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가 중동과 일본은 물론 거대 자본을 앞세운 중국의 자본력에까지도 밀리는 모양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걱정 섞인 소리를 하고 있다. 나도 지난 주 칼럼을 통해 연봉 공개와 선수 유출은 별로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선수들이 빠져 나가고 있는 K리그의 상황을 한탄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연봉을 다시 비공개로 전환하면 선수 유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현실성이 부족한 해결책이 아닌 진짜 해결책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 내 주장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귀 기울여 보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떠나고 있는 K리그가 살아날 방법은 유럽 하부리그를 공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하부리그 상황은?

유럽 축구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이들이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중동이나 일본, 중국 자본과의 대결에서도 완패하고 있는 K리그가 어떻게 거대한 유럽 축구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몇몇 빅클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유럽의 많은 구단들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존폐가 위태로운 팀들도 수두룩하다. 일단 1,2부리그가 균형적으로 발전했고 시장도 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쉽지 않으니 배제해 놓고 이야기하려 한다. 하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의 2부리그 팀들은 K리그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 몇몇 빅클럽과 그렇지 못한 클럽간의 격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 팀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지난해 7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탈리아 구단이 두 개나 파산하고 말았다. 당시 세리에B에 소속돼 있던 시에나와 파도바다. 시에나는 팀 메인 후원사 은행이 재정난으로 자금을 대지 못하게 되면서 파산한 뒤 이름을 로부르 시에나로 바꿔 달고 세리에D(5부리그)로 가야했고 파도바 또한 2013-2014시즌 세리에B에서 20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강등된 뒤 투자 기업이 없어 아마추어 리그로 돌아가고 말았다. 파도바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최종적으로 투자를 얻을 수 없어 프로 리그에 가입 할 수 없게 됐다. 적어도 당분간은 유소년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충격은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다. 명문으로 통했던 파르마도 최근 부채 총액이 약 2,400억 원에 이르는 등 크게 휘청이다가 결국 파산을 선언하고 말았다. 이렇게 이탈리아에는 재정 문제로 하루 아침에 아마추어 리그로 떨어지는 팀들이 연이어 생겨나고 있다.

스페인 쪽도 만만치 않다. 사라고사와 마요르카, 라요 바예카노, 레알 베티스, 그라나다, 에르쿨레스, 레크레아티보 등 약 10여개 구단이 파산 위기에까지 내몰리는 등 사실상 지불 불능 상태에까지 이르렀던 것도 불과 몇 년 전 이야기다. 2011년에는 프리메라리가(1부)와 세군다리가(2부)의 42개 팀 선수 단체가 미지급 임금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며 27년 만에 파업을 해 개막전이 연기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가 세계 축구를 호령하며 빛을 발하는 사이 이들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팀별로 중계권 계약을 맺는 형태여서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가 압도적인 수익을 내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한 번 벌어진 빈부 격차가 금방 줄어들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아무 로고도 박히지 않은 유니폼을 입고 뛰거나 구단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쇼핑몰 광고를 유니폼에 새기는 구단도 있을 정도다.

