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곳이다. 중국 동포가 굉장히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중국어보다도 우리 말이 더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에 중국 프로축구팀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별로 없고 이 팀이 우리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더더욱 없다. 또한 이 팀이 중국에서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잘 알지 못한다. 오늘은 기적을 일궈내고 있는 중국 프로축구 2부리그의 연변FC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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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하 감독은 올 시즌 3부리그 추락의 위기에 있던 팀에게 마법 같은 주문을 불어 넣었다. (사진=연변FC)

근근이 운영된 연변FC의 3부리그 추락과 반전

1955년 중국동포들이 주축이 돼 길림FC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이 팀은 1965년에는 박만복 감독의 지휘 하에 전국제2차운동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고 중국갑급연맹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중국 내에서도 인정받는 강팀으로 발돋움했다. 1992년에는 갑B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며 갑A리그로의 승격에 성공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삼성그룹의 후원을 받으며 길림삼성(吉林三星)으로 팀 이름을 바꿨고 1년 뒤에는 현대그룹을 스폰서로 끌어 들여 연변현대(延边现代)로 재탄생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지역 축구팀으로 중국동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7년에는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지낸 최은택 감독을 영입하며 갑A리그에서 4위까지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이때부터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0년 들어 갑B리그로 강등됐고 재정악화까지 겹쳐 2,500만 원에 매각되고 만 것이다. 결국 이 팀은 3부리그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중국동포 팀이 중국에서 힘겹게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에서의 도움이 이어졌다. 2008년 붉은악마 응원단이 6억 원을 지원했고 SK그룹도 8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원한 것이다. 2009년에는 SK측에서 ‘코리안 풋볼 드림매치’라는 이름으로 제주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주선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구단 이름을 ‘연변장백산호랑이’로 바꿔 달면서 K리그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조긍연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한국에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는 팀이었지만 연변FC는 중국 내에서 중국동포의 애환을 달래주는 팀으로 꾸준히 그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이따금씩 한국에서 지원의 손길이 이어졌음에도 연변FC가 중국 프로축구에서 가난한 팀이라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워낙 다른 구단의 투자 규모가 방대했고 연변FC의 자체적인 운영 능력도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연변FC는 2014년 2부리그에서도 3승 9무 18패 29득점 45실점하며 18개 팀 중 16위로 3부리그 강등이라는 믿기 어려운 성적을 받아들여야 했다. 30경기에서 단 세 차례밖에 승리를 거두지 못할 정도로 팀의 경기력은 바닥이었다. 연변FC로서는 더 이상 2부리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3부리그행을 쓸쓸히 준비했고 3부리그 규정상 외국인 선수는 활용할 수 없어 외국인 선수도 모두 방출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연변FC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같은 2부리그에 속했던 한 팀이 해체되면서 16위로 강등이 확정된 연변FC의 2부리그 잔류가 성사된 것이었다. 연변FC 측에서는 부랴부랴 신임 감독 영입을 준비했고 새로운 감독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2012년 FC서울 수석코치를 지낸 뒤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던 박태하 감독이었다. 그들은 박태하 감독에게 정중히 자신의 팀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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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균은 K리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연변FC로 떠났지만 이제 그곳에서 영웅이 됐다. (사진=연변FC)

