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현대미포조선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아마 내일(12일)은 축구계가 온통 한국 대표팀 이야기로 떠들썩할 것이다. 오늘(11일) 밤에 한국과 캐나다의 A매치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경기다. 그런데 우리는 이 순간 정말 마지막을 맞는 한 팀의 운명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하게 대하고 있다. 내일은 한국-캐나다전이 펼쳐진 다음 날이기도 하지만 한국 실업 축구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전설적인 한 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날이기도 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팀이 이렇게 초라하게 퇴장한다는 건 참으로 아쉽다. 내가 A매치 소식을 뒤로하고 오늘 이 팀을 조명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렇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은 바로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이다.

‘상무 천하’를 깬 신생팀 울산미포

1997년 말 한국 축구는 큰 위기를 맞았다.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한일은행과 기업은행, 국민은행 등 금융 축구단이 연속으로 해체하면서 실업축구가 존폐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연이은 팀 해체로 리그가 지속될지도 걱정하던 때였다. 그런데 이렇게 팀이 줄줄이 쓰러지는 와중에 당당히 창단 선언을 한 팀이 있었다. 울산시에 소재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산하 현대미포조선이 실업 축구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는 축구계에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던 ‘현대가’의 작품이었다. 이미 울산 지역에 울산현대라는 프로팀을 보유하고 있던 현대중공업은 같은 연고 내에 같은 계열사 팀을 만들 이유가 없었지만 실업 축구를 살리기 위해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울산현대미포조선 돌고래 축구단은 이렇게 1998년 7월 첫 출범하게 됐다. 감독은 기업은행을 이끌었던 조동현 감독이 맡았고 코치는 최근 대전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한 이영익 코치가 맡았다.

그런데 울산현대미포조선은 단순한 실업팀 하나의 수준을 넘어섰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은 프로팀 출신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실업 축구계를 뒤흔들었다. 실업 정상급이었던 이랜드의 주장 이광철 등도 울산현대미포조선 유니폼을 입었다. 창단식에 앞서 발 몇 번 맞추고 소화한 연습경기에서는 J리그 오이타 트리니타를 3-2로 제압하는 등 창단 전부터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이뿐 아니라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J리그 제프유나이티드에 입단했던 김대의까지도 영입했다. 당시 대표팀에서도 활약했던 김대의는 제프유나이티드에서 불화와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자 국내로의 유턴을 결정했는데 놀라운 건 그 팀이 프로팀도 아닌 실업 축구 울산현대미포조선이었다는 점이다. IMF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한국 실업 축구계에서 울산현대미포조선의 등장은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당시 실업 축구는 상무 천하였다. 최용수를 비롯해 박철, 노태경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상무를 실업 무대에서 제압할 만한 팀은 없었다. 그런데 울산현대미포조선이 창단 10개월 만에 사고를 쳤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이 1999년 4월 실업 팀은 물론 프로 2군들도 대거 참가한 춘계실업연맹전 결승전에서 상무를 제압하고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었다. 특히 김대의는 결승전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며 창단 첫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고 대회 MVP까지도 수상했다. 아무리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창단 10개월 만에 실업 최강 상무를 제압하고 정상에 섰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이때부터 울산현대미포조선은 실업 무대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찬란한 울산현대미포조선 우승 경력은 이렇게 1999년부터 시작됐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 ⓒ울산현대미포조선

울산미포, 그들이 만들어낸 ‘기록의 역사’

울산현대미포조선은 FA컵에서도 프로팀과 대등하게 싸우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나 울산현대와의 경기는 늘 치열했다. 2001년 FA컵에서도 울산현대를 만나 선방했지만 결국 0-1로 패한 울산현대미포조선은 2002년 FA컵 16강에서도 울산현대와 격돌했다. 이미 1라운드에서 안양LG를 제압하며 저력을 과시한 울산현대미포조선은 2-2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던 상황에서 결국 울산현대 이천수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며 2-3으로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울산현대미포조선이 당시 K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며 훌륭한 경기력을 자랑하던 울산현대에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격돌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박희완(전남), 민영기(울산) 등 프로에서 외면 받았던 선수들은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 악으로 깡으로 뛰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은 실업 무대를 평정한 건 물론 FA컵에서는 프로팀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역할까지도 해냈다.

