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5 호주 아시안컵에도 MBC는 ‘용병’을 썼다. 자사 캐스터들을 다 떼어 놓고 프리랜서 방송인 김성주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자사 캐스터가 아닌 이에게 일시적으로 돈을 주고 고용했으니 말 그대로 ‘용병’이다. 지난해 동계올림픽 때도 그랬고 월드컵 때도 그랬고 아시안게임 때도 그러더니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MBC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MBC의 이런 선택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김성주에 대한 평가를 하려는 게 아니라 MBC가 전혀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대형 스포츠 이벤트 때마다 땜빵용(?) 용병을 쓰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건 시청자에 대한 모독이고 자사 캐스터들에 대한 무시다. MBC는 언제까지 이런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용병’을 고용할 텐가.

예능인 김성주와 축구 무시하는 MBC의 결합

김성주가 얼마나 유능한 방송인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 것이다. 나 역시 그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즐겨본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보여주는 재치는 그가 왜 그 분야에서 최고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어제(18일) 막을 내린 <아빠! 어디가?>의 마니아이기도 했다. 원래 스포츠 전문 케이블 출신인 김성주는 긴장감 있는 중계에도 엄청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이상화가 출전한 스피드 스케이팅 중계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슈퍼스타K> 역시 김성주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높은 인기를 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방송인 김성주의 팬인 나는 김성주의 능력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를 비난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MBC에는 할 말이 좀 있다. 스포츠 중계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MBC는 스포츠 중계, 특히 축구 중계에 대한 관심이 하나도 없다. MBC를 통해 국가대표 축구 경기 외에 중계된 축구 경기가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4년 동안 생중계한 K리그 경기는 딱 한 경기에 불과하다. 그것도 2011년의 일이다. 최근 3년 동안 MBC는 단 한 번도 지상파를 통해 K리그를 중계한 적이 없다. 지난해에는 새벽 2시 5분에 한 경기를 녹화 중계한 게 전부다. 4년 동안 생중계 1회, 모두가 잠든 심야 시간 녹화 중계 1회가 MBC의 성적표다. 반면 KBS는 지상파를 통해 최근 4년 동안 K리그 12경기를 생중계했고 SBS 역시 7회나 K리그 생중계를 했다. 수치로 보면 MBC가 그동안 얼마나 한국 축구를 소홀히 대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은 지금껏 전혀 국내리그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지난 2010년 K리그 중계권 구입을 거부한 뒤 무단으로 중계 방송과 스포츠뉴스 등을 통해 K리그 장면을 사용해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KBS와 SBS는 각각 15억 원을 내고 K리그 중계권을 사들였었다.

그런데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 또 이건 득달 같이 달려든다. 지금까지 중계 경험이 전무하니 쓸 캐스터가 없다. KBS가 언제든 축구 중계가 가능한 서기철과 전인석, 이재후, 최승돈 등 경험이 풍부한 캐스터를 보유하고 있고 SBS는 매주 해외 축구를 전하고 K리그까지도 중계하는 배성재 캐스터를 키우는 동안 MBC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껏 아무도 키우지 않았으니 당장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 이걸 전담할 캐스터가 마땅치 않다. 그래서 고용하는 ‘용병’이 바로 프리랜서 방송인 김성주다. 인지도도 충분하니 다른 방송사가 꾸준히 노력하고 발굴한 캐스터를 ‘용병’ 한 명이 그냥 이겨 버린다. 지금까지 이런 현상이 무한 반복됐다. 여기에 <아빠! 어디가?>의 인기를 등에 업고 지금껏 축구 중계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했던 다른 방송사는 졸지에 바보가 됐다. SBS는 배성재 캐스터 괜히 키웠다. 더 거액을 제시해 프리랜서 방송인 김성주만 잡았으면 아주 손 쉬웠을 텐데 말이다.