박태하 감독이 택한 ‘신의 한수’ 하태균

사실 박태하 감독도 연변FC의 수장이 되는 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현지 상황을 보고는 그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배부르게 축구를 한 적이 없는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선수들의 부모들이 객지로 나가 돈을 벌어야 할 만큼 연변FC 선수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박태하 감독은 이런 선수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어 결국 그들을 이끌기로 결정했다. 박태하 감독은 연변FC의 부탁을 받아 들여 그렇게 2014년 12월 연변FC의 새로운 수장이 됐다. 하지만 연변FC는 2부리그에 남아 있을 준비가 전혀 돼 있질 않았다. 3부리그행이 확정된 뒤 외국인 선수를 모두 내보냈고 여기에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전혀 물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촉박했던 박태하 감독은 K리그에서 눈여겨 봤던 한 선수에게 제안을 보냈다. 잠재력은 뛰어나지만 아직 꽃피우지 못했고 팀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던 이 선수의 이름은 바로 수원 소속의 하태균이었다. 2007년 수원에서 데뷔해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오르기도 했던 하태균은 상주상무에 다녀온 뒤 다시 수원에 합류했지만 자리가 없었다. 정대세와 산토스, 카이오 등 쟁쟁한 공격수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태균으로서는 K리그 클래식 빅클럽 수원에서 중국 2부리그의 최약체 연변FC로 팀을 옮긴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태균은 박태하 감독의 요구에 응했다. “연변FC로 간다는 걸 주변에서 좋지 않게 보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했고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하태균은 담담히 연변FC행을 받아들였다. 5개월 임대의 조건이었다. 박태하 감독은 K리그 포항에서 함께 활약했던 오명관을 수석코치로 임명했고 FC서울에서 기술분석을 맡았던 김혁종 분석관도 데려왔다. 또한 브라질 출신 공격수 자일톤과 감비아 국가대표 출신 스티브를 하태균과 함께 외국인 선수로 채웠다. 워낙 재정이 약한 탓에 외국인 선수를 모두 임대로 데려왔고 나머지 선수들은 대부분 지난 시즌 뛰었던 선수들을 중용해야 했다. 그렇게 25명의 1군 선수 중 하태균을 포함한 외국인 선수 세 명을 제외하고는 17명의 중국동포로 채웠다. 한족이 네 명, 위구르족이 한 명이었다. 코치진도 박태하 감독을 비롯한 한국인 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국동포가 맡을 정도로 이 팀은 다른 중국 구단과는 달랐다.

목표는 2부리그 10위로 잡았지만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개막 일주일을 남겨 놓고 가까스로 선수 구성이 마무리 될 만큼 모든 일은 급박하게 이뤄졌다. 그런데 개막과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앙시 리안셍과의 2부리그 개막전 원정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둔 연변FC가 기적 같은 무패 행진을 이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리그가 개막하는 3월에는 영하 16도까지 내려가는 연변의 추위 때문에 홈 경기를 치를 수 없어 개막 후 내리 원정 세 경기를 치렀지만 연변FC는 이 세 경기에서 2승 1무의 성적을 내더니 이후에도 절대 패하지 않는 팀으로 변모했다. 그렇게 연변FC는 무려 21경기 연속 무패라는 믿기지 않는 대기록을 세웠다. 3월 14일 개막전부터 8월 15일 하얼빈 이텅과의 원정경기에서 0-3으로 무너지기 전까지 21경기에서 13승 8무 44득점 16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이었다. 특히나 전북에서 뛰다가 천문학적인 액수를 받고 이적한 에두가 뛰는 허베이 화샤 싱푸와의 경기에서도 3-0 완승을 거두는 등 분위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펄펄 날던 에두도 연변FC의 수비진을 상대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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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FC 팬들은 기적과도 같은 그들의 행보에 뜨거운 애정으로 화답하고 있다. (사진=연변FC)

기적 같은 활약, 그리고 동포들의 응원

그러자 연변의 중국동포들도 화답하기 시작했다.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는 관중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고 중국동포의 동창 모임도 경기장에서 열리는 등 응원 열기가 대단했다. 축구뿐 아니라 이 경기를 통해 중국동포가 모두 하나가 되는 장이 마련된 것이다. 70세 이상 노인은 경기장에 무료 입장할 수 있지만 구단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손수 입장권을 구입하는 노인들도 늘어났다. 연변일보에서는 이런 연변FC 관중에 대해 이런 보도를 하기도 했다. “요즘 연변에서는 '지난 경기를 봤습니까?'라는 말이 사람들을 만나면 하는 첫 인사가 됐다. 어디를 가더라도 연변팀에 관한 이야기들 뿐이다.” 길림신문 역시 “연변팀은 200만 중국동포들의 희망”이라고 평가했다. 중국동포들의 연변FC 사랑은 눈물겨웠다. 버스 공장 근로자로 평생을 일하다 퇴직한 한 할머니는 퇴직금의 절반인 1천 위안(약 40만 원)을 구단에 내놓으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시원한 수박하고 냉면이나 좀 사 주세요.” 이렇게 직접 구단으로 찾아와 성금을 전하는 중국동포들이 점차 늘어났고 3만 석 규모의 경기장은 늘 꽉 들어찼다.

