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올해도 이 약속을 지켰다. ⓒ인천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기자] 인생사라는 건 알 수가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한 순간 지지율 5%로 추락하는 일도 있고 곧 결혼할 것만 같던 10년 된 내 친구 커플은 헤어지더니 6개월 만에 각자 다른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뭐든지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거다. 축구도 한 시즌의 마지막 라운드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는 모르는 거다. 그걸 너무나도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 그렇다. 바로 지난 주말 열린 2016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 인천유나이티드-수원FC전, 전북현대-FC서울전이 바로 내가 말한 사례에 딱 부합하는 경기였다.

‘계속 1위’ 전북과 ‘계속 강등권’ 인천

올 시즌 판도는 시즌 중반 이후 이미 굳어졌다고 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전북은 5월 중순 이후로 단 한 번도 K리그 클래식에서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무려 33경기 연속 무패를 내달릴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을 자랑했고 시즌 중반 이미 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것처럼 보였다. 여름이 지나고 우승 샴페인을 미리 터트렸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행보였고 전북 팬들은 유니폼에 미리 별 하나를 더 ‘오바로크’ 쳐도 설레발이 아닐 정도였다. 전북의 리그 우승은 당연해 보였고 이걸 얼마나 빨리 확정짓느냐, 얼마나 2위와의 격차를 벌이느냐의 차이일 것만 같았다. 아마 내가 올 여름쯤 칼럼을 통해 “전북이 올 시즌 우승하지 못한다”고 했으면 온갖 욕을 먹었을 것이고 그럼 나는 “이러려고 스포츠니어스 차렸는지 자괴감 들고 괴롭다”고 했을 것이다.

정 반대의 팀도 있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올 시즌 내내 강등권에서 허덕였다. 11위와 12위를 번갈아 하던 인천은 지난 6월 열린 수원FC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꼴찌 탈출에 성공했지만 또 다시 꼴찌로 추락하고 말았고 결국 지난 8월 김도훈 감독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인천은 7경기 연속 무승(2무 5패)이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K리그 클래식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고 다이렉트 강등이 당연시 됐다. 기적적으로 12위에서 벗어나 다이렉트 강등을 면하더라도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서야 하는 11위를 벗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경기력이었다. 이때쯤 인천 팬들은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충주종합운동장 가는 법>이나 <고양종합운동장 가는 버스> 등을 검색해 봤을 것이다. 이기형 감독 대행이 “앞으로 5경기에서 3승 2무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의 말을 믿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불과 몇 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아마 몇 달 전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11월 7일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다면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즌 내내 압도적인 1위를 내달리고 있던 전북은 당연할 것만 같던 리그 우승 트로피를 놓쳤고 강등 1순위로 평가받던 인천은 리그에서 극적으로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은 바로 지난 주말 펼쳐진 마지막 라운드에서 모두 결정됐다. 인천은 수원FC를 1-0으로 제압하고 10위로 뛰어 올라 리그에서 살아남았고 전북은 FC서울에 0-1로 패하면서 결국 우승 트로피를 서울에 내주게 됐다. 정말 인생 모르는 거다. 시즌 내내 계속 1위를 하던 팀이 이렇게 미끄러질 줄, 시즌 내내 꼴찌하던 팀이 이렇게 반등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올 시즌 전북현대의 분위기는 좋았다. 박주영에게 최종 라운드에서 결승골을 허용하기 전까지는… ⓒ전북현대

37분 남았는데 급했던 전북

전북-서울전에서 전북은 너무 급했다.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후반 13분 서울 박주영의 골이 터지고 나서부터다. 전북은 경기 전부터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리 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선취 득점 상황, 선취 실점 상황, 마지막까지 0-0 무승부가 이어질 상황 등 여러 경우의 수에 따른 대처 방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주영의 골이 터진 이후 전북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K리그의 트렌드가 추가시간 5분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적어도 37분 여의 시간이 더 남아 있었는데 그들은 침착하지 못했다. 공격을 할 때마다 마치 이게 마지막인 것처럼 서둘렀고 결국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하지 못하고 남은 37분을 허비했다. 역전골이 아니라 동점골만 넣어도 우승 트로피를 다시 가지고 올 수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도 성급한 대처였다. 이 시간이면 KTX를 타고 광명역에서 대전역까지 갈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인데 말이다.

선수들의 표정에서부터 당황하고 급한 기색이 역력하게 보였다. 마치 화장실이 급한데 주유소도 없고 꽉 막혀버린 올림픽대로 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에 탄 사람처럼 좌불안석이었다. 사실 전북이 이렇게까지 급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전반전에서 이미 서울에 우위를 점했던 전북이 정상적인 경기를 펼쳐도 남은 시간 동안 충분히 한 골 정도는 만회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급했고 최강희 감독도 선수들에게 “차분히 하라”고 말은 했어도 후반 36분 조성환을 빼고 고무열을 투입할 정도로 마음이 급한 건 마찬가지였다. 추가시간을 포함해 15분은 남아 있는데 너무 극단적인 전술을 썼다. 이런 전술은 종료 직전 5분을 남겨 놓고 써도 늦지 않았다. 나는 이게 올 시즌 전북이 쫓겨본 적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마찬가지고 최강희 감독에게도 올 시즌 이런 기분은 생소했을 것이다.

