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마침내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정몽준 명예회장은 어제(21일) “단순히 FIFA를 개혁한다기보다 FIFA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서 “회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FIFA 부회장을 맡으며 국제 축구계에서 입지를 다졌던 그가 ‘세계 축구 대통령’이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건 의미 있는 대목이다. ‘정치인 정몽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축구인 정몽준’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들 비슷할 것이다. 국제적인 영향력도 있고 축구 발전에도 큰 힘을 보탰고 정치계에서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축구인 정몽준’의 FIFA 회장 도전에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정몽준 명예회장이 부정부패로 얼룩진 FIFA를 개혁할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도전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4년 넘게 FIFA와 멀어진 상황에서 FIFA내의 지지 기반도 열악하고 그 사이 미셀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과 요르단의 알리 빈 알 후세인 왕자 등이 세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FIFA 부회장 5선에 도전했던 2011년 알리 후세인 왕자에게 패해 11년간 이어온 부회장직을 내줘야 했던 정몽준 명예회장은 이제 도전자 입장에서 그들을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정몽준 명예회장은 200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당시에도 아벨란제 FIFA 회장의 총애를 받으며 멀찌감치 앞서 나가던 일본과 공동 개최라는 기적을 이끌어내기도 했던 인물이다. 분명히 전략이 있을 것이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정몽준 명예회장이 이번 FIFA 회장 선거에서 어떤 자세와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 봤다.

1. 무조건 연대하라

4년 동안 FIFA에서 멀어져 있던 정몽준 명예회장이 혼자의 힘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플라티니 UEFA 회장이나 알리 후세인 요르단 왕자 중 한 명이라도 함께 손을 맞잡아야 한다. 사실 이 둘은 지난 5월 FIFA 회장 선거 당시 연대를 할 정도로 견고한 사이다. 현 시점에서 제프 블래터의 대항마로 이 둘이 또 다시 손을 잡고 선거에 나선다면 정몽준 명예회장 혼자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정몽준 명예회장이 플라티니와 손을 맞잡는 게 현실적으로도 더 명분이 선다고 생각한다. 정몽준 명예회장은 FIFA 부회장 시절 꾸준히 블래터의 반대편에 서 왔다. 플라티니가 수장으로 있는 UEFA 역시 꾸준히 블래터를 반대해 왔으니 일단 어느 정도 뜻은 같이할 수 있다. 손을 잡을 수 있는 명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플라티니와 연대할 수 있다면 FIFA 209개 회원국의 표 중 유럽의 53표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플라티니 회장이 지난 5월 FIFA 선거에서 알리 후세인 요르단 왕자와 단일화를 했다는 것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당시 플라티니 회장은 FIFA 회장 선거에서 낙선하면 그 동안 UEFA에서 이뤄놓은 것들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상당히 부담스러워했고 결국 뒤에서 요르단 왕자의 출마를 도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높다면 플라티니 회장이 직접 나서겠지만 몸을 사릴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면 정몽준 명예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플라티니 회장의 방패가 돼 도박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몽준 명예회장이 플라니티나 후세인 왕자 중 한 쪽 편에 서 출마를 포기하고 지지자로 변신하는 것도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이후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회장이 된 뒤 다시 FIFA 부회장직을 회복하고 국제 축구 무대에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비유럽에 당근을 제시하라

블래터 회장이 재임하면서 썩을 대로 썩은 FIFA가 계속 블래터 회장과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 대륙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블래터 회장을 꾸준히 지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골 프로젝트’라는 이름 하에 FIFA가 축구 빈국을 지원하게 되자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열악한 환경의 대륙에서 노골적으로 블래터를 밀어준 것이다. 6개 대륙 중 가장 많은 회원국을 보유한 아프리카축구연맹(54개국)과 아시아축구연맹(46개국)의 지지만 합쳐도 무려 110표를 얻을 수 있는데 블래터는 이들에게 돈을 몇 푼씩 쥐어주면서 표를 얻어냈다. 심지어 AFC는 지난 5월 선거를 앞두고 부정부패 스캔들과는 무관하게 블래터 회장을 지지하겠다는 공식 성명을 낼 정도로 블래터의 개(?)가 되길 자처했다. 상대적으로 유럽에 비해 열악한 오세아니아와 남미, 북중미 등에서도 블래터의 입지는 철옹성이었다.

