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이 어제(24일)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2~3차전 라오스, 레바논전에 출전할 최종엔트리를 공개했다. 예상했던 선수들이 대거 합류했는데 이 중에서는 단연 황의조와 석현준의 승선이 두드러진다. 또한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최근 대표팀에서도 활약한 이종호가 탈락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비슷한 포지션의 황의조와 석현준을 테스트해 본다는 의미에서는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이종호는 잠시 대표팀과 작별해야 하지만 언제든 다시 대표팀으로 돌아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정말 의외의 선택은 따로 있었다. 바로 골키퍼로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아마추어 선수 김동준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가장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마침내 대표팀에 입성한 권순태

골키퍼 포지션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정성룡이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가운데 김진현도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김승규가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그의 발탁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나머지 두 자리 중 한 자리는 줄곧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던 이범영이 유력해 보였고 나머지 한 자리는 지난 대표팀 소집 때 함께한 구성윤 정도를 예상했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김승규와 함께 권순태, 김동준을 선택했다. 프로에서는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고 있지만 아직 대표팀에 승선한 적이 없던 권순태를 선택한 것도 의외였고 이제 대학 무대를 누비는 어린 골키퍼를 함께 대표팀에 불러들였다는 점 역시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과거 대표팀 명단을 보면 그중에서도 특히 골키퍼 포지션은 늘 변화 없이 안정을 추구했는데 슈틸리케 감독은 이전 대표팀 감독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권순태에 대한 설명을 따로 길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리그에서 정상급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그가 이번에야 대표팀에 발탁된 게 사실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첫 발탁이라는 점이 특징일 뿐이다. 정성룡과 김진현의 부재라는 변수가 작용하기도 했겠지만 리그 1위 팀 골키퍼를 대표팀으로 불러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한 주전 보다는 경쟁 체제를 중요시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스타일을 봤을 때 이번에도 김승규가 반드시 골문을 지키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표팀의 즉시 전력감인 권순태가 가세하면서 슈틸리케호의 골키퍼 자리는 다시 한 번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김승규에게 “안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져서 좋고 ‘리그에서의 활약이 대표팀 발탁의 중요한 요소’라던 슈틸리케 감독의 철학이 지켜져서 좋은 일이다. 이제 권순태는 본인의 실력을 보여주고 슈틸리케 감독에게 평가받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김동준의 발탁은 상당히 의외다. 2010년 당시 홍익대 소속으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김보경 이후 무려 5년 7개월 만에 대학생 국가대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과거 이천수와 차두리, 박주영 등을 제외한다면 대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제대로 활약한 이들이 없다는 걸 떠올린다면 이게 얼마나 신선한 선택인지 다들 잘 알 것이다. 또한 그와 경쟁자이자 먼저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구성윤이 J리그 소속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학생 골키퍼의 발탁은 상당한 파격이다. 1994년생 김동준은 이번 대표팀 선수 중 최고참인 1981년생 곽태휘보다 무려 13살이나 어린 선수로 서정원 감독이 선수 시절 월드컵에서 스페인에 동점골을 넣었던 해에 태어났다. 정말 어린 선수다. 이미 한 번 대표팀을 경험한 구성윤을 대신해 김동준을 뽑은 것도 의외고 그 선수가 대학생이라는 점 역시 대단히 신선한 충격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은 참으로 훌륭한 선택이었다. 미래를 내다보고 또 다른 경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의도이기 때문이다.

김동준의 발탁, 그 안에 숨은 의미는?

