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운동선수라고 하기에는 가녀린 체격의 한 남자가 감히 넘볼 수도 없다는 중국 탁구를 뒤흔들었다. 그가 상대한 세계랭킹, 아니 우주랭킹 1위 마롱은 쩔쩔 맸고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장지커 또한 눈빛이 흔들렸다. 철옹성 같던 중국 탁구를 향해 “나도 있다”고 외친 주인공의 이름은 바로 정영식(미래에셋대우)이다. 이제 어느덧 한국 탁구의 ‘에이스’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정영식을 <스포츠니어스>가 직접 만났다.

반갑다.

나도 반갑다.

그런데 운동선수 치고는 체격이 거의 일반인 수준이다.

내가 탁구 선수 중에 운동 신경이 없고 체력도 안 좋기로 유명하다. 그게 탁구에서는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도 있다. 쉬는 시간이면 바둑 두는 걸 좋아한다. 활동적인 스타일이 아니다.

운동선수라기보다는 되게 멋 부리려고 염색한 프로게이머 같다.

어떻게 알았나. 운동을 하지 않을 때는 롤을 즐겨한다. 혼자 가만히 뭘 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탁구가 워낙 좋다보니 어릴 적부터 탁구를 잘 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 편이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집중하기 위해 상대 분석하고 탁구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훈련 끝나면 롤을 하거나 바둑을 둔다.

PC방 잘 다니게 생겼다.

PC방에서 하는 건 아니고 훈련 끝나면 숙소에서 게임을 한다. 다른 운동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그래도 탁구는 국내 랭킹에서 계속 1위를 해서 동료들끼리 탁구 내기를 하면 다 자기네 편으로 모시려고 한다. 그러다 축구 내기까지 같이하기로 하면 난 깍두기 신세다. 탁구 빼면 다른 운동은 일반인 수준도 못 미치는 거 같다.

체격이 호리호리한데 롤은 그만하고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할 생각은 없나.

무슨 소린가. 내가 가장 열심히 한다. 사실 하기 싫어도 내 체격이 약점이라는 걸 잘 아는 감독님이 강제로 시킨다. 그래서 올림픽 전에는 지금보다 체격이 더 좋았는데 올림픽 준비하면서 몸무게가 빠지더라. 5년 동안 꾸준히 잘 먹었고 근력 운동도 더 많이 했는데 올림픽 준비하면서 유산소 운동을 그 이상으로 더 많이하니까 4kg이 빠졌다. 키가 181cm인데 올림픽을 나갈 당시 몸무게가 67kg이었다.

나보다 큰데 나보다 적게 나간다. 둘 다 부럽다. 그런데 리우올림픽에 다녀온 뒤 인기는 실감하고 있나. 나도 당신의 경기를 손에 땀을 쥐어가며 응원했다.

올림픽 전까지는 탁구를 하시는 분들만 나를 알아봤는데 이제는 탁구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도 가끔 알아봐 주셔서 그게 신기하다. 지하철을 타면 알아보는 분들이 있더라. 그 전까지는 되게 편하게 다녔는데 요즘은 행동도 좀 의식하게 되고 원래 숙이고 있던 허리도 당당히 펴게 되고 그런다.

그 인기를 지금 누려야 한다. 지난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펜싱 최병철은 그 인기가 딱 두 달 가더라. 누릴 시간이 별로 없다. 10월 초에 열리는 탁구월드컵을 또 준비해야 한다.

혹시 우리 <스포츠니어스> 이사직을 맡을 생각은 없나.

탁구에 전념하고 싶다.

정영식(오른쪽)은 이제 한국 탁구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대한탁구협회

얼마 전에는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청와대에 다녀오기도 했다. 참 출세했다.

신기하더라. 근데 청와대에 갔더니 자리마다 다 앉을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내 자리가 바로 대통령 옆 자리였다. 깜짝 놀랐다. 옆에 보니 다 메달리스트들이었다. 나는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도 따지 못한 선수인데 왜 그 중요한 자리를 배정해줬는지 모르겠다. 메달리스트 분들이 물론 그러시지는 않겠지만 ‘쟤는 뭔데 저기 앉아있나’라고 생각할 거 같아 쑥스러웠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했다는 걸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바로 대통령 반대쪽 옆에는 박인비 선수가 앉아 있었다. 당신을 ‘골프여제’와 동급으로 본 거다.

