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틀렸어. 먼저 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요즘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살도 찌고 체력도 떨어졌다. 운동 부족이 분명했다. 며칠 전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등산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고 나도 이제는 운동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북한산에 한 번 올라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산을 잘 모른다. 산이라고는 ‘맛동산’ 빼고는 전혀 경험이 없는 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가끔 SNS에 북한산에 올라 경치를 올리는 지인들을 보면서 북한산을 우습게 생각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난 뒤에는 더 경악했다. 구파발을 지나가면 부부라고 믿고 싶은 중년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팔짱을 끼고 마치 에베레스트를 오를 것만 같은 복장을 한 뒤 가볍게 지나다니던데 이건 도저히 그럴 수준의 산이 아니었다. 높이가 해발 836.5m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고산증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산을 포기하려던 순간 불현 듯 스친 생각이 있다. ‘아, 맞다. 비아그라가 고산증에 효과가 좋다고 했지?’

고지대 등산 위해 비뇨기과를 찾다

똑똑하신 청와대 분들도 고산증 극복을 위해 비아그라를 준비하셨다는데 그 분들을 전적으로 믿었다. 청와대는 지난 5월 아프리카 순방을 앞두고 고산병 치료를 위해 '비아그라'와 '팔팔정' 등 발기부전 치료제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3개국 중 우간다 수도 캄팔라가 해발 1,190m에 위치해 있으니 해발 836.5m의 북한산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나는 정부를 믿기로 했다. 최고의 의료 시스템이 갖춰진 청와대에서도 쓰는 의약품인데 내가 정부를 믿지 않으면 누가 정부를 믿겠나. 고산병 치료제가 따로 있지만 나는 정부의 말을 듣기로 했고 곧바로 비뇨기과로 향했다. 고산증을 극복하고 북한산 정상에 오르겠다는 일념 하나로 30대 중반에 비아그라를 처방받는 쪽팔림까지 감수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마침 잘 된 노릇이었다. 나는 아직 청춘이라고 믿고 싶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성으로서의 자존감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고개를 숙이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었다. 더 강한 남자가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내 자신이 미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의학의 도움을 받아 더 강한 남자가 되고 고산증 없이 고지대에도 올라보자고 다짐했다. 비뇨기과 앞에서 20분 정도 고민했다. 첫 마디를 어떻게 꺼낼지 고민됐기 때문이다. “제가요. 잘 안…” 이것도 아니었고 “계속 죽…” 아, 이것도 아니었다. 에라 모르겠다싶어 그냥 당당히 비뇨기과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의외로 남성 두 명이 접수처에 앉아 있었다. 나같이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직원 전체가 남자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져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뭐 이런 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직원이 말하자 나는 기가 죽어서 이렇게 답변했다. “비아그라 처방 받으러 왔는데요.” 그러자 이 직원은 종이를 내밀더니 체크하라고 했다. 너무 창피해서 잘 기억도 안 나는데 발기부전에 관한 조사였다. 대부분의 항목에 “가끔 그렇다”와 “자주 그렇다”에 체크한 뒤 이 종이를 직원에게 건네니 또 이번에는 무슨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에 또 서명을 하란다. 혹시 다른 환자(?)가 들어올까 노심초사하며 서류를 다 작성하고 앉아 고개 한 번 들지 못한 채 계속 기다렸다. 고개 숙인 남자는 고개를 들고 싶어 비뇨기과에 왔다가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렇게 5시간 같은 5분이 지났을까. 나는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고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 분이 안타깝다는 듯 차트를 보며 말했다. “아이고, 젊으신 분이 오셨네요.”

