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레드불, 날개를 펼쳐줘요"

최근 독일 분데스리가의 가장 핫한 팀은 바로 RB라이프치히다. 5부리그에서 1부리그까지 승격에 승격을 거듭하더니 이제는 1부리그 선두까지 차지했다. 차례차례 상대를 격파하며 끝판왕을 향하는 그들의 모습은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언더독의 반란'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하지만 라이프치히의 성공 뒤에는 거대한 기업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우리가 살기 위해 자주 마시는 레드불이다. 나도 매번 회사에 사원 복지로 레드불을 비치하자고 여러 번 건의했지만 퇴짜를 맞고 있다. 그 레드불이 라이프치히의 메인 스폰서다. 레드불은 이 팀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구단의 성공시대를 열었다.

5부리그 팀이 갑자기 빵빵한 스폰서의 지원을 받아 1부리그 정상을 넘본다는 것, 굉장히 생각만 해도 신날 수 밖에 없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면 여자친구 생일에도 축구장에 와서 "인생 어차피 혼자인 것"이라고 노래 불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마냥 좋은 일일까? 라이프치히의 선전을 보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져 보려고 한다. "만일 K리그에 레드불이 진출 한다면 어떨까?"

유망주 + 부자 구단 = RB라이프치히

레드불은 축구를 조직적으로 활용한다. 선수들에게는 '요람부터 무덤까지'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유망주 시절부터 노년까지 레드불 산하 구단에서 뛸 수 있다. 물론 잘 한다면 말이다. 레드불은 초기 전 세계에 5개 구단을 운영했으나 2014년 아프리카 가나에서 만든 팀을 해체하며 총 4개의 구단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과거 <스포츠니어스>에서 이미 얘기했다. 아래 기사를 참고하자.

'5부에서 1부로' 7년 전부터 준비된 RB 라이프치히의 선두권 경쟁

RB라이프치히는 레드불 축구단의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라 볼 수 있다. 다른 팀들이 유망주 육성, 또는 은퇴 전 마지막 시기를 위해 준비된 구단이라면 이 팀은 세계 축구에서 경쟁하기 위해 만든 구단이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5부리그 팀을 1부리그까지 끌어 올리더니 정상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RB라이프치히의 돌풍은 어디까지 가야 멈출까 ⓒ 라이프치히 공식 페이스북

이 팀의 특징은 젊다는 것이다. 라이프치히 선수단의 평균 연령은 23.9세에 불과하다.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젊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라이프치히의 팀 컬러가 '유망주를 데려와 쓰는 방식의 효율적인 투자를 하는 팀'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라이프치히는 레드불의 자금에 힘입어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단, 그 지갑은 오직 유망주를 향한다.

올 시즌이 개막하기 전 스코틀랜드 유망주 올리버 버크를 데려온 것이 가장 대표적 사례다. 19세에 불과한 이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라이프치히가 쓴 돈은 무려 약 150억원이었다. K리그 시민구단 하나는 거뜬히 살 법한 돈을 유망주 한 명에 투자한 것이다. 당시 독일 내에서는 이 영입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었다. 분데스리가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독일 라이프치히, 16세 유망주 영입에 '이적료 150억'

올리버 버크뿐 아니라 다른 유망주들을 데려오기 위해 라이프치히가 2년간 쓴 돈은 1000억원이 넘는다. 유망주의 팀을 표방하고 있지만 알고보면 부자 구단이라는 이야기다. 이 쯤 되면 슬슬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막대한 자금을 쥐고 5부리그에서 1부리그 정상까지 가는 그들의 모습을 K리그에서 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사실 그들의 숨겨진 이면이 존재한다.

레드불의 축구 정체성에 연고지는 없다

라이프치히를 비롯해 레드불 산하 축구단의 엠블럼을 살펴보면 대부분 똑같다. 황소 두 마리가 서로를 향하고 있다. 이것이 뭔지 모르겠다면 지금 당장 편의점에 가서 레드불을 하나 사보자. 비슷한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레드불은 산하 축구단의 엠블럼을 모두 자사의 엠블럼으로 맞추고 있다.