오스마르와 마다스치가 K리그에 온 이유

그들의 재정이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앞서 말한 중계권료 수입 차등 배분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럽 경제 불황에 구단별로 투명하지 못한 운영을 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얽혀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들이 왜 이런 상황을 맞았느냐는 것보다 이 상황이 오히려 K리그에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 세군다리가나 세리에B, 포르투갈 등에서 K리그로 데려올 선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실력 있는 선수가 많은 돈을 받고 해외로 빠져 나가면 새로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데 유럽의 하부리그가 우리의 좋은 선수 공급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워낙 시장이 큰 프리미어리그야 우리가 접근하기 쉽지 않지만 FA 계약에 연봉 4~5억 원으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에서 뛰는 선수는 얼마든지 수급이 가능하다. 참고로 독일 분데스리가 중하위권 구단 선수들의 몸값도 채 10억 원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유럽에서 뛴다고 모두가 다 수백억 원을 받으며 뛰는 게 아니라는 거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2부리그 선수 몸값은 K리그 구단이 투자에 대한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단 조건이 있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낯선 아시아에 도전하는 건 쉽지 않다. 그들은 아직 유럽 무대에 대한 재도전 의사가 확고하다. 또한 이적료가 발생하는 선수는 K리그에서 감당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서른 살 정도의 나이에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 FA선수들은 충분히 K리그에서 영입을 시도해볼 수 있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 예로 FC서울에서 뛰는 오스마르를 들고 싶다. 한때 스페인 1부리그에서도 경쟁력이 있던 라싱 산탄데르에 소속됐던 오스마르는 주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경기에 나서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스마르는 결국 구단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팀을 떠나야 했다. 그런 오스마르를 알아본 팀이 바로 태국 부리람유니아티드였다. 스페인 선수가 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간다는 게 사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수도 있지만 오스마르는 태국행을 확정지었고 2년간의 활약 이후 현재는 서울의 중심이 돼 뛰고 있다. 오스마르는 내가 오늘 펼치는 주장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다.

오스마르가 아시아 무대에 올 수 있었던 건 1차적으로 스페인 중하위권 팀들의 재정이 탄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원소속팀이었던 라싱 산탄데르는 3부리그까지 떨어졌고 얼마 전 국왕컵에서는 6개월간의 임금 체불에 항의하는 의미로 선수들이 경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부터 2년 동안 제주에서 뛰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수비수 마다스치도 비슷한 경우다. 이탈리아 포르토솜마가에서 활약하며 세리에B 무대까지 밟았던 마다스치는 이후 팀이 다시 세리에C로 강등되며 재정이 좋지 않아지자 고국인 호주 멜버른 하트의 제의를 받고 유럽 무대를 떠나게 됐다. 당시 포르토솜마가의 재정이 좋았더라면 마다스치가 굳이 고국행을 확정지을 이유도, 이후 K리그로 올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 단골 출전팀이 아니라면 그들의 재정은 K리그 빅클럽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은 편도 아니다. 이제는 유럽 축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조금을 깰 필요가 있다.

동유럽 리그도 좋은 수급처 될 수 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포르투갈 뿐이 아니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를 비롯해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폴란드 등도 K리그의 좋은 선수 수급처가 될 수 있다. 브라질 경제가 살아나며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꼭 브라질 현지에서 뛰고 있는 선수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좋은 예가 바로 전북현대의 레오나드로라고 생각한다. 그리스 경제 위기 이후 명문 AEK 아테네에서 뛰던 레오나르도를 전북이 영입한 2012년 당시 그의 이적료는 약 12억 원에 불과했다. 당시 황보원을 광저우헝다에 내줄 당시 받은 이적료보다도 적은 헐값(?)에 최고의 선수를 영입한 것이었다. 그리스 경제 위기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레오나드로가 K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유럽 하부리그를 잘만 뒤져도 우리는 K리그에서 뛸 만한 선수를 충분히 건지고도 남는다.

참고로 세르비아는 아예 리그 자체가 문을 닫기 직전이다. 1부리그 16개 팀 중 9개 팀이 선수들에게 제때 월급을 주지 못할 정도고 이들의 남은 돈은 은행이 동결해 사용도 할 수가 없다. 한 구단은 선수들이 밀린 임금을 달라며 파업에 들어가자 화가 난 팬들이 라커룸에 들어가 욕설을 퍼붓는 일도 있었고 한꺼번에 이 과정에서 일곱 명의 선수가 계약을 해지하고 팀을 떠나기도 했다. 이 상황에 대해 FIFPro(국제 축구 선수 협회)는 “선수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세르비아의 심각한 재정난으로 선수들이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 하고 있다. 전 세계 선수들에게 세르비아로는 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밝힐 정도였다. 현재 세르비아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0억 유로의 자금을 지원받아야 할 정도로 국가 전체의 경제 상태가 나쁜 상황이라 정상적인 구단 운영이 불가능하다. 세르비아를 비롯한 유럽 하부리그 시장은 충분히 우리의 선수 수급 창구가 될 수 있다. 물론 데려오는 선수가 레오나르도도 될 수 있지만 요반치치가 될 수도 있는 건 함정이다.

