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FC는 김학범 감독과 결별한 뒤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성남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성남이라는 팀이 K리그에서 갖는 상징성은 대단히 크다. 리그에서 무려 7번이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강력한 팀이었고 한때는 국가대표보다도 강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K리그에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고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폴란드 대표팀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친 적도 있다. 피스컵을 통해 전세계 명문 구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남은 한국 축구사에서 대단히 비중 있는 팀이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경험했고 클럽월드컵에서는 인터밀란과 ‘맞짱’을 뜨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건 다 옛 추억일 뿐이다. 앞으로는 ‘리즈시절’이라는 말대신 ‘성남의 맥콜 시절’이라는 말을 대신 써야할 것 같다. 성남은 어제(20일) 결국 K리그 챌린지로의 강등이라는 충격적인 일을 겪고야 말았다. 성남이 2부리그로 간다는 건 불과 몇 년 전, 아니 작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남이 강등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러 시,도민구단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될 때도 성남만큼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찬란한 영광을 자랑하던 부산아이파크가 기업구단 최초로 강등됐을 때도 성남만큼은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성남이 아무리 망해도 명문의 기운은 어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남이 시민구단으로 전환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성남은 한 해에 무려 180억 원이라는 예산을 쓰는 팀이다. K리그 클래식에서 생존한 인천유나이티드(130억 원)와 광주FC(71억 원)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썼으니 성남 정도면 ‘가난한 시민구단’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김두현을 비롯해 황진성, 장학영, 황의조 등 국가대표까지도 경험한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성남은 K리그 챌린지로의 강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팀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내가 지난 칼럼에서 주장한 것처럼 성남은 강원과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2주간의 휴식기를 얻어 전혀 불리하지 않은 상황으로 경기에 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남은 망했다. 수원FC의 K리그 챌린지 강등은 ‘망했다’고 표현할 수 없지만 성남의 강등은 ‘망했다’고 표현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빵빵한 예산을 쌓아 놓고 스타 선수들을 앞세우고 가슴에는 7개의 별을 달고 뛰는 이 팀이 2부리그로 내려간 건 ‘망했다’고 표현할 만큼 심각한 일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성남은 앞으로 수년 간 다시 K리그 클래식에 올라올 가망이 없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아산무궁화와 부천FC, 부산아이파크, 서울이랜드, 대전시티즌, 경남FC, 수원FC 등과 경쟁해서 지금의 성남은 전혀 앞설 것이 없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건 성남은 망하지 않을 팀이었는데 망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 안방에서 광저우헝다와 정면으로 맞붙을 만큼 저력을 발휘했던 성남이 왜 이렇게 급격하게 추락하고 말았을까. 올 시즌 중반까지도 리그 3위를 기록하며 내년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에 도전하던 성남은 왜 이렇게 순식간에 K리그 챌린지로 떨어지고 말았을까.

가장 큰 문제는 과거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김학범 감독의 경질 때문이다. 나는 성남이 평범한 시민구단으로 전락하는 건 성남이 김학범 감독과 경질하는 순간부터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김학범 감독 경질이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한다. 성남은 올해 개막부터 5월까지 6승 3무 3패를 기록하며 상위권을 유지하다가 6월부터 8월까지 16경기 중 4승(4승 5무 7패)만을 거두는 부진을 겪었다. 3연패를 당하는 등 경기력은 처참했다. 솔직히 이때 성남의 경기가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수준이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리그 7위였고 상위권과의 승점차도 적었다. 조금만 잘 정비하면 충분히 다시 도약할 수 있었지만 성남은 김학범 감독에게 전격적으로 경질을 통보했다. 단순히 성적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까지 겹쳐 김학범 감독을 내쳤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어찌 됐건 나는 올 시즌까지는 그래도 김학범 감독을 지켜보자는 입장이었지만 성남은 단호하게 그와 이별했다. 뭐 내가 월급 주는 거 아니니 이해하려고 했다. 감독 경질에 대해 구단의 뜻도 충분히 존중한다.

