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여 명의 관중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K리그 챌린지에서도 이보다 훨씬 적은 관중을 동원하는데 그치는 팀도 여럿 있다. 수만 명이 꽉 들어찬 유럽 빅리그 경기장과 비교한다면 3천여 명의 관중이 그리 대단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국 축구계에서 3천여 명의 관중은 절대 무시할 만한 숫자가 아니다. 더군다나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부리그격으로 평가받는 내셔널리그에서의 관중이 이 정도라면 이야기는 더욱 달라진다. 오늘은 내셔널리그에서 3천여 명의 관중을 동원하는 흥행 구단이 된 천안시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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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창단한 천안시청 축구단은 이후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지원이 열악한 팀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진=천안시청 축구단)

창단 후 곧바로 위태로워진 천안시청

천안시청은 2008년 야심차게 창단해 내셔널리그에 합류했다. 2006년 천안축구센터를 세운 뒤 제대로 된 축구단을 운영해 보자는 취지에서였다. 물론 2005년 창단한 K3리그 천안FC가 따로 있긴 했지만 천안시청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무대를 향한 목표를 두고 있는 팀이었다. 천안시청은 창단식에서 “시민화합과 단결로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고 한때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조원광을 영입하며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현실을 너무나도 모르고 덤볐기 때문이다. 천안시청은 창단 이후 곧바로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지원이 열악한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유가 있었다. 구단 출범 당시 창단에만 급급해 천안시 의회가 창단 자금 10억 원만 지원하면 이후부터는 자체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른 내셔널리그 구단이 1년에 25억 원 가까운 돈을 투자하는 것과 달리 천안시청은 시의 부족한 지원에 지역 기업으로부터 구걸하다시피 후원을 받아 하루 하루 연명하는 처지였다. 물가는 매년 오르는데 시에서의 지원은 매년 삭감되는 처지가 되자 천안시청은 존폐 논란에도 여러 번 휩싸이는 등 크게 흔들렸다. 2011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예산이 5억 원이나 삭감됐다. 그나마 어렵게 팀을 이끌던 하재훈 감독도 2011년 시즌 종료 뒤 해임되면서 몸값은 적지만 하재훈 감독을 믿고 천안시청에 입단하던 선수들의 발길까지도 뚝 끊기게 됐다. 논란이 있지만 구단 예산 지원을 줄곧 주장한 하재훈 감독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는 소문이 제법 설득력 있게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같은 연고지를 쓰는 K3리그 천안FC와의 관계까지도 좋지 않았다. 두 팀 모두 시에서 지원을 받아야 하는 터라 서로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08년 전국체전 충남예선에서 맞붙은 두 팀은 시종일관 거친 플레이로 일관했다. 전국체전 출전권을 따내야 시에서의 지원도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이 경기에서는 천안FC 선수 두 명이 퇴장 당했고 경기 종료 후 심판을 향한 거친 항의도 이어졌다. 천안시청이 3-0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구단 사정이 좋지 않아지자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팀을 떠나야 했고 남은 직원 한 명이 매일 야근을 하면서 모든 업무를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2012년 1월 천안시청 팬들이 천안시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구단의 무능하고 방만한 운영을 중단하라는 뜻을 전달했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팀 내부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천안시민들이 이 팀의 존재 자체도 헷갈려 한다는 점이었다. 내셔널리그 천안시청과 K3리그 천안FC를 같은 팀으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대다수였고 경기가 언제 어디에서 열리는지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2012년 7월에는 프로화를 추진했지만 지역내 인지도도 부족하고 지원도 부족한 팀이 프로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프로축구연맹은 접수기한을 두 달이나 늦춰주며 천안시청의 신청서를 기다렸지만 결국 프로구단 운영을 위해 필요한 25억 원의 예산을 충남도가 지원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천안시는 적극적으로 프로화를 추진했지만 충남도는 “2016년 전국체육대회 대규모 예산 투자 등 현안 수요 대응을 위해 건의한 프로구단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결국 내셔널리그의 충주험멜과 수원시청 등이 프로화에 성공할 때도 천안시청은 그저 내셔널리그에서라도 팀을 유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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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천안시청 경기장을 찾은 홈 팬들의 모습. (사진=내셔널리그)

