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랭킹 177위의 ‘최약체’ 라오스를 상대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경기를 치른다. 라오스 감독도 대놓고 “수비 축구를 하겠다. 한국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할 정도로 한국과 라오스의 수준차는 엄청나다. 라오스 선수들은 한국의 유명 선수들과 뛰는 게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이나 기성용과 유니폼을 교환하는 게 목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이 경기를 시시한 승부 자체로만 놓고 보고 싶지는 않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누가 해트트릭을 기록할지, 누가 몇 골을 넣을지 예상하고 있지만 나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 소개할 칼럼은 조금 특별하다.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꺼져 가던 선수 생활의 불씨를 살린 한 선수의 이야기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선수는 바로 라오스의 전직 국가대표다. 오늘 라오스전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시시할지도 모를 승부를 예측하고 있지만 나는한 라오스 축구선수의 꿈과 그 꿈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이들의 이야기에도 이번 기회에 한 번 귀 기울여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축구를 비롯한 모든 한국의 환경이 꿈만 같을 수도 있다는 걸 오늘 칼럼을 보며 한 번쯤 새겼으면 한다. 지금부터 다시 꿈을 꾸게 된 한 라오스 축구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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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축구선수 셩 슈퐁이 광주KS병원에서 무료로 십자인대 접합수술을 받고 의료진과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광주KS병원)

라오스 선수 위해 무료 수술 실시한 병원

2012년 65 광주KS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최동진 원장에게 한 통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 라오스인데 지금 한 축구선수의 운명이 달려 있어. 네가 좀 도와줘야겠어. 무릎을 크게 다쳤어.” 업무차 라오스에 가 있던 최동진 원장의 친형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라오스의 한 축구선수가 큰 부상을 당해 엄청난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데 현지 의료시설도 열악하고 수술 비용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다쳤다는 선수는 라오스 축구 국가대표까지 지낸 이제 막 스무살짜리 선수, 셩 슈퐁이었다. 그는 라오스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에스라라는 팀에서 뛰는 라오스 축구의 전도유망한 선수였지만 큰 부상을 당해 사실상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한 상황이었다.

최동진 원장은 즉시 증상에 대해 물었다. “증상이 어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니 무릎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최동진 원장은 즉시 응급조치를 부탁한 뒤 이 사실을 정형외과 김권호 원장에게 알렸다. “선수 생명의 위기에 놓인 한 선수가 있습니다. 라오스에 있는데 저희가 도와줬으면 합니다. 사정이 딱합니다. 혹시 무료로 수술을 할 수 있을까요?” 병원에서 해외에 있는 환자를 데려와, 그것도 무료로 수술까지 한다는 건 사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였지만 김권호 원장의 답변은 놀라웠다. 흔쾌히 이 부탁에 동의한 것이다. “그래. 우리가 해보자.” 어려운 상황에 놓인 환자를 무료로 치료하는 건 국적을 막론하고 사회복지 실현을 위해 필요한 일이고 더군다나 선수 생명의 위기에 놓인 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셩 슈퐁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병원 측에서 나섰다. 행정적인 지원은 물론 한국행 비행기 티켓까지 제공했다. 그렇게 셩 슈퐁은 2012년 5월 21일 광주까지 와 수술대에 누웠다. 의료 여건도 좋지 않고 수술비도 없어 통증을 호소하며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해야 했던 그로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광주SK병원은 각종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는 대형 병원이었다. 셩 슈퐁에게 라오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훌륭한 의료 시설을 무료로 누릴 수 있다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셩 슈퐁은 그렇게 한국에서 의료진들의 도움을 받고 십자인대 봉합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꺼져가던 한 축구선수의 불씨가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라오스 축구 위해 베푸는 한국인들

한국에서의 배려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재활을 다 마치고 회복할 때까지 병원에 계속 입원해 계세요. 물론 재활 비용까지도 저희가 다 무상으로 제공하겠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셩 슈퐁의 재활 훈련 치료까지도 무료로 돕기로 했다. 그렇게 셩 슈퐁은 수술 뒤 무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최첨단 의료 시설을 이용하며 재활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이 수술을 집도한 김권호 원장은 연신 고마움을 전사는 셩 슈퐁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축구선수 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돼 의사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그렇게 셩 슈퐁은 처음 한국에 올 때는 끊어진 십자인대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며 꿈을 포기했었지만 2주 뒤인 2012년 6월 8일 기적처럼 다시 라오스로 돌아가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가게 됐다. 만약 한국 의료진들의 배려와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축구를 그만두고 빈곤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현재 라오스 현지에서도 가난과 싸우는 이들에게 축구를 전파하는 한국인들이 있다. 1960년대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이름을 날린 홍인웅 씨는 현재 라오스에서 어린 아이들을 지도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실업팀 서울시청의 감독이기도 했던 그는 2010년 라오스로 건너가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친다. 대학교에서 100여 명을 지도하고 연령별 축구팀까지 구성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셩 슈퐁이 속한 에스라라는 팀에서도 총감독 역할을 맡고 있다. 이 팀을 이끄는 구단주도 한국인이고 과거 안산할렐루야 감독을 지낸 나병수 감독과 지난 시즌까지 고양 Hi fc에서 뛰던 신재필도 이 팀에서 지도자와 선수로 라오스의 어린 친구들과 함께 했다. 지난 해에는 대한축구협회가 설립한 대한민국 축구사랑나눔재단이 라오스에서 축구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비록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은 이렇게 라오스 축구를 위해 많은 걸 베풀고 있다.

확인 결과 셩 슈퐁은 재활 이후 라오스에서 여전히 축구선수로 생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이번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라오스에서는 촉망 받는 선수로 평가받는다. 오늘 라오스 선수들은 유럽 무대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한국 선수들을 상대하는데 아마 이 대결이 꿈만 같을 것이다. 워낙 전력차가 커 이미 승패는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지만 한국 선수들이 끝까지 상대를 존중하며 뛰어주길 바란다. 그게 바로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게 한 전도유망한 축구선수의 치명적인 부상을 무료로 치료해 줄 만큼 이제는 베푸는 위치로 올라선 나라의 클래스이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상대를 대해주길 바라며 다음 라오스전에는 셩 슈퐁이 뛰는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