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한현성 기자] 2016 리우올림픽 남자 펜싱 에페 종목에 출전한 박상영(22)은 위기의 순간에서 스스로에게 차분히 주문을 걸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문처럼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안게 됐다. 박상영이 "할 수 있다" 를 속삭이는 모습이 포착된 동영상은 다음날 SNS에 올라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다음날 박상영의 긍정주문 동영상만큼이나 SNS를 도배한 동영상이 있었다. 바로 그 주인공은 최병철(36) KBS 펜싱 해설위원이다.

박상영의 극적인 역전승에 흥분을 감추지 못 한 최병철 해설 위원은 마치 호흡이 곤란한 것이 아니냐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소리를 지르며 보는 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그런데 이 '핫'한 남자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또 한 번 깜짝 놀랄 일에 도전하고 있다. 아직 화성시청 소속 선수로 활약 중인 그는 잠시 해설위원으로 일탈하더니 이번에는 청소년대표팀 감독이 돼 있었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이 남자를 직접 청소년대표팀 육성 전지훈련이 한창인 강원도 양구에 다녀왔다. 최병철 선수, 아니 최병철 해설위원, 아니 최병철 감독과의 만남을 지금부터 공개한다.

반갑습니다. 리우까지 다녀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리우는 실제로 무서운 도시였나요?

"리우에 가기 전 저의 목표는 무사귀환 이었어요. 리우 시내는 무섭다고 하는데 제가 있는 미디어 빌리지는 딱히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충분히 즐겨봤기 때문에 무서운 시내까지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어요. 그리고 소중한 제 목숨은 하나니까요."

리우에 다녀오신지 얼마 안 된거 같은데 바로 청소년 대표팀 감독까지 맡게 됐습니다. 욕심이 너무 많은신거 아닌가요? 

"리우에 가기 전부터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올해 4월에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였고 대한펜싱협회에서 이뤄진 투표 결과 제가 선발됐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지도자 자격증을 따 놓았기 때문에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지원했고 운이 좋게 감독으로 선발 될 수 있었습니다. 리우올림픽 해설 이후 인기를 등에 업고 감독으로 뽑힌 것이 아니냐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준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우리 '스포츠니어스'의 창간 첫 번째 인터뷰라 굉장히 뜻 깊습니다.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대표와 굉장히 친해요. 저한테 계속 인터뷰를 요구하더라고요. '지니어스포츠'의 이사직 제의를 받고 이 인터뷰에 응한 겁니다. 한 자리 주겠다는 김현회 대표의 약속이 꼭 지켜졌으면 합니다.

선수와 해설위원, 감독에 이어 이사직에 오른 것도 축하합니다. 그런데 최병철 이사님. 우리 매체 이름은 '지니어스포츠'가 아니라 '스포츠니어스' 입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제가 이사라는게 중요하지 매체 이름이 뭐가 중요합니까. 뭐 앞으론 '스포츠니어스'라고 꼭 외워두도록 하죠."

사실 워낙 TV에서 보여준 모습이 끼가 넘쳐보였기 때문에 선수로서 은퇴를 선언한 이후에는 제 2의 안정환, 제 2의 서장훈을 꿈 꾸고 있는지 알았어요. 예능인이 되어볼 생각은 전혀 없으신가요?

"방송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예능인이 되는 것이 싫지는 않죠. 하지만 너무 위험한거 같아요. 혹시라도 방송을 시작했다가 안 되면 어떡하나 싶고요. 저는 안정환씨나 서장훈씨처럼 선수생활을 하면서 큰 돈을 벌지 못 했어요. 아예 직업이 없어져버릴까봐 조심스럽죠. 펜싱과 방송. 양다리를 걸치는 걸로 하겠습니다."

결국 펜싱이 아직 축구나 농구에 비해 대중화되지 못한 문제로 이어지네요. 펜싱은 4년에 한 번 보는 종목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지금보다 펜싱이 더 대중화가 되기 위해서는 협회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그래도 대한펜싱협회는 대기업에서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괜찮은 편이에요. 펜싱 종목보다 더 열악한 종목들이 많죠"

그럼 최병철 위원은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따고서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런던에서 소문난 맛집을 갔습니다. 워낙 후원이 좋아서 식사 문제 같은건 없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불편한 일이 생겼습니다. 동메달을 따고 런던에서 푸짐한 식사를 즐기려는데 그 날이 마침 한국과 런던의 축구 8강전이 열리는 날이었거든요. 런던 사람들이 우리를 무섭게 쳐다보더라고요. 푸짐한 음식을 눈 앞에 두고서 죽을 뻔했죠"

구본길, 허준을 멀리서 응원한 최병철 위원 ⓒ 최병철 위원 SNS

선수로써는 올림픽을 경험했지만 해설위원으로써는 첫 올림픽입니다. 시청률도 많이 신경 쓰였을 것 같아요.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펜신 대표팀이 성적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해설을 잘 해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시청률이 나오질 않잖아요. 사실 펜싱에서 기대했던 선수들이 줄줄이 떨어지면서 저도 마음 고생이 심했어요. 두통약을 먹고 버텨야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해설위원 입장이 아니라 우리 후배들이 잘하길 바라는 선배의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4년동안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제가 잘 알거든요."

