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이승헌기자] 이번 2016 리우올림픽 사이클 남자 옴니엄 경기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다른 선수에게 부딪혀서 넘어진  선수가 오히려 먼저 사과를 한 것이다. 일반인으로서 도저히 이해 할 수 대인배의 마인드를 가진 박상훈(서울시청)이 그 주인공이다. 이 사이클 유망주이자 에이스 역할까지하고 있는 박상훈의 사고 당시 진짜 심정은 어땠을까. 올림픽을 마치자마자 훈련에 들어간 박상훈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반갑습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네.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몸 상태가 좋아져서 바로 강원도 양양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며칠 쉬지도 않고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죠.”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실감이 나시나요?

“경기 도중 낙차 사고를 당한 뒤 휴대폰을 보니 제가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 얘기보다는 저와 충돌했던 캐번디시의 욕이 더 많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그 선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사이클에서 낙차는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거든요.”

이번 올림픽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죠. 사이클이라면 취미로 즐기는 분들은 많지만 전문적인 선수는 생소합니다. 어떻게 사이클을 처음 시작하게 됐나요.

“아버지가 사이클 감독이셔서 중학교 1학년 때 자연스럽게 사이클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몸이 뚱뚱했어요. 잘 탈거라는 생각보다는 살도 뺄 겸 재미로 한 번 즐겨보자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원래 주종목이 개인추발이었는데 옴니엄으로 바꾸셨더라고요. 일단 두 종목의 차이를 설명해주세요.

“개인추발은 두 명이 각각 경기장 반대 방향에서 출발해 서로를 잡는 경기인데요. 옴니엄은 근대5종처럼 여러 종목에 점수를 합산해 우승자를 가리는 종목입니다. 지난 2012년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이 됐어요.”

왜 개인추발에서 옴니엄으로 종목을 바꾸신 거죠?

“서울시청 정태윤 감독님의 권유가 있었어요. 개인추발이 주종목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파워가 좋아서 중장거리에 자신이 있었는데 올림픽에 중장거리가 옴니엄 밖에 없어서 바꿨던 이유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훈련하셨나요?

“옴니엄 중에서도 마지막 종목인 포인트레이스에서 승부가 결정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호성 감독님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포인트레이스 4등을 하신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조호성 감독님이 한국 사이클의 전설이시잖아요. 아시안게임에서만 금메달을 다섯 개나 따셨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4위까지 오르신 분인데 훈련할 때는 굉장히 엄격하세요. 정해진 훈련을 무조건 끝마쳐야 합니다. 하지만 훈련이외에는 터치를 하지 않으셔서 편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1월에 부상을 당하셨는데 그 때 상황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홍콩 트랙월드컵에서 제외경기 도중에 낙차 사고 때문에 무릎 쪽 살이 찢어졌습니다. 재활하는데 한 달이 걸렸어요. 올림픽을 앞두고 당한 부상이라 걱정이 컸습니다. 두 달 뒤 3월에 세계선수권(2016 국제사이클연맹트랙사이클세계선수권대회)이 있었고 이 대회 이후에 올림픽 티켓이 결정되는 거라 걱정이 컸죠.”

저런, 재활하는 과정에서 심적 고통이 컸을 것 같아요.

“힘들 때 부모님이 많이 도움을 주세요. 항상 다독여주시고 뒤편에 서주시죠.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잊기 위해 세차를 해요. 한 번 할 때 4시간 동안 하는 편입니다. 세차 할 동안은 생각이 없어져서 스트레스를 푸는데 좋은 거 같아요.”

사이클 선수인데 자전거를 청소하지 않고 자동차를 청소하시는군요. 몰랐습니다.

“저희라고 매일 자전거만 타고 다닐 수 있나요.”

저는 매일 걸어만 다니거든요. 그렇다면 본인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저는 롤 모델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랜스 암스트롱 선수를 좋아했는데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잖아요. 현재는 제가 한국에서 롤 모델이 되어야할 위치이기 때문에 제 스스로가 더 발전해서 후배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고 싶어요. 건방지게만은 듣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대표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이제 이번 올림픽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사이클 옴니엄 마지막 종목인 포인트레이스에서 영국의 캐번디시 선수와 충돌이 일어나면서 낙차사고가 일어났어요. 그 당시가 잘 기억나시나요?

”캐번디시 선수 뒤쪽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그 선수가 위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여서 저도 위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캐번디시 선수가 다시 내려오면서 부딪히게 됐습니다. 캐번디시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결국 제가 넘어져 있더라고요.”

충돌한 딱 그 순간의 심정은 어떠셨나요?

“‘아 큰일 났다.’ 이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다시 일어나려고 했는데 넘어진 부위가 허리여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응급차에 실려 가게 됐죠. 결국 남은 108바퀴를 달리지 못했습니다.”

4년 동안 힘들게 준비한 올림픽이고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포인트레 이스에 주력을 두고 있었는데 결국 이 레이스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말았네요. 심리적인 충격이 컸을 것 같아요.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죠. 포인트 레이스에 자신이 있었고 마지막 종목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그 때 주변에서 다들 몸 걱정을 먼저해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그런데 제 충격도 충격이지만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그렇게 힘이 대단한 줄은 몰랐어요. 캐번디시는 사실 경력도 대단하고 사이클계에서는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저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너무 많은 비난을 받는 게 선수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 선수는 박상훈 선수를 넘어트리고도 은메달을 땄어요.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박상훈 선수에 대해 언급하거나 사과하지 않아 팬들이 더 화가 난 것 같아요.

“캐번디시가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먼저 전화를 해 사과를 했어요. ‘미안하다. 내가 주루 방향을 급변경한 잘못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도 문자메시지를 보내 또 사과했어요. ‘빨리 나아서 쾌차하고 다음 경기도 같이했으면 좋겠다. 올림픽에 출전했으니까 너는 좋은 선수다’라고 하더군요.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캐번디시의 잘못도 크지만 그 선수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한 제 잘못도 있어요. 사이클을 타면서 낙차는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전 이제 괜찮습니다.”

캐번디시에게 지금이라도 전할 말이 있나요? 저희 ‘스포츠니어스’가 요즘 핫해서 영국까지 이 메시지가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대로 물러났지만 다음에는 다를 것이라고 전하고 싶네요. 같이 좋은 경기 펼쳐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올림픽에서 박상훈 선수를 응원하고, 또 캐번디시 SNS에 욕을 한바가지 남겼던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4년 전에 비하면 지금의 관심은 정말 감사해요. 이번 올림픽이 끝이 아니라 저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요. 조호성 감독님도 그렇듯이 사이클은 몸 관리를 철저히 하면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저도 더 노력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제는 캐번디시를 욕하는 대신 한국 사이클을 더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박상훈은 연신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상대 선수를 걱정했다. 그런 따뜻한 마음이 바로 올림픽 정신 아닐까. 비록 메달은 따내지 못했지만 박상훈의 아름다운 용서는 충분한 금메달감이다.

already2win@sport-g.com

[사진= 박상훈 ⓒ 박상훈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