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승점 3점 잘 먹겠습니다." 수원FC는 포항스틸러스만 만나면 승점을 꼭 3점씩 챙긴다. ⓒ수원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 번은 그럴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약한 상대라는 평가를 받는 팀에 한 번 정도는 질 수도 있다. 두 번도 그럴 수 있다. 우연이 두 번은 겹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번이나 당하면 이때부터는 이해할 수 없다. 세 번씩이나 똑같이 당하는 건 실력 차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네 번이나 당한다면 어떨까? 변명의 여지가 없을뿐더러 지긋지긋한 악연이라고 봐야 한다. ‘전통의 명가’ 포항스틸러스가 올 시즌 ‘강등 1순위’인 수원FC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졌다. 올 시즌 전적 4전 전패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제(23일) 있었던 포항스틸러스와 수원FC의 2016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35라운드 경기에서 포항은 또 다시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40분 브루스에게 페널티킥 결승골을 허용하며 0-1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한 경기 패배가 아니다. 이 패배로 포항은 승점 42점으로 리그 9위에 머물게 됐고 강등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더 아픈 건 포항이 올 시즌 수원FC에 무려 네 번이나 졌다는 점이다. 올 시즌 수원FC가 거둔 9승 중 포항이 4승이나 헌납했으니 잔류 전쟁에서 엄청난 손해를 본 셈이다. 포항은 수원FC에 무려 승점 12점을 헌납했고 이제 이 두 팀의 승점차는 6점에 불과하다.

올 시즌 첫 맞대결이었던 지난 5월 포항 홈 경기에서도 포항은 수원FC에 0-1로 패하고 말았고 7월 수원 원정경기에서도 포항은 0-1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난 9월 열린 세 번째 맞대결에서도 2-3으로 패한 포항은 어제 격돌에서도 0-1로 패하며 기가 막힌 연패를 이어가게 됐다. 이 네 경기 중 세 경기가 0-1 패배였고 패턴도 비슷했다. 수원FC는 수비를 두텁게 한 뒤 날카로운 역습으로 포항 골문을 열고 승점 3점씩을 꼬박꼬박 챙겨갔다. 최하위 팀에 4연패를 당한 포항의 충격은 엄청나다.' 4연벙', 아니 4연패를 당한 포항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한 사람이 떠올랐다. 2004년 스타리그에서 임요환에게 무려 똑같은 전술로 세 번이나 패해 ‘3연벙’이라는 오명을 쓴 홍진호였다. 그런 홍진호가 누구보다 포항을 잘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홍진호에게 전화를 했다.

전북에는 1패, 수원FC에는 4패

“K리그 클래식에서 비슷한 전술로 한 팀이 다른 팀에 네 번이나 연속으로 졌어요.” 내 말이 수화기를 타고 흐르자 홍진호가 직감했다는 듯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 네… 하하하. &$#*#*$@” 약간 욕설이 섞여 있는 것 같았지만 못 들은 척 했다. 굳이 12년 전 악몽을 꺼내니 욕이 나오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굳이 ‘3연벙’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도 우리 둘은 서로 전화기를 들고 10초 정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살짝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3연벙’ 그때 어땠어요?” 내 의도를 깊게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홍진호는 내가 전화한 이유를 잘 아는 듯했다. 나는 마치 홍진호의 본진 입구에 벙커를 박은 것처럼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고 홍진호는 낙담해 ‘GG’를 외치는 듯 당시 ‘3연벙’의 충격을 떠올렸다. 아마 포항 선수들과 포항 팬들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홍진호일 것이다.

“대처한다고 했는데 같은 전술이란 걸 파악했을 땐 이미 늦었더라고요. 똑같은 전술에 연속으로 세 번이나 당해서 졌다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했어요. 소주를 병나발 불어본 건 그때가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똑같은 전술로 세 번이나 진 뒤 숙소에 오자마자 곧바로 숙소 앞 슈퍼로 뛰어갔어요. 그 자리에서 소주를 들이부었죠. 거의 멘탈이 나갔었다고 봐야죠.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술을 마시고 미친 놈처럼 고성방가를 했어요. 팬들한테 면목도 없고 충격도 컸죠.” 홍진호가 흥분했는지 말이 빨라지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 들은 부분도 있지만 당시 그의 심정이 참담했던 건 분명한 일인 것 같다. 홍진호의 ‘3연벙’은 무려 12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스타리그의 전설로 남아 있다.

