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성남FC와 인천유나이티드의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33라운드 경기가 열린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한 남자가 눈물을 보였다. 말끔히 정장을 차려 입은 그는 결국 참아오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이게 어찌된 일이었을까. 누가 이 멋쟁이 신사의 눈물을 빼놓은 것일까. 오늘은 전북, 성남과 묘하게 얽힌 한 남자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바로 인천유나이티드 김도훈 감독에 관한 이야기다.

신생팀 전북의 아기공룡, 김도훈
김도훈에게 있어 전북은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1995년 우선지명으로 전북의 유니폼을 입게 된 김도훈에게 주어진 임무는 막중했다. 지금이야 전북이 K리그 클래식에서 1강으로 꼽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전북은 이제 막 버팔로의 역사를 마감한 최약체였다. 하지만 김도훈은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뽑아내며 펄펄 날았고 점점 전북의 역사가 됐다. 전북은 1995년 8개 팀 중 7위에 그치고 말았지만 김도훈은 그 와중에도 9골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북을 이끌었고 이듬해에도 22경기에 나서 10골 3도움을 올렸다. 김도훈은 이후 1997년 J리그 빗셀고배로 임대 이적한 뒤 2년 만에 팀에 복귀했고 전북 구단도 김도훈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애를 썼다. 당시 황선홍이 세레소 오사카에서 수원으로 이적하며 연봉 2억 5천만 원으로 국내 최고 연봉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전북은 김도훈에게 “황선홍보다 1백만 원이라도 더 챙겨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김도훈은 전북에 복귀하며 연봉 2억 7천만 원에 사인을 마쳤고 여기에 현대자동차 광고 모델료와 승리수당 등을 합치면 연봉은 4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김도훈은 2000년 K리그 최고 연봉자다운 활약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8경기 연속골이라는 놀라운 대기록을 이어나갔다. 김도훈이 이 8경기에서 기록한 골은 무려 11골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2000년 K리그에는 고종수(수원)와 이동국(포항), 김은중, 이관우(이상 대전), 이영표(안양) 등 스타선수들이 넘쳐 났지만 당시 K리그 올스타전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건 바로 김도훈이었다. 이동국과 이영표가 김도훈의 뒤를 이를 정도로 김도훈의 인기는 엄청났다. 그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나서 부상을 당해 3개월 간 쉬워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팀을 위해 약 45일 만에 복귀해 준플레이오프 부천SK전에 나선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결국 김도훈은 이해 최용수와 이원식 등을 제치고 생애 첫 K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당시 FA컵 결승전에서도 부상 투혼을 선보이며 결승골을 기록, 전북의 창단 이후 최초의 우승을 이끈 것도 김도훈이었다.

김도훈은 이듬해 정규리그 직전 열린 아디다스컵에서 7골을 뽑아냈다. 2000년 정규리그 득점왕에 이어 바로 다음 대회인 2001년 아디다스컵에서도 또 다시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K리그 역사상 한 선수가 두 대회 연속 득점왕을 차지한 건 김도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01년에도 악조건 속에 무려 15골 5도움을 기록한 김도훈은 이듬해 또 한 번 J리그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구단이 나를 최고 연봉자로 대우해주며 인정해 주고 있다. 전북과는 인간적인 정으로 맺어진 만큼 이 이상 돈에 대한 욕심은 없다." 무려 전북에서 받는 연봉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연봉을 제안 받았지만 김도훈의 전북에 대한 애정은 확고했다. 하지만 이후 새롭게 부임한 조윤환 감독과 불화를 겪은 김도훈은 결국 주전 명단에서 제외되는 굴욕을 맛봤고 결국 2003년 1월 이적료 6억 5천만 원과 연봉 4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성남 유니폼을 입게 됐다. 김도훈과 신생팀 전북의 아름다운 인연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성남의 찬란한 역사의 중심, 김도훈
하지만 김도훈의 진가는 성남 이적 이후 더욱 발휘되기 시작했다. 윤정환과 데니스, 싸빅, 이기형 등에 이어 김도훈까지 영입한 성남은 역대 최강 전력을 갖추게 됐다. 물론 당시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던 성남의 공격 최전방에는 김도훈이 있었다. 홀로 전방을 지켜야 했던 전북 시절과 달리 성남에는 공격 파트너로 샤샤라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도 있었다. 당시 이들 외에도 신태용과 김대의 등까지 데리고 있던 성남일화는 ‘한국의 레알 마드리드’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강했다. 이 당시 성남이 시즌을 앞두고 스카우트에 쓰인 돈만 해도 무려 64억 원이었다. 특히 당시 성남은 무려 9연승을 내달리는 등 K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강팀으로 군림했고 김도훈은 득점과 어시스트에서 시즌 중반 나란히 1위에 오르는 눈부신 활약을 이어갔다. 2003년 시즌 도중인 7월 열린 피스컵에서도 김도훈은 카이저 치프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포효했다. 김도훈은 K리그 최강팀 성남을 이끄는 공격수로서 물 오른 기량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당시 K리그에는 유능한 외국인 선수들이 즐비했다. 특히 이들 중 지금도 회자되는 이들이 바로 도도와 마그노다. 도도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남미 예선 때 브라질 대표팀 상비군에 선발된 적도 있었고 보타포고에서 뛸 당시에는 호마리우를 제치고 상파울루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브라질 축구팬들이 선정한 역대 브라질 공격수 투표에서 펠레, 호나우두, 히바우두, 베베토 등과 함께 8위 안에 들 만큼 대단한 인지도를 지닌 선수였다. 마그노도 대단한 선수였다. 2000년 플루미넨세 소속으로 브라질 전국 리그 세리에 A에서 20골을 기록하며 호마리우 등과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던 마그노는 지금까지 K리그에 온 브라질 출신 선수 중 유일한 전국리그 득점왕 출신이었다. 이 둘은 K리그에 입성하자마자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과시하며 득점왕 경쟁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최고의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했던 2003년 득점왕은 도도도, 그렇다고 마그노도 아니었다. 김도훈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도도, 마그노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득점왕 경쟁에서 한 골차로 뒤지고 있던 김도훈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두 골을 몰아치며 역대 가장 치열했던 득점왕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됐다.

