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2년제 대학 송호대는 최근 한국 축구계에서 가장 거센 태풍이 됐다. ⓒ송호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기자] ‘한우의 고장’인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2년제 송호대학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리고 이 대학에서 축구부를 운영 중이라는 사실은 아는 이들은 더욱 없다. 또한 이 송호대가 현재 대학 축구계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이들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16일)은 이 송호대를 주목하려 한다. 송호대가 역사적인 경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 다 쓰는 우즈벡전 리뷰는 다른 매체에서 보시라. 오늘 만큼은 송호대의 행보가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명의 선수가 일화의 주장이 되기까지

하성준은 중대부고와 초당대를 졸업한 뒤 1989년 갈 곳 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받아줄 프로팀은 없었다. 그런데 1989년 창단하는 일화천마 축구단 초대 감독인 박종환 감독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성실하고도 악착같은 플레이를 펼치는 하성준에게 매료된 것이었다. 하성준은 데뷔 첫해인 1989년 28경기에 나서며 주전으로 도약했고 1996년 은퇴할 때까지 K리그에서 무려 233경기 출장 7골 8도움이라는 훌륭한 기록을 남겼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는 박종환 감독의 믿음에 가장 보답하는 선수였다. 하성준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1993년부터 1995년 일화의 정규리그 3연패 위업을 달성할 당시 박종환 감독 밑에서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박종환 감독을 존경하는 스승으로 모셨다. 현역 은퇴 후 춘천고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 것도 박종환 감독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다. 박종환 감독의 모교이기도 한 춘천고는 1997년 당시 축구부원이 13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모교 축구부를 살리기 위해 고민하던 박종환 감독은 성실한 하성준 감독에게 춘천고를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곧바로 하성준 감독은 열악한 춘천고를 어느 정도 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혹독한 체력 훈련을 통해 훈련량이 부족했던 선수들을 선수답게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하성준 감독은 다시 박종환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박종환 감독이 여자축구 숭민원더스 단장으로 취임한 뒤 다시 하성준 감독에게 SOS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여자축구팀 하나 만드는데 와서 도와줘.” 하성준 감독은 그렇게 숭민원더스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성준 감독은 곧장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훈련 도중에는 여자 선수들의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 그의 훈련 방식은 혹독했다. 기초가 부족한 선수들을 다잡기 위한 방법이었다. 심지어 호랑이로 소문난 박종환 단장이 만류할 정도로 하성준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무서운 감독으로 통했다. 하지만 그는 훈련이 끝나면 여자선수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다. 그런 하성준 감독의 훈련법이 통한 것일까. 숭민원더스가 창단 3개월 만에 대통령배 우승을 차지하는 등 창단 첫 해에만 무려 세 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하성준 감독과 박종환 감독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다. 박종환 감독은 2003년 대구FC 초대 사령탑에 선임된 뒤 하성준 감독을 수석코치로 앉혔다. 그만큼 박종환 감독에게 하성준은 믿음직한 제자이자 지도자였다.

2011 전국 1,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송호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송호대

송호대가 ‘송호부대’로 불리는 이유는?

하성준 감독은 2009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박종환 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 대학 무대에서 한 번 지도자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그는 직접 대학팀 창단을 추진했다. 이름 있는 대학은 이미 축구부를 운영 중인 상황에서 하성준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없었고 결국 그는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송호대를 선택했다. 2000년 개교한 2년제 전문대학인 송호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학교였지만 하성준 감독은 기적을 만들어 보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선수들을 소집하니 한숨이 나오는 실력이었다. 리프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고 기본기도 엉망이었다. 이름도 없는 2년제 전문대 신생 축구부가 경쟁력 있는 선수를 선발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성준 감독 스스로도 고등학교 팀을 지도하고 있는 후배 감독들에게 “선수 좀 보내달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였다.