그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천안시청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에서 지난 시즌 준비를 위해 2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고 대구FC를 이끌었던 당성증 감독을 선임했다. 여기에 올 시즌을 앞두고는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이진호와 송호영 등도 영입했다. 비록 성적이 확 오른 건 아니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은 곧 관중 동원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한 경기에 무려 2,408명의 관중이 들어차 모두를 놀라게 하더니 올 시즌 개막전에서도 무려 2천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천안시청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몰려 들었다. 올 시즌 7번의 홈 경기 동안 무려 14,272명이 들어차 평균 관중수도 2,000명을 뛰어 넘었다. 경기장 좌석이 2,881석이라는 점을 떠올려 볼 때 매 경기 관중석이 꽉꽉 들어차는 셈이다. K리그 챌린지 일부 구단과 비교해도 전혀 뒤질 것 없는 수치다. 가장 열악하고 부족했던 내셔널리그 구단에서 어느덧 가장 인기구단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존폐조차 위태로웠던 팀의 대단한 변화다.

단순히 투자가 늘었다고 이런 결과가 나온 건 아니다. 양쪽으로 갈라져 있던 천안시축구협회와 천안시축구연합회가 합치면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추어 축구 동호인들이 모인 천안시축구연합회 회원들이 즐기는 축구만이 아니라 이제는 보는 축구에도 관심을 갖으면서 경기장으로 몰려 들었다. 또한 천안의 명물인 호두과자를 비롯해 쌀과 자전거 등 실생활에서 접하기 쉬운 경품을 지역 기업의 후원을 받아 홈 관중에게 경품으로 나눠주는 것도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경기장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기 위해 장내 아나운서를 유학(?)보내기도 했다. 천안시청 경기장내 아나운서가 K리그 전북의 장내 아나운서에게 특별 레슨을 받도록 해 홈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고 하프타임에는 지역내 청소년들의 공연까지 준비해 여느 K리그 경기장 못지 않은 열기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최근 관중 증가는 더욱 눈에 띈다. 지난달 31일 부산교통공사와의 홈 경기에 만석을 뛰어 넘는 3,000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더니 지난 주말 열린 대전코레일전에서는 무려 3,372명이 천안축구센터에 들어차 또 다시 대박을 쳤다. 경기장 관중석 규모를 더 늘여야 할 만큼 대단한 관중 열기다. 물론 이중에는 홈 경기시 쓰레기를 줍는 등의 활동을 하면 봉사활동으로 인정해 줘 시 소재 각급 학교 학생들이 경기장에 대거 찾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천안시청 측은 이들 역시 잠재적인 팬으로 여기고 더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는 천안시청 축구단이 시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초중고리그에 천안 선수들이 직접 찾아가 축구를 가르쳐주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아직 기대 만큼의 성적이 나오질 않아 내셔널리그 10개 팀 중 유일한 무승팀인 김해시청에 이어 9위에 머물러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는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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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청은 비록 성적이 좋지 않지만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내셔널리그)

천안축구센터,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성지되길

물론 성적 외에도 천안이 해결해야 할 부분은 많다. 무엇보다 전혀 협력이 되지 않는 천안FC와의 관계부터 잘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올 시즌 개막전 당시만 하더라도 천안시청은 천안축구센터 주경기장에서, 천안FC는 천안축구센터 보고경기장에서 같은 시각에 경기를 가졌다. 이 두 경기장은 철조망 하나 사이로 나뉘어져 있는데 결국 이는 양쪽 모두에게 손해일 수밖에 없다. 한 지붕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 팀이라면 라이벌 관계도 좋지만 지금처럼 같이 성장해야 할 때는 서로 양보도 필요하다. 천안시청은 천안FC와의 공생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더 멀리 봐 프로화를 위해서는 천안시만이 아닌 충남도의 애정이 필요하다. 천안시청은 충남도의 지원 없이 전액 시비로 예산을 충당하고 있는데 프로팀이 되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이걸 충남도나 천안시가 단독으로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충남도와의 관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먼 팀이긴 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도 잘 모르는 내셔널리그 경기장에 관중이 꽉 들어차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도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모든 관중이 하나가 돼 천안시청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상대팀 선수에게는 일제히 야유를 보내는 이런 뜨거운 분위기가 쭉 이어진다면 천안시청이 그토록 원했던 프로화도 이뤄내지 말란 법이 없다. 한때 존립조차 위태로웠던 이 팀의 멋진 변화에 박수를 보내며 비록 작은 경기장이지만 늘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천안축구센터에서 새로운 한국 축구의 역사가 세워지길 기대한다. 유럽 빅리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경기장 규모에 한참 모자란 관중수지만 결국에는 유럽도 처음엔 이렇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