2005년에도 그들은 대단한 역사를 썼다. 프로팀과 대등하게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연거푸 프로팀들을 제압하며 FA컵 결승에까지 오른 것이었다. 부산아이파크와 대전시티즌, 포항스틸러스, 전남드래곤즈 등을 연이어 꺾으며 FA컵 결승 무대에 서게 된 울산현대미포조선의 저력은 엄청났다. 특히나 대전과 포항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거둔 승리가 대단했는데 당시 울산현대미포조선에는 골키퍼가 양지원 단 한 명 뿐이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드라마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비록 결승에서 전북현대에 0-1로 패했지만 울산현대미포조선은 이제 ‘난적’이 아니라 ‘강호’라는 칭호를 부여받기에 충분한 팀이 됐다. 만약 결승에서 울산현대미포조선이 전북현대를 제압하고 이듬해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따냈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북현대가 이 대회 우승 자격으로 챔피언스리그에 나가 역사적인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무려 24경기 연속 무패라는 금자탑을 달성하기도 했다. 12연승이라는 대단한 기록도 이때 달성했다. 하지만 내셔널리그 연속 무패 기록을 또 깬 것도 그들이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또 다시 25경기 연속 무패(19승 6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이는 여전히 내셔널리그 기록으로 남아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홈 18연승 기록도 울산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하고 있으니 그들의 기록이 곧 한국 실업 축구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08년 9월 열린 천안시청과의 경기에서 거둔 10-4 승리도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는 한 경기 최다 골 기록(10골)과 개인 한 경기 최다 골(김영후 7골)을 모두 달성한 경기였다. 심지어 김영후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울산현대유니폼을 입고 무려 8경기 연속골의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이 실업 축구에서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 ⓒ울산현대미포조선

울산미포가 축구계에 끼친 영향

2010년에는 내셔널리그 최초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도 했던 울산현대미포조선은 2011년에는 내셔널리그 최초로 정규리그 통산 100승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9시즌 184경기 만에 통산 100승을 기록했는데 K리그 최초 통산 100승 기록인 부산(당시 대우)의 기록인 229경기보다 45경기나 앞서 이룬 기록이라는 점도 놀랍다. 여기에 2012년 이후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고양국민은행이 해체하게 되자 울산현대미포조선의 독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은 고양국민은행이 리그에서 빠진 이후 지금껏 3회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 만큼 독보적인 팀이 된 것이다. 김대의는 물론 2006년부터 3시즌 동안 뛰면서 통산 52경기 56골을 기록한 김영후와 물론 그의 단짝 안성남도 울산현대미포조선 출신이다. 지금은 FC서울의 골문을 지키고 있는 유현과 대전시티즌의 김선민, 전남드래곤즈의 박준태 등도 다들 울산현대미포조선 출신이다. 만약 울산현대미포조선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한 번 좌절했던 선수들이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쉽게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강원FC 창단에 울산현대미포조선이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2008년 창단한 강원은 초대 사령탑으로 울산현대미포조선을 이끌던 최순호 감독을 선임했고 최순호 감독은 울산현대미포조선의 핵심 선수들을 대거 강원으로 불러들였다. 그게 바로 2007년 내셔널리그 MVP 김영후와 2008년 내셔널리그 MVP 유현, 그리고 안성남과 김봉겸 등이다. 만약 최순호 감독과 울산현대미포조선 선수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강원FC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강원에 끼친 울산현대미포조선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감독과 핵심 선수들이 빠지면서 2009년과 2010년에는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이후 울산현대미포조선은 다시 그 위용을 되찾았다. 2011년 다닐료를 앞세워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울산현대미포조선은 늘 고민이 많았다. 2007년 내셔널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승격을 거부하면서 축구계에 적지 않는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듬해 우승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로화에 대한 현실의 벽에 직면한 것이었다. 이미 같은 연고지인 울산에 울산현대라는 프로팀이 있는데 같은 기업에서 같은 연고지에 또 하나의 프로팀이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프로축구연맹 규정에도 명시된 내용이고 이 규정을 손봐 울산현대미포조선이 울산에서 프로화를 선언해도 노조에서 반발할 게 뻔했다. 같은 계열사의 두 팀이 같은 연고지에 뿌리를 내리고 운영된다는 건 엄청난 돈 낭비였기 때문이다. 연고지를 옮겨 프로화를 추진하는 방향도 있었지만 현대미포조선이 울산에 자리한 기업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서울로의 연고이전도 알아봤지만 정서가 맞질 않았다. 울산에 남아 시민구단으로 전환해 프로화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 ⓒ울산현대미포조선

