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리어트] ACL 북한 원정? 망상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능라도 경기장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다음은 10년 뒤 AFC 챔피언스리그(ACL)를 앞둔 한국의 풍경이다. 한 번 읽어보자.

#1. 선후배 따지는 ‘X선비’를 제일 싫어하는 열혈 수원팬 김귀혁(30) 씨는 며칠 전부터 잠을 못자고 있다. 내일 수원의 2026 ACL 원정에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번 원정을 위해 그는 약 6개월 전부터 준비해왔다. 돈도 돈이었지만 원정 경기 한 번 가기 위해서 그는 여러가지 서류와 증명서를 발급 받아야 했다. 하필 원정 경기가 열리는 장소가 평양이었기 때문이다. 수원의 상대는 바로 평양 체육단이었다. 원정 한 번 가려고 고생한 만큼 그는 설렘과 동시에 걱정으로 잠을 못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2. <스포츠니어스> 조성룡 기자는 2025 ACL 개막이 다가오자 해외 출장 계획을 짜고 있다. 갈고 닦은 옌벤 사투리와 중국어를 발휘해 동아시아 대륙의 ACL 열기를 담아볼 생각이다. 여행 계획은 김포에서 저가항공을 타고 평양으로 가 ACL 개막 경기를 취재하고, 다시 고려항공으로 상하이로 날아가 그 다음 날 상하이 내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는 상하이 션화와 상하이 상강의 ACL 현장을 둘러볼 생각이다. 하지만 김현회 대표는 제출한 출장 계획서를 검토하더니 한 마디로 반려하고 말았다. “내일부터 김치찌개에 고기 뺀다? 기차 타고 다녀와”. 실망한 표정으로 옆을 쳐다보니 김재학 기자는 급하게 일본 출장 계획서에 써있는 ‘항공편’을 ‘배편’으로 바꾸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가 “우리 아들 군대갈 때 쯤이면 통일 될 거야”라고 말한 지 벌써 엄청난 세월이 흘렀다. 한국의 모든 어머니의 꿈이 ‘내 아들이 군대가기 전 통일되는 것’이라고 한다지만 우리나라의 통일은 아직 멀어보인다. 아마 내 아들도, 내 손자도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그와 별개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핵을 개발하고 ‘미제 원쑤’를 외치며 점점 문을 걸어잠그는 북한이 갑자기 개방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김정은이 사드 때문에 간이 쫄아든 것도 아니고, 석유가 떨어져서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워서도 아니다. 바로 ‘축구’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가상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북한 2010 월드컵
2010 월드컵 이후 부진을 거듭하던 북한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프로화’다 ⓒ Marcello Casal Jr.

AFC는 24일(한국시간) “지난주에 평양에서 AFC컵 출전 관련 워크숍을 열었다”고 밝혔다. 단순히 평양에 찾아가서 워크숍을 열었다는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 한 번의 워크숍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북한이 프로 대항전에 드디어 얼굴을 내밀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AFC컵 참가를 위해 현재 가지고 있는 리그를 프로화 시킬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부터 북한의 축구 개방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AFC컵, 아시아의 유로파리그

먼저 AFC컵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팀 중에서는 AFC컵에 참가하고 있는 팀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과 비유하자면 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과거 UEFA컵)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ACL의 하부 대회인 셈이다. 하지만 유럽과 달리 두 대회의 연결 고리는 없다. 우리나라가 AFC컵에 참가하지 않는 것처럼, AFC컵에 참가하는 국가 역시 ACL에 출전할 수 없다.

그렇다면 AFC컵은 누가 출전하는 것일까? 바로 AFC의 ‘비전 아시아’ 정책에 해답이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AFC는 대륙 내 클럽 대항전을 전면적으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과 아시안 컵위너스컵을 통합해 ACL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후 이들은 ACL에 이어 AFC컵과 프레지던트컵을 창설해 ACL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기 힘든 국가들을 위한 클럽 대항전을 만들었다(프레지던트컵은 2014년 AFC컵으로 흡수 통합됐다).

인도 방갈로르
올 시즌 AFC컵 결승은 방갈로르(인도)와 에어포스(이라크)가 맞붙는다.

AFC컵은 ACL에 나가지 못하는 국가의 팀들을 위한 클럽 대항전이다. AFC는 매년 ACL 진출국과 AFC컵 진출국을 분류하고 있다. 최상위 수준의 리그부터 순서대로 ACL 진출 티켓을 배분하고, ACL 티켓을 받지 못한 리그는 AFC컵에 포함 시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FC컵 마저도 나가기 힘든 리그는 프레지던트컵에 출전했으나, 2014년 두 대회가 통합되면서 AFC컵은 중·하위권 리그를 모두 아우르는 대회로 변신했다.