결국 하성준 감독은 4년제 대학에서 선수 선발을 다 끝내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선수들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선수단을 채우고 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성준 감독은 역시나 지옥훈련으로 유명한 박종환 감독의 제자다웠다. 새벽 훈련은 물론 오전 훈련, 오후 훈련, 저녁 훈련 등 무려 하루에 훈련을 네 번이나 소화하며 선수들을 굴렸다. 24시간 중 훈련에 할애하는 시간만 8시간에 달했다. 하성준 감독이 이렇게 선수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나도 어린 나이에 축구선수로 실패해 좌절해 봐서 우리 선수들 마음을 잘 안다. 우리 선수들에게 축구선수로서의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물론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숙소 주변에는 이 선수들이 일탈할 곳도 없었다. 훈련에만 집중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선수들도 하고자 하는 의욕이 강했다. 프로팀은 물론 실업이나 다른 대학팀에서도 외면 받은 이들에게 송호대는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더 물러설 곳은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기 시작했다. 하성준 감독의 지론은 간단했다. “많이 뛰어야 한다. 기본기에서 밀리는 우리가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은 체력으로 이기는 것밖에 없다. 정신력과 체력의 우리의 기본 바탕이다.” 하성준 감독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체력 훈련으로 송호대 선수들을 단련시켰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송호대를 ‘송호부대’라고 부를 정도였다. 선수들도 “일찍 군대에 왔다고 생각하자”면서 군말 없이 훈련에 임했다. 이뿐 아니라 송호대 선수들은 훈련이 끝나도 복장을 통일하고 시간을 준수하는 등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한다. “때가 어느 땐데 이런 군대식 축구가 통하느냐”고 반문할 이들도 있겠지만 더 이상 떨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송호대 선수들에게 이런 혹독한 훈련과 엄격한 규율은 필요했다.

2011 전국 1,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송호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송호대

송호대는 오늘도 죽어라 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무명의 송호대가 창단 첫 해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창단 후 처음 참가한 2009년 추계 1,2학년 대회에서 8강에 오르며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한 송호대는 2010년 추계 1,2학년 대회에서는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4년제 대학이 모두 참가하는 2010년 추계연맹전에서는 1,2학년만 있는 송호대가 4학년 선수들 사이에서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마침내 창단 3년째인 2011년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중앙대와 성균관대, 홍익대 등 대학 축구 강호들이 대거 참가한 2011년 전국1·2학년대학축구선수권에서 승부차기 끝에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6골을 기록한 박세준이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왕에 올랐고 유승훈은 최우수 골키퍼상을, 홍요셉은 최우수수비상을 수상하는 등 개인상까지도 송호대가 싹쓸이했다. 대학 축구계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2012년 치러진 대회 결승에서는 비록 한양대에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연장 접전을 펼치며 체력적으로 앞서는 모습을 보이는 등 송호대는 다크호스로 성장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무명 대학의 무명 선수들이었지만 그들은 이제 대학 무대에서 가장 껄끄러운 존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송호대의 경기를 지켜본 이들은 그들의 체력과 정신력에 이런 감탄사를 내뱉었다. “송호부대 녀석들은 후반전도 전반전을 뛰는 것처럼 죽어라 뛴다.” 그런데 다른 대학팀과 다르게 송호대 선수들은 졸업하면 곧바로 프로 무대에 진출하는 게 아니라 4년제 대학 편입을 목표로 한다. 홍요셉과 조준재는 홍익대에 편입한 뒤 각각 부천FC, 충주험멜에 입단했고 박승우는 청주대 편입 후 고양자이크로FC에 입단하기도 했다. 송호대는 대학 무대에서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선수들이 4년제 대학에 더 많이 편입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까지도 하고 있다.

이건 송호대의 한계이기도 했다. 2년제 전문대학이다보니 4년제 대학교와의 경기에서는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4년 동안 하는 걸 2년 만에 다 소화하는 것도 무리였고 선수층 자체도 4년제 대학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성준 감독은 이런 한계를 체력으로 극복하더니 올해에는 모두가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연출해 내고 있다. 2016 U리그 강원, 충북 권역에서 상지대와 가톨릭관동대 등 전통의 강호들과 한 조에 속한 송호대는 두텁지 못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8승 3무 3패 23득점 10실점하며 3위로 왕중왕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경희고를 졸업하고 송호대에 진학한 이재건은 12경기에서 9골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송호대의 엄청난 역사는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다른 학교 고학년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버텨내기 위해 체력을 키운다”던 그들은 악착같은 플레이로 4학년 형들이 대거 포진한 축구 명문대를 연거푸 꺾기 시작했다. 그저 만만치 않은 상대 정도로만 여겼던 송호대의 엄청난 돌풍, 그 시작이었다.

