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지목해 탓을 하면 마음은 편하다. 근본적인 문제점이나 해결책을 찾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적으로 돌려 “너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간단하다. 우리는 이걸 ‘정신 승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정신 승리’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지금의 K리그가 그렇다. 선수들이 막대한 돈을 받고 해외로 빠져 나가는 현상을 연봉 공개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선수 유출의 근본적인 원인은 연봉 공개 때문이 아니다. 초대형 화재가 났는데 그 옆에서 부채질하는 이에게 “너 때문에 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사실 이 부채질은 하나 마나인데 말이다.

이미 중국 시장은 한국을 한참 뛰어넘었다

에두의 이적이 충격적인 건 사실이다. K리그 클래식 득점 랭킹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막강 팀 주축 공격수가 중국 2부리그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전북을 추격하는 2위 수원의 핵심 스트라이커 정대세가 J리그 강등권 팀으로 떠난 것 역시 충격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게 다 연봉 공개 때문이야.”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전북에서 15억 원 내외의 연봉을 받은 에두는 허베이로부터 연봉 50억 원을 제안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한국은 수입의 38%를 세금으로 내야하지만 중국 구단 측은 세금을 구단에서 직접 해결하니 에두는 전북 시절보다 4~5배가 더 넘는 연봉을 받는 셈이다. 여기에 전북이 도쿄FC에서 에두를 영입할 때는 이적료가 없었지만 허베이는 전북에 에두 이적료로 45억 원을 제시했다. 34세 공격수 영입에 연봉 50억, 이적료 45억 원을 베팅하는데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었을까. 정대세 역시 수원 시절 받던 연봉의 두 배 이상을 시미즈로부터 제시받고 떠났다.

연봉 공개를 떠나 시장 규모가 속된 말로 ‘넘사벽’이다. 1~2억 원도 아니고 수십억 원씩 베팅하는데 선수 유출이 연봉 공개 때문이라고 믿어서는 곤란하다. 현재 K리그에서 초특급 선수의 최고 연봉은 20억 원을 도저히 넘길 수 없는 구조다. 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 중동 등지에서 50억, 100억을 부르는데 설령 연봉이 비공개라고 한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또한 연봉이 비공개였다고 해도 영입하는 팀이 바보는 아니다. 스카우트를 보내고 에이전트와 접촉하고 상대 구단과 만나 이미 실제 선수 연봉과 상당히 근접한 수준까지 알아본 뒤 접근한다. 비공개라고 하더라도 선수 연봉을 알 수 있는 루트는 수두룩하다. 그저 연봉 공개를 통해 선수 연봉을 알게 되는 일반적인 팬들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연봉 비공개 시절에는 선수가 얼마를 받고 있는지 모르고 협상했다고 믿는 이들은 없길 바란다.

현재의 K리그 선수 유출은 연봉 공개 때문이 아니라 기존 연봉의 5배까지도 베팅하는 타 리그보다도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특히나 중국 시장의 발전이 가장 큰 요인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광저우헝다는 2010년부터 매년 1천억 원이 넘는 돈을 구단에 투자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축구에 대한 애정만 있는 게 아니다. 헝다그룹 쉬자인 회장은 이 구단의 투자를 인정받고 시진핑 주석의 총애를 받으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상공위원이 되는 등 정치적인 입지를 다졌다. 쉬자인 회장의 알려진 재산만 7조가 넘는데 그가 1년에 1천억 원씩 쓰며 명예를 얻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 아닌가. 심지어 최근 광저우헝다가 영입한 브라질 대표팀 출신 파울리뉴는 토트넘 시절보다 더 연봉이 많아져 1년에 80억 원을 받는다. 광저우헝다가 토트넘에 내준 이적료도 180억 원에 이른다. 헝다 그룹만 그런가. 상하이 선화는 디디에 드록바(200억 원), 니콜라 아넬카(110억 원) 등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돈을 주고 데려왔고 뎀바 바 이적료만 해도 175억 원이다.

중국 축구의 물량공세는 투자에 따른 성적과 정치적 입지 다지기, 수익 등에서 봤을 때 꽤나 쏠쏠한 일이다. 여기에 워낙 모기업의 총알이 많아 수백억 원 투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최용수 감독이 장쑤 순티엔으로부터 제시받은 2년 6개월간 63억 원의 돈은 현재 그의 연봉에 7배가 넘는다. 이렇게 1부리그 팀들이 ‘돈질’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지만 이제는 2부리그에서도 제2의 광저우헝다를 꿈꾸며 막대하게 투자하는 팀이 생겼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팀이 바로 에두에게 기존 연봉의 5배를 제시한 허베이다. 부동산개발업체인 화샤싱푸 그룹의 지원을 받는 허베이는 에두 외에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지도했던 라도미르 안티치 감독까지 데려왔다. 자, 이제 생각해보자. K리그가 연봉 공개를 하지 않았더라면 중국의 재벌 구단들과 경쟁해 선수를 빼앗기지 않았을까. “기존 연봉은 상관 말고 100억 원 질러”라고 하는데 연봉 10억~20억 원 받는 선수들이 이탈하는 건 당연한 논리다. 사실 그들은 K리그 선수들 기존 연봉에 별로 관심이 없다.

