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아이파크 윤성효 감독이 물러났다. 부산은 올 시즌 22경기를 치른 현재 4승 5무 13패를 기록하며 12개 팀 중 11위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대전이 한참 헤매고 있어 꼴찌를 면했다는 걸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정도다. 나는 승강제 실시가 K리그를 위한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부산 같은 팀이 강등제가 없어 16개 팀이 치르는 리그에서 강원이나 대구 등을 이기고 어깨에 힘 주는 꼴을 보지 않는다는 것도 승강제를 지지하는 하나의 이유다. 명색이 기업구단씩이나 돼 시도민구단과 경쟁해야 하는 부산의 처지는 참으로 애처롭다. 이런 부진한 팀 감독이 구단을 떠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임을 윤성효 감독 혼자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원인은 한국 축구의 수장이라는 대단한 직함에 취해 자기 팀을 나몰라라 하고 있는 정몽규 구단주이자 대한축구협회장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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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부산대우 로얄즈 경기가 펼쳐지는 구덕운동장의 모습.>

부산의 찬란했던 과거와 처참한 현재

부산의 찬란했던 시절은 이제 근현대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일이 됐다. 2000년까지 프로화 선언 이후 17년 동안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구단으로서 네 차례나 정상을 차지했던 부산대우 로얄즈 시절은 지금도 전설로 기억된다. 1986년에는 아시안클럽 챔피언십에서 알 아흘리를 꺾고 아시아 정상에 섰고 아프로-아시안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다. 1997년에는 시즌 전관왕의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던 부산은 지금껏 안정환을 비롯해 김주성, 하석주, 정재권, 이민성, 최영일, 정용환, 김판근, 조광래, 변병주, 이태호, 샤샤, 마니치 등 쟁쟁한 선수들을 배출해 왔다. 세 경기 연속 전좌석 매진이라는 신화를 쓰기도 했을 정도로 부산 축구는 대한민국의 중심에 섰었다. 하지만 2000년 모기업 대우가 무너지며 결국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된 뒤에는 찬란했던 영광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위태롭던 팀을 현대산업개발이 인수한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이후의 행보는 아쉬움의 연속이다.

지금의 부산아이파크는 참으로 초라하다. 차라리 이 팀이 시민구단이었더라면 이렇게 볼멘 소리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이라는 모기업이 재계 40~50위권에 불과하고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규모지만 그래도 이들이 구단 운영에 있어 몇몇 시도민구단보다도 못한 행정에 머물고 있다는 걸 창피하게 여겨야 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최근 호텔신라와 합작으로 서울시내 면세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만큼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말이다. 사실 현대산업개발이 2000년 팀을 인수한 뒤 이뤄낸 성과라고는 2008년 황선홍 감독과 안정환을 영입한 것 외에는 딱히 찾아볼 수가 없다. 매년 굵직한 영입은 없고 오히려 주축 선수들이 팔려 나가는 모양새가 열악한 시도민구단들과 다를 것도 없다. 김창수와 한상운, 이원영, 장학영, 파그너, 박종우 등 좋은 선수들을 잡을 노력조차 보이질 않았고 결국 최근에는 이제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까지 놓였다. 물론 한때 경기장을 가득 채우던 관중도 올 시즌에는 한 경기 평균 3천여 명이 들어찰 정도로 썰렁해졌다.

나는 여기에 현대산업개발 회장이자 대한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는 부산아이파크 정몽규 구단주의 잘못이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단순히 열악한 시도민구단의 장이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도 않는다. 명색이 한국 축구 행정을 총책임지는 대한축구협회장으로서의 체면을 지켜달라는 거다. 대한축구협회장이 운영하는 팀이 강등권에서나 허덕이고 있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또한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대단한 시장성을 갖추고 있고 이미 부산대우 시절 그 효과가 입증되기도 했다. 이렇게 큰 도시의 축구팀이, 그것도 대한축구협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팀이 언제까지 이렇게 강등권만 헤매고 있을 것인가. 현대라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팀이 시도민구단보다 아래 순위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걸 창피하게 생각해야 한다. 더군다나 정몽규 구단주는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선거에 도전할 만큼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서려는 욕망이 강하다. 그런데 그가 구단주로 있는 팀이 2부리그로 떨어질 위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단 팀부터 구해야 아시아축구연맹(AFC)이건 FIFA건 도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집안 살림도 못하는데 어떻게 나라 경제를 책임지나.