잘나가는 1부리그 선수들은 아쉬울 게 없지만 그렇지 못한 하위리그나 유럽 변방 리그의 선수들은 어쩔 수 없는 도전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K리그도 충분히 매력적인 리그다. 극심한 경제 위기는 물론 구단간의 빈부 격차로 흔들리는 유럽과 달리 K리그는 급여도 밀리지 않고 치안도 좋은 나라다. 과거 에닝요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브라질 치안에 대해 묻자 에닝요의 답은 이랬다. “내가 브라질에서 타는 차는 방탄차야.” 방탄차를 타고 되지 않는 이렇게 안전한 나라에서 자신들이 뛰던 리그 이상의 돈을 준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유혹이다. 오스마르나 마다스치, 레오나르도 같이 훌륭한 선수들을 발굴해 오랜 시간 K리그에서 함께한다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 선수들을 나중에 중동이나 중국 등으로 팔아 이적료 차익을 챙긴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다. 선수들에게도 K리그에서 실력만 입증하면 더 많은 연봉을 제시받고 아시아의 다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건 참 흥미로운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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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은 에두를 대체하기 위해 스페인 세군다리가에서 뛰던 우르코 베라를 영입했다. (사진=전북현대)

이제는 유럽 하부리그로 눈을 돌리자

중동이나 중국 등은 막대한 자본을 갖추고 있지만 사실 선수 보는 눈은 별로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대표팀 경력인 것만 봐도 그렇다. 카타르에서 뛰었던 조용형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중동에서는 태극마크를 한 번이라도 달았던 선수만을 살펴봐요. 대표팀 경력이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잣대죠.” 중국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외국 선수를 살필 때면 발전 가능성이나 잠재력 등이 아닌 지금 당장의 실력과 스펙 등만을 따진다. 그것도 아니면 K리그나 J리그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는 선수를 기존 연봉의 3~4배를 제시하며 데려간다. 절대 돈 싸움에서 그들을 이길 수는 없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 사기(?) 아닌 사기를 충분히 칠 수 있다는 말이다. 노홍철이 <무한도전>에서 연필 하나에 1천 원씩 받고 팔면서 대단히 많은 돈을 번 것처럼 K리그도 유럽 하부리그 선수 데려다 잘 쓰고 거품 낀 가격으로 중동이나 중국에 이적료도 두둑이 챙기지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라 K리그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사실 유럽 하부리그의 모든 선수들이 K리그에서 성공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선수라고 하더라도 적응에 실패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수들도 많다. 유럽 시장을 파고 들면 거기에서 레오나르도 같은 선수들만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다. 레오나르도인줄 알았는데 요반치치가 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자의건 타의건 유럽 하부리그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나는 에두의 대체자로 스페인 세군다 디비전(2부리그)의 CD 미란데스에서 공격수로 활약하며 38경기 17골을 기록해 득점랭킹 6위에 오른 베라를 데려온 전북을 주목하고 있다. 또한 K리그 챌린지 수원FC도 한때 스페인의 유망주로 지목됐다가 세군다리그에서 뛰게 된 한 선수 영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이 흐름으로 가야한다. 언제까지 브라질 리그에서 뛰는 선수만을 바라볼 수도 없고 선수 유출에 대해 넋 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유럽의 하부리그로 눈을 돌리자. 그곳에는 파산 직전에 내몰린 이들이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K리그가 그들과 함께 코리안드림을 완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