동급은 무슨…. 어찌됐건 메달리스트 분들하고 사진도 찍고 대화도 많이 했다. 특히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이하고 친해져서 지금은 형, 동생하고 지낸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데 대단한 동생이다.

나는 그럴 때면 동생에게도 형이라고 부른다.

(박)상영이가 경기에 임하는 자리를 보니 형이라고 불러도 되겠더라.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전기요금 좀 깎아달라고 부탁하지 그랬나. 내가 올 여름에 당신 경기보면서도 에어컨을 못 틀고 부채질을 했다.

내가 뭐 그 앞에서 할 말이 있겠나. 당신이 돈을 더 벌어서 에어컨 틀면 된다.

알겠다.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이었는데 정말 올림픽은 다른 국제 대회와 다르던가.

같은 팀의 오상은 선배님이 “올림픽은 다르다”고 할 때 엄살을 피우는 줄 알고 공감하지 못했었다. 나도 아시안게임도 나가보고 세계선수권도 많이 나가봤다. 결승전에도 많이 진출해 봤다. 탁구를 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큰 대회는 다 치러봤다고 생각해 형들의 말에 ‘설마’싶었다. 그런데 올림픽은 정말 다르더라.

뭐가 어떻게 다른가.

원래 경기 직전에만 살짝 긴장을 하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긴장이 풀어진다. 정신 없이 탁구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림픽 8일 전에 리우로 출발했는데 비행기에서부터 떨리는 거 아닌가.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꾸 시합 생각만 하면 긴장이 되고 떨려서 ‘탁구 생각하지 말자. 롤 생각하자. 바둑 생각하자’ 이렇게 주문을 걸고 일부러 탁구를 잊으려고 했는데 이걸 하루에 100번씩은 반복한 거 같다. 그러다 또 시합 생각하면 심호흡하고 계속 그랬다.

저런, 트리플 A형 아닌가.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데 현지에서 훈련할 때도 굉장히 예민했다. 내가 원래 경기 도중에도 표정 변화가 없고 침착한 편이라는 평을 듣는데 리우에서 훈련을 시작하니까 그렇게 표정 변화가 심각할 수가 없었다. 훈련하다 파트너가 잘 받아주지 못하면 막 성질이 나는 거다. 원래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실수를 하고 ‘어? 나 이게 왜 안 되지?’하면서 짜증도 나더라. 억지로 자신을 컨트롤해야 했다.

다음 올림픽에 나가면 이번과는 많이 다를까.

그렇다. 많이 다를 것 같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과 한 번 경험해 본 것의 차이는 클 것 같다. 만약 내가 한 번 경험해 본 상황이었더라면 정말 중국 선수들을 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맞붙은 마롱과 장지커는 다 올림픽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단체전 3,4위전에서 맞붙은 독일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정영식(오른쪽)은 이제 한국 탁구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대한탁구협회

특히나 마롱과 치른 남자 단식 16강전이 두고 두고 아쉬울 것 같다. 세계랭킹 1위 마롱을 맞아 먼저 두 세트를 따내면서 모두를 놀라게 하지 않았나.

마롱은 그동안 단체전을 포함해 8차례 세계선수권, 7차례 월드컵과 국제탁구연맹 개인단식에서 22번 우승을 한 세계 최강자다. 지난해 국내대회와 국제대회에서 단 1패도 하지 않았다. 그와 상대하는 선수들은 승리를 포기하고 “한 세트라도 따자”고 할 정도다. 나도 마롱한테 0-4로 많이 졌다. 역대전적에서는 4전 전패였다. 거의 이 선수는 제쳐두고 독일, 일본 등 우리의 라이벌 선수들과 경쟁해야 메달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중국 선수, 특히 마롱을 분석하는 건 시간낭비라는 느낌이었는데 나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마롱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한 건가.