U-18 팀을 지휘하던 구상범 감독은 갑자기 성인팀 감독이 돼 팀을 이끌어야 했다. ⓒ 성남FC

감독대행의 대행, 악순환의 반복

김학범 감독 경질이야 그럴 수도 있다고 치지만 이때부터가 정말 망하기 시작한 거다. 감독을 경질했으면 그에 맞는 역할을 해줄 이를 찾아야 한다. 김학범 감독을 자르기 전에 미리 미리 준비해서 후임자를 물색하는 게 감독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정 급한 상황에서는 수석코치에게 한두 경기 감독대행을 맡기고 그 사이 재빠르게 여기 저기 물색해서, 아니 알바몬에 채용 공고라도 올려서 새로운 감독을 찾는 게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성남의 행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김학범 감독을 경질하면서 함께 했던 코치진 전부를 내쳤다. 그렇게 이영진, 김영철, 김해운, 김호영 코치까지도 팀을 떠나야 했다. 시즌 도중에 감독은 물론 코치까지 일괄적으로 내치는 건 사상초유의 일이다. 하루아침에 성남은 감독은커녕 감독대행 역할을 할 수석코치까지도 공석이 되고야 말았다. 자고 일어나보니 대통령도 없어지고 국무총리까지도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감독과 수석코치가 한꺼번에 사라진다는 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도 이해가 안 간다. 새로운 감독이 자신이 선호하는 코치진을 데리고 오느라 기존 코치들의 자리를 비운 것이라고 해도 고개를 갸우뚱 할만한 일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감독이 유능하다고 하더라도 시즌 도중에 이렇게 통째로 지도 체계를 갈아 엎는다는 건 무리이기 때문이다. 프로축구는 조기축구가 아니다. 긴 호흡으로 전술을 가다듬고 용병술을 발휘해 그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그의 코치들이 와도 고개를 갸우뚱 할 만한 상황에서 성남은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했다. 구상범 U-18 감독을 감독대행으로 앉힌 것이다. 아직 성인 무대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고 검증도 되지 않은 지도자가 졸지에 성인 프로팀 감독대행을 맡게 됐으니 팀이 제대로 돌아가면 P급 라이선스를 따고 십수년 간 프로 무대에 도전했던 다른 감독들이 바보가 되는 상황이었다. 더 황당한 건 구상범 U-18 감독을 감독대행으로 선임한 뒤에 코치는 변성환 U-15 감독, 남궁도 U-12 감독으로 채웠다는 점이다. 은퇴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변성환, 남궁도 감독이 차리라 선수로 복귀해서 뛰는 게 더 현실적인 일일 텐데 이들은 졸지에 성인팀 코치가 됐다.

성인팀 코치진을 전부 내치고 이 자리를 유소년 팀 감독들로 채우는 건 처음 보는 일이다. 더군다나 이 상황에서 성남은 상하위 스플릿 경쟁을 하고 있었고 이후에는 잔류 경쟁까지 했다. 이런 팀이 잘 되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하지만 성남은 여기에서 한 번 더 완벽히 망하는 길을 택했다.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떨어진 후 팬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사과했던 구상범 감독대행을 다시 내치고 변성환 코치, 그러니까 불과 두 달 전까지는 U-15팀 감독을 맡았던 이를 감독대행의 대행으로 선임한 것이다. 구단에서는 “구상범 감독대행이 건강상의 문제로 먼저 지휘봉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했다”고 밝혔지만 구상범 감독대행에게 구단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었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중학생을 지도했던 지도자가 불과 두 달 만에 구단의 운명이 걸린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벤치에 앉아 모든 권한을 행사하려하니 팀이 무슨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나. U-18 감독이 갑자기 감독대행이 된 것도 황당한데 여기에 또 감독대행의 대행으로 U-15팀 감독이 왔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U-18 팀을 지휘하던 구상범 감독은 갑자기 성인팀 감독이 돼 팀을 이끌어야 했다. ⓒ 성남FC

김학범 경질 이후의 대처가 더 최악

문제는 성남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남은 불과 2년 전에도 박종환 감독이 중도 퇴진하자 이상윤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하더니 4개월 만에 이 감독대행을 해임하고 그 밑에서 코치를 하던 이영진 코치를 또 다시 감독대행의 대행으로 앉히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감독대행은 어디까지나 기존 감독이 팀을 떠나고 다음 감독이 선임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쓰는 일이어야 하는데 성남은 대안도 없이 감독을 경질해 놓고 감독대행으로 이를 대충 버티다가 또 감독대행의 대행을 앉히는 몰상식한 행동을 이어오고 있다. 전통이라면 이것도 성남의 전통이다. 감독 경질이야 경기력이나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 자리를 프로 경험이 전무한 유소년 감독으로 채우고 그 빈자리를 더 하위 연령대의 감독대행으로 채우는 상황에서는 팀이 될 것도 안 된다. 대책 없이 감독부터 자르고 보는 성남이 2주간의 휴식기 때문에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에 대해 사과부터 하고 싶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성남은 망하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망했다. 구단 프런트의 이런 정신머리로는 회생불가다.

‘대행의 대행’으로 채울 만큼 감독 자리에 대한 귀중함을 모른다면 성남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김학범 감독을 경질할 때부터 대안이 있었어야 했고 정 급했다면 수석코치에게 팀을 맡겼어야 했다. 그것도 원치 않았다면 새로운 감독을 모셔왔어야 하는 게 정상적인 팀이다. 올 시즌 성남보다 더 저조한 성적으로 강등 당한 수원FC에 대해서는 “그래도 잘했다”는 여론이 대다수인데 반해 훨씬 더 승점이 많았던 성남의 강등에는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도 반성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구상범 감독대행과 변성환 감독대행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가진 능력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이들에게 너무 큰 짐을 안긴 구단 프런트다. 중대장도 없고 소대장도 없는데 분대장까지 후방으로 차출 시켜버리고 일병한테 전쟁터에서 지휘를 맡긴 군대가 참패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휘관이 경험도 없고 자격도 부족한데 능력 있는 저격수가 있고 좋은 무기가 있으면 뭐하나. 유소년 감독을 감독대행으로 앉히고 또 그 감독대행의 대행이 지휘하는 팀에서 김두현이 무슨 소용이고 박진포가 무슨 소용인가. ‘감독대행의 대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성남은 결국 내려갈 곳으로 내려갔다. 이제 성남은 K리그 챌린지에서 다시 기본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따라 맥콜이 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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