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모두가 눈치게임을 시작했다. 4일 간의 긴 싸움 끝에 두산 베어스의 김재호가 외쳤다. "1!"

꺼져가던 FA 거품이 다시 시작됐다. 15일 두산은 유격수 김재호와 4년간 총액 50억원(계약금 20억원, 연봉 6억5천만원, 인센티브 4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인센티브에 대한 세부 계약 조건은 상호 합의 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재호의 계약은 이제 야구팬들의 겨울을 책임질 스토브리그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마냥 흥미롭지는 않다. 이번 겨울 첫 FA 계약부터 '거품 논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앞으로 벌어질 스토브리그에 대한 우려가 가득하다. 당연하다. 나 역시도 김재호의 이번 FA 계약은 본인에게 대박이겠지만 거품이라고 본다. 두산과 김재호는 모두 만족스러웠겠지만 KBO리그 전체를 봤을 때 첫 단추를 굉장히 잘못 꿰었다.

FA 시장의 '눈치게임', 그 중에서도 빨랐던 김재호와 두산

이번 FA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원소속팀 우선 협상 제도가 폐지됐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에 대해 원소속팀이 우선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FA 공시 이후 7일 간은 원소속팀과 협상하고 그 이후는 타 팀과만 교섭이 가능했다. 타 팀과의 교섭에도 실패할 경우 모든 구단과의 협상권이 열리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여기까지 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때 하는 계약은 울며 겨자먹기식 계약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올 시즌부터 이 제도가 없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치게임이 시작됐다. 어차피 협상 기간은 길다. 과거였다면 원소속팀이 팀의 간판 선수를 잡기 위해 7일 안에 총력전을 펼쳐야 했다. 하지만 모두가 내년 1월 15일까지 협상할 수 있으니 여유로워졌다. 구단도 천천히 선수를 설득할 수 있고, 선수는 자신에게 온 모든 제안을 면밀하게 검토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호와 두산은 비교적 빨랐다. 양 측 모두 이해 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김재호의 잔류를 첫 번째 과제로 삼았고 김재호 역시 두산에 남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가 의지를 드러냈고 구단이 예우를 해주니 FA 계약이 원활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씁쓸함은 남는다. 이번 FA 시장의 '첫 계약'이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올 시즌 FA 시장을 주시했다. 조금씩 꺼지는듯한 FA 거품이 완전히 꺼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많은 구단들이 운영비를 줄이거나 선수 육성으로 전략을 바꿨기 때문이다. 비록 대형 선수들이 FA 시장에 나왔지만 예년처럼 과열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재호의 '첫 계약'은 기대를 실망으로 바꿔버렸다.

김재호의 계약은 올 시즌의 '기준점'

김재호의 계약은 FA 시장 전체에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김재호 정도의 선수는 4년 50억'이라는 기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 때문에 김재호와 두산이 가장 많이 비판을 받는 것이다. 단순히 김재호 한 명의 경우라면 큰 상관이 없겠지만 이번 계약은 KBO리그 FA 시장 전체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김재호는 물론 훌륭한 선수다. 지난 2년 간 두산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올 시즌은 팀의 주장을 맡아 KBO리그 통합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FA 시장에 김재호보다 더 대어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당장 FA 시장 빅5라고 불리는 차우찬과 최형우(이상 삼성), 김광현(SK), 양현종(KIA), 황재균(롯데)의 몸값 또한 김재호의 계약으로 인해 폭등할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하는 황재균은 실패 하더라도 여전히 '핫한 카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 롯데 자이언츠 제공

그 동안 각 구단은 어느 정도의 금액을 제시해야 할 지 무척이나 고민했을 것이다. 팀의 간판 선수에게 합당한 예우를 해주기 위해서는 많은 금액을 제시해야 하지만 FA 거품에 대한 논란이 겨울마다 뜨거운 가운데 선뜻 큰 돈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좋은 기준이 하나 세워진 것이다.

이제 김재호가 출발선을 끊었으니 계속해서 FA 계약 소식은 들려올 것이다. '올 시즌은 FA 거품이 좀 빠질까'란 기대가 있었지만 첫 계약부터 여지없이 그 기대감은 무너졌다.김재호보다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들은 대부분 50억 이상의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다.

매년 뜨거운 FA 거품 논란, 모두의 통 큰 결단 필요하다

더 이상 기업이 구단에게 통 큰 투자를 한다고 이미지가 좋아지는 시대는 끝났다. 당장 두산만 봐도 그렇다. 김재호에게 4년 50억이라는 거액을 안겨주고도 '직원들 해고한 돈을 FA 계약금에 쓰냐'는 비아냥 가득한 반응을 얻는다. 리그 최강팀인 두산이 이런 소리를 들으니 다른 구단의 FA 거품 계약에는 어떤 반응이 나올 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에게 합당한 예우를 갖춰 보상하는 것도 좋고, 팀 전력의 핵심 선수의 간판 선수를 붙잡기 위해 생각보다 높은 금액을 부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KBO리그 시장은 너무나도 거품이 껴있다. 정말로 FA 100억 시대를 보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차라리 FA 계약에 들어가는 돈을 유소년 야구에 대한 투자나 구단 인프라 구축을 위해 썼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든다. 야구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아직도 수많은 야구선수들이 생계 유지나 겨우 할 수 있는 정도의 연봉을 받으며 훈련하고 있다. 뿌리는 말라죽고 있는데 과실만 화려해보이는 나무가 현재 KBO리그의 모습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간절히 기도해서 우주의 기운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KBO리그 모든 구단의 단호한 결의도 필요하지만 스타 선수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 또한 필요하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막대한 돈을 과감히 야구의 미래를 위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야구가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번 FA 시장은 겨우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수많은 선수들의 FA 계약 소식이 우리에게 들려올 것이다. 김재호의 FA 계약은 '거품 시장'의 예고편일 뿐이다. 몇 년째 지속되는 고민이지만 이러한 FA 계약이 정말로 KBO리그, 그리고 한국 야구에 도움이 될 지는 모두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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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재호 ⓒ 두산 베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