예전에 유남규 감독님이나 유승민 선배님도 사실 다 불리한 상황이었다. 아무도 이들이 중국을 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분들은 결국 중국을 넘었다. 당연히 중국을 넘지 않고서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 나는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이 상당한데 국가대표가 처음부터 중국에 지고 들어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목표를 금메달로 잡고 중국을 분석했다. 사실 다른 대회를 앞두고는 내 경쟁자들 분석하기 바빠서 마롱에 대해서는 분석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 준비를 하면서는 우리 메달의 경쟁자라는 독일, 일본 선수들은 제쳐두고 매일 마롱을 이길 비법을 연구하기 위해 경기 영상을 봤다. 그리고 이게 방법만 찾는다고 되는 일인가. 계속 연습을 하며 몸으로 마롱 격파법을 익히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세계 최강, 아니 우주 최강이라는 마롱의 단점을 찾아냈나.

단점을 찾기보다는 내 실력이 더 올라가더라. 마롱을 이기려면 내 탁구의 질을 높아져야 하고 그러다보니 탁구 실력이 늘었다.

그런데 당신은 올림픽 무대에서 마롱을 너무 일찍 만났다. 16강전 상대가 마롱이라는 걸 알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래도 4강쯤에서 만났으면 지더라도 동메달을 노려볼 수 있는데 너무 일찍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마롱을 이기면 탁구계에서는 영웅이 될 수 있는데 내가 하도 마롱에 대해 분석했더니 하늘이 나한테 마롱을 일찍 이길 기회를 줬다고 좋게 생각했다. 롤로 치면 내가 페이커를 이기는 것 아닌가.

마롱과의 맞대결에서 출발이 너무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올림픽 메달을 따느냐 못 따느냐가 중요하지만 사실 탁구계에서는 마롱을 한 번만 이겨도 영웅이 된다. 몇 년이 지나도 ‘쟤가 마롱 이긴 애잖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마롱하고 1,2세트를 하는데 내가 준비한 게 다 먹히고 괜찮은 거다. 그렇게 두 세트를 먼저 땄고 한 세트만 더 따면 쐐기를 박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4세트를 너무 쉽게 내줬다. 마롱이 작전 변화를 줬는데 내가 거기에 대해 해법을 찾지 못한 이유가 컸다. 나는 마롱의 스타일을 그대로 분석했고 그대로 연습했는데 마롱이 거기에 두 세트를 당하니 내가 분석하지 않은 방식으로 스타일을 바꾼 것이다. 내가 거기에서 너무 당황했다. 세트스코어 2-2가 되고나서부터는 서로에 대해 적응하고 실력대 실력으로 붙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당신은 이어 네 세트를 내리 내주며 역전패하고 말았다. 경기 중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세트 스코어 2-2인 상황에서 5번째 세트 또한 치열했다. 내가 12-11로 앞서고 있는데 거기에서 리시브를 하다가 실수를 범했다. 상대도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내 공만 제대로 들어갔어도 승기를 잡을 수 있었는데 내가 쉽게 흥분을 했던 게 가장 아쉽다. 그때 점수를 내 세트를 이겼으면 다음 세트에도 분위기를 계속 탔을 것이다. 다음 세트 또한 내가 9-4로 이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 5세트에서의 듀스 상황이 승부처였던 것 같다. 두뇌 플레이에서도 역시나 경험이 많은 마롱보다는 내가 약했다.

아쉬운 패배 이후 당신은 전세계인이 다 보는 앞에서 울보가 됐다.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전세계에 그대로 다 방송됐다.

경기장에서 혼자 운 적은 몇 번 있는데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운 건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너무 아까워서 울었다. 내가 이런 기회가 왔는데 그걸 놓친 게 너무 아까웠고 이런 기회가 다시 또 올까 싶어서 아까웠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누웠는데 새벽 네 시까지 잠이 안 오더라. 그래서 아예 잠 자는 걸 포기하고 예능 프로그램보다가 한 5시 반 정도에 잔 것 같다. 장지커한테 졌을 때도 머리를 쥐어 뜯으며 ‘이겼어야 되는데’라는 생각에 잠이 안 오더라. 그날도 새벽 5시 반 정도에 잤다.

중국과의 단체 4강전에서 맞붙었던 장지커와의 승부 또한 아쉬웠다.

