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축구 대표팀이 내달 6일 열리는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 나선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지난 금요일(15일) 치열한 경쟁 끝에 최종 엔트리 23명이 발표됐다는 걸 아는 이들은 더더욱 많지 않다. 2003년 미국 대회 이후 12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여자축구가 이번 대회를 통해 첫 승에 도전한다는 것은 앞으로 차차 칼럼을 통해 소개할 생각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보다 조금 더 소외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오늘이 아니면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기가 지나기 때문이다. 바로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이번 여자 대표팀에서 마지막까지 주전 경쟁을 펼치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관문에서 탈락한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집 하루 앞두고 부상 당한 이영주

윤덕여 감독은 지난달 말 여자 월드컵에 나설 예비 명단 26명을 발표했다. 지소연(첼시레이디스)와 박은선(로시얀카FC) 등을 앞세운 여자 축구 대표팀은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사실은 부상 선수들이 속출해 엔트리 선정에 애를 먹고 있었다. 심서연(이천대교)과 전가을(인천현대제철)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컨디션을 꾸준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윤덕여 감독은 당초 23명의 최종 엔트리를 곧바로 발표할 생각이었지만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면서 예비명단 26명을 먼저 발표했다. 그러면서 잔인한 경쟁도 시작됐다. 누군가는 최종 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함께 땀 흘리던 선수들과 작별하고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26명 중 무려 세 명이나 이 잔인한 경쟁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팀의 전력 강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 대표팀 예비 명단에 뽑힌 이들 중 소속팀 일정으로 뒤늦게 합류하기로 한 지소연과 박은선을 제외하고는 8일 파주트레이닝센터에 모두 모이기로 했다. 부산상무 이영주 역시 대표팀 소집을 기대하고 있었다. 16세 이하 대표팀을 시작으로 연령대별 팀을 두루 거치며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공수 조율의 임무를 맡아온 이영주는 2010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 월드컵 3위에도 크게 기여했고 2011년에는 한양여대의 여왕기·전국선수권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영주는 2012년 W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부산 상무 유니폼을 입은 뒤 성인 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영주는 한국 여자 축구의 전력 강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선수였다. 8일 파주NFC 합류를 앞두고 그녀는 하루 전 WK리그 경기에 나서 경기력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결국 이영주는 약속한 날짜인 8일 파주NFC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전날 열린 이천대교와의 WK리그 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리 큰 부상이 아닌 줄 알았지만 병원 진단 결과는 믿을 수 없었다. 오른쪽 무릎 인대 손상으로 전치 6주의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결국 이영주는 대표팀 소집 하루를 앞두고 당한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12년 만에 나서는 월드컵 꿈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지금껏 윤덕여 감독 밑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주전으로 활약하던 터라 그녀는 부상이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윤덕여 감독은 이영주의 부상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수시로 상태를 체크하다 결국 그녀의 합류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표팀 소집 하루를 앞두고 부상을 당해 정말 안타깝습니다. 감독이 돼 선수 부상하나 막지 못해 미안하네요.”

