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0-0으로 끝나는 축구경기가 다 재미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늘 K리그에서 0-0 경기가 나오면 리그의 수준을 논하는 이들에게 반박해 왔다. 0-0 경기라고 할지라도 공방이 치열하게 이어지는 경기는 충분히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때론 허술한 수비로 난타전이 펼쳐지는 것보다도 아기자기한 0-0 경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지난 주말 벌어진 FC서울과 수원블루윙즈의 2015 현대오일뱅크 18라운드 경기에서 펼쳐진 0-0 무승부는 실망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이 경기를 통해 K리그의 많은 지도자들과 선수들이 축구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단순히 0-0이어서가 아니라 경기 내용 자체가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이 못미쳤기 때문이다. 특히 4만 관중 앞에 선 홈팀 서울의 경기력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탄탄한 수비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일단 나는 수비 축구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메이웨더가 파퀴아오를 상대로 얄밉게 도망다니면서 승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바탕으로 피할 곳 없는 사각의 링에서 12라운드 동안 강력한 펀치 한 방 맞지 않고 승리를 따낸 메이웨더의 플레이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얄밉긴 해도 이건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절대 수비가 안정되지 않고서 승리할 수는 없다. 아무리 공격을 잘해도 수비 역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어야 한다. 능동적인 공격수에 비해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수비수가 90분 동안 상대를 틀어막는 장면은 축구의 묘미이기도 하다. 비록 나는 키가 작아 배구를 하다 그만뒀지만 당시 수비의 중요성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적이 있다. 수비는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다. 수비도 제대로 못하면서 공격을 한다는 건 사칙연산도 못하면서 미적분을 논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문제는 탄탄한 수비 이후의 공격 의지가 얼마냐 있느냐는 것이다. 메이웨더가 12라운드 내내 도망만 다녔다면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강력한 펀치는 아니었지만 메이웨더는 수비를 하는 틈틈이 파퀴아오를 향해 점수를 딸 수 있는 주먹을 날렸다. 이렇듯 수비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공격을 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수비만 아무리 잘하면 그건 경기가 끝날 때까지도 지지 않는 것일뿐 이길 수가 없다. 축구라고 다를 게 없다. 공격 의지 없이 수비만 하는 팀은 스포츠의 기본인 ‘승리 추구’를 등한시하는 것이다. 이건 스포츠인으로서 직무유기다. 공격 일변도로 경기를 펼치라는 게 아니라 수비를 우선시 하더라도 상대 약점을 파고들어 때로는 공격하라는 의미다. 수비는 공격으로 가기 위해 잔뜩 움츠리고 있는 단계일 뿐 수비가 경기 자체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지난 주말 슈퍼매치의 서울 경기력은 참 아쉬웠다. 서울은 이날 스리백을 내세웠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게 스리백이냐 포백이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리백이 포백에 비해 조금 더 수비적인 건 사실이지만 스리백이건 포백이건 공격 의지만 있다면 상대를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 서울은 이날 경기에서 김동우와 박용우, 이웅희를 중앙 수비로 내세웠고 김치우와 고광민 등 측면에 선 선수들도 수비에 치중했다. 무려 다섯 명의 선수가 후방에 진을 친 것이다. 여기에 미드필더 오스마르 또한 수비적인 역할을 주로 하는 선수였다. 이런 수비적인 배치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경기 내내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공격 의지를 보이지 않는 건 곤란하다. 심지어 서울은 후반 막판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헤딩이 좋은 수비수들이 하프라인 위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안방에서 4만 관중을 모셔 놓고 치르는 경기에서 이렇게 공격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게 참으로 아쉽다.

상대팀이 서울과 같은 자세라면?