경기에서 쫓기다가 후반 막판 극적인 골을 넣어 무승부를 거두면서 무패 행진을 이어간 경험은 있어도 리그 순위에서 쫓겨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5월 이후 단 한 번도 리그에서 추격을 허용해 본 적 없는 그들은 박주영의 골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 승점을 따져 리그 순위에서 전북이 2위로 내려 앉았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부터 전북 선수들은 평정심을 잃었다. 평상시면 침착했을 트래핑이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크로스도 엉망이었다. 만약 전북이 올 시즌 누군가를 추격하거나 미리 쫓겨본 경험이 있더라면 선취골 실점 후 37분을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독주였기에 쫓겨본 적이 없고 딱 한 번 쫓기게 된 순간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듯 했다. 원래 나처럼 학창시절 매일 지각하는 애들은 10분 늦으면 아예 한 시간을 늦게 등교하는데 지각 한 번 해본 적 없는 친구들은 1분만 늦어도 사색이 되고 마치 세상이 끝날 것처럼 당황한다. 그런데 전북은 올 시즌 지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올 시즌 전북현대의 분위기는 좋았다. 박주영에게 최종 라운드에서 결승골을 허용하기 전까지는… ⓒ전북현대

15분 남기고도 침착했던 인천

그렇다면 인천-수원FC전을 살펴볼까. 인천은 올 시즌 내내 누군가를 쫓아야 했다. 개막 후 두 번째 경기부터 꼴찌로 떨어진 인천은 지난 7월 포항전, 제주전 연승을 거두면서 딱 두 라운드에서 10위를 기록했을 때를 제외하면 리그 마지막 라운드 직전인 37라운드까지 단 한 번도 강등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무려 107일 동안 꼴찌만 했고 11위로도 대단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시즌 내내 앞서 있는 11개 팀, 또는 10개 팀을 쫓아가야 했고 때론 그게 힘에 겨워 보이기도 했다. 그런 인천이 시즌 마지막 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잔류를 위한 경우의 수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수원FC전 이전까지 이기형 감독대행 체제 이후 치른 9경기에서 5승 3무 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이기형 감독대행이 말한 3승 2무의 약속은 이미 지켜진지 오래다. 더군다나 이 1패도 수원삼성전 오심 끝에 당한 유일한 패배였다.

인천은 잔류가 간절했지만 초조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이미 누군가를 쉼없이 추격해 본 경험이 시즌 내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올려다 보기만 했던 인천으로서는 이 급박한 순간에도 위를 올려다 보는 게 익숙했던 것 같다. 수원FC전 내내 상대의 강력한 압박과 역습에 시달리면서도 전혀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비기기만 해도 11위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위기의 순간이었지만 적어도 내가 본 인천 선수들의 모습은 그랬다. 오히려 리그 최상위팀인 전북 선수들이 박주영의 선취골 이후 급격히 당황했던 것과 달리 리그 최하위권을 전전하던 인천 선수들은 골이 터지지 않는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케빈과 진성욱이라는 주전 공격수가 경고누적으로 빠졌고 송시우는 부상까지 당한 상황이었다. 열악한 환경이었고 반드시 이겨야 가까스로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상황에서 0-0 균형이 이어져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시즌 내내 강등권에서 누군가를 쫓아본 경험이 이런 위기의 순간에는 오히려 빛을 발한 것 같다. 그렇게 후반 30분까지 골이 없던 인천은 침착함을 더해 귀중한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게 면역력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지저분하고 적당히 더러운 사람은 오히려 병에 덜 걸리지만 지나치게 청결함을 중시하는 이들은 면역력이 더 약해 남들과 동일한 조건에서도 병에 걸리기 더 쉽다. 지난 주말 벌어진 K리그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 역시 마찬가지다. 시즌 내내 11위와 12위를 번갈아 하면서 누군가를 쫓았던 이들은 마지막 순간이 되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했다. 하지만 시즌 내내 맨 꼭대기에서만 놀던 이들은 딱 한 순간 위기를 겪자 결국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우승 트로피를 내주게 됐다. 리그 최상위권 전북과 리그 최하위권 인천의 경기력을 비교하면 분명히 전북이 위인데 지난 라운드에서 보여준 이 두 팀의 집중력에서만큼은 인천이 전북보다 훨씬 나았고 그들은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반면 전북은 결국 시즌 내내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1등만 기억하는 역사 속에서는 초라한 2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전북과 인천처럼 반전은 늘 일어날 수 있다

정말 알 수 없는 축구판이다. 전북이 우승을 놓치고 인천이 잔류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원한 1류도, 영원한 3류도 없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늘 높은 곳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쫓아야 하는 인생이 피곤하지만 더 짜릿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줄곧 최고를 달리던 이들이 단 한 순간에 삐끗해 추락하기도 하고 줄곧 바닥을 치던 인생도 언젠가는 이렇게 나름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K리그 클래식은 마지막 라운드 종료 휘슬이 울려야 결과를 알 수 있는 법이고 우리 인생은 관뚜껑에 못 박히는 소리를 들어야 알 수 있는 법인 것 같다. 전북과 인천처럼 반전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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