투자 위축이 연봉 공개 때문이다?

이건 시장 규모의 차이다. 연예계를 예로 들어보자. 이민호와 김수현 등 한류스타들이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이 중국 예능 프로그램 진출 한 번에 약 8억 원의 출연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판 '런닝맨'에서 유재석 역할을 맡은 배우는 회당 출연료가 1억 원을 넘어 유재석 출연료의 10배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안젤라 베이비의 출연료 또한 한화로 약 14억 원에 달하는 등 중국판 '런닝맨'의 전체 출연료는 우리 돈으로 90억 원을 호가한다. 그래서 실제로 한류스타들의 중국 연예계 진출도 잦아졌고 이제는 국내의 PD와 작가 등 제작진 역시 천문학적인 제안을 받고 중국으로 떠났다. <용감한 기자들>의 내 담당 작가 역시 중국 예능 프로그램으로 진출한다고 떠나더니 요즘은 페이스북을 통해 유럽 여행 사진을 올리고 있다. 그들은 기존 연봉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중국으로 유출되고 있다. 우리는 ‘썰’이 아니면 이민호나 김수현이 국내에서 출연료로 얼마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렇듯 K리그 선수 유출은 연봉 공개와는 별개로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어차피 지금 연봉 공개라는 게 팀 전체 총액 발표와 상위 TOP3에 대한 연봉 공개일 뿐이다. 그런데 개인 연봉이 공개되지 않은 FC서울 고명진이 카타르 알라얀으로부터 제시받은 돈은 이적료를 포함해 67억 원 가량이다. 정확한 연봉을 알 수 없는 이들이 이렇게 막대한 돈을 제시받는 건 연봉 공개와 선수 유출이 별로 관련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말해 우리 시장 규모가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다. 더 뼈아프게 말하자면 동남아 프로리그의 시장 규모도 우리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을 뛰어 이미 넘었다. 태국 부리람유나이티드에서 뛰는 고슬기의 연봉이 7억 5천만 원이다. K리그 최정상급 선수의 연봉이다. 국가대표까지 지낸 김동진도 태국에서 뛰고 있다. 고슬기의 기량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과연 K리그에서 고슬기에게 7억 5천만 원의 연봉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연봉 공개로 투자가 줄었다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연봉이 비공개였어도 고슬기에게 이런 고액 연봉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미 K리그는 중국이나 일본, 중동 시장은 물론 동남아 시장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아졌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연봉 공개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선수를 잡을 수 없게 됐다고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조금 더 반박을 해보겠다. 윤성효 감독 시절 수원은 예산으로 400억 원씩을 쓰기도 했다. 내가 봤을 때 이게 K리그 시장에서는 투자의 최대치다. 외국 자본이 K리그에 유입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투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데 수원은 이렇게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는커녕 K리그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실 수원이 투자를 줄인 건 연봉 공개 때문이 아니라 막대한 투자에도 성적을 내지 못해 모기업 차원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일기획에 떠넘기듯이 운영 주체를 넘긴 것도 사실은 구단 운영에 따른 성과가 부족한데 여론 눈치도 있으니 최소한의 운영비로 명맥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는 것만 같다. 그런데 여기에 연봉 공개라는 명분이 생겼으니 기가 막힌 타이밍에 애꿎은 연봉 공개가 타겟이 됐을 뿐이다. 포항도 수년 전부터 모기업이 흔들리고 있으니 일찌감치 쇄국정치를 쓴 것일 뿐 연봉 공개는 투자 위축과는 별로 영향이 없다.