사실 서울의 수비 일변도 경기 운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 시즌 서울은 18경기에서 17골을 기록하며 경기당 한 골도 넣지 못하는 득점력에 머물고 있다. 특히나 최근 세 경기에서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세 경기 2실점에 머물렀지만 그럼에도 승점을 2점밖에 따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북이 18경기에서 27골, 수원이 28골, 포항이 25골, 전남이 24골, 제주가 27골을 기록하는 동안 서울은 많게는 이들보다 10골이나 적게 넣으면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성적이야 내고 있지만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팀으로서, 열악한 시도민구단도 아닌 기업구단으로서 올바른 모습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서울보다 열악한 광주나 성남이 수비 축구를 하면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서울은 이런 시도민구단보다도 공격 의지가 부족하다. 서울을 상대한 수원 서정원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홈팀인데도 서울이 수비에 숫자를 많이 둬 우리 공격이 고전을 했다. 서울은 스리백이 하프라인 위로 올라오질 않았다. 역습을 맞지 않겠다는 의도가 확실했다. 그러면 서울을 상대하는 팀은 누구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실 서울이 공격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지금껏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상대팀들이 공격적으로 받아쳐줬기 때문이다. 서울은 이 틈바구니에서 수비에 치중해 비기거나 한 방을 기록해 이기는 이른바 ‘이진법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 상대팀이 똑같이 서울처럼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수비에만 집중한다면 경기는 어떻게 될까. 그 좋은 예가 있다. 바로 지난해 11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전북의 경기다. 이전 경기들에서 2무 1패를 기록하며 서울의 수비 축구에 질린 전북 최강희 감독은 서울과 똑같은 방법을 썼다. 늘 전북이 몰아치면 서울은 수비에 내려 앉아 비기거나 한 방을 뽑아내 이기는 게 전술이었다. 그런데 최강희 감독은 작심한 듯 이날 경기에서 김기희-최보경-윌킨슨으로 이어지는 스리백을 들고 나왔고 경기 내내 공격보다는 수비에 초점을 뒀다. 중앙 미드필더 신형민도 수비적인 임무에 치중했다. 그리고 이날 전북은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후반 종료 직전 카이오의 결승골로 서울을 1-0으로 제압했다. 서울이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양 팀 모두 공격 의지가 별로 없는 참으로 재미없는 경기였다.

경기가 끝난 뒤 최강희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0-0으로 비기려고 한 경기였다. 서울이 오늘처럼 자신들의 안방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은 플레이를 한다면 경기가 전체적으로 루즈해진다. 우리도 안 지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날 결승골을 기록한 카이오 역시 서울의 수비 축구에 대한 불만을 그대로 나타냈다. “서울과 경기를 하면 항상 수비적으로 경기를 한다. 원정경기에서 그랬다면 이해하겠는데 홈에서 우리를 상대로 수비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오늘 똑같은 전술로 맞붙었는데 어떤 기분이었는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렇듯 만약 서울의 상대가 서울과 똑같이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한다면 경기는 지루해 질 수밖에 없다. 서울이 이진법 축구를 하면서도 그나마 나름대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건 그래도 상대팀들이 서울처럼 수비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공격 의지를 갖춘 상대팀로 인해 득을 보고 있으면서도 리그의 질적 하락을 이끌고 있다. 서울로서는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파리아스가 백패스를 금지한 이유

서울은 좋게 말하면 실리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참 지루한 축구를 구사한다. 지난 2012년 7월 전주에서 열렸던 전북전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최용수 감독은 고용한-김진규-아디-현영민을 수비에 내세웠고 중원에는 한태유와 최현태를 배치했다. 이 둘 모두 수비적인 유형의 미드필더로 무려 6명이 후방에 배치되는 형태였다. 물론 이날도 전북은 공격을 했고 서울은 수비를 했는데 경기 막판 하대성은 0-0 상황에서 시간을 끌다 경고를 받았고 고요한은 아예 축구화 끈을 풀고 시간을 끌다 상대팀 이흥실 감독대행과 충돌하기도 했다. 0-0 상황이라면 그래도 막판까지 공격 의지를 보여줄 법도 한데 서울이 이날 경기에 임하는 자세는 하대성과 고요한의 행동에서 딱 드러났다. 물론(?) 이날도 서울은 전북과 0-0으로 비겼는데 전북 선수들이 아쉬워하는 동안 서울 선수들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무승부를 만끽(?)했다. 서울이 수비적으로 경기에 나선 게 최근 한두 경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또한 이들이 공격을 해 이길 의지가 별로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마치 헌팅을 시도하는데 철벽 방어를 하며 연락처를 주지 않는 여성 같다.