20년 역사가 이제 막을 내린다

이 와중에 조선업계 불황은 점점 더 가시화 됐고 현대중공업이 실업 축구단까지 유지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울산현대미포조선이 해체 수순을 밟기로 했지만 이도 쉽지 않았다. 선수단을 새롭게 창단하는 팀에 넘겨주고 해체 수순을 밟으려고 했는데 청주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팀 창단을 추진한 SMC엔지니어링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청주시 프로축구단의 준비가 미흡했고 시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SMC엔지니어링이 K3리그 청주시티FC 창단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울산현대미포조선은 극적으로 안산시와 합의점을 찾았다. 경찰 축구단이 아산으로 옮겨가고 안산시민구단이 새로 K리그에 참가하게 되면서 선수단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울산현대미포조선 선수들을 안산시가 흡수하는 것으로 합의를 마친 것이다. 이를 골자로 한 K리그 회원 가입 신청서가 지난 9일 연맹을 통과하면서 결국 울산현대미포조선은 이제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편에 서게 됐다. 이렇게 울산현대미포조선은 2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울산현대미포조선은 또 다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지난 9일 홈에서 1차전을 치렀다. 사실 올 시즌 울산현대미포조선은 과거보다는 힘이 많이 빠진 게 사실이었고 올 시즌 안방에서도 5승 2무 8패에 그치고 말았다. 반면 챔피언결정전 상대 강릉시청은 ‘역대급’ 시즌을 소화했다. 최다승점(56점), 최소실점(17골) 부문에서 내셔널리그 신기록을 세웠고 15경기 연속 무패(10승 5무)로 구단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당연히 울산현대미포조선의 열세가 예상됐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 1차전 홈 경기에서 울산현대미포조선은 이인재의 결승골에 힘입어 강릉시청에 1-0 승리를 거뒀다. 이제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딱 한 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3년째 울산현대미포조선을 맡고 있는 김창겸 감독은 승리의 이유를 선수들의 집중력에서 찾았다. “우리의 경기력이 이전보다 떨어지는 것 같은데도 선수들이 너무나도 열심히 싸워줬어요. 감독이 더 이상 뭐라고 얘기할 것도 없이 자기들이 잘 알아요.”

울산현대미포조선 선수들 가운데 14명 만이 안산시민구단의 선택을 받았다. 이중에는 다른 구단으로부터도 영입 제의를 받아 실제로 안산시민구단으로 옮길 선수의 수는 14명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김창겸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안산시민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이제 새로운 직장을 알아서 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일단 마지막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김창겸 감독은 마지막 각오를 전했다. “근래 들어서 경기를 할 때마다 선수들에게 ‘마지막답게 하자’고 매번 이야기하고 있어요. 선수들에게 누누이 이야기를 해 와서 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우승 트로피를 들고 멋지게 끝맺음을 하고 싶어요. 새 직장을 구하는 건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룬 다음의 일입니다.” 김창겸 감독을 비롯해 미래가 불투명한 선수들은 일단 내일(12일) 경기에 모든 걸 쏟아 부은 뒤 운명을 맡기기로 했다.

‘전설이 될 그 이름’ 울산현대미포조선

이제 내일 강릉에서 열리는 마지막 경기에서 울산현대미포조선은 리그 4연패 및 통산 7번째 우승의 위업 달성에 도전한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대장정을 마무리하겠다는 각오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관심 밖 경기일지 몰라도 이 한 경기에 담긴 스토리는 어마어마하다. A매치는 또 오지만 울산현대미포조선의 경기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 실업 축구를 이끌어 온 울산현대미포조선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비록 그들은 이제 마지막 경기를 치른 뒤 사라지지만 한국 실업 축구 역사를 늘 새로 써오던 그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 울산현대미포조선의 돌고래들이여, 그 동안 참으로 고생 많았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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