지금껏 블래터의 반대 세력은 늘 유럽의 지지를 얻으면서도 나머지 5개 대륙의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정몽준 명예회장은 달라야한다. 단순히 1년에 수억 원씩 지원하는 블래터의 ‘골 프로젝트’ 이상으로 더 화끈한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 지원금도 늘이고 여기에 블래터 회장 시절보다 훨씬 더 화끈한 투자를 약속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견고한 블래터 세력을 떨쳐낼 수가 없다. 특히나 가장 많은 110표가 걸린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 많은 걸 내줘야 이번 선거에서 승산이 있다. 여기에 본인 스스로가 비유럽인이라는 점을 어필하며 비유럽 세력의 동정을 살 필요도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 축구연맹이 블래터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골 프로젝트’를 깰 비책이 없다면 차라리 회장 선거 출마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 자비 65억 원을 털어 축구회관 건립에 기부하던 그런 스케일이 필요하다.

3. 러시아와 카타르 월드컵을 인정하라

2018년 러시아월드컵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은 블래터가 싸 놓은 대표적인 똥(?)이다. 블래터 회장은 이 두 차례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수 많은 의혹에 휩싸였고 결국 회장직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러시아월드컵 보이콧 입장을 내비쳤고 카타르월드컵은 개최지 선정을 다시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통상 6월에 열리는 월드컵을 기후 때문에 12월에 개최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도 블래터 회장이 카타르의 손을 들어줬으니 불만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하다. 월드컵의 12월 개최는 유럽 빅리그의 흥행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이 두 번의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대해서는 지금도 말이 많고 회장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의 공식 입장에 따라 지지도가 나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야기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판을 갈아엎고 투명하게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하자고 하면 참 좋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FIFA 회장이 되기 위해 이 두 월드컵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월드컵에 반발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러시아에 밀려 월드컵 개최에 실패한 잉글랜드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미 정해진 걸 바꾼다면 러시아를 비롯한 UEFA내 반대쪽 세력의 표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잉글랜드를 비롯한 몇몇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월드컵 보이콧을 주장하고 있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 스스로가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죽기살기로 뛸 수밖에 없다. 최근 아일랜드는 “우리는 월드컵 보이콧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또한 카타르월드컵을 부정할 경우 아랍권 표를 대거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표를 더 얻을 쪽이 있다면 모를까 괜히 아랍권 표만 잃고 딱히 그 이상의 표를 얻을 세력도 없다. 카타르월드컵을 인정은 하되 개최 시기를 6월로 조정할 수 있다면 유럽의 성난 표심도 잠재울 수 있다. 이 두 월드컵을 부정하는 것보다 인정하는 편이 훨씬 득표전에 유리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4. 업적을 홍보하라

정몽준 명예회장이 블래터의 반대 세력인 건 이미 FIFA 내에서는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는 블래터 세력 떨어트리러 나왔다”면서 선거전을 끝까지 블래터를 향한 네거티브로만 나가서는 안 된다. 블래터 회장이 부정부패의 온상인 걸 모르는 이들은 FIFA내에 없다. 그렇다면 정몽준 명예회장이 지금껏 축구 발전을 위해 이룬 업적을 홍보하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지 선정 당시 부채를 걱정해 서울에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을 반대하던 김대중 대통령과 담판을 벌여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을 허락받은 게 바로 정몽준 명예회장이다. 그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있는 동안 한국 축구 인프라는 눈부시게 발전해 전국에 수십 개의 축구전용구장이 생겼고 이제는 어지간한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에는 인조잔디가 깔리게 됐다. 이 모든 인프라는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이뤄낸 정몽준 명예회장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 개발도상국에 꿈을 심어줘야 한다. 누런 잔디에 녹색 페인트를 칠해 A매치를 치르던 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모습을 어필한다면 그들의 마음도 움직이지 않을까. ‘정몽준 명예회장이 FIFA의 수장이 되면 우리도 저렇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줘야한다. 이게 바로 이제 FIFA에 입성한지 4년밖에 안 된 후세인 왕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클래스’ 아닌가. 또한 이미 인프라가 넘쳐나는 유럽의 축구 수장 플라티니 회장도 이런 무에서 유를 창조한 업적은 내세울 수가 없다. 어쩌면 정몽준 명예회장의 이런 업적을 홍보하는 게 ‘골 프로젝트’ 이상의 큰 울림일 수 있지 않을까. 아무 것도 없던 나라가 한 명의 좋은 리더를 만나 월드컵에서 첫 승을 올리고 4강에 가고 축구전용구장을 얻고 지금도 월드컵에 빠짐 없이 나간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돈 자랑도 좀 하자. 나는 그깟 수백억 원을 뇌물로 받지 않아도 평생 떵떵거리며 살만큼 돈이 많으니 부정은 꿈도 꾸지 않는다는 걸 어필하자는 거다.