MBC의 방송 사고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MBC는 자사 캐스터가 그리도 없나. 바늘 구멍 통과해 MBC에 입사한 능력 있는 캐스터가 많을 텐데 어쩜 아시안컵에 대표로 나설 인물 하나 없단 말인가. K리그가 아니더라도 해외 축구라도 꾸준히 중계하는 노력을 MBC가 기울였다면 이런 상황에서 ‘용병’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오늘도 MBC의 캐스터들은 프리랜서 방송인 한 명에 가려 축구 중계 마이크도 잡지 못한다. 처음 SBS 배성재 캐스터가 등장했을 때 익숙지 않은 목소리에 다소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이제 배성재 캐스터는 SBS의 간판 축구 중계 캐스터로 자리 잡았다. MBC도 자사 캐스터들에게 기회를 줬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축구 중계, 아니 야구 빼고 그 어떤 종목에도 관심이 없는 MBC는 자사 캐스터들에게 이런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니 급할 때면 김성주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도 부탁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명색이 지상파 방송사에서 축구 중계를 맡을 만한 캐스터 한 명 못 키웠다는 건 참 한심한 일 아닌가. 프리랜서 선언하고 나간 이에게 밀려 자사 캐스터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건 참 황당한 일 아닌가.

MBC는 과거 스포츠 중계의 전설적인 캐스터들이 많았다. 송재익을 비롯해 송인득, 임주완 캐스터 등은 1990년대 MBC를 스포츠 중계의 메카로 이끌었다. 하지만 MBC가 스포츠를 천대하면서부터 그 명맥은 뚝 끊기고 말았다. 김성주가 없으면 아예 MBC에는 스포츠 중계 전문 캐스터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김성주가 MBC에서 용병으로 고용돼 활약하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MBC의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증거다. 평소 축구 중계를 안 하니 호주와의 아시안컵 중계 당시 마이크는 들리질 않고 소리와 영상의 싱크도 맞지 않고 아주 ‘난리 부르스’ 아니었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스포츠 중계에서 이런 방송 사고가 나나. 그만큼 스포츠 중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방증 아닌가. 다른 방송사에서도 호주전을 중계했다면 바로 채널을 돌렸겠지만 단독 중계라 싱크도 제대로 안 맞는 MBC 중계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1년에 5~6경기 할까 말까한 이들과 매주 밤 해외 축구 중계를 통해 내공을 쌓은 곳과의 차이는 이렇게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번 호주전 중계에서 김성주는 수 차례 실수를 했다. 호주를 중국이라고 했고 선수 이름도 수 없이 틀렸다. 핸드볼 파울을 오프사이드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이게 김성주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송재익 캐스터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에게 “선수 이름 부르는데 워낙 실수가 많은 거 아니냐”고 묻자 그가 이런 답변을 한 적이 있다. “그냥 ‘한국 잡았습니다’, ‘일본 잡았습니다’라고 하면 틀릴 일이 없지만 그렇게 실수가 무서워 피해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니 다 실수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MBC의 수준 낮은 지금의 중계는 그냥 단순히 사람의 실수 때문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프리랜서 방송인을 ‘용병’으로 고용했으니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중계 준비에 투자할 수 있을까. 김성주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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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과연 그라운드의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을까.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쳐 화면)

MBC는 언제까지 김성주만 바라볼 텐가

그러니 이런 실수들이 속출하는 거다. 김성주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김성주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MBC의 부름을 받고 호주로 날아갔다. 문제는 MBC다. 적어도 자사 캐스터에게 경험을 쌓게 한 뒤 미리 아시안컵 중계를 배정하고 ‘빡세게’ 공부시켜 마이크를 잡게 하는 게 시청자를 위한 예의다. 스포츠를 무슨 예능 프로그램 다루듯 인지도 높은 출연자 사오는 걸로 채워서는 안 된다. 이렇게 스포츠 캐스터 키울 생각도 없이 ‘용병’을 고용하면 송재익도, 송인득도, 임주완도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이라고 처음부터 전설적인 캐스터였을까. MBC도 자사 스포츠 중계 캐스터를 키워야 한다. 지금처럼 평소에는 전혀 스포츠 중계에 관심이 없다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 ‘용병’으로 떼워서는 안 된다. 그건 자사에서 스포츠 중계의 꿈을 꾸는 캐스터들의 열정을 짓밟는 일이고 시청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그저 인지도 있는 ‘용병’을 내세우고 거기에 <아빠! 어디가?>빨로 떼워 “때댕큐”만 연발하는 게 지상파 방송사의 스포츠 중계인가. MBC는 언제까지 ‘용병’ 김성주만 바라보고 있을 텐가.