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몇 년 전 나는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너무 멋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내가 본 영상을 먼저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뉴질랜드 럭비 국가대표팀의 '하카(Hakka)'다.

뉴질랜드 팀의 하카는 단순한 춤이 아니다. 하나의 브랜드다. 이 팀은 경기 시작 전 하카를 통해 전의를 다진다. 원래 하카는 뉴질랜드 원주민들의 민속 춤이다. 주로 전쟁에 출전하기 전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는 원주민의 전통을 계승해 이를 럭비 경기에 적용했다.

럭비 월드컵과 같은 대회에서 뉴질랜드의 하카는 항상 많은 관심을 받는다. 중요한 경기에는 하카의 안무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중계 방송사들은 하카를 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열광적인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하카를 주도하는 주장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마이크가 그라운드로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장관을 유튜브나 해외 사이트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럭비란 종목은 굉장히 생소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 스포츠로 각광받는 종목인 럭비가 한국에서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제대로 맛보고 있다. 하지만 그 설움도 슬슬 끝날 때가 보이고 있다.

무관심 속 칠레에서 날아온 낭보

지금 럭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 역시도 럭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럭비의 이웃이라 불리는 미식축구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국내 미식축구 최고 대회인 김치볼에 소녀시대가 하프타임 공연을 했을 때 가서 구경한 것이 전부였다. 당시 운동장을 가득 채운 수천 명의 관중들이 소녀시대의 공연이 끝나자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미식축구와 럭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 한국에 낭보가 날아 들었다. 한국 럭비 대표팀이 20일(한국시간)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칠레와의 인터내셔널 테스트매치에서 38-36 승리를 거뒀다. 0-21로 패색이 짙던 와중에 거둔 극적인 역전승이라 더욱 짜릿하다.

단순한 연습경기 승리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다. 럭비에서 인터내셔널 테스트매치는 축구의 A매치와 같다. 이번 경기 결과는 럭비 세계 랭킹에 반영되기 때문에 양 팀 모두 가용할 수 있는 최상의 전력으로 맞붙는다. 비록 세계 랭킹은 단 한 단계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한국 럭비 대표팀의 인터내셔널 테스트매치 역사 상 첫 승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0-21을 뒤집은 대역전승, 얼마나 극적이었는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럭비를 잘 모른다. 심지어 어떻게 해야 몇 점을 득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잘 와닿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극적이었고 얼마나 대단한 역전승인지 말이다. 이 경기의 최종 결과는 38-36이었다. 일부는 "21점 차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나 또한 체감하기 어렵지만 21점 차를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럭비 경기에서 한 번에 가장 많이 득점할 수 있는 경우는 트라이(럭비의 터치다운과 같은 개념)에 이은 컨버전 킥 성공이다. 이 때 트라이 5점, 컨버전 킥 2점으로 총 7점을 얻을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야구의 만루홈런과 비슷하지 않을까?

따라서 21점 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득점 과정을 세 번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라이를 성공한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데 컨버전 킥 성공까지 해야한다. 그것도 세 번을 해야한다. 야구에서 한 팀이 만루홈런 세 번 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럭비에서는 그 정도까지 어려운 일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대단한 일을 한 것은 분명하다.

럭비 대표팀의 목표, 2019 럭비 월드컵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는 럭비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럭비는 많은 인기를 자랑한다. 4년 마다 열리는 럭비 월드컵은 수억 명이 시청하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다. 총 20개국이 본선에서 맞붙는다. 이전 대회 8강에 진출한 팀들이 자동으로 다음 대회 본선에 진출하고 나머지 12장의 본선 티켓을 대륙 별로 배분한다. 아시아에서는 1.5장의 본선 티켓이 배정되어 있다. 최상위 팀이 본선에 직행하고 차상위 팀은 오세아니아 3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지금까지 아시아 럭비의 대표는 일본이다. 일본은 럭비 월드컵 본선의 단골 손님이다. 유일한 한 장의 티켓은 큰 이변이 없는 한 항상 일본의 차지였다. 하지만 본선 경쟁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2011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 A조 최하위를 기록했고 2015 월드컵은 본선 사상 첫 승과 함께 3승을 쓸어 담았지만 3위로 아쉽게 8강전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럭비의 목표는 2019 럭비 월드컵과 2020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이다. 공교롭게도 두 대회 모두 일본에서 열린다. 본선에 진출할 경우 비교적 유리한 환경에서 경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지 우리나라의 럭비 경쟁력이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도 희망은 보인다. 대한럭비협회가 목표 달성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경기 역시 투자의 결실이었다. 지금까지 재정 문제로 아시아 이외의 국가와 경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로 럭비 강국 뉴질랜드 출신의 감독을 선임했고, 칠레까지 날아가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럭비 저변 확대 역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하카를 볼 수 있을까

만일 2019 럭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면 국내에서 한국 럭비의 위상은 꽤 수직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축구 월드컵, 하계 올림픽에 이어 세계에서 3위 규모라고 평가받는 럭비 월드컵에 한국의 이름이 있다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조심스레 생중계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적어도 국내에서의 엄청난 무관심이 서서히 관심으로 바뀌는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아직 한국 럭비는 추운 겨울 속이다. 하지만 봄의 기운이 조금씩 보인다 ⓒ 대한럭비협회

물론 냉정하게 현재 전력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첫 럭비 월드컵 본선은 참가에 의의를 둬야할 것이다. 아시아 럭비와 세계 럭비의 수준 차이는 꽤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럭비 월드컵 참가는 한국 럭비에 많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한국이 비로소 세상 밖에 나오는 하나의 계기가 바로 럭비 월드컵이기 때문이다.

2019년 월드컵에 진출해 한국이 뉴질랜드와 한 조에 편성된다면 그것 또한 굉장히 재밌는 볼거리가 될 것 같다. 뉴질랜드의 하카를 보며 전의를 다지는 한국 대표팀의 모습을 보고, 세계 최강을 상대로 투혼을 발휘하는 그들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또다른 감동을 줄 것이다.

아직 한국 럭비는 가야할 길이 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퇴보하지 않고 조금씩 전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반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들이 흘린 땀이 2019 일본 럭비 월드컵 본선 진출과 2022년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달콤한 결실로 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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