RB라이프치히의 돌풍은 어디까지 가야 멈출까 ⓒ 라이프치히 공식 페이스북

축구단에 있어 엠블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팀과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 유나이티드의 엠블럼은 바다를 연상 시키고 제주 유나이티드의 엠블럼에는 한라산과 백록의 뿔이 담겨 있다. 하지만 라이프치히의 엠블럼에는 그저 황소 두 마리뿐이다. 지역의 정체성이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독일에서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편법 운영'이다. 분데스리가는 기업의 구단 소유 및 운영을 경계한다. 그래서 구단의 지분을 한 개인이나 기업이 최대 49%까지만 보유하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하지만 레드불은 라이프치히의 지분을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라이프치히의 지분 보유 현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팀 명칭도 문제다.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각 구단은 팀 명칭에 기업의 이름을 넣지 못한다. 단 두 팀만 예외다. 출범 이전 모기업의 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진 바이에른 레버쿠젠과 VFL 볼프스부르크만 기업의 이름을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라이프치히 구단의 정식 명칭은 'RB라이프치히'다.

'RB'라는 글자에 대해 독일 내에서는 많은 논란이 일었다. 레드불(Red Bull)의 준말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단 측은 'RasenBall(축구를 뜻하는 또다른 단어)'의 준말이라고 밝혔다. 과거 고양hiFC가 할렐루야-임마누엘의 약자 'hi'에 다른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 떠오른다. 레드불은 구단을 운영하기 위해 이런 꼼수까지 부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돈 때문에 자존심을 팔아 먹었다'면서 '지역 주민들이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2009년 라이프치히 지역 주민들 중 70% 이상이 "레드불의 후원을 환영한다"고 답했다. 성적과 정체성 중 라이프치히 주민들은 성적을 택했던 것이다. 당시 5부리그에 있던 팀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만일 레드불이 K리그에 진출한다면?

과거 K리그에서도 팀의 정체성이 확 바뀌는 일은 종종 있었다. 주로 연고지를 옮기는 팀들이 그랬다. FC서울과 제주가 연고지 이전 당시 팀의 정체성에서 모기업의 색깔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모기업이 바뀔 경우에도 그랬다. 부산 대우 로얄즈가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갈 때 팀의 정체성과 색깔은 완전히 바뀌었다.

만약에 레드불이 K리그 구단 중 한 팀을 인수한다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당장 엠블럼부터 황소 두 마리로 바뀌고, 팀 이름은 'XX 레드불스'가 될 것이다. 유니폼은 기존의 색깔과 상관 없이 흰 바탕에 황소 두 마리가 그려져 있을 것이다. 거의 기존 팀은 없어지고 새 팀이 생겨난다고 보면 될 정도다.

이렇게 된다면 '이러려고 내가 이 팀 경기 봤나' 자괴감이 들 법도 하겠지만 '모기업 레드불'의 가장 큰 매력은 '아낌없이 쓴다'는 것이다. 만일 레드불이 K리그에서 라이프치히만큼의 구단을 키워 내겠다고 결심 한다면 아마 그 팀은 단기간에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출 것이다. 항상 재정 악화와 형편없는 성적으로 고민하는 팀들은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레드불이 K리그에 진출한다고 해서 라이프치히 수준의 돈을 쓸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그리고 아시아 축구 시장을 고려했을 때 K리그는 레드불의 '아시아 유망주 전초 기지' 정도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안정적인 구단 운영과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은 보장될 것이다. 레드불 소속의 모든 축구단의 성적을 고려해보면 K리그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마음 편하게 많은 투자와 호성적을 거두는 팀을 응원할 것인지, 아니면 비록 가난하고 형편없는 성적에 스트레스 받아도 자존심과 자부심을 갖고 응원할 것인지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막상 우리 팀이 레드불에 인수된다고 하면 굉장히 고민할 것이다. 둘 다 놓칠 수 없는 명제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이 문제를 놓고 굉장히 오래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 고민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 해보려고 한다. 물론 현실성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만일 당신의 팀이 레드불에 인수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어떨 것 같나요?

wisdragon@sports-g.com

[사진 = 레드불 ⓒ 레드불 공식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