잔인한 경쟁에서 탈락한 그녀들

이후 윤덕여 감독은 기로에 놓였다. 이영주의 부상 낙마로 대체 선수를 한 명 더 뽑아 새롭게 경쟁을 펼칠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26명 중 이영주가 부상으로 빠지며 25명의 선수가 남았는데 이중 2명 만을 떨어트리는 건 너무나도 잔인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골키퍼는 네 명을 뽑은 상태여서 한 명 탈락이 유력했으니 필드 플레이어 중 단 한 명만 함께 훈련을 하다 짐을 싸야하는 잔인한 경쟁이었다. 하지만 윤덕여 감독은 고민 끝에 이영주 대체자를 뽑지 않기로 했다. 대표팀 소집 준비가 안 된 선수를 급하게 불러 억지로 팀에 채워 넣으면 오히려 팀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최종 엔트리 탈락에 대한 상처는 더욱 클 수밖에 없지만 팀을 위한 선택이었다. 이후 지소연이 대표팀에 합류해 윤덕여호는 23명의 최종 엔트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려 열흘 간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 전술과 체력 훈련 등을 하며 다가올 월드컵을 준비했다. 특히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은 골키퍼 포지션이었다. 이미 대표팀에서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참’ 김정미(인천현대제철)와 전민경(이천대교)이 이변이 없는 한 최종 엔트리 발탁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남은 한 자리를 놓고 두 명이 경쟁했다. 바로 윤영글(수원시설관리공단)과 윤사랑(화천KSPO)이었다. 윤영글은 2015 키프러스컵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르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윤사랑은 올 시즌 WK리그 6경기에 나서 5실점하며 약체 팀의 수비를 이끌고 있었다. 이 둘 중 누가 살아남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잔인한 건 필드 플레이어 중 최종 엔트리 탈락자를 선정하는 일이었다. 필드 플레이어 21명 중 단 한 명만이 엔트리 탈락이라는 쓴맛을 보기 때문이었다. 여러 명이 우르르 떨어지는 건 그나마 낫지만 한 명만을 선택해야 하는 건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다. 일부에서는 수비수 중 한 명이 고배를 들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윤덕여 감독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일생일대의 기회인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돌아서야 할 제자를 선택하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스승의 날이었던 지난 15일 잔인한 선택을 해야 했다. 코치진과 끊임없이 상의하고 몸 상태를 체크한 끝에 두 명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바로 박희영과 윤사랑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캐나다에 데려가지 않기로 결정한 이들은 바로 이 둘이었다. 윤덕여 감독은 이 둘을 방으로 불러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미안하다”고 했다. A매치 경험이 없는 골키퍼 윤사랑이 제외된 것도 고민 끝에 이뤄진 결정이었지만 박희영(대전스포츠토토)의 제외는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이었다. 2010년 20세 이하 월드컵 3위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동메달에 크게 기여했던 박희영은 어느 정도 최종 엔트리 안정권에 있는 선수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덕여 감독은 월드컵에서 수비적인 옵션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고민 끝에 아쉽게도 박희영을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이영주와 윤사랑, 박희영에게도 박수를

결국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월드컵을 준비하던 이영주와 윤사랑, 박희영은 이렇게 각자 다른 이유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됐다. 특히 이들 중 윤사랑과 박희영은 쓸쓸히 짐을 챙겨 동료들이 있는 파주NFC에서 나와야 했다. 꿈을 코앞에 두고 돌아서야 하는 이들도 대단히 안쓰럽지만 스승의 날, 제자들에게 상처를 줘야 하는 윤덕여 감독 역시 괴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윤덕여 감독은 “그 동안 같이 고생해서 훈련한 선수들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크다. 속상한 마음이야 본인들이 가장 크겠지만 나 역시 마음이 아프다”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23명은 이날 오후 대표팀 단복 촬영을 마무리했다. 파주NFC에서 떠난 자와 살아남은 자의 차이는 이렇게 극명했다. 한 쪽은 단복 촬영을 하고 또 다른 한 쪽은 짐을 싸 나와야 하는 극과 극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제 23명의 살아남은 선수들은 오늘(18일) 출정식을 치르고 20일 미국으로 떠난다. 그렇게 어려운 결정 끝에 12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과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나뉘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영주와 윤사랑, 박희영의 축구 인생이 여기에서 끝나는 건 아니다. 우리는 한 번 좌절을 맛본 이가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숱하게 봐왔다. 비슷한 예로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던 이근호가 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골까지 넣는 활약을 펼쳤다는 걸 한 번쯤은 떠올렸으면 한다. 나는 그들 역시 충분히 다시 일어서 다가올 월드컵에서 맹활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이 정정당당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역사적인 월드컵에 나서게 된 23명에게도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본선에서의 응원을 보낸다. 여기에 더해 아쉬운 부상으로 낙마한 이영주와 최종 경쟁에서 탈락한 박희영, 윤사랑 외에도 부상으로 예비 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서현숙과 김나래 등에게도 진심으로 빠른 쾌유를 빈다. 이번 월드컵에는 23명만이 나서게 됐지만 그녀들뿐 아니라 기반이 열악한 한국 여자 축구를 이끄는 모두가 바로 이번 월드컵의 주인공 아닐까.

*알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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