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그 동안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집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느낌이다.

2016년 한국 성인 남성 축구리그가 모두 종료됐다.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 내셔널리그, K3리그, 그리고 대학 축구 U리그까지 휴식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휴식이 말처럼 달콤하지는 않다. 벌써부터 여기저기 들려오는 소식들은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에 불안에 떨게 한다.

벌써 세 개의 사건이 터졌다. 먼저 고양 자이크로가 K리그 챌린지 탈퇴를 선언했고 충주 험멜은 지자체의 지원 문제로 충주를 떠나 새로운 곳을 알아보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적당한 곳이 없을 경우 팀 해체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내셔널리그 소속의 용인시청은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가 결정됐다.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사건과 관련된 세 곳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고양시, 용인시, 그리고 험멜 축구단이다. 악재를 겪고 나서 고민에 빠졌을 그들의 이야기와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이해 관계를 한 번 알아보자.

고양시의 고민 : 치명타 입은 명성,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지난 2015년 고양시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문체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스포츠산업대상에서 지자체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이다. 문화와 관광을 스포츠와 엮는 '스포츠 융·복합 사업' 활성화를 목표로 프로스포츠 구단 3곳의 연고 정착(고양 자이크로, 고양 다이노스, 고양 오리온스) 등이 수상 이유였다.

하지만 대통령상을 받고 1년도 지나지 않아 고양시는 고양 자이크로의 탈퇴라는 악재가 발생했다. 현재 고양시장인 최성 시장이 2013년 고양hiFC의 고양시 입성을 이끈 장본인 중 하나인 것을 감안 한다면 그저 웃어 넘길 일은 아니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스포츠 산업 도시'라는 고양시의 이미지에 타격이 간 것이다. 최근 스포츠와 고양에 관한 이야기는 온통 고양 자이크로의 프로 탈퇴 뿐이었다.

더 이상 고양 자이크로를 K리그에서 볼 수 없다 ⓒ 고양 자이크로 공식 페이스북

현재 고양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종목은 농구다. 2015-16 시즌 프로농구 정상을 차지한 고양 오리온스 덕분이다. 2011년 대구시에서 연고지를 옮긴 이후 5시즌 동안 오리온스 농구단은 고양시를 대표하는 팀으로 자리 잡았다. 고양 다이노스 야구단과 하이원 아이스하키 팀 또한 고양시에 자리 잡았지만 고양 다이노스는 NC 다이노스의 2군이고 하이원은 춘천시와 고양시를 공동 연고지로 삼는, 엄밀히 말하자면 '진짜' 고양시 팀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고양시가 1군 프로야구단을 유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 내 프로스포츠를 더욱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프로축구단이 계속해서 존재해야 한다. 게다가 관광 활성화도 함께 기대할 수 있는 ACL의 존재는 프로축구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고양 자이크로로 타격 받은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역의 스포츠 산업을 위해 프로축구단은 고양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 밖에 없다.

일부는 고양시가 프로축구단을 연고이전을 통해 유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지금까지 고양시에 자리잡은 대부분 구단이 연고이전을 통해 고양시와 인연을 맺게 됐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할 일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연고이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도 문제지만 현재 연고이전을 검토할 만한 팀을 찾기가 어렵다.

험멜의 고양 연고이전도 조심스럽게 예측이 가능하지만 아직은 의문부호가 붙는다. 운영 주체를 험멜코리아로 유지할 경우 고양시는 프로축구단에 대한 지원금을 연 5억에서 두 배 이상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프로 스포츠 팀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니 시민구단 창단, 혹은 K3리그 고양시민축구단의 프로화는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용인시의 고민 : '3천억 혈세' 새 경기장 어쩌지?

내셔널리그 용인시청을 해체하기로 결정한 용인시는 이제 거대한 난관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바로 용인시가 새로 짓고 있는 종합운동장이다. 2011년 첫 삽을 뜬 이후 아직까지 완공이 안됐다. 2017년 말에 주경기장 완공이 목표다. 애초 용인시의 목표는 1단계로 종합운동장 건립, 2단계로 체육·레저 시설을 만들어 2014년 말까지 시민체육공원을 조성하려고 했다.

문제는 이 당시 용인시가 1조원이 넘는 예산을 경전철 건설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예산이 순식간에 증발한 것이다. 게다가 용인시는 이미 오래 전에 건설된 종합운동장을 가지고 있었다. 또 다른 경기장을 짓는다고 '혈세 낭비'라는 비난이 폭주함에도 불구하고 시는 종합운동장 건설을 밀어붙였다. 심지어 37,000석이 넘는 큰 규모의 경기장이다.