장지커는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이번에 이기기 위해서 분석했다기보다는 지난 올림픽을 어린 나이에 지켜본 나에겐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 선수의 플레이를 많이 보고 배웠었다. 어릴 때부터 장지커의 플레이를 자주 따라해 보다 보니 장지커와 이번 경기를 할 때도 그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임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도 결국 장지커의 두뇌 플레이에 밀리고 말았고 결국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했다.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영식(오른쪽)은 이제 한국 탁구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대한탁구협회

그래도 중국 선수들을 상대로 당황하게 한 건 당신이 유일하지 않나. 나는 궁금한 게 중국이 탁구를 왜 이렇게 잘하는지, 도대체 잘하면 얼마나 잘하는 건지 알고 싶다. 올림픽에서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가 탁구 경기를 하는데 선수 이름이 리우지아와 리지아오더라. 전세계 탁구는 중국이 점령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한국 양궁이 역대 올림픽에서 34개의 금메달 가운데 23개를 따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탁구는 지금껏 올림픽에 걸린 32개 금메달 가운데 28개를 가지고 갔다. 이번에도 탁구에 걸린 금메달 네 개를 중국이 다 따가지 않았나. 우리나라 양궁이 세계 최강이고 너무나도 대단하다. 그런데 한국 양궁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중국이 탁구에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국에만 탁구선수가 무려 3천만 명이다.

대단하다. 3천만 명이 동시에 탁구를 하면 그 공 치는 소리가 우리나라에까지 들릴 수도 있다. 탁구에 미쳐있는 중국은 그렇다 치자. 나는 개인적으로 독일과의 단체전 3,4위전이 가장 아쉬웠다.

사실 다른 경기보다 더 많이 긴장한 경기가 그 경기였다. 이기면 메달이고 지면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기 아닌가. 독일과의 전력은 50대 50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1단식에서 바스티안 슈테거와 맞붙었는데 이 경기에서 이기면서 어느 정도 승기를 잡았다고 믿었다.

이 경기에서 당신이 박상영을 따라 ‘할 수 있다’고 외쳤다는 보도를 많이 봤다. 이슈를 유발해 언론을 타기 위한 고도의 거짓말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달라.

정말이다. 박상영의 금메달 획득 모습을 영상으로 봤는데 정말 감격스럽더라. 부러우면서도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배울 게 많다고 느꼈다. 나도 경기에서 지고 있을 때 끝까지 할 수 있다고 외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박상영은 ‘할 수 있다’를 두 번 외쳤으니 나는 세 번 외치자고 다짐했는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더라. 그런데 세트스코어 2-2인 5세트 8-9 상황에서 내 실수로 너무 쉽게 한 점을 내줬다. 드라이브를 걸다가 실패하는 순간 ‘아, 졌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데 그때 문득 박상영이 떠올랐다. ‘포기하지 말자. 나도 한 번 해보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세 번 외치고 작전을 생각했고 결국 이 경기를 뒤집고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그 ‘할 수 있다’가 잘 먹혔다고 생각하나.

그게 잘 먹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겼으니 먹혔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도 우리 언론사가 자리를 잡아 강남에 사옥 올리는 걸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정신으로 실패한 사례를 만들지 말라.

알겠다. 하지만 이후 한국은 독일에 1-3으로 역전패하며 4위를 기록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부족하다고 느낀 점이 있을 것이다.

다음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세 가지를 보완해야 한다고 느꼈다. 첫 올림픽에 나서면서 경험이 부족했는데 그래서 경기에 나서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금메달 따신 분들 인터뷰를 보니 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작전이 떠오른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작전이 떠오르지 않고 욕심이 너무 앞섰다.

그런데 욕심을 어떻게 버리나. 난 욕심을 버리지 못해 여자친구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다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더 욕심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처음이라 여유도 없이 욕심만 챙겼는데 두 번째 올림픽을 경험한다면 저절로 욕심을 버리고 여유가 생길 것 같다. 준비할 때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하고 마음 비우는 걸 첫 번째 과제로 삼으려 한다.

그럼 두 번째 과제는 무언가.