유소년 육성과 마케팅에 투자하라

지금까지 너무 암울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현실이다. 그리고 선수 유출을 연봉 공개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우선 가장 좋은 건 우리도 몇몇 슈퍼 클럽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실 아쉬운 부분은 열악한 시도민구단이 살아갈 방법이 부족해졌다는 점이다. 원래 이런 구단들은 빅클럽에 선수를 팔아 운영되지만 빅클럽이 연봉 공개를 ‘핑계로’ 투자를 줄이니 자생력이 부족해지고 있다. 중하위권 구단에서 선수를 키워 파는 형태의 순환 구조가 무너지고 만 게 참으로 아쉽다. 우리도 슈퍼 클럽이 있어 중하위권 구단의 좋은 선수들이 거액 연봉을 받고 K리그내 슈퍼 클럽으로 이적하는 형태가 되는 참으로 좋겠지만 이는 만수르 같은 이들이 투자를 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전북이 K리그에서는 빅클럽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북도 중국이나 중동 자본과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인 수준이다. 수원이나 서울, 포항, 울산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들이 지갑을 닫은 이유는 연봉 공개 때문이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을 그만 붓고 싶은데 연봉 공개라는 좋은 타이밍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도적인 부분을 생각해 봐야 한다. 거대 자본과 맞설 수 없다면 안타깝지만 셀링리그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나는 규정으로 묶어서라도 선수 이적료의 일정 부분을 구단이 의무적으로 유소년에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년에 이적료로 100억 원을 벌어들인 구단이 있다면 이중 50%는 의무적으로 유소년 육성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다. 무조건 선수만 해외로 유출하는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수익이 올바르게 순환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저 선수가 해외로 팔려 나가는 것만 볼 수밖에 없다. 에두가 남기고 간 이적료 45억 원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키워낼 수 있다면 에두의 해외 이적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최상위 실력을 갖춘 선수를 우리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결국 우리는 자꾸 최상위 실력의 선수를 배출하고 내보내고 또 다른 누군가를 배출하는 형태로 가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백억 원을 애들 껌값 정도로 생각하는 거대 자본과 맞설 수 없다.

또한 나는 선수 연봉 공개 못지 않게 구단 마케팅 비용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대세는 일본으로 떠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연봉 공개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더 문제다. K리그에서 외로운 경기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의 말에 답이 있다. 중국 구단에서 100억 원을 제시한 선수를 K리그에서 연봉 10억 원으로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차익이 크지 않다면 적은 연봉으로라도 K리그에 남고 싶어 하는 이들도 생겨날 수 있다. 그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가 바로 대중의 관심이다. 텅 빈 경기장에서 뛰며 연봉 20억 원을 받느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경기장에서 연봉 10억 원을 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선수들도 참 많다. K리그를 떠나는 이들이 무조건 돈만 보고 그런 선택을 했다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 중국 구단의 거액 제의를 거절한 최용수 감독을 보면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일단은 선수들이 뛰고 싶은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도 애정이 생기고 거액의 유혹도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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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FC는 시민구단 전환 당시 논란도 많았지만 차근차근 시민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게 바로 K리그가 자생력을 갖추는 방법 아닐까. (사진=성남FC)

연봉 공개, 긴축 재정이 목적 아니었다

그래서 마케팅 비용 공개가 필요하다. 구단이 얼마나 대중의 관심을 위해 투자했는지 명명백백히 공개하자는 거다. 선수 연봉 공개가 부담이라고 핑계(?)댈 수는 있어도 사실 마케팅 비용은 그런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인건비가 많이 나가는 건 여론이 부담스럽지만 마케팅을 열심히 한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거부감이 없다. 선수 연봉도 공개했으니 각 구단별로 관중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 1년 동안 얼마나 돈을 썼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공개하자.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사실 연봉 공개라는 게 처음에는 선수단 인건비를 줄여 더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지금 연봉 공개는 그저 구단의 긴축 정책을 위한 핑계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 취지대로 선수단 인건비를 제대로 된 곳에 쓰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는 구단별로 마케팅 비용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어느 구단이 제일 열심히 마케팅 활동을 벌였는지, 어느 구단이 손가락만 쪽쪽 빨면서 관중이 오기만을 기다렸는지 다 까보자. 마케팅 비용을 알아야 적게 쓰고 우는 소리 하는 구단을 찾아내 “똑바로 하라”고 압박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은 줄어든 선수단 인건비는 유소년이건 마케팅이건 재투자 되어야 한다. 그게 연봉 공개의 원래 취지였고 내가 연봉 공개를 처음부터 지지한 이유였다. 마케팅이 활발해져 대중의 관심이 늘어나 경기장이 꽉꽉 들어차고 유소년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면 그때는 또 과감히 선수 연봉에도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선수 유출은 연봉 공개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수 유출을 어떻게든 막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게 다 연봉 공개 때문”이라고 이상한 곳에 포커스를 맞춰 신세한탄하며 누군가를 탓하고 있을 텐가. 선수 유출은 연봉 공개가 쟁점이 아닌데 자꾸만 비판 대상을 찾다보니 엉뚱한 연봉 공개만 이슈가 되는 모양새다. 연봉 공개가 이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해결책은 시작되지 않을까. 큰 불이 났는데 누군가 아주 작은 부채로 부채질을 한다고 해 언제까지 이 부채질을 멈추면 화재가 진압될 것이라고만 생각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 화재에는 별다른 영향도 없는 부채질 탓만 할 것인가. 이제 소방차를 부르고 소화기를 든 채 뛰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