[caption id="attachment_6815" align="aligncenter" width="600"]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팔팔정'을 구입했다.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팔팔정'을 구입했다.[/caption]

‘팔팔정’ 손에 넣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요새 스트레스도 받고 살도 좀 찐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제 뜻대로 잘 안 되네요.” 내 말을 듣자 의사 분이 발기부전 치료제 처방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책상 앞에 놓인 알약 모형 두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왼쪽은 30분 안에 효과가 오는 강력한 제품이고요. 오른쪽은 36시간을 지속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고지대 등산을 36시간이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 나는 의사 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36시간 동안 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요. 효과가 빠른 왼쪽 약으로 처방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의사는 답했다. “알겠습니다. 왼쪽 약으로 처방해 드릴게요.” 나는 이 약을 발기부전 치료 목적으로 처방 받은 거지만 그래도 겸사겸사 쓰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의사 분께 여쭤봤다. “혹시 이 약을 정말 고산병 치료를 위해서도 처방하나요?” 내 물음에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효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굳이 왜 이 약을 쓰나요. 좋은 고산병 치료제도 많은데요.”

하지만 이 의사는 틀렸다. 똑똑하신 청와대 분들은 고산병 치료를 위해 발기부전 치료제를 쓰는데 이 의사는 아직 의사로서 처방을 내리기에는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 수준 정도인 것 같았다. 어찌 됐건 나는 의사의 말을 경청한 뒤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의사 분이 마지막으로 정말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 “그래도 젊은 분이니까 금방 효과를 보실 겁니다. 힘내세요.” 물론 의사 분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말을 듣고 나오는데 뒤통수에 온갖 조롱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진료실을 나와 수납을 하고 처방전을 받아 들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처방전에는 청와대에서 구입했다는 바로 그 약 이름이 써 있었다. ‘팔팔정 50밀리그램’ 나도 이제는 발기부전을 치료하고 고산병까지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나는 합법적인 진료 이후 이 ‘팔팔정’을 구했다.

이건 정말 노린 게 아니었다. 나는 오른쪽 약 이름이 뭔지, 왼쪽 약 이름이 뭔지도 몰랐는데 내가 고른 게 하필이면 팔팔정이었다. 역시 난 정부와 맞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청와대의 똑똑하신 분이 고르셨던 걸 나도 골랐으니 굉장히 뿌듯했다. 다음 날 곧바로 20년 지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등산에 조예가 깊어 북한산만 서른 번 넘게 올랐던 김지훈이라는 친구였다. 여기에 연세대학교에서 체육학 박사 과정 중이라 등산의 실기와 이론 모두 완벽한 친구다. 나는 이 친구를 셰르파 삼아 북한산에 오르기로 했다. “우리 오늘 등산가자. 북한산 밑에서 봐.” 역시나 셰르파 같은 친구는 마치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엄홍길 대장이라도 된 듯 장비를 풀착장하고 등장해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 등정하는 거지. 오늘은 산꾼님이 허락하시려나 모르겠어.” 나는 김지훈 셰르파의 말을 무시한 채 고산증 극복을 위한 ‘팔팔정’을 꺼내 먹었다. 사람들은 다 청와대 말을 믿지 않아도 나는 청와대를 믿었다.

[caption id="attachment_6816" align="aligncenter" width="600"]'팔팔정'을 손에 넣으니 자신감이 생기고 고개도 이렇게 당당하게 들 수 있었다. '팔팔정'을 손에 넣으니 자신감이 생기고 고개도 이렇게 당당하게 들 수 있었다.[/caption]

[caption id="attachment_6817" align="aligncenter" width="600"]븍한산 등정 직전 이렇게 '팔팔정'을 먹고 엄숙한 산행을 시작했다. 븍한산 등정 직전 이렇게 '팔팔정'을 먹고 엄숙한 산행을 시작했다.[/caption]