올 시즌 중국 2부리그 평균 관중은 8,269명인데 연변FC는 경기당 무려 24,289명을 동원하며 리그내 평균 관중 1위 자리를 독보적으로 유지하기도 했다. 한 중국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연변FC가 골을 넣을 때마다 손님들에게 서비스 음식을 제공하는 등 말 그대로 연변FC는 중국동포 사회에서 희망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두 시간씩 걸어와 연변FC를 응원하고 돌아가는 팬들도 생겨났고 입장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경기장 바깥의 나무에 올라가 축구를 관람하는 일도 벌어졌다. 연변주에는 연변FC에 입단하는 게 꿈인 중국동포 800여 명 이상이 지금도 공을 차며 꿈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21경기 연속 무패가 마감된 뒤에도 연변FC는 톈진 쑹장에 안방에서 0-1로 단 한 차례만 더 패했을 뿐 2부리그에서 독보적인 선두를 유지했다. 27경기를 치를 때까지의 성적은 16승 9무 2패 55득점 23실점으로 압도적인 1위였다.

하태균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하태균이 시즌 개막과 함께 맹활약을 이어가자 연변 구단은 수원에 하태균의 완전이적을 놓고 협상을 시작했다. 무려 한 달에 이르는 협상 끝에 하태균은 이적료 40만 달러에 연변FC와 1년 5개월의 완전이적 계약을 맺었다. 자신에게 기회를 준 연변FC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태균은 지난 27라운드 베이징FC와의 경기에서도 3골 1도움을 터트리는 등 맹활약하며 팀을 이끌었다. 올 시즌 벌써 23골을 뽑아내며 득점 랭킹 2위를 기록 중인 가운데 득점 1위인 루마니아 출신 공격수 크리스티안 다날라체(신장 톈산)에 한 골 차로 바짝 추격 중이다. 그리고 지난 18일 연변FC는 28라운드 우한주얼과의 원정경기에 나섰다. 이 경기에서 승점 1점을 추가하면 자력으로 승격을 확정짓는 상황이었다. 순위결정에 득실차가 아닌 승자승을 우선으로 하는 규정상 연변이 올 시즌 3위를 기록 중인 다롄에 1승 1무를 거뒀기 때문에 남은 두 경기 결과가 상관없는 상황이었다. 이 경기에서 연변은 0-0 무승부를 거두고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승격을 확정지었다. 3부리그 추락의 위기까지 겪던 팀의 극적인 1부리그 진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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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연변FC는 중국 프로축구 1부리그로 간다. 그들의 멋진 도전을 응원한다. (사진=연변FC)

이제 그들은 1부리그로 간다

1999년 2부리그로 강등된 뒤 무려 16년 만의 1부리그 승격이었고 여기에는 중국 동포들의 뜨거운 응원은 물론 박태하 감독과 하태균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적지 않은 중국 언론에서 연변FC의 믿기지 않는 돌풍에 대해 박태하 감독에게 물었지만 그의 답변은 늘 한결 같다.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모든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한 걸음씩 걸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제 연변FC는 내년 시즌 중국 프로축구 1부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3부리그 추락의 위기에 있던 팀을 구해낸 박태하 감독의 인기는 연변에서 대단하다. 벌써부터 그에게 구애를 보내는 중국 내 빅클럽들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연변FC 팬들은 박태하 감독을 붙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팬들이 직접 한글로 “박태하, 연변 인민들의 영웅”이라는 플래카드를 제작할 만큼 그의 인기는 대단하다. 또한 그들은 경기장에서 아리랑을 목 놓아 부르며 중국 동포로서 사는 애환을 달랜다.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한국인 감독과 선수, 그리고 중국 동포가 하나가 돼 감동을 선사하는 경기장 풍경은 중국인들도 새롭게 느낄 만큼 매력적이다.

중국 동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살며 축구로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나가고 감동 받는 이들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연변FC의 믿기지 않는 기적과도 같은 승격에 박수를 보내며 그들이 중국 프로축구 1부리그에서도 이 전설을 계속 써 내려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건 중국 동포들의 팀이 아니라 우리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팀이라도 진심으로 박수를 보낼 만한 의미 있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연변의 홈 경기장에서는 이런 한국어 응원가가 울려 퍼진다. “드넓은 동해를 건너 장백의 정기를 안고 민족을 혼을 보여준 우리의 용사 하태균. 굶주린 호랑이처럼 백두의 힘을 가지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우리의 골잡이 하신. 태균 태균 너는 우리의 용사. 민족의 패기를 보여준 우리의 형제. 태균 태균 앞으로 나아가라. 우리들의 함성과 함께 높이 날아가라.” 연변FC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박태하 감독, 그리고 하태균과 함께 더 높이 날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