따라서 북한이 출전 조건만 갖춘다면 AFC컵에 충분히 출전 가능하다. 오히려 그 이상도 바라볼 수 있다. 북한의 축구 경쟁력 자체는 아시아에서 크게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팀이 보여주는 성적을 AFC컵에서도 각 클럽들이 보여줄 수 있다면 정말로 ACL 북한 원정은 곧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AFC컵에서 좋은 성적을 낸 최상위 팀들은 ACL 예선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북한이 AFC컵에 참가만 한다면 ACL에서 북한 팀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빠를 수 있다.

체제 위험 감수하고 프로화 선택한 북한

AFC컵에 나가기 위해 북한이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은 바로 ‘프로화’다. AFC 역시 워크숍을 통해 “AFC컵 참가를 위해서는 각 팀마다 유스팀 2개를 보유해야 하고 팀 닥터, 물리치료사, 선수들의 정식 계약서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프로 팀의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축구 리그를 갖추고 있다. 무려 3부리그까지 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북한의 리그는 1급, 2급, 3급 리그와 우리의 생활 체육에 해당하는 청년 리그, 공장 리그 등이 있다. 1부리그에는 15개 팀이, 2부와 3부에는 각 40개와 80개 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승강제도 실시한다. 단지 상위리그로 진출하기 어려울 뿐이다. 상위리그의 최하위와 하위리그의 최상위 팀이 다음 시즌에 자리를 맞바꾼다.

문제는 프로화다. 프로화는 곧 자본주의가 북한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수들이 정식으로 자기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유스팀도 갖춰야 한다. 선수들에게 계약서가 있다는 것은 해외 다른 팀으로 이적도 훨씬 용이해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각 구단은 이적료로 수익을 낼 수도 있다. 북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생소한 모습이 펼쳐진다는 얘기다.

다행인 것은 북한 정부가 프로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축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북한이 장기적인 축구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프로화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AFC컵 출전 기준을 맞추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우리식 프로화’를 이루어낼 지는 미지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김정은
답답해도 자기가 뛸 수 없는 김정은 ⓒ Zennie Abraham

변수는 역시 북한의 국내 정책과 국제 정세다. 아무리 국제 축구 교류를 늘리고 있다지만 자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 대해 북한은 비교적 인색하다. 게다가 경제 봉쇄 등으로 북한 축구의 국제 교류가 금지되기라도 한다면 이는 AFC에도 타격을 가할 수 있다. AFC가 AFC컵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자세로 북한을 대하고 있지만, 이러한 변수가 작용한다면 그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 지는 아직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북한의 축구 개방, 우리도 대비하자

그렇다면 K리그는 북한의 향후 행보에 따라 어떤 변화가 생길까? 가장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바로 원정 서포터 문제다. 북한 클럽이 ACL에 진출해 한국과 같은 조에 편성될 경우 팬들의 북한 원정 응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축구를 넘어서 정치적인 논리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북한 클럽이 한국에 방문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팀이 한국을 방문해 경기하는 모습은 썩 낯설지 않다. 경기 자체를 개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지만, ACL과 AFC컵은 엄연히 프로 팀 간의 경기다. 관중 수용 문제와 출입국 등 팬들을 위한 여러가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과 이러한 사안들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국가는 아시아 내에서 오직 한국 밖에 없다. 미리 AFC에 이러한 부분을 사전에 공유한다면 나중에 생길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북한이 프로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통일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남북한의 경제 사정이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곧바로 통일은 오히려 한국에게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해 경제 수준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리고 나서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는 K리그와 아직 프로화도 추진하지 못한 북한의 리그는 많은 격차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프로화는 북한 축구를 한 단계 격상시키고, 먼 미래에는 그 프로팀들이 통일 리그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변수가 많은 북한이니 프로화를 하고, AFC컵에 참가 하겠다는 이야기를 해도 믿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갑자기 김정은이 LG트윈스 허프의 피칭을 보고 반해 “지금부터 동무들은 야구를 하라우!”라고 말하면 북한은 그 때부터 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발돋움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북한 축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들의 축구가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

wisdragon@sports-g.com

[사진 = 능라도 경기장 ⓒ Stephen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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