고지대 적응은 둘째 치고 몸이 너무 힘들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공기 좋은 북한산에 오르니 기분이 상쾌했다. 하지만 역시나 운동 부족이었다. 완만한 포장길을 20분 정도 걸으니 벌써부터 힘이 들었다. 물론 ‘팔팔정’은 아직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다. 그렇게 포장길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 들었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30분이 지나도 ‘팔팔정’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40분 정도 산행을 했을까. 너무 힘이 들어 친구에게 말했다. “잠깐만 쉬었다 가자.” 물을 한 잔 마시고 숨을 크게 들여 마셨는데 그 순간 깜짝 놀랄 일이 생기고 말았다. 글쎄 ‘팔팔정’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급속도로 ‘팔팔정’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을 가다 듬고 애국가를 부를 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팔팔정’은 고지대 등산을 위해 효과를 발휘해야 하는데 숨이 차니까 내 몸이 ‘지금은 큰 일을 벌일 때’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이때부터 나는 사경(?)을 헤맸다. 가뜩이나 운동 부족으로 그냥 등산하는 것도 버거운데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그 험난한 산을 오른 것이다. 이 녀석은 잔뜩 화가 나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군대에서 나를 갈구던 부산 사는 고참 생각을 하다가 나를 괴롭히던 악플 생각을 하다가 나라 걱정까지 하면서 자꾸 다른 데 신경을 써보려고 했지만 이 녀석은 고집이 대단했다. 그렇게 땅만 보며 산에 오르다 잠깐 고개를 든 순간 내 몸은 더 괴로워졌다. 젊은 여성 두 명이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내 앞에서 걷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안돼. 여기에서 좀 쉬다가 가자.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나겠어.”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 앉아 10분 동안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봐야 했다. 다시 시작된 산행 이후에도 이 녀석은 화를 참지 못했고 결국 나는 3시간 동안 이 상태로 정상까지 올라야 했다. 북한산을 우습게 봤는데 정상인 백운대 근처에서는 안전 손잡이를 잡고 바위를 타야 할 정도로 난이도도 만만치 않았다.

정상에 선 뒤 김지훈 셰르파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해발 836.5m의 고지대에 올라본 건 처음이었다. 고산병에 ‘팔팔정’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한 시간 정도 정상에 있어 보기로 했다. 사진도 찍고 정상에 사는 고양이들과도 놀고 셰르파가 미리 챙겨온 김밥도 먹었다. 샥스핀이나 송로버섯 같은 비싼 음식은 아니었지만 북한산 정상에서 먹는 김밥은 핵꿀맛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 고지대에서는 원래 몸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지 ‘팔팔정’이 효과가 있는지 고산병 증세는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고산병은 해발 1850m~2750m 수준 고도에서 22% 정도가 겪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한 아프리카 3개국 중 고산병 위험이 낮게나마 있는 곳은 에티오피아 뿐이었다. 나머지 두 나라는 고산병 가능성도 별로 없었다. ‘팔팔정’이 고산병에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는 더 고지대로 올라가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대통령 경호원들이 몇 시간 동안 몸이 잔뜩 화난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한다는 건 무척이나 괴로울 일이었다. 내가 한 번 먹고 활동해 보니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caption id="attachment_6818" align="aligncenter" width="600"]정상을 100여m 앞두고 '그냥 여기에서 사진 찍고 정상이라고 뻥칠까'라는 유혹이 계속 됐다. 정상을 100여m 앞두고 '그냥 여기에서 사진 찍고 정상이라고 뻥칠까'라는 유혹이 계속 됐다.[/caption]

[caption id="attachment_6819" align="aligncenter" width="600"]정상에 오른 뒤 김지훈 셰르파와 기념 사진. 정상에 오른 뒤 김지훈 셰르파와 기념 사진.[/caption]

[caption id="attachment_6820" align="aligncenter" width="419"]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북한산 정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북한산 정상에서도 마찬가지다.[/caption]

‘팔팔정’은 원래 목적으로만 쓰자

그렇게 나는 ‘팔팔정’을 먹고 해발 836.5m의 고지대에서 한 시간 정도 움직이다가 하야, 아니 하산했다. 똑똑하신 청와대 분들의 말을 믿고 고산병에 효과가 있다는 ‘팔팔정’을 먹고 산에 올랐다가 생지옥을 경험했다. ‘팔팔정’은 원래 목적대로만 쓰자. 고산병 치료제와 성분이 비슷해 효과가 없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런 효과만을 믿기에는 몸이 너무 힘들고 괴롭고 신경 쓰인다. 하루 종일 몸에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격한 운동까지 했으니 나는 지금 거의 반실신 상태다. 요양이 필요하다. 며칠 간 칼럼이 올라오지 않더라도 요양 중이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설마 내가 마티즈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지 않는다면 빨리 몸을 추스르고 다음 주에 다시 칼럼으로 찾아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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