40경기에 나서 무려 28골 13도움이라는 믿기지 않는 성적을 올린 것이다. 특히나 세 번씩이나 해트트릭을 기록할 만큼 몰아치기 능력도 대단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교보문고가 김도훈과 함께 한 골을 넣을 때마다 40권의 책을 제천시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했는데 28골을 넣으면서 무려 1,120권의 책을 기증했다는 점이다. 물론 2003년 성남은 김도훈을 앞세워 시즌 중반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짓는 등 K리그에서 역대급 강팀으로 군림하게 됐고 김도훈은 이해 K리그 MVP 투표에서 74표 중 73표를 얻어 압도적인 지지로 생애 첫 MVP에 오르게 됐다. 김도훈은 2004년 10월에는 역사적인 개인 통산 100호골을 기록하기도 했고 당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는 1차전 무승부와 원정에 대한 부담을 극복하고 우즈베키스탄 팍타코르를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내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2005년 8월에는 성남 유니폼을 입고 인천과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 113호골로 개인 통산 최다 득점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도훈은 이해 10월 부상을 당했고 결국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

그가 만난 얄궂은 운명, 그리고 전북과 성남
김도훈은 전북에서 153경기에 나서 63골을 기록했고 성남에서는 104경기 출장 51골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전북과 성남 역사에 있어서 김도훈은 빼놓을 수 없는 선수였고 김도훈에게도 전북과 성남은 J리그 2년을 빼놓고는 선수 생활 내내 함께 한 의미 있는 팀이었다. 그런데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이 된 김도훈은 아 오랜 인연을 맺은 전북과 성남, 두 팀과 얄궂은 운명의 맞대결을 펼쳐야 했다. 지난 4일 상하위 스플릿을 나누는 마지막 경기에서 성남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익숙한 탄천종합운동장에서였다. 7위 제주에 승점 2점이 앞서 있던 인천은 이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이변이 없는 한 6위를 사수하며 상위 스플릿에 오를 수 있었다. 또한 성남전 경기 결과와는 상관없이 제주가 패하거나 무승부에 그쳐도 6위 수성이 가능했다. 그런데 제주의 상대가 하필이면 김도훈 감독의 고향과도 같은 전북이었다. 김도훈 감독은 현역 시절 자신의 모든 걸 바친 성남과 전북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애매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인천은 성남을 상대로 수비적인 전술을 취했다. 하지만 결국 후반 막판 황의조에게 한 골을 내주며 0-1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경기가 이대로 끝나더라도 전북이 제주와 무승부만 거둬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전북은 후반 종료 직전 2-2 상황에서 로페즈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김도훈 감독은 현역 시절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함께 했던 성남에 일격을 당했고 현역 시절 가장 정이 많이 들었던 전북도 도와주질 않아 결국 눈물을 보이고 하위 스플릿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지만 이미 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지은 성남이 인천을 상대로 승리를 따내는 순간이 김도훈 감독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도훈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많이 아쉽다. 우리 인천을 응원해주신 팬들과 우리 선수들 최선을 다했다. 감사하다. 여기까지 올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 그러면서 기자회견장에서 마지막 질문을 받은 뒤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조수혁의 부상이 걱정이 된다. 경기 직후 많이 우는 모습을 봤다.” 눈물을 쏟은 김도훈 감독은 “기자회견은 여기에서 마쳐야 할 것 같다”며 자리를 빠져 나갔다.

승부의 세계는 늘 이렇다. 영원한 적군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김도훈 감독이 현역 시절 가장 많이 애정을 갖고 있던 두 팀은 결국 김도훈 감독의 지도자 생활 첫 시즌에 시련을 안겨줬다. 물론 성남과 전북도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성남-인천전이 끝난 뒤 김도훈 감독과 성남 시절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한 축구인을 만났다. 그 역시도 내심 김도훈 감독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 친구하고 같이 상위 스플릿으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운명이 참 기구하네요. 성남이 도훈이의 발목을 잡을지 누가 알았겠어요.” 아쉽지만 이게 바로 축구다. 비록 김도훈 감독은 상위 스플릿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지만 아마 인천이 이렇게까지 상위 스플릿 진출을 노릴 만큼 의외의 성적을 내리라고 기대하는 이는 처음부터 많지 않았을 것이다. 김도훈 감독은 “친구인 조성환 감독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어려운 팀을 이끌고도 멋진 도전을 펼친 김도훈 감독에게도 응원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기구한 운명 속에 결국은 좌절을 맛봐야 했던 김도훈 감독이 앞으로 더 성숙한 지도자가 돼 웃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