5. IOC를 내 편으로 만들라

2009년 블래터 회장은 올림픽 남자축구 참가 자격을 21세 이하로 낮추고 와일드카드도 폐지하기로 했다. 월드컵 이외의 국제대회 가치가 올라가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걸 막아낸 이가 바로 정몽준 명예회장이었다. 당시 FIFA 부회장 겸 FIFA 올림픽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던 그는 “올림픽 출전연령을 낮추는 것은 대륙연맹들의 의견을 무시한 독단적인 결정이다. 최악의 경우 축구가 올림픽에서 철수하더라도 경기 수준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며 블래터 회장의 독단적인 선택에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정몽준 명예회장은 올림픽 출전연령 23세 이하 고수 필요성을 담은 편지를 208개 FIFA 회원국에 보냈고 결국 블래터와의 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FIFA가 출전연령을 23세로 유지했고 와일드카드도 석 장으로 그대로 이어갔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몽준 명예회장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다. FIFA와 IOC의 자존심 대결에서 IOC의 손을 들어준 건 물론 직접 나서 올림픽 축구의 위상을 지켜낸 정몽준 명예회장에 대해 IOC에서는 여전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FIFA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 조직이 IOC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을 비롯한 IOC 위원들의 수당과 활동비를 모두 공개한 IOC는 지난 5월 “FIFA는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하고 수사 당국과 협력을 강화하라”고 촉구하는 등 블래터와 FIFA를 크게 압박하기도 했을 정도로 견제가 심하다. 이런 와중에 정몽준 명예회장이 IOC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선거에 호재가 될 수 있다. IOC가 지속적으로 블래터 세력을 압박하고 정몽준 명예회장을 도울 수 있도록 손을 맞잡는다면 일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다.

6. 북한의 지지를 얻으라

스포츠계에서 가장 케케묵은 감정이긴 하지만 이만한 감성팔이(?)도 없다. 바로 북한이다. UN본부를 한국에 유치하는 것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국제 이벤트를 한국에 유치하는 것도 사실 이 명분 하나면 일단 절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전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반도에서 세계인의 스포츠인 축구계의 수장이 나온다면 이것만으로도 큰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몽준 명예회장이 FIFA 수장이 되면 그 재임 기간 동안 만큼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도 축구를 이용한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어필해야 한다. 물론 남한에서 FIFA 회장이 나왔다고 해 북한이 얌전히 평화를 지켜주리라는 보장도 없고 북한을 믿지도 않지만 전세계 축구계에 내세울 명분만큼은 충분하지 않을까.

정몽준 명예회장이 북한축구협회 명의의 공식적인 지지 의사를 얻는다면 이건 그 어떤 후보의 공약보다도 큰 파급력이 있고 수십 표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부 말은 안 들어도 현대가의 이야기라면 귀 기울이는 북한과의 교섭을 통해 북한 축구계가 정몽준 명예회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사실 스포츠라는 게 전세계 화합과 평화를 위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데 전쟁을 멈춘 ‘드록신’이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이상 북한의 지지를 얻어낸 정몽준 명예회장을 이 부분에서 압도할 수 있는 이는 없어 보인다. 정몽준 명예회장이 FIFA 회장에 당선돼 데니스 로드맨 대신 ‘악동’ 에릭 칸토나가 북한에 축구 특사로 가는 일도 상상해 본다면 즐겁다.

7. 아들의 SNS를 끊으라

누군가 그의 선거 운동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손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일단 혹시라도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가족들에게 SNS 금지령을 내릴 필요가 있다.

사실 정몽준 명예회장의 FIFA 회장 당선은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FIFA에서 너무 오래 떨어져 있는 동안 지지기반도 사라졌고 그 사이 떠오른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도전하는 정몽준 명예회장을 응원하고 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지난 2002년 월드컵 유치전도 기억하고 있다. 진심을 다한다면 못할 일도 아니고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 전날 갑자기 마음을 돌리는 일은 없길 바라면서 정몽준 명예회장이 ‘세계 축구 대통령’으로 우뚝 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