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원정은 늘 버겁다. 날씨도 그렇고 상대를 압도하는 원정 팬들의 응원 열기에 지저분한 플레이까지 우리를 괴롭힌다. 요르단이나 레바논 등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팀들과의 경기도 원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만큼 중동 원정은 우리에게 늘 버거운 일이었다. 오늘(9일) 열린 쿠웨이트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원정 경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자철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선수들의 몸놀림은 이전 경기와는 달랐다. 한국은 상당히 어려운 경기를 이어나갔고 가까스로 승점 3점을 챙겼다. 최근 슈틸리케호의 경기 중에서는 내용에서 가장 아쉬웠던 경기라고 할 수도 있다.

내용보다도 결과가 중요했던 경기
하지만 이겼으니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한국 선수들의 체력이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기성용을 비롯한 해외파는 주말 경기를 치르고 사흘 만에 비행기로 이동해 중동 원정 경기를 치러야 했고 K리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반 막판에는 특유의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고 상대 진영에서 공을 끌며 시간을 보내야 할 만큼 선수들이 뛰질 못했다. 특히나 늘 대표팀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던 기성용은 체력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안방에서 경기를 치르는 쿠웨이트 선수들도 후반 막판에는 체력이 방전된 모습이었는데 주말 경기를 치르고 장거리 이동 후 또 다시 경기를 치러야 했던 한국 선수들의 상황이야 오죽했을까.

그런데 이 경기는 내용보다도 결과가 중요한 경기였다. 2차 예선 G조에서 사실상 1위 결정전이었기 때문에 한국은 반드시 쿠웨이트를 잡아야 했다. 아무리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고도 이 경기에서 패했더라면 한국으로서는 남은 예선전에 상당한 부담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야 어찌됐건 한국은 힘겨운 승부 끝에 승점 6점 같은 승점 3점을 따냈다. 축구라는 게 사실 내용이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경기도 있다. 평가전처럼 경기력을 점검하는 경기에서는 아무리 결과가 좋더라도 내용이 부실하면 만족할 수 없다. 그런데 반대로 이렇게 중요한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는 내용보다도 결과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비록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이겼다는 점에 큰 박수를 받을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한국은 주전인 이청용과 손흥민까지 빠진 채 경기에 임해야 했다. 중동 원정이라는 대단한 부담감에 체력적인 문제, 여기에 주전 선수가 두 명이나 이탈하는 악조건이었다. 사실 이번 쿠웨이트전에서 무승부만 거뒀어도 한국으로서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또한 우리가 잘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쿠웨이트는 이전 2차 예선 세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은 팀이었다. 그런데 첫 실점이 바로 패배로 이어졌다. 한국이 그만큼 높은 집중력을 보였다는 증거다. 최근 들어 중동 원정 경기에서 이른 시간 선취골을 넣으며 침대 축구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는 점 역시 반갑다. 슈틸리케호는 비록 이번 경기에서 만족할 만한 내용을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결과 그 자체로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모든 경기에서 완벽한 경기력을 보이는 팀은 없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법인데 한국은 쿠웨이트를 상대로 오랜만에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를 했을 뿐이다.

바닥난 체력, 그래도 우리는 승점 3점을 얻었다
과거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리그 우승을 차지할 때를 보면 질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꾸역 꾸역 이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런 팀이 진정 강팀이라고 생각하는데 쿠웨이트를 상대한 한국 역시 무승부를 거둬도 할 말이 없는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챙겼으니 아시아권에서는 강팀으로 분류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후반 막판 들어 체력이 바닥나 뛰지 못하는 선수들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승점 3점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점점 한국 축구의 저력이 생기는 건 같아 만족스럽기도 했다. 물론 지동원과 이재성, 한국영 등 교체 선수들이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는 점은 앞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이재성이야 워낙 출전 시간이 짧았으니 그렇다고 쳐도 지동원이 후반 교체 투입 후 다른 선발 선수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몸놀림에 그쳤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다. 전체적으로 체력에 문제가 있는 경기에서 교체 투입된 선수들의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사실 걱정스러운 건 슈틸리케호가 곧바로 귀국해 나흘 만에 자메이카와 안방에서 평가전을 치른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성용을 비롯해 체력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선수들에게 휴식을 부여하면 어떨까 싶지만 경기 외적으로도 주전 선수들을 제외하는 건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국내 평가전의 흥행도 생각해야 하고 스폰서들 역시 주전 선수들의 출전을 바라기 때문이다. 팬들도 우리의 주전 선수들이 안방에서 뛰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겠지만 만약 주전 선수들이 자메이카전에 출전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너그럽게 봐주는 마음을 갖는 건 어떨까. 여행을 갈 때도 몇 시간 비행기 타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장시간 비행 후 연이어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유럽과 중동, 한국을 오가며 제대로 시차적응을 할 시간도 없이 그라운드에서 10km 이상 뛰는 건 아무리 체력이 좋은 선수들이라도 대단한 부담이다.

쿠웨이트전을 통해 본 선수들의 플레이가 이전 경기와 다르게 시원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중요한 원정 승부에서 승점 3점을 챙겼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쿠웨이트전은 상당한 성과를 얻은 경기였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남은 2차 예선 경기를 더욱 수월하게 치를 수 있게 됐다. 보다 다양한 선수들을 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선수들은 쿠웨이트전을 치르면서 체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지만 그럼에도 얻은 성과가 많다는 점을 떠올리며 하루 빨리 체력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특히나 기성용은 한국과 중동, 영국을 최근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왕복하며 일주일에 두 경기씩 소화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항공사 마일리지는 쌓이겠지만 그만큼 체력은 반비례할 수밖에 없다. 힘든 상황에서도 귀중한 승리를 따낸 한국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내용이야 어찌 됐건 이겼으니 장땡인 경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