내가 근력 운동을 많이 했어도 유산소 운동량이 많으니 근력이 덜 생겼다. 근력 운동을 하면서 잘 먹고 휴식도 잘했는데도 탁구 훈련을 양말이 땀에 젖을 때까지 하니 근력이 다 빠지더라. 도쿄올림픽까지 내 탁구 기술이 줄지는 않을 테니 앞으로 근력을 키우는 데 시간을 더 쏟을 생각이다. 또한 세 번째로는 경기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잘 싸워놓고 결국 경기를 읽는 수 싸움에서 졌다. 중국리그나 유럽리그에 나가 경기 읽는 수를 키워 두뇌플레이를 해야 승산이 있다는 걸 느꼈다.

중국에도 정기적인 리그가 있는 줄은 몰랐다.

탁구계에서는 가장 큰 리그다. 중국리그에는 중국 국가대표도 뛰지만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중국 선수들도 무척이나 많이 뛰는데 이 이름도 잘 모르는 선수들이 다른 나라 국가대표보다도 더 잘한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도 초청이 되는데 이번에 리우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마롱, 장지커에 이어 동메달을 딴 일본의 미즈타니 준도 작년에 중국리그에 초청됐었다. 그런데 두 번 뛰더니 다신 안 간다. 1승 7패인가 했단다. 이번 올림픽 동메달리스트가 중국리그에 가면 이 정도다. 세계랭킹 5위인 독일의 드미트리 옵차로프라고 있다. 중국 선수 이외에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선수다. 그런데 이 선수도 작년에 중국리그에 가서 2승 9패인가 했다. 그 뒤론 자신감 떨어진다고 가질 않는단다. 승리수당은 대단히 많이 주는 리그인데 승리하기가 어렵다는 건 함정이다. 탁구 인구가 3천만 명이 넘는데 거기에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천재들이 얼마나 많겠나.

당신은 중국리그에서 안 불러줬나. 아니면 자신감 떨어질까봐 지금까지 가지 않은 건가.

내가 세계랭킹이 12위일 때도 중국리그의 초청을 한 번도 못 받았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이 끝나고 모르는 번호로 국제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는데 어설픈 영어로 자기가 왕리친이라고 하는 거다. 탁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에게는 엄청난 이름이다. 세계선수권을 세 번이나 제패하고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두 개나 딴 전설적인 존재다. 지금의 마롱 같은 선수인데 이름을 듣는 순간 소름이 확 돋더라. 그러면서 나를 중국리그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소속팀임 미래에셋대우 김택수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최대한 보내주시려고 하신다. 외국인 선수가 우리나라 프로리그에서 임대로 뛰는 방식과 같은 건데 국내대회도 병행해야해 한국과 중국을 수시로 오가야 한다. 그 문제를 지금 상의 중인데 가게 되면 올 10월부터 12월까지 중국리그에 임할 예정이다.

가서 한 10승 하고 와라.

일단 가서 첫 승부터 하고 생각해보겠다. 중간에 전국체전이 있어 중국에 가더라도 잠깐 다시 들어와 전국체전에 임해야 한다.

당신의 두둑한 승리 수당을 기대하겠다. 탁구선수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무언가.

후쿠하라 아이는 예쁜가.

예쁘다. 늘 주변에는 후쿠하라 아이에게 잘해주는 남자들이 있더라. 이번 올림픽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내 스타일이다. 그나저나 운동선수답지 않은 곱상한 외모로 여자팬들도 많은 걸로 안다. 여자 좋아하나. 나는 좋아한다.

나는 탁구가 너무 좋아서 그 외엔 어떤 것도 안 했던 사람이다. 탁구에 지장이 있을까봐 게임도 일부러 안 했고 여자친구도 안 사귀었다. 형들도 “여자친구 만나면 운동에 지장이 있다”고 해 진짜 만나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 여자와 일부러 연락 자체를 안했다. 그런데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걸 준비했는데 올림픽에 못 나가게 됐다. 원래 늘 올림픽은 선발전을 통해 대표 선수를 뽑았는데 갑자기 세계랭킹으로 선수를 선발하기로 한 것이다. 랭킹이 낮아서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하고 23살인 그때 그냥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다. 여자를 당신처럼 막 밝히거나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원래 늦바람이 무서운 법이다. 그런데 당신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도 나서지 못했다. 여자친구 사귀느라 그랬나.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를 했고 선발전을 하면 늘 1등을 다 했다. 계속 그러다보니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도 선발전을 통해 5명을 뽑는데 당연히 그 안에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시안게임에 나가서 금메달 한 번 따보자는 생각만 했지 선발전에서 5등 안에 들어 아시안게임에 나가자는 생각은 안 했었다. 그런데 내가 나태했다. 선발전에서 6등을 하면서 아예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는 나가지도 못하게 된 거다. 그때가 가장 방황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늘 1등만 했던 당신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 아시안게임에 못 나가게 돼 충격을 받았고 탁구가 싫어졌다. 그때 처음 게임을 시작했다. 팀 동료들이 숙소에서 게임을 해도 나는 하지 않았었는데 내가 먼저 롤 좀 알려달라고 했다.