더 이상 고양 자이크로를 K리그에서 볼 수 없다 ⓒ 고양 자이크로 공식 페이스북

초기 1단계 공사에 계획된 예산은 3200억원 가량이었다. 하지만 경전철로 인해 재정난이 오면서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자 축소됐다. 2단계 공사는 무기한 연기하고 1단계 공사는 2800억원 수준으로 줄인 것이다. 이로 인해 종합운동장에 함께 있어야 할 보조경기장과 옥외주차장이 건설 계획에서 빠졌다. 경기장 규격마저 어떠한 대회도 치를 수 없는 수준이지만 이 부분은 수정, 보완될 것으로 보인다.

이 종합운동장을 놓고 시민단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1만석 규모로 줄여 시민체육대회 용도로 건립하자"고 주장했으나 용인시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용인시의 가장 큰 고민은 이 경기장이 완공된 이후다. 이 경기장이 어떠한 대회나 행사도 유치하지 못하고 그저 유지비나 축내고 있다면 지역 내에서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종합운동장을 꾸준히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축구단을 유치하거나 만드는 것이다. 물론 여러가지 시민 행사를 유치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1년 내내 정기적으로 종합운동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프로축구단 외에 딱히 답이 없다. 차라리 실업축구단이라도 있으면 내셔널리그에 참가할 수 있지만 용인시는 용인시청 축구단 해체를 선택했다.

용인시에게 주어진 유예기간은 1년이다. 이 경기장이 2017년 말에 완공되기 때문이다. 용인의 축구 열기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뜨거운 편이다. 정찬민 용인시장은 "임기 내에 프로축구단을 꼭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고 지역 내 31개 읍면동에는 중년 여성들이 중심이 된 '줌마렐라 축구단'이 결성되어 있다. 여러 선택지를 앞에 두고 용인시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험멜의 고민 : 어디 지원 빵빵한 지자체 없소?

험멜 축구단은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충주시와 결별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으로 인한 서로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었다. 대기업이 아닌 험멜코리아는 축구단 운영을 위해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했고 충주시는 험멜코리아의 기대만큼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했다. 양 측 모두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결별이었다.

해체설까지 돌았으나 이는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갈 경우에 등장할 시나리오다. 수십 년간 축구단을 지원했고, 2002년부터 한국대학축구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는 변석화 험멜코리아 대표의 축구계 내 입지를 생각한다면 험멜 축구단의 해체는 쉽게 현실화 시킬 수 없는 이야기다.

더 이상 고양 자이크로를 K리그에서 볼 수 없다 ⓒ 고양 자이크로 공식 페이스북

그렇다면 관건은 험멜 축구단을 어떻게든 유지해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험멜코리아가 축구단에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험멜코리아 측은 지자체가 약 10~15억원 정도 지원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충주시는 이 돈을 지원해줄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험멜 축구단은 새로운 지자체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문제는 그 정도의 금액을 지원해줄 수 있는 지자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시민구단을 운영하는 지자체들은 한 해 수십 억씩 구단에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험멜 측이 우선순위로 고려하고 있는 지자체-기업 컨소시엄 형태의 구단이라면 이야기가 약간 달라진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애매하게 15억 지원하느니 차라리 화끈하게 시민구단을 만들까?'라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험멜코리아가 여러가지 옵션을 다양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석화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구단 운영권은 물론 메인 스폰서 지위까지도 포기할 수 있다"며 "축구단을 가져 간다면 서브 스폰서 형식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험멜코리아의 유연한 입장은 이 팀의 미래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패 맛본 그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지금까지 구구절절 이 세 곳의 입장을 굳이 이야기한 것은 이들 중에서 밀월 관계가 탄생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일 지는 몰라도 서로의 이해 관계가 딱 들어맞고 있다. 물론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갈 가능성 역시 크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각자의 속내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들은 한국 축구가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시장이자 상품이다. 험멜 축구단은 내셔널리그 시절까지 포함해 꽤 오랜 세월 축구단을 운영해온 노하우가 존재하고 고양시와 용인시는 수도권에 위치한 인구 100만명 내외의 대도시다. 그저 무주공산으로 놔두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곳일 수 밖에 없다. 집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면 취약한 부분을 찾아서 다시 수리해야 한다. 이 세 곳은 충분히 좋은 재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양시는 검증되지 않은 고양 자이크로와 손을 잡았다가 K리그 역사상 첫 리그 탈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용인시는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용인시청 축구단을 해체해 향후 시민구단으로 손쉽게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걷어찼다. 그리고 험멜 축구단은 장기적인 재정 플랜을 세우지 않은 채 프로에 뛰어 들었다가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자신있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스포츠, 그리고 축구에 대한 열정은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올 겨울부터 그들의 행보가 시작될 수도 있다. 또 한 번 다가올 한국 축구의 작은 지각 변동을 흥미롭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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