포항의 충격도 홍진호 못지 않은 것 같다.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는 페널티킥을 허용했지만 포항은 이번 경기에서도 수원FC를 압도하지 못했고 결국 또 다시 패배를 맛보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뒤 분을 참지 못한 선수들이 땅을 쳤고 페널티킥을 내준 강상우는 경기가 종료된 후 얼굴을 그라운드에 묻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기에 잔류 전쟁을 펼치고 있는 인천유나이티드가 광주FC를 잡으면서 포항은 더더욱 복잡한 잔류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수원FC전 '4연벙', 아니 4연패 자체로도 타격이 엄청나고 이 네 번째 패배로 강등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니 패배의 아픔은 두 배 이상이다. 참고로 포항은 올 시즌 1위 전북에는 2무 1패를 기록 중이다. 꼴찌팀 수원FC전 4연패가 더 뼈아플 수밖에 없다. 포항에는 전북보다 수원FC가 더 무서운 팀이다.

올 시즌 포항은 수원FC에 4전 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수원FC

‘3연벙’ 홍진호, “말리지 말고 내 플레이해야”

최순호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이렇게 말했다. “수원FC는 그들만의 축구 스타일이 있다. 매 경기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팀이다.” 매 경기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임요환, 아니 수원FC에 홍진호, 아니 포항은 매번 똑같이 당하고 말았다. 홍진호와의 전화 인터뷰 후 포항 선수들에게 심정을 묻고 싶었지만 차마 오늘 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3연벙’을 당했던 홍진호처럼 소주를 나발 불며 고성방가를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들에게 심정을 묻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홍진호의 ‘3연벙’도 엄청난 타격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포항이 수원FC에 당한 4연패는 그 이상의 어마어마한 타격이다. 올 시즌 순위 문제가 아니라 포항이 내년 시즌을 K리그 챌린지에서 치를 수도 있을 정도로 이 경기의 중요성은 컸다.

시간이 흐르고 이젠 ‘3연벙’의 악몽에서 벗어난 홍진호는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을 이제는 웃으며 말했다. “처음 당했을 때는 ‘이런 무대에서 설마 두 번은 같은 전술을 안 쓰겠지’하다가 또 당했고 세 번째 경기에서도 ‘임요환이 인간이라면 세 번은 안 쓰겠지’라고 생각했다가 또 다시 당했어요. 그 타격이 한 달 정도는 이어졌죠. 이후에는 조금씩 괜찮아졌는데 주변에서 하도 이야기를 하니까 잊을만하면 또 생각이 나더라고요. 충격이 오래 갔어요. 아마 포항 선수들도 같은 팀에 비슷한 전술로 한 시즌 동안 네 번이나 패했다는 충격이 상당할 겁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이 대목을 떠올려보면 포항이 수원FC에 당한 ‘4연벙’, 아니 4연패는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3연벙’을 이미 12년 전에 겪었던 선배(?) 홍진호는 이제 여유가 생겼다. ‘4연벙’을 당한 포항 선수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하니 이런 말을 전해왔다. “대단하신 분들에게 제가 무슨 조언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먼저 ‘3연벙’을 겪어본 입장에서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한두 경기 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경기를 하는데 그러다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나올 수 있어요. 아마 포항이 수원FC에 ‘5연벙’을 당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죠. 저도 또 당하면 창피하다는 생각에 일부러 더 신중하게, 소심하게 플레이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심리전에 말리면 끝없이 말리더라고요. 오히려 자기만 손해인 것 같아요. 이런 ‘3연벙’, ‘4연벙’에 연연하지 말고 또 당하더라도 내 자신의 플레이를 펼쳐야합니다. ‘3연벙’을 당해본 저는 포항 선수들의 심정을 잘 압니다. 저처럼 소주 나발 불면서 자책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포항은 과연 홍진호의 조언처럼 수원FC전 ‘4연벙’, 아니 4연패의 악몽을 털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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