬들이 나섰습니다. 그들은 예산 삭감을 주도한 의원들에게 항의성 문자와 전화로 자신들의 뜻을 알렸습니다. 팬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의원들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하고 간절했습니다. 예산 삭감이라는 메가톤 급 폭풍에 맞서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시의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비록 복사와 붙여넣기의 연속이긴 하지만 예산 삭감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메시지를 보낸 의원도 있었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마치 최근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메시지 폭탄을 받고 있는 국회의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한 의원이 있었습니다. 바로 행정교육체육위원회의 위원장 이덕수 의원입니다. 그는 초기 성남FC 예산 삭감에 관련된 보도가 등장하자 오보라고 주장하며 "기사를 쓴 기자를 고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스포츠니어스>가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삭감 자체는 여야 합의에 의한 것이지만 이 의원이 대표이사 사퇴와 대폭 삭감을 주장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성남시 의회가 회의록을 조만간 공개 한다면 더욱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팬들마저 고소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스포츠니어스>에 들어온 제보에 의하면 그는 팬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지금까지 내 휴대전화로 수십 차례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건 사람들은 성남 중원 경찰서를 통해 업무방해로 고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그는 "경찰서에서 봐달라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더 할 말이 있으면 경찰서에서 이야기하라"고 덧붙였습니다.

제게 "저 정말 고소 당하나요?"라고 물어봤던 팬의 항의 문자입니다 ⓒ 팬 제공

기자를 고소하는 것도 모자라 팬들까지 고소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법과 정치를 잘 모르지만 일단 '고소하겠다'고 말하는 이 시의원의 행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과도한 욕설은 법적 제재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시민의 민원과 항의를 '업무방해'로 취급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팬에게 고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불법 추심 전화도 자정 넘어서는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시민과 팬의 항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전화와 문자를 보낸 사람들은 엄연한 민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민원인의 의견은 '불법 추심 전화' 정도로 취급하는 모양입니다. 항의에 시달렸을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습니다.

그래도 시의원이라는 위치와 품위에 기대서 생각해볼 때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제로 고소라는 행동에 나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팬과 시민을 대상으로 '고소'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인물이 과연 시의원의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심지어 이 의원은 성남시 의회의 행정교육체육위원회의 위원장입니다. 시의회의 위원장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이번 대처는 굉장히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산 볼모로 대표이사 사퇴 요구, 분명한 인사권 개입

사실 성남FC의 예산 삭감은 예상 가능했던 일입니다. 대부분의 시·도민구단이 그러했듯이 강등을 당하면 시의 지원이 줄어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문책성 삭감일 수도 있고 시의 상황이 좋지 않을 수도 있으며 구단에 지원할 돈을 다른 곳에 써야 할 수도 있습니다.

초기에 성남시 의회가 삭감한 15억 원은 문책성 삭감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예결위에서 추가로 삭감된 15억 원은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가 붙어 있습니다. 바로 '성남FC 대표이사가 사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의 살림 상황이 좋지 않아서 '대표이사 사퇴'라는 명분을 앞세운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 하겠습니다. 하지만 의회는 '대표이사가 이후에라도 사퇴한다면 추경 예산을 통해 추가 삭감분을 다시 편성하겠다'고 합니다. '돈은 있는데 주기 싫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개인적으로 웃음만 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사퇴 여부에 시민 혈세 15억 원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이 우스웠습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혈세가 한 사람을 정치라는 무기로 협박하기 위해 쓰인다는 것이 황당했습니다. 심지어 '그만큼 이 대표이사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그가 팬들에게 '축알못'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것은 개인적인 사견입니다. 그에게도 강등의 책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성남FC의 강등이 확정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대표이사의 유임 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쳐왔습니다. 어쨌든 이 대표이사는 강등 이후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강등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행동을 취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이 대표이사는 지금도 구단 운영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제일 답답한 사람이 바로 이석훈 대표이사일 것입니다. 강등의 책임을 지고 이재명 시장에게 사표를 제출했지만 수리되지 않았습니다. 결정권자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의회의 요구를 수용해 '잠수'라도 타는 것이 최선일까요? 사실 그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회는 예산 15억 원을 볼모로 그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게 "저 정말 고소 당하나요?"라고 물어봤던 팬의 항의 문자입니다 ⓒ 팬 제공

만일 그가 강등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저라도 앞장서서 '이석훈 대표이사는 강등의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 또는 '이재명 시장은 사표를 빨리 수리해 구단의 내년을 대비하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대표이사의 강등 이후 행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팬들과의 대화를 통해 질타와 비판을 묵묵히 받아들였고 박경훈 감독 선임, 황의조 재계약 등 승격을 위한 노력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비록 강등을 당했지만 성남FC는 2016년 굉장히 의미있는 상을 받았습니다. 바로 '팬 프렌들리 클럽상'입니다. 과거 '축구만 잘하고 인기 없는 팀'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팀이 성남이었습니다. 이런 팀을 '팬 프렌들리 클럽'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사무국의 뼈를 깎는 노력과 선수단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부는 '관중 동원'이라는 단어로 애써 이를 무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2016 시즌 개막전 매진, 2년 동안 평균 관중수 35% 증가, 시즌권 판매 수익 76% 증가와 같은 수치가 '관중 동원'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고 대표이사 퇴진을 요구하며 '예산 삭감' 카드를 들이미는 의회의 행동은 사무국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이자 인사권 개입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정치적 분쟁으로 보는 의견도 많습니다. 저 역시 이 의견에 일부 동의합니다. 이재명 시장은 공공연하게 "성남FC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하겠다"고 밝혔고 정말로 그렇게 했습니다. 성남FC가 승승장구할 때 이 구단은 시장의 대표적인 치적이었습니다. 당시 성남FC 선수단이 이재명 시장과 함께 있거나 시의 정책 홍보에 등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정반대가 된 현재 성남FC는 좋은 공격 대상일 것입니다.

이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종합해볼 때 성남FC의 내년 시즌 예산 삭감은 더욱 피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표이사 한 명을 놓고 예산을 쥐고 흔든 행위는 정말 치졸하고 잘못된 행위라고 봅니다. 그들이 대표이사를 사퇴시키기 위해 삭감한 것은 예산이 아닙니다. 시민들과 팬들의 꿈과 희망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정치 행위 역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성남FC 예산 삭감을 놓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제가 생각하는 상식선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고 봅니다. 이것이 과연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지금도 터무니없는 예산 삭감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노력하고 있을 팬들이 대신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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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성남시의회 본회의 ⓒ 성남시의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