사실 박상영의 금메달이 있기 전까지 펜싱 대표팀 분위기가 그렇기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른 종목 해설위원과도 계속 마주치는데 펜싱 경기가 끝나고 돌아올 때마다 저에게 '오늘 펜싱은 메달 땄느냐. 어떻게 됐느냐.'고 매일 묻는 겁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묻는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풀이 죽어서 '다 떨어졌다'고 하는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러다 (박)상영이가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면서 분위기도 좋아졌고 제 부족한 해설이 의외로 주목을 끌면서 KBS가 펜싱 종목 시청률 1위를 기록했어요."

소리를 지르시다가 갑자기 불어가 튀어나오시던데, 옆에 분과 원래 아는 사이였나요?

"상영이의 경기가 있기 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프랑스 선수가 동메달을 따서 제가 옆에 있는 프랑스 캐스터에게 먼저 축하한다고 말을 전했었어요. 그리고 상영이가 금메달을 따니까 그 캐스터가 저에게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더고요. 그래서 전 고맙다고 말을 했죠. 그 분과는 그 날 처음 보는 사이였어요. 사실 이름도 모릅니다. 아마 또 마주쳐도 못 알아볼 수도 있어요."

해설할 때 보여준 그런 유쾌한 모습은 최병철 선수의 플레이에서도 익히 팬들이 봐왔기 때문에 더 반갑기도 하고 좋은 것 같아요. 혹시 박상영 선수와 붙어도 멋있게 이길 자신 있나요?

"제 종목인 플레뢰와 상영이가 하는 에페는 룰이 확연히 다르죠. 유효타 면적이 적은 플레뢰로 붙는다면 상영이는 저한테 게임도 안 됩니다. 물론 에페로 붙자고 하면 제가 피할 겁니다."

 

그렇다면 평소 성격도 펜싱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도전적이신가요?

"맞아요. 제 별명이 최 게바라(최병철+체 게바라)에요. 제 신념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자' 에요. 그래서 지니어스포츠. 아니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대표에게 무척 약해요.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너무 싫어하죠. 그럴 때마다 지도자, 선배들에게 거침없이 불만을 표현했어요. 그 결과 후배들에게는 인기많은 선배가 됐지만 지도자나 선배들에게는 종종 사랑받지 못 했죠"

말씀을 들어보면 펜싱이라는 종목이 평소 선수의 성격이 잘 묻어나오는 종목인 것 같아요. 그런 점 때문에 리우 올림픽 출전한 선수들 중에서는 아쉬웠던 선수는 없었나요?

"플레뢰에 출전한 허준 선수가 너무 아쉬워요. 준이가 적극적인 공격으로 경기를 풀어갔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을텐데 너무 소극적으로 경기를 했어요. 경기 전에 만났을 때에도 공격적으로 경기를 하라고 했는데 아마 준이가 상대전적이 밀린 선수를 만나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펜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눈빛이 달라지시는 것 같아요. 대중들은 오늘 인터뷰에서 평소 위원님의 모습처럼 예능쪽을 기대할거 같은데.

"그런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에요. 평소에는 술 취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는데 펜싱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거 딱 끊고 진지해지죠. 다른 것은 몰라도 펜싱만큼은 진지함을 잃고 싶지 않아요."

 이제 마지막으로 이번 올림픽을 마무리하는 더 진지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선수들보다 올림픽을 지켜본 국민들께 한 마디 하고 싶네요. 선수들이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흘린 땀은 똑같아요. 메달을 딴 선수의 노력이나 메달을 따지 못 한 선수의 노력은 한 끗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메달을 따지 못 한 선수도 대단하고, 메달을 딴 선수는 더 대단한거에요. 그런데 메달을 따지 못 한 선수들에게 향한 국민들의 질타를 지켜보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어요. 그보다 우리 모든 선수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한 마디를 건네주는 것이 어떨까요. 또한 올림픽은 '예능'이 아니에요. 재미있는 경기를 하면서 메달까지 따면 좋겠지만 사실 4년 동안 준비해 온 대회에서 그저 재미만을 위해 성적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올림픽을 '예능'처럼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질책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우리 선수들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올림픽 동안 과분한 사랑 받았는데 이제 선수로, 또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을 지도하는 지도자로 그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병철 해설위원을 너머 이제는 감독직에 오른 그의 도전을 응원한다. 최병철 위원의 독특한 해설을 듣고 그를 가볍게 보는 시선도 많았지만 펜싱을 향한 가벼움은 그에게서 절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보여준 해설은 펜싱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게 더 적절할 것이다.

[사진 = 최병철 ⓒ 스포츠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