드디어 롤과 여자를 다 알게 된 건가. 축하한다.

한 달 동안 게임만 한 것 같다. 김택수 감독님도 내 상황을 이해하셨는지 탁구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이해해주시더라.

그러다 언제 다시 마음을 잡게 된 건가. 아니면 지금까지도 못 잡은 건가.

탁구에 대한 욕심이 없다보니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도 사라졌다. 시합 때도 막 새로운 기술을 써보고 놀았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근데 의외로 탁구가 잘 되더라. 열심히 할 때보다 쉬고 놀면서 재밌게 했는데 더 잘 되니까 이상하지 않은가. 2014년 영주한국실업탁구대회에서 한 세트도 빼앗기지 않고 다 4-0으로 이겨서 1등을 했다. 개인전, 단체전, 복식 다 석권했다.

정영식(오른쪽)은 이제 한국 탁구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대한탁구협회

방구석에서 롤을 하다가 헐레벌떡 나가서 국내 무대를 휩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사람들은 그러더라. “쟤가 아시안게임에도 못 나가더니 정말 독하게 마음 먹고 운동했나보다.” 사실 나는 그냥 재미있게 친 건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회인 대통령기 전국시도탁구대회라고 있다. 초중고부터 실업팀 선수까지 다 나오는 대회인데 이런 상승세가 이어져서 이 대회에서도 또 1등을 했다. 그 대회를 다 합쳐 딱 두 세트 빼앗겼다. 나머지는 다 4-0 승리였다.

그러면 국내에서는 거의 마롱 같은 존재 아닌가.

이전까지는 잘했어도 국내용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국제대회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슬럼프를 겪은 이후 상승세를 타면서 2015 쿠웨이트 오픈에서 내가 벨라루스의 삼소노프를 이겼다. 탁구월드컵을 세 번이나 우승하고 올림픽에 다섯 번이나 나가고 월드투어 개인단식에서는 25번이나 우승한 전설적인 선수였는데 이전까지 나도 두 번 만나서 두 번 다 졌던 선수다. 예전에는 세계랭킹 1위도 하고 내가 2015년에 이길 때도 세계랭킹이 10위였다. 그 대회에서 삼소노프를 이기고 8강까지 진출하고 그 다음 대회에서도 또 8강에 올랐다. 세계랭킹도 39위에서 20위까지 치솟았다.

국내용에서 국제용이 된 건가.

2015년 10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세 명이 올림픽에 나가는 거였는데 사실 나는 국내에서도 4~5번째 정도였다. 세계랭킹이 월등히 높은 (주)세혁이 형은 이미 확정이라고 봤을 때 올림픽 출전권 남은 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거였는데 내가 급속도로 세계랭킹이 올라 12위까지 기록했다. 결국엔 내가 국내에서 1등으로 이번 올림픽에 나가게 됐다. 완벽한 국제용까지는 아니어도 이제는 국제대회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정도는 됐다.

롤 레벨업 하는 것처럼 탁구도 레벨업을 한 것 같다.

마음을 비우고 즐겁게 하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인천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게 지금 생각하면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셈이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당신이 이렇게 탁구를 즐기게 된 데는 방황할 때 믿고 기다려준 김택수 감독의 영향도 커 보인다.