2011 전국 1,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송호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송호대

‘무명의 전문대학’ 송호대의 믿을 수 없는 돌풍

강원, 충청 권역에서 3위를 기록한 송호대는 이 자격으로 전국에서 축구 좀 한다는 32개 팀이 겨루는 2016 인천국제공항 U리그 왕중왕전에 참가하게 됐다. 그들의 32강 첫 상대는 호남대였다. 호남대는 전북,전남,광주 8권역에서 12승 1무 1패 38득점 9실점하며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한 강호 중의 강호였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송호대는 전혀 물러서지 않는 경기를 펼치며 호남대를 3-2로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호남대의 믿을 수 없는 패배였다. 이어 송호대의 16강 상대는 홍익대였다. 홍익대는 2011년 대회 우승팀이자 32강전에서 우승 후보 인천대를 제압한 강호였다. 그런데 한 번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송호대는 이 경기에서도 홍익대를 2-1로 꺾으며 또 한 번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여기에서도 끝난 게 아니었다. 송호대는 8강전에서는 지난 대회 챔피언이자 요새 대학 무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용인대까지도 2-1로 이겼다. 용인대는 연세대와 단국대, 경희대 등 강호들이 속한 4권역에서 10승 2무 2패 40득점 12실점하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내던 팀이었으니 송호대의 승리는 단순히 이변이나 파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송호대의 4강 상대는 동국대였다. 2권역에서 6승 6무 28득점 8실점하며 무패 행진으로 2위를 기록한 동국대는 특히나 수비가 강한 팀이었다. 하지만 송호대의 질주는 동국대를 상대로도 멈추지 않았다. 지난 6일 열린 경기에서 송호대는 12경기에서 단 8실점에 그쳤던 동국대를 상대로 무려 세 골이나 퍼부으며 3-2 승리를 따내는 기적을 연출했다. 송호대가 사상 최초로 U리그 왕중왕전 결승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특히나 이재건은 4경기에서 무려 5골을 뽑아내며 펄펄 날고 있다. 벌써부터 K리그 여러 구단은 물론 J리그에서도 이재건에게 눈독을 들인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그를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창단 당시만 하더라도 비웃음을 샀던 송호대는 이제 대학 최정상 무대를 위해 딱 한 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다. 그 역사적인 경기는 바로 오늘(16일) 오후 2시 펼쳐진다. 송호대 선수들뿐 아니라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대단히 의미 있는 경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송호대의 결승 상대는 버겁다. 한국 축구를 이끄는 최고 명문대인 고려대가 바로 송호대의 결승 상대이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준결승전에서 연세대를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했고 안방인 고려대 녹지구장에서 재학생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결승전 장소는 권역리그의 홈경기 관중수가 많은 팀의 학교 캠퍼스에서 결승전이 열린다는 규정에 따라 고려대에서 결승 대결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고려대는 U-19 대표팀 주전 골키퍼 송범근 등 선수 전원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최고의 선수들이다. 갈 곳이 없어 무명이나 다름없던 강원도 횡성의 2년제 전문대학에 입학한 선수들에게 오늘 펼쳐지는 결승전은 꿈의 무대나 다름없다. 4학년까지 대거 포진한 고려대 선수들과 1,2학년이 전부인 송호대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는 자칫 싱거울 수도 있지만 현재 송호대가 보여주는 경기력과 투혼은 어마어마하다. 기적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정상 문턱에 선 그들의 마지막 도전

하성준 감독은 고려대와의 경기를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선수들이 많이 혼나고 힘든 훈련을 하면서도 잘 참아줬다. 사실 나도 잘 해주고 싶은데 혼낼 때가 무척 속상하다. 말은 잘 안 해도 늘 선수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고려대와의 결승전은 한 번 자신 있게 해볼 생각이다. 이번 대회가 마지막인 선수들이 많아 후회 없는 경기를 치르고 싶다.” 이제 송호대의 2학년 선수들은 이 대회가 끝나면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나야 한다.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거나 실업팀을 알아봐야 하는 처지다. 축구를 그만둬야 하는 선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의 마지막 승부가 더 특별하다. 한 편의 드라마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 기적 같은 도전의 마지막 장면은 오늘 오후 2시에 펼쳐진다.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2년제 전문대학의 무명 축구선수들이 펼치는 기적과도 같은 이 소설의 끝은 어떻게 쓰여질까. 어떤 결말이 펼쳐지건 그들의 마지막 장면엔 많은 이들의 박수가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래야 말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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