이해할 수 없는 ‘부산 구단주’ 정몽규

일단 부산대우 시절의 구단주가 얼마나 이 팀에 애착을 가졌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 운영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은 인물이지만 당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유소년 시스템이 전무했던 시절에도 거제초등학교와 거제중학교, 거제고등학교, 아주대학교에 연이어 축구부를 개설했고 로얄즈 운영비 60억 원, 아주대 30억 원, 초·중·고 20억 원 등 축구와 관련해서 200억 원씩을 썼다. 1990년대에 이런 투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외국인 감독을 처음 영입한 것도 김우중 회장이었다. 국내에 외국인 감독이 생소하던 1990년 독일 출신 프랑크 엥겔 감독을 시작으로 1991년에는 헝가리 출신 비츠케이 감독을 영입했고 1996년에는 유고의 세큘라리치 감독을 대우로 데려왔다. 한국 축구의 세계화를 위한 포석이자 부산대우 로얄즈를 아시아 최고 구단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특히 비츠케이 감독은 1991년 21경기 연속 무패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 한국 프로축구를 한 단계 도약시킨 인물로 평가받았다. 대우로얄즈가 현대산업개발로 인수될 때도 “다 팔아도 끝까지 축구단만은 안 된다”고 버텼던 게 바로 김우중 회장이다.

그렇다면 정몽규 구단주는 어떨까. 일단 행보 자체가 팀을 위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프로축구연맹 총재 재임 시절에도 그랬고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2년 정몽규 구단주는 수원과 부산의 K리그 개막전을 지켜보기 위해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당시 그는 프로축구연맹 총재이기도 했지만 경기에 나서는 부산의 구단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정몽규 구단주의 모습을 본 부산 팬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정몽규 구단주가 수원 점퍼를 입고 경기를 관전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연맹 총재 신분이어도 그 이전에 그는 부산의 구단주인데 상대팀 엠블럼이 박힌 점퍼를 입고 경기를 관전한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후 그는 부산이 성남 원정을 떠났을 때는 성남 머플러를 두른 채 부산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연맹 총재로서 일을 해야 할 때는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부산 구단주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몽규 구단주는 이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상대팀의 상징을 몸에 두르는 우를 범했다. 구단주가 상대팀 점퍼나 머플러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런 팀이 잘 되는 것도 또 이상한 일 아닌가.

또한 2012년에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며 부산 축구를 궁지에 몰기도 했다. 그나마 없는 살림에도 팀을 잘 이끌던 안익수 감독을 성남에 통 크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당시 안익수 감독의 성남행 루머가 돌자 안익수 감독은 “사실무근이다. 4년 계약 중2년이 남아있는데 내년에도 함께할 예정”이라며 성남행을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정몽규 부산 구단주이자 연맹 총재가 박규남 성남 단장과 면담을 나눈 직후 정몽규 구단주는 안익수 감독을 성남으로 내줬다. 박규남 단장이 “안익수 감독이 성남 존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고 정몽규 구단주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안익수 감독의 성남행을 허락한 것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구단주가 잘하고 있는 자신의 팀 감독을 다른팀 단장과 회동한 뒤 대승적인 차원에서 내줄 수가 있나. 이후 정몽규 구단주가 한 말은 더 기가 막히다. “성남에 2년 동안 무상임대 갔다 온다고 생각하라.” 이후 부산이 선임한 지도자가 바로 성적 부진으로 이번에 물러나게 된 윤성효 감독이었다. 부산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강등권을 자처한 셈이다.