물론 서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데얀이 팀을 떠난 뒤 서울 공격진의 무게감이 약해진 건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도 서울은 박주영을 비롯해 정조국, 몰리나, 윤주태, 차두리 등 공격적인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즐비하다. 여기에 고요한이나 고명진 등도 중원에서 공격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다. 데얀이 떠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광주나 성남, 인천에 비하면 이 정도 선수들은 여전히 ‘초호화’다. 선수 탓을 하며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건 말이 안 된다. 중산층이면서 서민들을 보고도 “나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더군다나 서울은 수도를 연고로 하는 팀이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수도 팀이라면 k리그를 넘어 아시아를 선도할 철학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방 팀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지방 시도민구단들에는 이런 공격 축구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대표하는 팀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보다 화끈한 경기를 보여 달라는 뜻이다. 지난 원정경기에서 수원에 1-5로 대패한 뒤 서울은 이번 슈퍼매치에서 너무나도 소극적인 모습에 그치고 말았다. 이건 지지 않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경기였다. 언제든 축구는 0-0 경기가 나올 수 있지만 이런 식의 0-0 경기는 곤란하다.

골을 많이 넣으라는 말이 아니다. 공격 의지를 지금보다 더 갖추라는 거다. 과거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을 맡았을 당시 부임하자마자 백패스를 금지시켜 버렸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당황했다. 경기 도중 줄 곳이 없으면 뒤로 돌리는 게 습관이었던 선수들에게 갑자기 백패스를 하지 못하게 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파리아스 감독은 경기 도중 뒤로 공을 돌리는 선수가 있으면 불호령을 내렸고 결국 선수들은 억지로라도 전진 패스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지만 2년 정도 지난 시점부터 파리아스의 포항은 굉장히 공격적인 팀으로 변모했다. 단순히 맹공을 퍼부어 많은 득점을 올리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기본적인 철학을 공격지향적으로 두고 의지를 갖춰달라는 것이다. 0-0으로 비기거나 1-0으로 이기거나 0-1로 지는 게 전부인 축구는 참 매력 없지 않은가. 파리아스 감독은 백패스 금지령을 내린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공을 앞으로 보내지 않고서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공을 뒤로 돌린다는 건 축구선수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팬들의 원하는 진정한 슈퍼매치는?

앞서 말한 것처럼 탄탄한 수비도 축구에서는 흥미로운 요소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정 팀 상황이 좋지 않으면 탄탄한 수비를 앞세운 뒤 빠른 역습으로 상대 뒷공간을 노리는 전술도 쓸 수 있다. 이런 걸 가지고 공격 의지 없는 지루한 수비 축구라고 비판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과연 서울은 지금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 4만 명에 이르는 홈 관중 앞에서 공격 의지가 없는 90분을 보내며 0-0 무승부를 거둔 서울은 과연 지지 않았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전북 최강희 감독은 “원정경기에서는 몰라도 홈에서는 무조건 화끈한 축구를 통해 승리하는 게 팬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울도 이런 철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원정경기는 그렇다고 해도 많은 관중이 들어찬 안방에서 보다 더 공격 의지를 보여주는 게 어떨까. 허울 뿐인 슈퍼매치가 끝나고 하루 뒤 전남은 적지에서 공격적인 축구로 두 골을 넣은 뒤에도 공격적으로 임하다 결국 전북에 두 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두 팀은 경기 종료 직전까지 무승부에 만족하지 않았다. 전북 원정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전남으로서는 이득일 텐데 그들은 끝까지 상대 골문으로 돌진했고 0-2에서 2-2를 만들어 한숨 돌릴 법한 전북도 마지막까지 역전골을 위해 뛰었다. 그리고 그들은 경기가 2-2로 끝나자 다들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팬들이 원하는 진짜 슈퍼매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