김동준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 골키퍼다. 구성윤과 함께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전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51회 춘계대학축구연맹전 겸 한·일정기전 선발전에서는 5경기에 출장해 3실점했고 이어 벌어진 U리그에서도 6경기에 나서 5실점에 그치며 촘촘한 방어 능력을 선보였다. 대학 무대에서는 최고 수준의 골키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김동준이 김승규나 정성룡, 이범영, 권순태 등 K리그에서 뛰고 있는 골키퍼들을 당장 뛰어 넘기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선택에 대단한 의미를 두고 싶다. 올림픽 대표팀을 위한 배려이자 성인대표팀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범영으로 채워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아니 더욱 탄탄했을 골키퍼진의 한 자리를 어린 선수에게 내줬다는 게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미 구성윤을 한 차례 차출한 슈틸리케 감독은 성인 대표팀에서도 올림픽 대표팀 골키퍼들의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구성윤과 김동준은 번갈아 가며 성인 대표팀에 합류해 똑같은 잣대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됐다.

대단히 영리한 발상이다. 신태용 대표팀 코치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물론 김동준이 김승규와 권순태를 제치고 이번 대표팀 경기에 주전으로 뛸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성인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구성윤과의 실력 차이를 직접 신태용 코치가 가늠해 보면 좋을 것이다. 성인 대표팀의 수준 높은 골키퍼들과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명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며 구성윤과 김동준이 나란히 발전하는 방향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껏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연령별 제한이 있는 대회에서 경험을 중시해 와일드카드로 골키퍼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는데 다가올 올림픽에서 구성윤이나 김동준이 이번 성인 대표팀 발탁 경험을 살려 골문을 지켜줄 수 있다면 와일드카드를 더욱 효과적으로 쓸 수도 있다. 여러 모로 김동준의 대표팀 발탁은 신선하고 영리했다. 사실 김진현이 부상에서 회복하면 대표팀 골키퍼의 한 자리는 다시 김진현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김동준이 다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잠시 생긴 주전급 선수의 공백을 어린 선수의 경험과 경쟁을 위한 기회로 활용했다는 건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 전체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김동준을 유심히 관찰하기 위해 광주까지 내려가 유니버시아드 경기를 관람했다. 대학 무대 최고 수준의 골키퍼가 과연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췄는지, 성인 대표팀에서의 경쟁력은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광주에 가 김동준을 살폈다. 아마도 이번 대표팀의 두 차례 A매치에서 실전에 투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선수지만 그래도 3번 골키퍼로서 선배들에게 많은 걸 배우고 올림픽 대표팀에 돌아가 실력을 발휘하라는 의미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광주까지 내려간 것이다. 구성윤도 그렇고 김동준도 그렇고 하늘 같은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며 배우는 건 돈으로 살 수 없을 만큼 귀한 경험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종호와 황의조를 놓고 고민했을 테고 석현준의 첫 발탁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수집하면서도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냈을 텐데 이 와중에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챙겨 어린 선수에게 한 번이라도 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건 그가 단순히 성인 대표팀 감독이 아니라 한 나라의 축구 발전 전체를 고민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둘의 발탁, 슈틸리케 감독의 철학과 배려

권순태와 김동준은 생애 첫 성인 대표팀 발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많이 다른 선수들이다. 권순태는 K리그 클래식에서 줄곧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꾸준히 대표팀 문을 두드렸고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대표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반면 김동준은 아직 완성된 선수는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의미에서 대표팀에 발탁됐다. 전혀 다른 배경의 두 선수지만 그래서 나는 이 두 선수의 발탁이 슈틸리케 감독의 철학에 상당히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철저하게 선수를 선발하면서도 당장의 전력 상승이 아니라 미래까지도 내다보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다는 건 대단한 고심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리그에서 다소 침체에 빠진 김승규가 더 집중해 대표팀 주전 자리를 이어가도 좋고 권순태가 왕좌를 빼앗아 와도 좋고 김동준이 선배들과의 경쟁에서 놀라운 능력을 선보이며 깜짝 활약해도 좋다. 이 모습을 지켜볼 정성룡이나 김진현, 이범영이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음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리그에서 활약을 펼친다면 더더욱 좋다. 골키퍼 세 자리 중 두 자리에 변화를 주며 많은 이들에게 자극을 선사한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