시도민구단보다도 못한 부산의 구단 운영

시도민구단도 연간 100억 원 정도는 쓴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부산은 오히려 시도민구단보다도 투자가 적다. 지난해부터 90억 원도 안 되는 돈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맹이 공개한 인건비만 놓고 보면 부산은 44억 원을 썼는데 이는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경남보다 3억 원이 많았을 뿐이다. 오히려 성남이나 인천 등 다른 시민구단이 부산보다 더 많이 투자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말이 기업구단이지 어지간한 시도민구단보다도 투자가 적었다. 하지만 정몽규 구단주는 구단주라는 직함을 내세워 축구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고 결국 프로축구연맹 총재를 역임한 뒤 지금은 대한축구협회장이라는 한국 축구 행정의 맨 위에 올라서 있다. 자신이 소유한 구단에 대한 투자는 물론 애정도 부족한 이가 한국 축구 수장으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닐까. 구단이 시골 깡촌에 있는 것도 아닌데 부산이라는 큰 시장에서의 관중 동원력도 K리그 클래식에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문제 삼기에 충분하다. 말이 기업구단이지 부산아이파크는 거의 방치 수준이다. 시민구단 인천은 이미 보유했고 성남도 추진 중인 축구전용경기장 건립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투자도 없고 구단주가 밖으로나 나돌고 있으니 팀이 잘 될 리 없다. 관중이 올 리도 없다. 나는 지난 시즌 도중 최하위로 추락하기도 했던 부산이 투자나 구단주의 애정 없이 올 시즌 순위가 오르리라는 기대는 진작에 접었다. 시도민구단보다도 못한 투자로 이 기업구단에 더 이상 뭘 바라야 할까. 사실 나는 원하는 선수 리스트를 올리면 몸값이 맞질 않는다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면서도 윤성효 감독이 이 정도 버텨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없는 살림에 스리백도 써보고 제로톱도 써보고 할 건 다했다. 더군다나 감독 해임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다. 구단 측에서 이미 여러 차례 윤성효 감독에게 물러날 것을 강요했고 결국 그가 자진 사퇴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자진 사퇴가 아닌 경질이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또한 이게 과연 감독을 바꿔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기업구단이지만 실상은 허울 뿐인 구단이 얼마나 더 K리그 클래식에서 버틸 수 있겠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정몽규 구단주는 대한축구협회장이기 이전에 구단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훌륭하지 않은 남편이 사회에서 멋진 남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과거 정몽규 구단주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와 자격 논란이 있을 때 그를 옹호했었다. 연맹 총재 시절 승부조작이라는 뒤숭숭한 사건을 잘 매듭지었고 숙원 사업이던 승강제도 구축한 그의 행정력을 믿었다. 여기에 ‘현대가’라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었다. 또한 나는 그가 현재 대한축구협회장으로서의 역할도 소홀히 하지는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그의 모든 실적을 옹호할 수는 없다. 그가 연맹 총재로는 90점, 협회장으로는 80점 정도의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의 부산 구단주로서의 점수는 낙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가 FIFA 진출을 꿈꾸고 있다면 이야기는 더 심각해진다. 자신이 운영하는 팀 하나 제대로 굴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계 축구 중심에 설 수 있다는 말인가. 현대산업개발이 구단에 무조건적으로 투자하라는 말이 아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감독을 넘겨주고 상대팀 머플러를 두르고 부산 경기를 지켜보는 등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부터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팀이 강등을 벗어나는 게 더 신기한 일 아닌가. 누군가는 위태로운 팀 구해줬더니 더 많은 걸 요구하고 있다고 할지 몰라도 정몽규 구단주는 이 구단을 발판으로 한국 축구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정몽규 구단주는 협회장이기 이전에 부산 구단을 이끄는 수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그가 한국 축구 수장이라는 대단한 직함에 취해 있질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