내가 아까 말한 거처럼 나는 운동신경이 없는 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탁구를 좋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는데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한테 자꾸 패하고 그랬다. 실업팀의 스카우트 제의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택수 감독님이 지금의 소속팀으로 나를 부르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넌 기술력도 다른 애들보다 떨어지고 운동신경도 떨어져. 그런데 나는 너 노력하는 거 하나 믿고 뽑았어. 나중에 네가 제일 잘 할 거야.” 이후 방황할 때마다 상담을 해주시거나 장문의 문자메시지로 나를 일으켜 세워 주셨다. 지금 못해도 되니 꾸준히만 하면 내 앞길이 보인다고 하셨는데 감독님이 또 우리나라에서는 탁구의 전설 아니신가. 긴가민가하면서도 감독님 말만 믿고 가기로 했다. 사실 롤을 하면서 탁구를 대충하니까 잘 됐다기보다는 이런 훌륭한 분 밑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일어날 수 있었다.

평소 김택수 감독은 어떤 스타일인가. 무서울 것 같아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자상한 스타일이다. 원래 감독이라는 자리에 있으면 어린 선수들하고 막 어울리기 힘들지 않나. 훈련은 시켜도 같이 연습경기를 하거나 그러기에는 불편한데 우리 감독님은 같이 탁구내기도 하고 축구도 하고 볼링도 치러 다니신다. 선수들하고 스케이드보드를 타러 갈 때도 있고 같이 영화도 본다. 아마 이런 감독님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선수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분이다.

사실 나는 당신에 대해 다른 선수들에게 많이 들었다. 선수촌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훈련하고 쉬는 날에도 혼자 서브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롤 이야기는 그냥 재미로 듣겠다. 너무 겸손하다.

그렇게 들어준다니 고맙다. 뭐 연습이야 늘 열심히 하는 거고 롤은 여가 시간에 틈틈이 하는 거다. 오해는 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탁구가 처음으로 노메달에 그쳐 일부에서는 한국 탁구가 위기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올림픽에 다녀온 당사자로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탁구가 구기종목 중에서는 못하는 종목이 아니다. 우리나라 구기종목 중에서 올림픽에 나가 꾸준히 은메달, 동메달을 따는 종목이 많지는 않다. 2012 런던올림픽 때도 남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땄는데도 중국세가 워낙 강하다보니 한국 탁구가 실력이 예전 같지 않고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은메달, 동메달만 따도 구기종목에서는 굉장히 잘한 건데 탁구는 선배님들이 이미 올림픽에서 이뤄놓으신 게 너무 많다. 우리도 당연히 부담을 느꼈고 노메달의 첫 주인공이 돼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주)세혁이 형을 제외하고는 이번 올림픽에 나선 남녀 5명 모두 첫 올림픽이었다. 세대교체는 잘 된 것 같고 두 번째 올림픽에 나서면 이번 올림픽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대표팀에서 노장인 주세혁의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겼을 것 같다.

원래는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았는데 올림픽이 끝난 뒤 부담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내가 성적 이상으로 올림픽에서 주목을 받았고 꼭 중국을 한 번 넘길 바라는 분들도 많다보니 부담감은 당연히 느껴진다. 사실 탁구에서 중국을 넘는 건 기적 같은 일인데 그런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더 잘해야 한다. 이제 나보다 밑에 있는 선수한테는 지면 안 되고 다른 나라 선수한테도 지면 안 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려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마롱은 언제 이길 생각인가.

내 뜻대로 된다면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전에 한 번 잡고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한 번 잡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는 못 나오게 하고 싶다.

좋다. 그 약속을 꼭 지켰으면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앞으로 각오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

이제는 ‘에이스’라는 이름을 물려받았으니 그 이름값에 걸맞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단기적으로는 다가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한 번 노려보고 싶고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 도쿄올림픽에서 사고를 한 번 치고 싶다. 또한 우리팀의 오상은 선배님이 마흔 살인데도 아직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활약하면서 팀에서는 주전으로 뛰고 있다. 오상은 선배님처럼 오래 탁구선수로 뛰는 게 내 최종적인 목표다.

정영식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철옹성 같던 중국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메달을 따지 못했음에도 이 선수에게 열광했는지 모른다. 그는 우리에게 메달보다도 더 아름다운 감동을 선보였고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정영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가 탁구계에서 ‘페이커’가 되는 그날까지도 쉼 없이 달리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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